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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년째 삼대가 한 공간에서 살고 있습니다. 불편한 점도 많지만 함께여서 배울 점도, 행복한 점들도 꽤 많이 있답니다. 그 이야기를 씁니다. [기자말]
"내가 이걸 다 버리던지 해야지!"

무엇을 정리하기엔 늦었다 싶은 밤, 엄마는 냉장고며 싱크대를 몽땅 뒤져 안에 든 음식물을 꺼내기 시작했다. 커다란 음식물 쓰레기 봉투를 내놓고 닥치는 대로 쓰레기 봉투에 담고 있었다. 뭘 그리 많이 담았는지 커다란 쓰레기 봉투가 이미 불룩했다. 마침 그때 집에 들어온 나는 이건 무슨 일인가 싶어 화가 난 엄마에게 조심스레 물었다.

"엄마! 이 밤에 뭐하는 거야?"
"보면 몰라? 정리하는 거잖아. 이까짓거 다 버리면 되지."
"아니 그러니까 멀쩡한 걸 왜 버리느냐구~"


엄마는 내 말은 들은 체도 하지 않고 여전히 화가 잔뜩 난 얼굴로 꺼내고 버리고를 반복하고 있었다. 나는 그 모습을 지켜보며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언니방을 슬쩍 들여다 보았다. 언니는 아무 일도 모른다는 태연한 표정으로 꼼짝 않고 제 할 일을 하고 있었다. 아마도 엄마와 언니가 무언가 때문에 한바탕 했으리라.

우리는 지금 세 가족이 한 집에서 산다. 형부가 외국으로 발령을 받아 오래 집을 비우게 되었고, 큰 조카는 마침 군입대를 앞두고 있었다. 언니가 작은 조카와 둘이 사는 것이 적적하니 같은 단지에 살고 있던 엄마가 같이 살아보자고 했다. 나도 그땐 목돈이 필요하던 때라 덩달아 함께 살겠다고 했다. 세 집의 관리비만 줄여도 그게 어딘가 싶기도 하고, 여러 가지로 좋은 점이 더 많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언니도 나도 가정을 꾸리고 15년 이상을 따로 살았기에 이런저런 걱정을 했던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몇 년 함께 살아보는 게 앞으로 모두에게 다시 없을 일이 될 것 같았다. 다행히 아이들도 할머니, 이모와 함께 산다는 말을 듣고 좋아했다. 그렇게 해서 엄마, 아빠, 언니, 조카, 우리 네 식구 모두 8명이 한 지붕 아래 살게 되었다. 

모든 게 즐거울 것만 같았던 세 가족의 동거는 살림을 합치는 날부터 삐걱 거리기 시작했다. 세 집 살림을 모두 모아 놓으니 줄이고 버리고 이사를 한다고 했어도 어마어마 했다. 첫 번째 문제는 엄마와 언니가 자신이 쓰던 살림을 쓰고 싶어하는데 있었다. 나는 평소 살림을 엄마나 언니처럼 잘 하는 사람이 아니었기 때문에 이래도 그만 저래도 그만이었다.  

밥통부터 시작해서 냄비, 프라이팬, 그릇, 숟가락까지 걸리지 않는 게 없었다. 이건 이래서 써야 하고 저건 저래서 써야 하고 두 사람의 이유는 다양했다. 엄마와 언니는 살림을 펼치고 마주보고 앉아서 신중하게 하나하나 결정하는 작업을 했다. 

나는 의견을 낼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나의 물건은 이미 나의 것이 아니니, 결정하는 대로 따르리라 생각했다. 그렇게 힘들게 살림살이 정리를 대충 해 둔 터였다. 그런데 문제는 또 다른 곳에서 발생한 것이다. 냉장고를 가득 채운 음식물과 갖가지 말린나물, 장아찌, 양념들이 그 주인공이었다. 
 
베란다 구석 베란다 한 쪽에 엄마가 보관해둔 쌀과 말린 나물들
▲ 베란다 구석 베란다 한 쪽에 엄마가 보관해둔 쌀과 말린 나물들
ⓒ 김미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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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니는 냉장고가 가득 차서 정작 넣어야 할 것을 넣지 못하고 있으니, 오래된 먹지 않는 음식, 먹지 못 할 음식을 치워야 하지 않겠냐고 엄마한테 이야기했다. 베란다 곳곳에 있는 아까워서 버리지 못하고 있는 것들도 좀 정리가 필요하다고 한 것이다. 

엄마는 '버릴 것 하나도 없다'를 강조하며 아무것도 버리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그날은 서로의 의견만 이야기 하고 일차로 마무리가 되었다. 그런데 며칠 후, 그 문제가 다시 불거진 것이다. 

무언가를 냉장고에 넣으려던 한 언니가 가득 찬 냉장고를 보고 다시 문제 제기를 했고, 엄마는 그 입장을 계속 고수하신 거다. 몇 마디 말이 오갔을 테고, 감정이 격해진 엄마가 냉장고에 들어 있던 엄마 음식을 다 정리하겠다는 초강수를 둔 것이다. 
  
 주방 싱크대 한 켠에 보관해 둔 엄마의 각종 양념들.
 주방 싱크대 한 켠에 보관해 둔 엄마의 각종 양념들.
ⓒ 김미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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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뒷 베란다 한 쪽에 보관한 기름과 장아찌들.
 뒷 베란다 한 쪽에 보관한 기름과 장아찌들.
ⓒ 김미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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맙소사! 엄마가 버리고 있는 것들 속에는 먹을 수 있는 양념과 장아찌 등도 들어있었다. 이 사사롭지만 중요한 전쟁이 어떻게 끝날지 알 수가 없었다. 나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안절부절 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런 내 걱정과는 달리 한참 후 방에서 나온 언니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 부드러운 목소리로 엄마에게 말했다.

"엄마, 정리 다 끝났어? 근데 왜 먹을 수 있는 것까지 버리구 그래~"

날카롭게 날이 서 있던 엄마도 어느새 누그러 졌는지 아까보다는 한결 편안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냉장고 좁다며. 어차피 냉장고에 있어도 먹지도 않을꺼 버리면 되지. 그게 뭐라고."

그렇게 냉장고 문제는 쉽게 마무리 되었고, 지금은 서로가 반씩 양보하며 지켜줄 것은 지켜주며 사이좋게 지내고 있다. 물론, 그것 말고도 수많은 일들이 벌어졌고 지금도 벌어지고 있기는 하지만.

한 가지 분명한 건 엄마와 언니는 동거인으로서 서로에게 지켜야 할 것이 무엇인지를 며칠 사이에 깨달았다는 것이다. 덕분에 모두가 큰 문제없이 잘 지내고 있다. 오늘도 엄마는 부지런히 텃밭에서 거둬들인 각종 나물들을 다듬고 삶고 말리고 보관한다. 아마 겨울 내내 먹어도 다 먹지 못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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