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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름한 사람들이 있다. 자동차 한 대로 십수 년을 타고, 떨어진 단추를 꿰매어 옷을 오래 입는다. 온통 낡고 헌 물건으로 둘러싸여 있지만 그들의 자산을 함부로 가늠하기는 어렵다. 그들의 정체는 이웃집 백만장자들이기 때문이다.

토마스 J. 스탠리 교수와 윌리엄 D.댄코 조교수는 미국의 부유층이 어떻게 살고, 무엇을 소비하는지 연구했다. 그 기록을 누적하여 책으로 펴낸 게 <이웃집 백만장자>다. 재테크 책이라기보다는 보고서에 가깝다.

이웃집 백만장자들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두 공동저자의 결론은 '부유'함과 '부유층의 생활'이 어긋날 때가 많다는 것이다. 행색만으로는 진짜 부자를 구분하기 어렵다. 

100만 원을 벌어서 100만 원을 다 쓰는 사람과, 100만 원을 벌어서 50만 원을 쓰는 사람을 보자. 겉보기에 100만 원을 다 쓰는 사람이 부자처럼 보이겠지만, 알짜는 50만 원을 쓰는 사람이다. 번 돈 보다 덜 쓰는 사람들, 이들이 '이웃집 백만장자'가 된다.

모은 돈으로는 뭘 할까? 미국의 소박한 백만장자들이 그러했듯, 거품목욕과 두툼한 스테이크, 잦은 해외여행에 돈을 쓰려는 것은 아니다. 그들은 땅 가진 호호 할머니, 할아버지가 되어 강아지 한 마리, 국화 정원 조금, 텃밭 한 뙈기와 함께 산다. 행복은 소비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안정감에도 있음을 아니까, 그렇게 산다.
 
만일 당신이 해마다 많은 수입을 벌어들이면서도 그것을 모두 다 써 버린다면 당신은 '부유'해지고 있는 것이 아니다. 단지 '부유층의 생활'을 누리고 있는 것일 뿐이다.
- <이웃집 백만장자> 중 , 토마스 J. 스탠리, 윌리엄 D. 댄코 지음

내 꿈은 이웃집 백만장자가 되는 것이다. 그리고 더 많은 사람들이 이웃집 백만장자가 되면 좋겠다.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가능한 많은 이들이 이웃집 백만장자처럼 '생활'하기를 꿈꾼다

기후위기로부터 인류와 여러 생태종을 구하기 위해서는, 이웃집 백만장자들의 생활 습관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치약을 끝까지 잘라 쓰는 사람들이 궁색할까? 아니다. 그들의 정체는 이웃집 백만장자다. 최소한의 소비를 하는 그들이 지구를 구할 것이다.
 치약을 끝까지 잘라 쓰는 사람들이 궁색할까? 아니다. 그들의 정체는 이웃집 백만장자다. 최소한의 소비를 하는 그들이 지구를 구할 것이다.
ⓒ 최다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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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소한의 소비'를 선언하는 시민들의 힘

절약가들이 잘 산다. 돈 덜 쓰면 돈 모이니까 당연하다. 단순한 덧셈과 뺄셈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단순한 산수를 '자린고비', '짠내', '궁색'으로 그럴듯하게 포장하는 이야기의 힘이 세다.

냉장고 4대 중 술 냉장고를 따로 둔 사람은 여유로워 보여야 하고, 삼시 세끼를 자급하며 밥을 짓는 사람은 우스꽝스러워야 한다. 우리의 휴대전화와 재킷은 여전히 멀쩡하지만, 멀쩡한 물건을 두고 새로 사지 않는 태도를 '성숙'이 아닌 '궁색'으로 여기도록 한다. 기업의 노련한 마케팅 전략이다. 

이 전략에 흠뻑 취할수록 우리는 점점 더 자산을 잃는다. 돈을 썼으니까! 그리고 우리가 자산을 잃은 딱 그만큼, 기후위기가 지속됐다.

우리가 돈을 쓸수록 기업은 물건을 생산했고, 산을 깎아 알루미늄을 채굴해서 캔커피를 만들었다. 석유를 파내 플라스틱을 만들고, 도로 위 자동차를 굴렸으며, 공장에 쓰일 전기를 생산했다.

탄소를 머금어 줘야 할 산과 흙은 힘을 잃었고, 바다는 산성화가 되어가며, 대기 탄소층은 두꺼워졌다. 지구는 뜨거워졌고, 시베리아 동토층은 녹아 수백만 년 전 얼어버린 바이러스를 배출할 예정이다. 동아시아는 물에 잠길 것이고, 2020년에서 2030년에는 기후 재난을 끊임없이 겪을 수밖에 없다.
2020~2050년은 인류가 가장 짧은 시간에 가장 큰 혼란을 겪을 시기가 될 것이다. 몇 년 차이는 있겠지만 이 시기는 3단계로 나뉜다. 그것은 우리가 아는 세계의 종말(2020~2030년), 생존 단계(2030~2040년), 그리고 재생의 시작(2040~2050년)이다.
- <작은 행성을 위한 몇 가지 혁명> 중, 시릴 디옹 지음

석유를 쓰지 않아도 경제가 망하지 않을 방법을 찾을 때다. 물건을 생산하지 않아도, 매일 수천 대의 트럭이 서울을 들락거리지 않아도, 경제가 온전할 대안을 마련해야 한다.

그러나 우리는 경제(정확히는 우리의 행복)를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우리가 소비를 '행복'이라 믿는 한, 비행기를 타고 가는 해외여행, 거품 목욕과 두툼한 스테이크가 우리의 진정한 욕망이자 안정이라 여기기 때문이다. 기후 위기 하나 막자고 유럽 여행을 가지 말자는 게 말이나 되는 소리냐고, 황당해할 것이다.

