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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엄마의 밥상, 생각만해도 뱃속이 따뜻해지고 온 몸의 핏줄을 타고 생명이 흐를 것만 같다.
 엄마의 밥상, 생각만해도 뱃속이 따뜻해지고 온 몸의 핏줄을 타고 생명이 흐를 것만 같다.
ⓒ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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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뜻한 훈김이 나는 소복한 쌀밥에 뜨끈뜨끈한 황태무국, 아담한 그릇에 소담하게 담긴 나물들과 고소한 자태를 뽐내는 두부지짐, 그리고 맛있게 잘 익은 배추김치와 시원함을 자랑하는 나박김치. 생각만해도 뱃속이 따뜻해지고 온 몸의 핏줄을 타고 생명이 흐를 것만 같다.

엄마의 음식은 늘 정갈했다. 늘 나와 언니를 살찌우고 싶어하셨으면서도 느끼하거나 기름진 음식 대신 담백하고 깔끔한 식단으로 한 상을 차리셨다. 아직까지도 "나는 열심히 해 먹였는데 왜 너희들은 그렇게 살이 안쪘는지 몰라"라고 하시지만 결혼 후에, 정확히 엄마 밥을 떠난 후에 살집이 도독히 붙은 언니와 나는 그 이유를 안다. 엄마의 밥상이 우리를 군더더기 없이 건강하게 키웠음을.

문득, 다시 떠오른 엄마의 밥상

엄마의 밥상이 생각난 건, 위장병이 심해지고 나서부터였다. 누구에게나 선천적으로 약한 부분이 있듯이, 나게는 소화와 관련된 기관이 그랬다. 어릴 적에는 잘 체하곤 했던 체질이 이제는 위의 통증으로 바뀌어 나타났다. 그렇게 한번 아프기 시작한 위는 쓰리다가 뒤틀려 내가 그만 꼬부랑 할머니처럼 꼬부라진 상태로 한참을 누워있어야만 비로소 고통이 끝나고 편안해짐을 느낄 수 있었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보면 위가 탈이 나는 건 아무때나 나는 게 아니었다. 한국인이 좋아하는 치맥, 피맥, 중맥(중국요리와 맥주)을 먹을 때 특히 그랬다. 그러니까 기름기 가득한 음식과 차가운 음료의 조합이 환상적인 맛을 뿜어내는 바로 그 때.

나는 그렇게 위가 한번 아플 때마다 위를 자극할 만한 음식을 모두 끊었지만 위장의 불편함은 통증을 잘 다스리는 데서 끝나지 않았다. 마흔이 넘어가는 나이에는 회복력이 더뎌지는지 며칠간 정말 된장국만 먹으면서 단식 비슷한 걸 해야만 그나마 나아지곤 했다.

안되겠다 싶은 마음에 위에 좋다는 양배추즙, 양배추환을 꼬박꼬박 먹고 온갖 종류의 위장약들을 증상에 맞춰 그때그때 먹었지만 그건 그야말로 상처에 밴드를 붙이는 것과 다르지 않았다. 위의 상태가 조금 나아졌다고 생각되면 나는 또 조심성 없이 음식을 먹기 시작했고 그럼 그때까지 열심히 평소에 먹어두었던 양배추즙과 양배추환은 아무 힘도 쓰지 못했다. 나는 또 데굴데굴 구르며 위장약을 찾는 패턴이 반복되었다.

그렇게 한동안 고생을 하다보니 치킨과 피자 그리고 바깥음식의 자극적인 비주얼과 넘치는 기름기를 보면 덜컥 겁부터 나기 시작했다. 내 미각이 기억하는 감미로움을 만족시키고 나면 또 나를 기다리고 있을 통증에 지레 겁을 집어먹은 것이다.

어느 날이었나, 위가 아파서 링거액까지 맞고 온 날이었는데 냉장고를 뒤져서 남은 음식을 전자레인지에 데워 먹은 적이 있다. 정말 혐오에 가까운 거부감이 느껴졌다. 전자레인지에서 아무리 따끈하게 데워도 왠지 온기가 느껴지지 않는 음식들에 대한 거부감이었을 거다.

그 때 문득 엄마의 밥이 생각났다. 엄마라면 병원에 다녀온 날 김치랑 콩나물을 넣고 삼삼하게 콩나물 국을 끓여주셨겠지. 그 국물 한 그릇이면 요동치던 위장이 잠잠해질 것 같았다. 거기에 생각이 미치자 그동안 내가 '먹는다'는 행위를, 그에 수반되는 모든 과정을 정말 싫어했구나 하는 반성이 들었다.

