20.11.21 20:16최종 업데이트 20.12.03 11:12
  • 본문듣기

어차피 죽기를 각오한 몸, 죽기 전에 두 아들에게 뭔가를 남겨주고 싶었습니다. 그 중 하나가 20년 넘게 해왔던 농사일이었습니다. 예년보다 한 달 늦은 마늘을 구태여 심는 이유이기도 했습니다. ⓒ 송성영

 
"에고 어지러워라."

그 해 겨울, 암 수술을 거부하고 두 아들의 힘을 빌려 텃밭에 늦은 마늘을 심는데 현기증이 몰려왔습니다. 피를 쏟고 쓰려져 암 판정을 받은 지 한 달도 더 지난 무렵이었지만 밭일이 힘에 부쳤습니다.


"아빠는 이제 들어가 쉬시라니께."
"앞으로 니들 스스로 밭을 일굴 때가 올 거다. 내가 어떻게 될지 모르니까, 이번에 확실하게 배워 둬라."
"아빠는 아직 밭일하기에는 무리라니께."
"피를 다섯 봉지나 쏟았는데 멀쩡하겄냐. 그것 때문에 그렇지, 시간이 지나면 괜찮아질겨. 이전보다 몸도 마음도 가벼워졌으니께."
"그렇긴 하지만 조심하셔야지."


어차피 죽기를 각오한 몸, 죽기 전에 두 아들에게 뭔가를 남겨주고 싶었습니다. 그 중 하나가 20년 넘게 해왔던 농사일이었습니다. 예년보다 한 달 늦은 마늘을 구태여 심는 이유이기도 했습니다.

"현기증이 난다고 방안에 누워 있으면 더 힘들어지는겨. 몸을 살리기 위해 몸을 움직여 줘야 혀."
"그래두 현기증이 난다는 것은 아직......"
"죽기도 하는데 이 까짓 현기증이 뭔 대수겠냐."


평생 농약은 물론이고 화학비료 없이 경작하는 나의 밭일은 단순히 작물만을 키우는 것이 아닙니다. 밭일을 통해 나 아닌 다른 생명의 소중함을 일깨워 가는 것입니다. 나 아닌 다른 생명의 소중함을 일깨워 가다보면 '내 자신'이 얼마나 소중한지 알게 됩니다. 내 자신의 소중함을 알게 되면 다른 생명을 소중하게 껴안을 수 있는 힘이 생깁니다. 하나의 연결고리로 이어져 있는 이 과정 속에서 삶의 목적이라 할 수 있는 행복감을 맛보게 됩니다.

또한 모든 생명을 또 다른 나처럼 소중하게 여기는 마음자리에 다가갈수록 죽음에 대한 두려움에서 멀어질 수 있습니다. 살고 죽는 문제를 초월해 나는 이미 그 소중한 무엇이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죽음의 두려움에서 벗어날 때 비로소 죽음을 일상처럼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죽음을 일상처럼 받아들일 수 있다는 것은 죽음의 전령사, 암에 대한 두려움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암 전문의들 혹은 대체요법을 통해 암을 치유한다는 사람들은 말합니다.

"암환자들 대부분은 심리적으로 초죽음이 되어 기력이 형편없이 떨어진 상태로 찾아옵니다."

저 또한 마찬가지였습니다. 위를 통째로 잘라내야 한다는 중기 위암 선고를 받은 순간, 내 삶은 여기까지구나, 절망감이 몰려와 두 다리의 힘이 풀려 그로기 상태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사나흘 고민 끝에 수술을 거부하고 죽음을 일상으로 받아들이고부터 그 절망감에서 좀 더 멀리 벗어날 수 있었습니다.
 

위를 통째로 잘라내야 한다는 중기 위암 선고를 받은 순간, 내 삶은 여기까지구나. 절망감이 몰려와 두 다리의 힘이 풀려 그로기 상태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사나흘 고민 끝에 수술을 거부하고 죽음을 일상으로 받아들이고부터 그 절망감에서 좀 더 멀리 벗어날 수 있었습니다. ⓒ 송성영

 
죽음의 두려움에서 벗어나는 일

죽음이 눈앞으로 다가오면 경험하지 못한 크나큰 두려움에 직면하게 됩니다. 가장 견디기 힘든 것은 두 아들을 비롯한 사랑하는 모든 사람들과의 영원한 이별, 더 이상 만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육신은 먼지처럼 산산이 흩어져 버리고 영혼은 알 수 없는 막막한 어둠속으로 빨려 들어갈 것이라는 공포가 몰려옵니다.

