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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인생에 올해처럼 일분 일초를 뚜렷이 기억할 수 있는 날이 몇 번이나 있을까. 일 년 내내 푸른 하늘 밑자락에서 똬리를 틀고 묵직한 엉덩이 자세를 고수하고 있는 코로나의 위풍. 17년 차 생계 수단인 일터에서 매일 일어나는 희비의 낙차에서 오는 롤러코스트의 스릴. 나의 삶을 표현했던 '말'이라는 수단을 뛰어넘어 '글'로서 노년의 새 열차에 자리 하나를 마련 한 일. 참으로 말 그대로 '다사다난'한 한 해를 보내면서 한 장 남은 달력의 숫자에 눈도장을 꾹꾹 찍어보는 주말 아침이다.

얼마 전 지역작가 출판회에서 난생 처음 에세이집을 쓰게 된 동기, 책을 통해 얻고 싶은 작은 소망과 감사한 사람들에 대해 얘기했다. 그러면서 책을 팔아서 기부금을 만들고 싶은 소망을 말했다. 매년 동절기에 소외계층에게 전할 난방(연탄)재료를 구하기 위해서 학생들과 바자회를 행사해 온 지 6년째이다. 올해는 코로나로 인해 학생들이 직접 파는 야외장터 대신 온라인을 통한 물품 판매를 예고했다.

책 출판회가 끝나자마자 바자회를 기획하여, 선정 물품 구입처 연락, 온라인 판매망 구축, 수혜자 조사 등을 알아보았다. 이렇게 말하니, 무슨 대단한 단체에서 행사하는 바자회 같지만 사실 우리 학생들의 목표는 지극히 '할 수 있을 만큼'만 하는 것이어서 주관하는 나도, 협조하는 학생들과 학부모들도 큰 부담을 갖지 않는다.

올해의 바자회 품목은 이랬다. 박모니카 에세이집, 한방삼푸, 바디클린저, 바디로션, 수제비누 등의 천연재료로 만든 4종 미용품, 롤화장지류, 수제쿠키, 그리고 간장새우장이었다. 감사하게도 내 책은 150여 권 판매가의 20%가 저축되어 일차로 무료급식센터에 쌀 50kg를 기부했다.

또 에세이집을 읽은 지인이 새우 100여 마리를 기부해주셔서 친정엄마가 새우장 10통을 만들어주셨다. 고3 수험생인 한 학생은 해마다 자신이 직접 만든 다양한 물품을 기부하는데 올해는 수제쿠기를 100개나 만들어주는 은혜를 받았다.

현금 기부의 양도 늘었다. 에세이집을 사서 읽은 고등학교 친구는 평생동안 한번도 기부라는 것을 한 적이 없다고 무려 10만 원을 보내왔고, 학원의 학부모님들은 물건 구입 외에도 자녀의 용돈을 현금 기부함에 넣도록 지도해 주셨다. 군산의 예스트서점은 책 판매의 모든 금액을 돌려주며 기부금에 동참한다고 했다. 함께 책을 낸 에세이 동기들도 기부했다. 한 번도 싫은 내색하지 않고 참여해주는 많은 사람들 덕분에 올해도 기부금액은 초과 달성되었다.

바자회 주간을 일주일로 정하고, 준비한 물품을 SNS를 통해 홍보했다. 얼마 전 책 홍보 문구를 띄운 적이 있어서, 매번 신세만 지는 것 같아 서두에 이런 말로 미안함을 표현했다.

"올해도 저는 바자회를 주관합니다. 책 나왔다고 자랑하고 홍보하면서 여러분의 신세를 진지 일주일도 되지 않았는데 또 이렇게 부탁을 드리게 되니, 미안하기만 합니다. 그러나 여러분의 손길을 마다하지 않으렵니다. 준비한 모든 물건은 제가 직접 만들거나 최저가로 가져왔습니다. 물건을 주신 분들도 부분적으로 기부하신 거지요. 올해 제가 해야 할 마지막 일입니다. 저 혼자는 할 수 없음을 여러분은 알고 계십니다. 과하지 않게 딱 할 수 있을 만큼만 도와주시면 고맙겠습니다. 이 행사가 끝나면 제가 밥 한 끼 대접하구요, 자녀분들에게는 더 좋은 선생님이 되도록 노력할 것을 약속합니다."

학원 내 펼쳐놓은 판매대에는 주말인 오늘도 손님들이 왔다. 온라인으로 비누만 신청했던 한 분은 "어머님, 이 삼푸는 품질 최고, 제가 직접 만들었으니 믿으시죠?"라는 말에 두 개를 더 사셨다.