황당하겠지만, 지금은 가까운 지역에서 여가를 누리는 게 낫다. 뉴욕과 런던을 비행기로 왕복하면 북극 얼음 3㎡가 녹는다(책 <작은 행성을 위한 몇 가지 혁명> 중, 시릴 디옹 지음, 32쪽).

나는 도토리묵에 마늘간장 양념해서 식사를 즐기는 게 삼겹살에 상추 쌈 싸 먹는 것보다 낫다고 생각한다. 가축에게 먹일 사료를 재배하기 위해 아마존 열대우림이 깎인다. 축산업에서 발생하는 온실 가스는 전체의 18%다. 자동차, 배, 비행기가 내뿜는 탄소보다 13.5% 더 많다(한살림 소식지 2020년 10월호, 조길예 기후행동비건네트워크 대표의 <채식, 기후위기 시대의 밥상> 글 참고).

지구 상황이 생각보다 안 좋다. 기업에게는 안됐지만, 우리는 부자가 되어야겠다. 돈 덜 쓰고, 돈 모아서, 땅도 사서 우리 식구들 먹일 호박도 텃밭에서 가꿔야겠다.

기업은 점점 늘어나는 절약가들에 대비하여, 대안을 찾아야 한다. 기업은 대안 경제를 위해 정부를 압박해서 살아남기를 바란다. 지금껏 모아둔 돈이 많으니, 잘 하리라 믿는다.
 
지구 상황이 생각보다 안 좋다. 붉은 고기를 양껏 먹는 것보다 양배추를 쪄먹고, 두부김치볶음을 해 먹는게 더 나은 길이다. 기후위기의 시대에는 그렇다.
 지구 상황이 생각보다 안 좋다. 붉은 고기를 양껏 먹는 것보다 양배추를 쪄먹고, 두부김치볶음을 해 먹는게 더 나은 길이다. 기후위기의 시대에는 그렇다.
ⓒ 최다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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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다른 방식의 '부자'가 되어야 한다

나는 10년 동안 똑같은 재킷을 걸치고 출근하는 직장 동료들을 우러르는 담론을 꿈꾼다. 계절별로 한 번씩 갈아치우는 재킷이 쌓이고 쌓여 시베리아 동토층을 녹여 잠든 바이러스를 깨울 테니까. 수퍼 태풍과 바이러스와 미세먼지, 그리고 혹서와 혹한을 불러올 테니까. 낡은 재킷을 입은 이들이 박수 받아야 한다.

하지만 아직 낡은 재킷에서 기후 위기 대응의 연결고리를 읽어낼 사람들이 많지 않다. 재킷 광고 수입으로 먹고사는 미디어에서 이 이야기를 해줄리가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웃집 백만장자들의 고백이 필요하다. 비닐봉지를 여러 번 씻어 쓰는 검소한 이웃들이 경제적 자유를 얻어냈다는 솔깃한 이야기를 많이 듣고 싶다.

나부터 고백하자면, 봉투에 만 원 한 장씩 꽂아 생활한 덕분에 경제적으로 더욱 풍요로워 졌고, 하기 싫은 일 따위 돈 때문에 억지로 하며 살지 않는다. 부부 사이에 돈으로 다툴 일이 없다.

기모 스타킹에 구멍이 나면 기워 신고, 4인 가족 하루 식비는 15000원이다. 하루 생활비(의료+의류+교통+유류+여가+잡화)도 15000원이다. 6년 째 펌이나 염색을 하지 않고, 1년 동안 화장품을 하나도 사지 않았다. 출근 가방은 7년 전 샀던 백팩이다.

혹시 불편하거나 불행하지 않냐고 물으신다면, 번 돈 보다 적게 쓰는 능력을 갖게 되어 얼마나 든든한지 모른다며 잘난 체를 하고 싶다. 푼돈 모아 엄청난 부자가 될 수는 없지만, 어마어마한 거부가 될 필요성도 느끼지 못한다.

절약은 지구를 구할 비폭력적이고 일상적인 방법이다. 우리가 사는 물건 그 자체가 기후위기의 원인이기 때문이다. 기업은 물건을 야생을 파괴한 재료로 만들 수밖에 없으며, 공장에서 탄소를 뿜어내며 가공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소비자는 물건의 수명이 다하거나 지겨워지면 버릴 수밖에 없다. 물건은 예정된 쓰레기다.
 
꿰맨 자리에는 가난이 깃들지 않는다. 부(富)와 건강한 지구가 깃든다. 의류의 수명을 2년 더 늘리면, 옷이 환경에 미치는 영향력을 20~30% 줄일 수 있다.
 꿰맨 자리에는 가난이 깃들지 않는다. 부(富)와 건강한 지구가 깃든다. 의류의 수명을 2년 더 늘리면, 옷이 환경에 미치는 영향력을 20~30% 줄일 수 있다.
ⓒ 최다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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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를 파괴하고 싶은 사람은 없다. 하지만 지구를 구할 방법을 정확하게 아는 사람도 없다.

어쩌면 '꿰맨 자리에 가난이 깃든다'는 세계관에 반론하는 것부터 시작인지도 모른다. 나의 옷 솔기를, 아이 잠옷의 튿어진 지퍼를, 기모 스타킹에 난 구멍을, 손바느질로 기우다 보면 꿰맨 자리에는 부(富)와 건강한 지구가 깃들 테니까.

태그:#최소한의소비, #기후위기, #기후위기대응, #덜사기운동, #제로웨이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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