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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감사노트
 감사노트
ⓒ 김준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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준이가 숙제를 했다며 문제집을 펼쳤다. 모든 문제에는 답만 달려있었다. 문제를 풀면 계산 흔적이 남기 마련이지만 밑줄 하나 없이 깨끗했다. 숨이 죽지 않은 빳빳한 종이가 말해주는 것이 있었다. 학원 밥 18년에 그런 촉은 발달할 수밖에.

"왜 베꼈냐?"라고 단도직입적으로 말할 수도 있다. 그러면 다음에는 숙제를 잘해올까? 초조한 준이의 눈빛을 보자 안쓰러운 마음이 들었다. 

이전에도 일부 문제를 베낀 것 같아서 다시 풀어보라고 했다. 당황해서 풀던 준이는 문제를 몇 번인가 틀렸고 "아, 이거 친구한테 물어보고 풀었어요"라고 했다. 선생님이 알고 있다는 걸 알아채고 스스로 불편한 마음을 느끼길 바랐다. 하지만 이번에는 아예 통째로 베껴왔다.

"준이야, 연습장에 번호 달고 풀이 쓰기로 한 것 좀 볼까?"

식 없이 문제를 푸는 것을 교정하고, 풀이과정에서 오류를 찾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베낀 숙제에 그런 게 있을 리 없었다. 준이는 변명하기를 그만 포기하고, 고개를 푹 숙였다. 그리고는 입을 열었다.

"엄마한테 전화 올지도 몰라요. 아침에 숙제 다 했냐고 해서 덜 했다고 하니까 선생님한테 전화한다고 했거든요."

"내가 엄마한테 뭐라고 말할지 그게 걱정이구나?"


숙제 때문에 엄마한테 혼날까 봐 걱정하는 고등학생이라니. 우리나라 학생들에게는 흔한 모습이지만, 나는 뭔가 단단히 잘못되었다고 생각했다.

"내가 엄마한테 준이가 숙제를 안 해온다고 말하면 너는 엄마한테 꾸중을 듣겠지. 그러면 공부를 하고 싶은 마음이 생기고, 숙제를 잘해올까? 당분간은 그런 것처럼 보이겠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서 예전으로 돌아가게 될 거야."

달라지는 게 있다면 학습에 대한 거부감만 보이지 않는 곳에 조용히 쌓여갈 것이다. 

내 것이라고 생각하면 책임감이 따른다. 숙제를 안 했다면 떳떳하게 인정하고, 질책도 달게 받아야 한다. 스스로 감당하려고 하지 않고 피하려는 준이의 태도가 문제였다. 

"아이들이 스스로 공부에 즐겁게 몰입할 수 있으려면 자율성을 키워줘야 한다. 자율성에 기반한 충동 통제력이야말로 아이들이 건강한 정신으로 한평생을 살아갈 수 있게 하는 회복탄력성의 근간이 된다."

김주환 교수는 <회복탄력성>에서 한 말이다. 회복탄력성은 영어 'resilience'의 번역어로 극복력, 탄성, 탄력성, 회복력을 뜻한다. 그는 회복탄력성을 훈련을 통해서 키울 수 있다고 했다. 운동을 통해서 몸의 근력을 키우듯 마음근력을 키우는 것이다. 구체적 훈련으로 강점 발견 및 발휘, 감사노트 쓰기, 운동하기를 꼽았다.

"준이야, 선생님이 하자는 대로 해볼래?"

나는 '감사노트 쓰기'와 '학습목표 쓰기'를 제안했다. 아침에는 그날의 학습목표를 쓰고, 자기 전에 감사한 일 다섯 가지를 쓰기. 단, 학습목표는 적게 세워서 성취감을 느끼는 것이 중요하다고 했다. 

나도 교습 일지와 감사노트를 쓰기 시작했다. 8개월간 쉬는 동안 불안했다. 내가 다시 수업을 할 수 있을까, 생계 때문에 결국 하게 되겠지만 학원을 폐업할 즈음의 고통에 다시 시달리게 되는 게 아닐까, 이 일이 아니라면 대체 나는 뭘 해서 돈을 벌 수 있을까. 나야말로 회복이 필요한 사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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