삶과 죽음에 있어서 죽음만큼 딱 떨어지는 해답이 없다고 봅니다. 죽음 이후의 세계가 어떻게 펼쳐질지 알 수 없듯이 삶을 이렇다 저렇다 규정지을 마땅한 답을 찾기 어렵습니다. 하여 그 해답을 찾기 위해 성인들의 말씀에 귀 기울이게 됩니다.

부처님 말씀대로 모든 것은 변합니다. 다른 것들과의 상호 관계 속에서 생겨났다가 사라집니다. 사람뿐 아니라 모든 생명은 태어나면 언젠가는 죽기 마련입니다. 죽음은 변하지 않는 진리입니다. 그 사실을 빤히 알면서도 몸과 마음으로 순순히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습니다. 하지만 부처님 말씀대로 죽음이 없다면 어찌 삶이 있을 수 있겠습니까. 태어나면 죽는다는 이 단순한 진리를 몸과 마음으로 받아들이는 순간 두려움에서 멀어지게 되고 죽음이 일상처럼 다가옵니다.

죽음을 목전에 둔 암환자들이 두려움이라는 감옥에 갇히게 되면 일상생활을 유지하기 어렵습니다. 스스로 만든 감옥에서 몸은 날로 쇠약해지고 급기야 넋이 나간 상태에 이르게 되는 것입니다. 그 상태로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이 되어 이런저런 검증되지 않은 항암제의 유혹에 빠지게 됩니다.

격투기 선수가 링 위에 올라 상대의 기에 눌리게 되면 다리 힘이 풀립니다. 다리 힘이 풀리면 승리할 경우의 수는 희박합니다. 마찬가지로 죽음과 한 몸처럼 다가온 암세포의 두려움에 눌리게 되면 암세포에서 벗어나는데 그만큼 힘들게 됩니다.

나의 자연치유법의 첫 번째 조건은 바로 죽음의 두려움에서 벗어나는 일입니다. 죽음을 일상의 진리처럼 두려움 없이 받아들이는 만큼 죽음을 불러들이는 격투사인 암세포의 공격을 직시할 수 있습니다. 죽음의 링 위에 올라 암세포를 상대로 가볍게 스텝을 밟을 수 있습니다. 암세포의 공격을 피해 반격할 수 있는 여유마저 생깁니다. 하지만 두려움으로 다리에 힘이 풀리게 되면 영혼까지 탈탈 털려 1회전도 채 버티지 못하고 KO 당할 것입니다.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내가 암과 함께 살아가겠다는 것은 죽음을 일상으로 받아들이겠다는 것입니다. 가혹한 암세포를 스승 삼아 죽는 순간까지 두려움 없이 당당하게 살아 보겠다는 것입니다. 죽음에 대한 두려움의 늪에 헤어나지 못하는 것은 내 남은 생을 죽음의 사자에게 헌납하겠다는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맥 놓고 주저앉아 내 몸과 영혼을 죽음의 사자에게 팔아버리는 꼴입니다. ⓒ 송성영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내가 암과 함께 살아가겠다는 것은 죽음을 일상으로 받아들이겠다는 것입니다. 가혹한 암세포를 스승 삼아 죽는 순간까지 두려움 없이 당당하게 살아 보겠다는 것입니다. 죽음에 대한 두려움의 늪에 헤어나지 못하는 것은 내 남은 생을 죽음의 사자에게 헌납하겠다는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맥 놓고 주저앉아 내 몸과 영혼을 죽음의 사자에게 팔아버리는 꼴입니다.

현대의학을 맹신하는 사람들은 내가 암세포를 치유하겠노라며 메스나 항암제를 거부하고 숲속에서 기혈운동을 하고 결가부좌로 명상을 하고 있는 것을 두고 암세포가 자신을 갉아 먹고 있는 것도 모르고 스스로 삶을 포기하는 어리석은 짓이라 비난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기혈운동이나 명상은 단지 운동을 하거나 가만히 앉아 죽을 날을 기다리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메스나 항암제 등의 도움 없이 스스로 몸의 기운을 순환시켜 마음의 평정을 유지하고 치유의 힘을 기르려면 엄청난 인내심과 노력이 필요합니다. 거기다가 시시때때로 엄습해 오는 죽음에 대한 공포심을 이겨내야 하고 암세포를 불러들인, 혀끝에 착착 감겨오는 오염된 온갖 먹을거리들의 달콤한 유혹을 물리쳐야 합니다.

