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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엔 누구를 인터뷰할까?' 

요즘 자기 전이나 자고 일어나면 가장 먼저 드는 생각이다. 연초에 발생한 코로나19는 아직 꺾일 기세가 보이지 않는다. 꺾이기는커녕 겨울과 함께 더 왕성하게 인간세상을 활보할 전망이라고 한다. 

이쯤이면 살아있는 게 기적이다. 기적을 가능케 한 결정적인 이유는 지난 5월부터 시작한 '활동가 인터뷰'다. 2018년부터 더이음과 아름다운재단은 <활동가 이야기주간>이라는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이 프로젝트는 사회 변화를 위한 운동이나 캠페인보다 그 일을 하는 활동가에게 시선을 맞추는 프로젝트다. 다양한 지역과 분야에서 자기만의 방식으로 변화를 위해 노력하는 활동가들을 만나고 기록하는 일, 이 일은 존재감 없이 밥벌이만을 위해 시간을 보내고 있는 내게 매력적인 동기부여가 되었다. 

4명의 활동가와 만나다
 
 2020 활동가 이야기주간 포스터
 2020 활동가 이야기주간 포스터
ⓒ 문세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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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활동가 인터뷰는 5월에 공모를 시작해 6월부터 인터뷰하고 글을 게재해 8월에 마감했다(프로젝트와 무관하게 나는 인터뷰를 계속하고 있다). 11월 초에는 본격적인 <활동가 이야기주간>이 시작된다. 주최 측은 네 가지 주제를 정했다. 마음건강, 재난시대, 조직문화, 세대 차이 등. 물론 자유주제도 가능하다. 네 가지 주제로 이야기모임 신청을 받고 11월 2일부터 6일까지 이야기주간을 진행한다. 코로나19 때문에 소규모 인원으로 진행(온라인 동시 진행도 가능)하길 당부했다. 전국 곳곳에 있는 비영리단체 117팀이 신청했다. 2019년에 비해 두 배가 넘는 신청률이라 한다.  

나는 '조직문화'를 주제로 이야기 모임을 신청해 4명의 활동가를 초대했다. 참여자 모집은 '초대'와 '공개모집'으로 한다. 조직문화를 택한 이유는 활동가들이 어떤 조직문화 속에서 일하고 있는지 궁금했고, 건강한 조직문화 속에서 건강한 활동이 담보될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건강한 조직이 얼마나 있을까' 하는 의심은 일단 구겨 넣기로 했다. 

대학을 막 졸업하고 내 발로 찾아간 곳은 장애인인권 단체였다. 그곳은 장애인 당사자가 만든 조직으로, 장애인이 사회에서 차별당하는 문제가 가장 큰 이슈였다. 지체장애인이 대부분이었기 때문에 움직임의 제약을 받는 것이 첫 번째 차별이었다. 이에 맞서 이동권 쟁취 투쟁을 했다. 오늘날 버스에 장착된 휠체어 탑승 리프트, 모든 지하철에 설치된 엘리베이터는 그때부터 싸워서 이룬 피눈물의 결과다. 

나는 경증의 청각장애가 있다. 조직에서 단 한 명밖에 없는 청각장애인이었기에 지체장애인 중심의 조직문화가 낯설었다. 장애의 유형별로 결속력에 차이가 있고, 지향하는 문화가 다르다는 것을 처음 알았다. 조직의 문화가 때로는 누군가를 소외시키고 불편하게 할 수 있다는 것을 그때 배웠다. 

11월 6일 진보네트워크센터 회의실에서 모인 활동가들의 조직은 모두 달랐다. 월간 <작은책>의 독자사업부 일꾼,  IT사회적협동조합의 이사, 시민연대조직의 간사, 그리고 나. 나는 먹고살기 위해 10개월짜리 비정규 노동자로 일하고 있다. 

서로를 알아가는 시간을 갖다
  
 이야기 카드를 뽑고 거기 적힌 질문에 답한다. 서로를 알아가는 시간이다.
 이야기 카드를 뽑고 거기 적힌 질문에 답한다. 서로를 알아가는 시간이다.
ⓒ 문세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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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최 측에서 보내준 이야기 카드로 질문지를 뽑으며 대화의 물꼬를 텄다. 처음 보는 사이라 어색함을 풀기 위한 시간이다. 긴장을 풀고 드디어 오늘의 주제인 '조직문화'라는 키워드로 이야기한다. 거짓말 안 보태고 봇물 터지듯 이야기가 쏟아졌다. 

이철로(63세, 은퇴 후 시민단체 활동한 지 3년 차): "예전에 직장 생활할 때는 꼰대 문화가 있었다. 술 안 마시면 강제로 먹이고. 거절하면 내일부터 나오지 말라고 하고. 요즘은 그렇게 하면 다 그만둔다. 좋은 말로 하면 민주적으로 바뀌었지만, 예전의 끈끈한 분위기는 다 깨졌다. 조직문화에는 분명히 원인이  있다. 연구논문으로 써서 발표해도 좋은 주제다." 

인동준(44, 공동체IT사회적협동조합 상임활동가): "요즘은 활동가가 아닌 일반 대중이 더 탈권위적 조직문화를 만들고 있다. 비영리조직의 활동가는 날카로운 비판의식은 있지만, 여전히 권위주의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요즘은 사람을 보고 활동을 하지 않는다. 조직에서 누군가의 권위적인 모습을 보면 활동하고 싶은 마음이 사라진다.

