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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나라의 헌혈 참여율은 평균 2%대인 선진국에 비해 5~6%로 높은 편에 속한다. 그럼에도 70% 이상이 10~20대 헌혈자에게 의존하고 있고, 방학이 되어 단체 헌혈이 줄어들면 혈액이 부족해지는 시기가 오기도 한다.

헌혈은 아직까지 수혈이 필요한 환자에게 혈액을 제공할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고, 인공적으로 만들거나 대체할 수 없는 데다 장기간 보관이 불가능해(농축적혈구 35일, 혈소판 5일) 적정 혈액보유량 5일분을 유지하려면 헌혈자들의 꾸준한 헌혈이 필요한 것이 현실이다.

게다가 올해 코로나19 사태가 장기화되면서 헌혈자는 눈에 띄게 감소했다. 이는 백혈병 환자들처럼 혈소판 수혈이 필요한 환자들에게는 더욱 치명적이다. 혈액질환 환자들은 항암치료를 받은 후 조혈모세포이식을 받게 되는데 치료 과정에서 혈소판 수치가 급격히 낮아져 장출혈이나 뇌출혈 등의 장기출혈로 이어지는 걸 막기 위해 긴급하게 혈소판 수혈을 받아야 한다.

대한적십자사 혈액관리본부에 따르면 전혈이나 혈장에 비해 혈소판 헌혈자는 특히 적은 편이라 공급이 지연될 뿐만 아니라, 병원에서 환자 가족에게 혈소판 헌혈자를 직접 구해 지정헌혈하는 방식으로 공급을 요구하는 일이 종종 벌어지기도 했다.
 
 한국백혈병환우회 홈페이지에는 급하게 혈소판을 구하는 글이 올라오기도 했다. 혈소판 공급량이 부족해 환자 가족들이 직접 구하러 다닐 수밖에 없는 것이 우리나라의 현실이다.
 한국백혈병환우회 홈페이지에는 급하게 혈소판을 구하는 글이 올라오기도 했다. 혈소판 공급량이 부족해 환자 가족들이 직접 구하러 다닐 수밖에 없는 것이 우리나라의 현실이다.
ⓒ 한국백혈병환우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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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가 전 세계를 덮친 올해에는 상황이 더욱 나빴다. 우리나라의 혈액 보유량은 11월 17일 기준 4.4일분으로, 이는 관심 단계에 해당된다. 코로나 초기였던 올해 2월에는 혈액보유량이 주의 단계로 낮아져 정부 차원의 헌혈 독려가 이어졌고 다행히 헌혈이 증가해 혈액보유량은 관심 수준으로 조정됐다.

그가 300번 넘게 헌혈을 하게 된 이유 

'주의'에서 '관심' 단계로 조정될 수 있었던 데에는 헌혈자들의 적극적인 헌혈이 크게 도움이 됐다. 다회헌혈자 중 한 사람인 안창현씨는 지난 11월 16일, 300회 헌혈이라는 기록을 세웠다. 게다가 이번에도 백혈병 환자들에게 필요한 혈소판 혈장 헌혈에 나선 것.

안창현씨가 300회의 헌혈 중에 혈소판 혈장 헌혈을 한 것은 128회나 된다. 그가 헌혈을 처음 하게 된 것은 2001년 7월, 헌혈을 하면 영화표를 준다는 것 때문이었다. 그러나 20년 가까이 헌혈을 지속할 수 있었던 데에는 영화표나 기부권처럼 단순한 이유만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어떻게 보면 참 아이러니한 게 제가 군대를 두 번 다녀왔어요. 두 번째는 당연히 좀 늦은 나이에 군 생활을 할 수밖에 없었는데 그때 좀 힘들었어요. 나이도 좀 있고 하니까 주말을 좀 보람 있게 보내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됐어요. 김포에서 군 생활을 할 때였는데 홍대까지 버스를 타고 와서 토요일에 헌혈을 하는 생활을 했어요."

안창현씨 역시 당시에는 헌혈에 여러 종류가 있다는 것도 몰랐다. 전혈이라고 하는 형태의 헌혈만 하다가 검사 결과 간수치가 상당히 좋은 편이라 혈소판 헌혈을 하는 게 어떻겠냐는 권유를 받았다.

그가 당시 군 복무를 했던 곳은 말라리아 위험지역이라 혈소판 헌혈이 불가능했고, 잠복기가 지나야 혈소판 헌혈이 가능해 제대 후 2년이 지난 시점부터 혈소판 헌혈을 하기 시작했다. 그는 혈소판 헌혈을 하게 된 이후부터 "무언가 더 충족되는 느낌이 들었다"고 표현했다.
 