주말 수업만 받는 한 학생은 "샘, 저는 기부 상자에 용돈 넣을 건데요, 어떻게 하는 거예요?"라고 묻는다. '아이고야, 기특한 아들, 사랑해' 하면서 사진을 찍어주었다. 대부분의 학부모들은 물건을 사고 남는 잔돈이나, 별도의 기부금을 준비해 오셨다. 어느덧 준비한 물품이 다 팔렸다.

학원과 지인들에게 현재 상황을 보고하고, 늦어도 담주 수요일까지 판매 금액, 수익 금액, 순수 현금 기부 금액을 말씀드리겠노라고 메시지를 띄웠다. 서울에 사는 고등생 조카가 물었다.

"이모, 그럼 이모는 얼마의 이윤을 갖는 거예요? 우리 학교 친구의 엄마들이 하는 기부 바자회에 갔을 때는 수고한 사람들의 수고비 정도는 남아야 한다고 하면서 물건값을 정한데요."

"그렇구나. 이모는 그런 것 까지는 모르겠다. 왜냐하면 나의 수고비를 생각할 수 없기 때문이야. 오히려 많은 사람들의 수고로움으로 이 행사를 할 수 있는 것이 감사할 뿐이지. 언제든지 그 분들의 도움에 어떤 형태로든 되갚아 줄 수 있는 위치가 된다면 그것처럼 행복한 것은 없어. 그 중 하나가 학생들에게 열심히 영어도 가르치고 봉사활동도 함께하면서 진로도 코칭하고, 예쁘게 살아가는 법을 말해주는 것, 그런거야."


조카가 가고 난 뒤 처음으로 바자회를 다시 생각해보았다. 뉴스에서 보면 때때로 흘러나오는 기부단체들의 비리 사건들. 그들의 처음도 나처럼 순수했을지라도 어느 순간 자신도 모르게 물욕과 금욕에 마음을 빼앗겼을 것이다.

그들을 믿고 매달 일정 금액을 보내고 정성을 쏟았던 수많은 후원자들이 느꼈을 배신감과 무력감. 결코 남의 일이 아닌 내 일이 될 수도 있겠구나 싶었다. 해마다 도와주는 많은 분들의 믿음과 사랑을 대표하여 실천하는 이 작은 바자회가 결코 퇴색되지 않도록 끊임없이 경각하고 정직한 자세로 살아야겠다고 다짐했다.

올해의 수혜자는 자원봉사센터를 통해서 소개받을 예정이다. 수혜자가 정해지면 한 가구당 300장(24만 원) 연탄을 직접 배달한다. 동아리 학생들과 학부모님들이 와서 앞치마, 토시, 장갑 등을 입고 그 집의 연탄 창고까지 연탄을 나른다.

동네 입구를 청소하는 일까지 봉사활동을 하다 보면 수혜자가 따뜻한 두유를 주신다. 처음 보는 사람들 사이에 온돌방의 온기를 미리 체험하기도 한다. 특히 참여 학생들은 매일 학교와 집에만 있다가 생전 처음 보는 연탄을 직접 나르면서 누군가가 겨울을 따뜻하게 보낼 수 있다는 말에 스스로 대견함을 뽐내기도 한다.

올해는 지속되는 코로나로 인해 연탄 봉사활동까지 할 수 있을지 걱정스럽다. 학생들을 위험한 상황에까지 가게 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차선책으로 생각하는 것은 연탄 구입만 하고 배달 활동은 연탄 가게에게 맡기는 것이다. 또는 지난번 무료급식센터에 쌀을 기부한 것처럼, 이번에는 연탄 대신 쌀을 기부하는 형태를 고민하고 있다. 1가구당 20kg(약 6만 원)씩 하면 연탄보다 더 많은 가구 수에 골고루 혜택이 돌아갈 수 있다고 주변인들도 동의했기 때문이다.

어떤 재료로 기부가 되더라도 이 행사에 협조를 해 준 모든 분들이 "정말 잘했네요. 기부를 하니 이런 마음이군요. 다음에 또 할게요"라는 말이 들려오도록 공평하게 분명하게 전달하고 싶다.

올해도 나의 'MUST DO'(머스트 두)리스트에 있었던 할 일 하나를 끝냈다. 지인의 말처럼 사람과 사람을 연결하는 멘토브릿지의 역할이 나의 타고난 재능이라면 이보다 더 행복한 것은 없으니라. 욕심을 하나 더 내자면 새해에도 변함없이 꼭 할 일을 할 수 있도록 건강을 소망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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