그동안 만난 몇몇 대체요법 치유사들이 다 죽어가는 표정이 아닌 뻔뻔할 정도로 당당한 내게 "암환자 맞아요? 어느 병원에서 검사했나요?"라고 물을 때마다 "두 차례에 걸쳐 조직검사를 했고 CT촬영까지 했습니다"라고 말했음에도 믿기지 않는 표정으로 재차 묻곤 했던 이유는 내가 그만큼 죽음의 전령사, 암세포에 당당했기 때문입니다.

죽음을 일상으로 받아들이겠다는 평상심을 잃게 되면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독사처럼 고개를 쳐들고 득달같이 달려듭니다. 나를 둘러싼 그 죽음을 재촉하는 독사들에게 물리게 되면 두려움이라는 독이 온몸에 퍼져 두 다리의 힘이 풀리게 되고 결국 암세포가 세력을 확장하는 빌미를 제공하게 됩니다.

타인을 위하는 것은 결국 내 자신을 위하는 것

마늘을 몇 줄 심기도 전에 두 아들이 재촉합니다.

"인저 손 놓으시고 들어가 쉬시라니께. 자꾸 그러시네"
"알았다 알았어 이눔들아."
"근디 아빠, 이 마늘 너무 늦게 심어서 먹을 수나 있겠어?"
"한 달 정도 늦었지만 뿌리내릴 것은 다 뿌리내리게 되어 있다. 아빠 몸도 마찬가지다. 마늘이 추운 겨울을 견뎌내고 뿌리내리듯 몸이 살아나면 현기증도 자연스럽게 사라지게 될 거다."

 

꿀에 절인 마늘. 남을 위하는 것은 결국 내 자신을 위하는 것입니다. 현기증을 견뎌내고 다른 누군가를 위해 좋은 마음을 담아 심은 마늘은 그 누군가뿐만 아니라 내 몸을 치유하는데 큰 힘이 돼줄 것입니다. ⓒ 송성영

 
"이제 그만 심자. 이 정도면 우리 세 식구 먹고도 남겠다."
"한 개라도 더 심어 놓으면 누군가하고 나눠 먹을 수 있지 않겠냐?"
"그러면 좋은데 아빠 몸이 예전과 다르잖아. 이제는 아빠 몸을 생각해야지. 전에 동충하초 농장 하는 아저씨가 말했잖아, 기억나지? 암환자는 이기적으로 살아야 한다고, 그래야 살아남을 수 있다고."
"그건 그 아저씨 생각이고..."


"어쨌거나 이제 아빠 편한 대로 사셔. 남들 걱정 말고..."
"지금도 편한디..."
"이기적으로 사시라구. 우리나 다른 사람 챙기지 말구, 아빠부터 챙기라구."
"내가 이기적이지 않은 거 같지? 내가 얼마나 이기적인데..."
"뭐가?"
"내가 니들이나 다른 사람 먼저 챙기는 건 내가 편할라구 그러는 거거든. 주변이 편하면 나는 저절로 편해지니께. 결국 나 편할라구 다른 사람을 먼저 챙기는 겨. 나보다 이기적인 놈이 어딨겠냐?"
"에이참, 그러니까 힘들지."
"나는 지금 무지 행복하다. 죽음? 죽음은 누구에나 찾아오잖아. 니들이 내 곁을 지켜주고 또 많은 주변 사람들이 마음 써주고, 이렇게 행복한 사람 있으면 나와 보라구혀."


서로가 그물코처럼 촘촘히 연결되어 있는 세상 만물, 모두가 부처라 했습니다. 나 아닌 것이 없다 했습니다. 나 혼자서는 존재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하여 물질이든 마음이든 내가 좋은 일을 하건 나쁜 일을 하건 결국에 그 일들이 내게 고스란히 되돌아오기 마련입니다.

남을 위하는 것은 결국 내 자신을 위하는 것입니다. 현기증을 견뎌내고 다른 누군가를 위해 좋은 마음을 담아 심은 마늘은 그 누군가뿐만 아니라 내 몸을 치유하는데 큰 힘이 돼줄 것입니다.

"나는 죽는다. 그리하여 지금 여기 살아있다. ㅡ그해 겨울, 죽음을 떠올리며."
 

"한 달 정도 늦었지만 뿌리내릴 것은 다 뿌리내리게 되어 있다. 아빠 몸도 마찬가지다. 마늘이 추운 겨울을 견뎌내고 뿌리내리듯 몸이 살아나면 현기증도 자연스럽게 사라지게 될 거다." ⓒ 송성영

이 기사의 좋은기사 원고료 30,000
응원글보기 원고료로 응원하기
진실과 정의를 추구하는 오마이뉴스를 후원해주세요! 후원문의 : 010-3270-3828 / 02-733-5505 (내선 0) 오마이뉴스 취재후원

독자의견


다시 보지 않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