영리 기업이 조직 문화를 바꾸려고 하는 이유는 사회를 바꾸려는 의도보다는 사람들이 변하는 것을 알고 그 사람들이 불만을 느끼지 않게 하기 위해서다. 그렇게 해서 생산성을 끌어내려고 하는 이유도 있지만. 비영리조직은 아직 기존의 권위주의와 카리스마가 먹히기 때문에 권위주의 문화가 남아있다. 이런 모습은 조직문화의 변화를 가로막는 요인들이다."

정인열(43, 월간 <작은책> 독자사업부 일꾼): "가족 같은 조직문화가 지닌 장단점이 있다. 사적인 관계를 중요시하면 일이 뒤처진다. 추구하는 사업이나 방향과는 다른 길을 가게 된다. 그게 바로 전횡의 시작이다. 하지만 일을 우선 하고 일이 잘되면 관계는 자연스럽게 좋아진다. 사회관계망 속에서 일이 연결되기도 하지만 사적인 관계에 우선해서 내가 아는 사람이 무슨 활동 하고 있는데 이런 사업을 하면 좋겠다는 식으로 끌어들이면 나중에 공정하지 않은 시스템으로 굴러갈 수 있다."

뒤통수를 때리는 많은 이야기가 있었지만, 품위(?) 있는 부분만을 남기고자 위와 같이 정리했다. 이러한 경험과 이야기를 나눈다고 조직문화가 얼마나 바뀔지 나는 모른다. 다만, 새털만큼이라도 긍정적인 변화가 있기를 바랐다. 

공식적인 이야기 마당이 끝날 즈음 한 활동가가 말했다. 

"'조직문화'라는 주제는 밤을 새워 얘기해도 모자랄 거야. 밤새워 얘기한다고 달라지면 좋겠지만, 그게 가능한 일이냐고."

이러한 부정적 시각은 언제 어디서 왜 생긴 것일까? 나는 과연 이러한 조직문화의 태동에 조금도 이바지하지 않았을까. 남 탓하기 전에 나부터 돌아봐야겠다. 

각각의 조직에는 나름의 특징과 개성이 있다. 문화를 만드는 것은 조직 구성원이다. 조직문화는 시시때때로 바꿀 수 있다. 민주적이고 개방적인 조직은 나 혼자 만들 수 없듯이 틈나는 대로 원활한 소통을 해야 한다. 우리는 방법을 모르지 않는다. 바쁘게 굴러가는 프로그램이 문제라면 문제다. 누군가 불편하게 느끼는 문화라면, 그것이 조직의 진로를 방해하고 있다면 누구라도 총대를 메고 나서야 하지 않을까. 

지금 일하고 있는 곳에서는 20명 남짓의 직원이 출근하면 한 명 한 명 대표의 방으로 가서 허리를 90도로 굽혀 인사를 한다. 퇴근할 때도 마찬가지다. 출근한 지 서너 달이 지나자 더이상 허리가 굽혀지지 않았다. 대표에게 메신저를 보냈다. 

"저는 (출·퇴근 인사) 더이상 못하겠습니다. 대신 마주치면 인사하겠습니다."('직원들이 방에 와서 하는 인사가 꼭 받고 싶으세요? 나라면 하지 말라고 하겠습니다'라는 말이 목구멍까지 올라왔지만 차마 쓰지 못했다)  
 
 조직문화에 대해 봇물터지듯 이야기한 활동가들. 마스크를 벗고 찍은 사진도 있지만, 이것도 기념할만한 장면이 될 듯하여. (왼쪽부터 인동준, 정인열, 나, 이철로).
 조직문화에 대해 봇물터지듯 이야기한 활동가들. 마스크를 벗고 찍은 사진도 있지만, 이것도 기념할만한 장면이 될 듯하여. (왼쪽부터 인동준, 정인열, 나, 이철로).
ⓒ 문세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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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가 평등하고 행복한 조직문화를 만들기 위한 프로젝트를 진행해 보는 것도 좋은 아이템이 될 것이다. 밤을 새워도 끝나지 않을 것 같은 이야기는 서대문 영천시장 인근의 중국집에서 마저 풀었다. 좋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서는 술값이 많이 든다는 푸념을 섞으며 가난한 술꾼들의 난상토론이 이어졌다. 오늘따라 고량주는 왜 그렇게 달던지. 모임비가 조달되지 않았다면 그림의 떡이었을 연태(고량주)는 한 병 두 병 바닥을 드러냈다. 시간은 흐르고 이야기는 멈추지 않았다. 그날의 뒤풀이는 다음 날 오전 3시까지 이어졌다.  

신기한 것은 나를 포함해 모두 술에 취하지 않았다는 것. 내가 주당들만 초대한 것인지, 이야기에 굶주린 사람들만 고른 건지 (취하지 않은)이유는 모른다. 다만, 그날의 대화 중 기억나는 한마디가 뼈를 때렸다. 

"사람들을 끈끈하게 만든다는 '술 문화' 깨졌다는데?"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활동가 이야기주간 홈페이지에도 실립니다. 서울 청각장애인 문자통역지원을 이용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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