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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치인으로 살았던 나인영(좌)과 종교인으로 살았던 나철(우)은 두 인생을 살았던 동일인이다
 정치인으로 살았던 나인영(좌)과 종교인으로 살았던 나철(우)은 두 인생을 살았던 동일인이다
ⓒ 서정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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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감부 설치와 이토 히로부미의 부임으로 고종은 허수아비가 되었다.

통감부는 휘하에 경무부ㆍ농상공부ㆍ총무부 등을 두어 외교 사무 뿐만 아니라 내정전체를 좌지우지했다. 또 지방 13개 소의 영사관을 이사청으로 개명하고 지방 11곳에 지청을 설치했다. 그리고 일본인 고문관과 보좌관을 중앙 각 부처와 지방관청에 임명하여 지방통치권을 장악했다.

나철 등의 을사5적(6적) 척살이 좌절되고 정부에서는 통감부의 지침에 따라 '정부 전복 및 대신암살 기도사건'으로 규정하고 징벌에 나섰다. 「정부전복 및 대신 암살 기도사건 기소장」은 저간의 사정을 소상히 밝히고 있다. 장문의 기소장을 두 차례 나누어 소개한다.

정부전복 및 대신 암살 기도사건 기소장

현 정부 대신을 암살하고 정부를 전복할 것을 기도한 음모사건에 관하여 이미 수차 보고한 바 있습니다. 사건의 개요는 아래와 같습니다. 

1) 나인영ㆍ오기호 2명은 평소 우국지사라 자부하였다. 그가 말하는 바에 의하면 동양의 평화를 보호하고 한국의 독립을 확보하기 위하여서는 반드시 일ㆍ청ㆍ한 삼국의 정립과 협동이 대외 정책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였다.

왕년에 한성 정계에 러시아의 세력이 전성하는 것을 보고 분하게 여기던 중 러일전쟁이 벌어지자 일본이 한국의 독립을 보장하는 것을 전쟁의 목적으로 삼는다 함으로 은연중 일본군이 이기는 것을 바랐다. 

그러나 일본이 당초에 약속한 공약을 어길 위험이 있기 때문에 이를 사전에 막기 위하여 명치 38년(1905) 6월 나ㆍ오 양인은 서로 제휴하여 일본에 건너가서 동양평화를 위하여 일ㆍ청ㆍ 한 삼국이 동맹을 맺어야 하며 한국에 대하여서는 선린의 교의로서 부조하라는 의견서를 가지고 일본 각 대신을 역방하였다. 

그리고 동경에 머물면서 일본의 형세를 탐지하고 있던 중 동년 11월에 이르러 이등(박문)후작이 특파대사가 되어 도한(渡韓)한 후 일한신협약(을사오조약)이 체결되자 그 협약 내용이 동경 각 신문에 발표된 것을 보고 경악을 금치 못하였다. 드디어 한국의 외교권이 일본에 빼앗기고 기타 이권도 일본에 넘어 간다는 사실을 알고 곧 외부대신 박제순에게 급전을 치기를 "목이 잘리는 한이 있더라도 협약에 동의하지 말라"고 경고하였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군국(君國)을 팔아먹는 협약이 벌써 성립된 뒤의 일이라 더 이상 일본에 있을 필요가 없게 되었다. 

그 뒤 일본은 스스로 선전포고의 약속을 식언하고 그 행동 역시 한국 독립의 실지에 부응하지 아니하여 삼천리 강토가 일본의 영유가 되어 버릴 우세에 있으므로 이를 구제할 목적으로 일본의 자사들에게 그 정책을 변경시키고자 명치 39년 9월 다시 일본에 도해하여 오카모토ㆍ마츠무라ㆍ우치다 등을 방문하여 자기들이 국가를 생각하는 충정을 호소하였으나 "시기가 아니라" 하여 거절당하여 하등의 소득도 없이 헛되이 귀국하였다.

이 귀로의 우민(憂悶)이 발로되어 마침내 대신 암살을 결심하게 되었다. 국권을 회복하기 위한 계책은 이제 한 가지 밖에 없다. 돌이켜보건대 이 나라 형편이 이 지경이 된 것은 오로지 현정부 대신들의 탓이라 할 수 있다.

그러므로 우리가 국민을 대신하여 그들을 주살하여 현정부를 전복하고 새로 정부를 조직하여 독립을 수호할 수밖에 없다. 우리는 이것을 굳게 서약하고 암살의 기도에 고심하면서 때가 오기를 기다렸다. 경상북도 금산군에 박대하라는 사람이 있는데 평소 최익현을 숭배하고 의병을 일으켜 이에 부유한 재산을 모두 바쳐 의병장으로 명성이 높았으나 의병에 실패한 뒤 몰래 경성으로 올라와서 민영환의 부하인 이홍래와 김동필, 이용채 등과 만나 의병 재기를 밀의하였다.   

그러던 중, 본년 1월 나인영ㆍ오기호가 자기들과 동지임을 알고 박대하ㆍ김홍래와 같이 나인영ㆍ오기호를 찾아 가서 의병 재기를 고하고 협력하여 달라고 요구하였다. 그러나 나인영과 오기호는 무력으로 일본에 항쟁하는 것은 무모한 일이다.

2천만 동포의 혈분은 저들 오적을 도살하는 데 있고 현재의 대신들을 살려두는 것은 결국 한국의 독립을 저애하는 것이라 생각한다. 이것은 일본의 지사들도 그렇게 말하더라 하였다. 
 

덧붙이는 글 | <[김삼웅의 인물열전] 민족의 선각 홍암 나철 평전>은 매일 여러분을 찾아갑니다.


국난기와 국망기에 온몸을 바쳐 구국과 독립을 위해 나섰는데, 역사가 제대로 평가하지 않고 국민에게 잊혀진다면 어찌 건강한 사회라 할 것이며, 그것은 누구의 책임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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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사독재 정권 시대에 사상계, 씨알의 소리, 민주전선, 평민신문 등에서 반독재 언론투쟁을 해오며 친일문제를 연구하고 대한매일주필로서 언론개혁에 앞장서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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