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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16년 별세하기 직전의 나철 선생.
 1916년 별세하기 직전의 나철 선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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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의 기소장은 이어진다. 

즉 현 정부를 전복하고자 하는 이유가 거기에 있다고 설명하였더니 박대하 등도 비로소 대신 암살에 찬동했다. 

그러나 나인영과 오기호 도당은 본시 일본정책을 환영하는 것이 아니고 한국의 독립을 타 강국의 옹호를 얻지 않고서는 안 된다는 사실을 알고 있을 뿐만 아니라 전쟁에 이긴 일본의 실력을 아는 고로 함부로 일본에 반항하지 않을 뿐이었다.

이는 음모를 감행한 후 일본거류지에 방시(榜示)하려던 광고문을 보더라도 알 수 있다. 이처럼 동지를 규합하는데 성공하였으나 거사에는 비용이 필요하여 숙의 끝에 본년 1월 동지 중 김인식을 시켜 이용태에게 그 실정을 고하게 하였다. 당시 이용태는 오랫동안 권세를 잃고 만공(滿空)의 불평과 야심을 품고 있었던 때라 분연히 이를 승낙하고 금 1,700원을 제공하였다. 이와 전후하여 정인국ㆍ윤주찬이 음모단에 와서 정은 금 300원, 윤은 100원을 제공하였으므로 모두 2,000여 원의 운동비를 얻었다. 

본년 2월 13일은 음력 정월 초하루임으로 이 날을 기하여 각 대신이 참례하는 길에서 일거에 결행하기로 정하고 금 1,600원으로 준비비용에 충당하여 권총 수십 정(30정 이상으로 보임)을 구입하고 나인영이 만든 '동맹서'와 이기가 기초한 '참간장'을 수백 장 인쇄하여 비밀리에 경상ㆍ전라도 지방에 가서 암살실행의 임무를 맡을 결사대원을 모집하였다. 

그러나 모집 도중에 착오가 생겨서 예정했던 기일에 대지 못하였다. 결사의 장사 수십 명 (창상 출입이 잦아 실제 수를 알 수 없음)을 모집하여 와서 3월 중순 이를 경성 각지의 객사에 분산시켰다. 음모단은 밀의 끝에 3월 25일 오전 10시를 기하여 거사하기로 하였는데 각 대신이 출사하는 길에 일제히 결행하기로 하였다.

각기 아래와 같이 부서를 정하고 각자 권총과 동맹서 및 참간장을 교부 휴대케 하였다. 

 박 참정대신 오기호 이하 장사 몇 명
 이 내부대신 김동필 이하 장사 몇 명
 권 군부대신 이홍래 이하 장사 몇 명
 이 학부대신 박대하 이하 장사 몇 명
 이 법부대신 서태운 이하 장사 몇 명
 이근택, 이용채 이하 장사 몇 명

당일에는 아침부터 각자 예정한 장소에 가서 길가에 숨어 있다가 각 대신이 가는 것을 기다리고 있었다.

오전 10시경 참정대신 박제순이 그를 기다리고 있는 광화문 앞에 이르렀을 때 오기호는 장사들에게 "쏘라! 쏘라!" 하고 독촉하였으나 장사들이 주저하는 바람에 박 참정이 대문 안으로 들어가 버려 실기하였고 11시경 서태운이 인솔한 10수 명의 장사는 서대문 밖에서 이법부대신의 출사를 기다렸으나 경계가 엄하여 일단도 쏘지 못한 채 통과시키고 말았다.

같은 11시 30분 경 이홍래는 장사들을 인솔하고 중서 사동에서 군부대신 권중현이 가는 것을 요격하였으나 명중시키지 못하고 장사의 한 사람인 강상원이 즉시 일본 순경에 잡혔다.

이로 인하여 사방의 경계가 엄중해 졌으므로 용산 별저에서 오던 이 내부대신을 남대문 밖에서 기다리던 김동필을 비롯하여 다른 방면에 배치되었던 장사들은 동시에 부서를 떠나 뿔뿔히 해산하였다.

1. 본 건에 관련되어 체포된 자 무릇 19명 별지의 기재와 같으며 본 죄안은 정부를 전복할 목적으로 대신암살을 기도한 내란사건임으로 평리원에 이송하고자 한다.

2. 이용태는 본 음모가 외에 지폐위조의 죄가 있은 바 음모사건 수사중 이를 발현하였으며 즉 이용태는 명치 35년 김영학이란 자에게 권유받고 일본은행 태환 5원 지폐를 위조할 목적으로 위조용 조각판 한 개를 수령 이를 자택에 은닉 소지한 것을 압수하여 평리원 심리에 회부하고자 한다. (주석 15)


주석
15> 조선총독부 기밀 서류 기록, 『대종교중광 60년사』 13~20쪽.

 

덧붙이는 글 | <[김삼웅의 인물열전] 민족의 선각 홍암 나철 평전>은 매일 여러분을 찾아갑니다.


국난기와 국망기에 온몸을 바쳐 구국과 독립을 위해 나섰는데, 역사가 제대로 평가하지 않고 국민에게 잊혀진다면 어찌 건강한 사회라 할 것이며, 그것은 누구의 책임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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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사독재 정권 시대에 사상계, 씨알의 소리, 민주전선, 평민신문 등에서 반독재 언론투쟁을 해오며 친일문제를 연구하고 대한매일주필로서 언론개혁에 앞장서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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