 안창현 씨는 2001년부터 2020년 11월까지 총 300회 헌혈을 했다. 그가 기념품 대신 기부금을 선택해 한 기부금액만 126만 원이 넘는다.
 안창현 씨는 2001년부터 2020년 11월까지 총 300회 헌혈을 했다. 그가 기념품 대신 기부금을 선택해 한 기부금액만 126만 원이 넘는다.
ⓒ 한국백혈병환우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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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혈은 내게 국민의 의무나 다름없어"

그가 헌혈을 계속 해낼 수 있었던 것은 개인적으로 느낄 수 있는 뿌듯함이나 보람 외에도 기부권이라는 제도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헌혈 기부권 제도는 헌혈자가 헌혈 후 받는 기념품 대신 기부권을 선택하면 그 금액만큼 기부를 하는 것으로, 안창현씨가 헌혈만으로 채운 기부금만 120만 원이 넘을 정도다. 38세인 그가 20세 때부터 헌혈을 해왔으니 살아온 날의 반 정도를 헌혈을 하며 살았고, 그만큼 헌혈하면서 생긴 에피소드도 다양하다.

2013년에는 KBS 라디오 방송 프로그램인 '키스더라디오'에서 헌혈송을 개사하는 이벤트에도 참여한 적이 있었다. '당신은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이라는 노래를 '당신은 헌혈하기 위해 태어난 사람'이라는 제목으로 개사해 채택이 되는 바람에 방송에서 직접 헌혈송을 부른 적도 있다.

반면 안타까웠던 기억도 여럿 있다. 헌혈을 하는데 기계 오작동인지 불량인지 원인 모를 이유로 기계 안에서 혈액이 터지는 사고가 발생했던 것. 헌혈을 한 횟수에는 포함이 되지만 혈액을 사용할 수 없다는 사실에 그는 씁쓸함과 안타까움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헌혈 도중 혈관이 터져 혈액을 사용할 수 없었던 일과 함께 안타까운 사건으로 기억에 남았다.
 
 안창현 씨는 지난 11월 16일, 성남에 있는 헌혈의집 야탑센터에서 혈소판 혈장성분 헌혈 128회를 포함해 총 300번째의 헌혈을 했다.
 안창현 씨는 지난 11월 16일, 성남에 있는 헌혈의집 야탑센터에서 혈소판 혈장성분 헌혈 128회를 포함해 총 300번째의 헌혈을 했다.
ⓒ 한국백혈병환우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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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그의 군 후배들이 그를 본보기 삼아 100회 이상 넘는 헌혈 대열에 참여했을 때는 큰 보람을 느꼈다. 서로 헌혈 횟수를 비교하며 농담을 하기도 하지만 횟수가 중요한 것은 아니라고 그는 힘주어 말한다.

"간혹 횟수에 집착해서 정작 중요한 것을 놓치는 분들도 계신 것 같아요. 여건이 되고, 건강이 허락한다면 혈소판 헌혈에도 많이 참여하셨으면 좋겠어요. 필요하다면 제도적인 측면에서 나이 제한이나 연간 횟수 제한에 대해서 재검토할 필요도 있다고 보고요."

그는 혈소판 수급 어려움으로 곤란을 겪는 백혈병 환우들을 위해서도 한 마디 덧붙였다.

"코로나19 확산으로 혈액 수급이 어려워요. 혈장 헌혈도 좋지만 백혈병 환우들을 위해 혈소판 헌혈이나 전혈을 많이 해주셨으면 해요. 그러려면 제도적으로 뒷받침해야 할 부분도 분명히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고요. 어려운 상황이지만 환우분들과 가족들 응원하는 마음으로 함께 할게요."

아픈 사람은 아니지만 환자 마음을 헤아릴 줄 아는 그에게 헌혈은 의무나 다름없다.

"국민의 4대 의무 있잖아요. 저한테는 헌혈이 5대 의무쯤 되는 것 같아요. 지금까지 열심히 할 수 있었던 데는 그런 마음가짐이 가장 중요했다고 생각해요. 때로는 이걸 계속해야 하나 매너리즘에 빠질 때도 있겠지만 앞으로도 계속할 생각이에요. 제가 술을 좋아하는 데 술은 끊어도 헌혈은 못 끊을 것 같아요."

다소 엉뚱한 상상일지는 모르겠지만 혈액을 만들어낼 수 있는 미래의 어느 시점에 안창현씨의 마음을 헤아려본다. 환자들에게 반가운 소식임에는 틀림없겠지만 헌혈자들에게는 어떨까.

"만약 그런 날이 온다면 좋은 일이겠지만, 글쎄요. 저는 엄청 시원섭섭할 것 같은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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