어떤 날은 자극적인 맛이 그리워서, 또 어떤 날은 음식하는 게 귀찮아서, 또 어떤 날은 남는 음식이 아까워서, 내 몸에 들어가는 음식을 소홀하게 아무렇게나 채웠고, 또 어떤 날은 남들 다 하는 다이어트 흉내를 내보려 함부로 식사를 끊고 속을 비웠었다. 어쩌면 내 위장병은, 엄마가 엄마 몸보다 아껴가면서 먹이고 키워준 내 몸을 함부로 대하는 나에게, 내 몸이 보내는 신호일지도 몰랐다.

내키지는 않았지만 마음이 따라오지 않을땐 몸부터 움직여야 하는 법, 나는 주섬주섬 냉장고를 정리하기 시작했다. 일단 차가운 것을 거부하는 내 몸을 위해 모든 음식은 뜨겁고 부드럽게 조리하기 시작했다. 예전 엄마가 해주던 음식들이 하나둘 떠오르면서 음식을 하고 맛을 내는 일에 차차 익숙해지기 시작했다.

이것저것 음식을 만들다보니 생각보다 음식을 만드는 것은 그렇게 어렵거나 귀찮은 일이 아니었다. 자극적인 음식에 질려서인지 웬만하면 간을 안 하고 싶어졌는데 간을 하지 않는다고 음식이 맛없어지는 게 아니었다.

사각어묵도 팔팔 끓는 물에 데쳐 기름기를 빼고 건져서 뜨거울 때 식초 간장에 찍어먹으면 나름대로 훌륭했고, 양배추도 모든 요리에 조금씩 넣어 볶아주면 양배추즙을 먹는 것보다 훨씬 맛있고 담백했다. 그 뿐이 아니라 다시마와 멸치, 가쓰오부시를 잔뜩 넣어 다시물을 끓여놓으면 두부조림을 할 때도, 잔치국수를 먹고 싶을 때도 뚝딱 맛있게 음식을 할 수 있었다.

음식을 자주 만들어먹으니 파나 양파, 마늘 같은 필수 재료들의 순환율이 좋아져서 음식의 풍미가 살아났다. 매번 흐늘흐늘해진 파를 버리곤 했었는데 흙대파를 깨끗이 씻어 잘라 뚜껑이 있는 유리 그릇에 담아놓고, 마늘도 직접 까서 다진 후에 유리그릇에 보관하니 음식을 할 때마다 재료에 대한 애정이 생겼다.

나를 정성스럽게 보살핀다는 것 

음식을 한다는 것은 어쩌면 치유 행위 같은 것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마음이 소란스러운 날, 가만히 식재료를 씻고 다듬고 끓이고 볶는 행위는, 마음을 차분하게 가라앉혀주는 힘이 있다. 내 손을 거쳐 늘어놓은 재료가 한가지 따뜻한 음식이 되고 내 몸에 축복이 되는 순간들.

손이 많이 가는 음식일수록 정신을 집중하게 되니 그동안은 복잡한 일에서 마음을 해방시켜주기도 한다. 생각날 때마다 다시 보게되는 영화 <리틀 포레스트>도 줄거리와 상관없이 음식을 만드는 그 소박한 과정에서 힐링이 느껴졌던 것은 음식이 가진 치유의 힘이 아니었을까.

그러고보니 작가 공지영도 <딸에게 주는 레시피>에서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다시 말하지만 육체를 보살펴야 한다. 네 육체에게 좋은 것을 먹이고 좋은 것을 입히고 좋은 말을 들려주고(책으로라면 더 좋지) 좋은 향기를 맡게 해주어라. 해도해도 지나치지 않은 말, 나를 사랑하는 것은 바로 내 몸에서부터 시작해야 해. 정신도 당연히 중요하지만 정신과 육체가 둘이 아니고, 그리고 정신보다 육체를 위하는 게 효과가 빠르고 좋으니까."

음식에도 사람을 살리는 음식이 있다고 믿는다. 이제 나의 식탁은 예전처럼 화려하거나 자극적인 맛을 내지는 않지만, 소박한 나의 밥상은 내 몸을 편안하게 해주었고, 편안해진 몸은 나를 좋은 생각과 차분한 마음으로 이끌었다.

그렇게 준비한 매일의 식사가 나의 사랑하는 사춘기 딸들에게도 힐링으로 다가가길 기대하면서 오늘 저녁에는 부드럽고 고소한 뚝배기 계란찜에, 맛있게 절여진 아삭한 양파 피클을 뜨거운 김이 나는 쌀밥과 함께 먹어봐야겠다. 아, 생각만 해도 군침이 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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