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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용자 많은 언어를 여덟 개나 구사하면서도 왜 인도인은 프랑스어를 배우려 할까?
 사용자 많은 언어를 여덟 개나 구사하면서도 왜 인도인은 프랑스어를 배우려 할까?
ⓒ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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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자기 프랑스어권인 스위스 제네바로 이사온 지 며칠 후부터, 아이 등하교길에서 같은 학교 학부모인 인도 출신 니투와 자주 마주치게 되었다. 프랑스어를 하지 못하는 고충에 대해 서로 맞장구를 치다가, 각자 구사하는 언어에 대해 물어보았다. 니투는 영어, 힌디어, 벵골어, 펀자브어, 마라티어, 텔루구어, 타밀어, 산스크리트어, 우르두어를 한다고 했다.

세상에나! 집에 와서 찾아 보았더니, 모어 사용자가 많은 순서로 20위까지의 언어들 중 무려 여덟 개를 구사하는 것이다! 영어(3위), 힌디어(4위), 벵골어(5위), 펀자브어(9위), 마라티어(10위), 텔루구어(11위), 타밀어(18위). 모어 사용자순으로 프랑스어는 겨우 15위였고, 독일어는 16위였다. 한국어의 순위는 의외로 꽤 높아서 14위였다. 그러니까 모어로서의 한국어 사용자가, 모어로서의 프랑스어 사용자보다 더 많았다(위키백과 참고).

사용자 많은 언어를 여덟 개나 구사하면서도 왜 인도인은 프랑스어를 배우려 할까? 프랑스어와 독일어는 공용어 또는 세계어(lingua franca)가 되었지만, 그보다 모어 사용자가 많은 한국어는 왜 그렇지 못할까? 이유는 너무나 간단하다. 유럽이 제국주의 시대에 세계 각지에 식민지를 만들면서 자신들의 언어를 퍼뜨렸고 식민지들이 독립한 뒤로도 언어들의 영향력은 지속되고 있기 때문이다.

일제강점기가 조금 더 길었다면 지금도 한반도에서 일어가 공용어로 쓰이고 있을지도 모른다. 서구 제국주의자의 후손들이 식민지를 착취한 대가를 치르기는커녕 아직까지 공용어 종주국이라는 이점까지 누리고 있다는 걸 생각하니 분노가 치밀었다.

게다가 언어는 공기 같은 존재라서, 공용어를 편하게 구사하는 사람들은 자신들이 어떤 기득권을 갖고 있는지 인식하지도 못한다. 힘겹게 공용어를 배우는 사람들은 매 순간 부당함을 느끼는 반면, 공용어인 모어를 태어날 때부터 구사하는 사람들은 자신의 모어가 갖는 권력을 매 순간 자각하기 어려운 법이다. 아이 학교에서도 영어를 편하게 구사할 수 있다는 점 때문에 영어권 출신의 학부모가 대체로 학부모 대표가 되었다.

몇 달이 흐르고, 니투도 나도 프랑스어를 아주 약간 배웠다. 어느 날 다른 학부모와 다같이 이야기하던 중, 프랑스어를 할 줄 아냐는 질문이 나왔는데 니투는 그렇다고 대답했다. 어라? 할 줄 안다고?

안녕하세요? 잘 지내요? 잘 지내요. 나는 한국 사람이에요. 나는 의사예요. 나는 사과를 먹어요. 이게 뭐예요? 몰라요.

니투와 나의 프랑스어는 같은 수준으로 겨우 이런 정도의 말을 할 수 있는 정도였다. 이 수준이라면 나는 '프랑스어를 못 한다'고 스스로 생각하고 당연히 남들에게도 프랑스어 못 한다고 말한다. 그런데 니투는 프랑스어를 할 줄 안다고 대답했다.

갑자기 니투의 벵골어, 펀자브어, 산스크리트어, 타밀어, 우르두어의 수준이 의심스러워지기 시작했다. 만일 니투가 '프랑스어를 한다'는 수준으로 저 언어들을 하는 것이라면, 그건 내가 생각하는 언어 구사의 수준과는 큰 차이가 있었기 때문이다!

언어 구사 능력에 대한 인도인들의 느슨한 관점

얼마 뒤 <언어의 천재들>이란 책에서 흥미로운 내용을 읽게 되었다. 인도의 언어 환경은 한국과는 완전히 달랐다. 인도는 약 428가지의 언어가 사용되고 있는 다중언어구사 사회이다! 라디오와 텔레비전은 104개의 언어로 방송된다. 한 동네에서 쓰이는 언어가 10개~30개 정도 된다.

누구나 최소 서너 개의 언어를 구사하며, 다중성을 편안하게 즐기는 태도를 갖고 있다. 유창한 모어가 한두 개 있고, 다른 언어들은 그냥 웬만큼 하는 만큼만 하면서 살고 있는 것이다. 길에서 간판 보는 정도, 장 보는 데 필요한 정도, 친척과 수다 떨 수 있을 정도 등등 필요한 만큼의 수준으로 여러 언어를 구사한다.

그렇게 다양한 수준으로 이 언어 조금, 저 언어 조금 하는 것을 당연하다고 여긴다. 따라서 어떤 언어를 '원어민처럼' 하지 못한다는 자괴감에 빠지지 않는다. 그리고 자신의 동네에서 쓰이는 언어 전부를 익혀야 한다는 강박도 없다. 왜냐하면 상대방과 내가 공통으로 말하는 언어를 하나 찾기만 하면 의사소통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다중언어 사회에서 한 개인이 익혀야 하는 적정 언어의 개수는 몇 개인지, 사회과학자 조지프 콜로머는 게임이론으로 계산해 보았다. 계산에 따르면 열 개의 언어가 구사되는 사회에서 한 사람이 구사해야 하는 적정한 언어의 개수는 세 가지다. 이럴 경우 무작위로 모르는 사람과 마주쳤을 때 성공적으로 대화를 할 수 있는 확률은 89%다. 즉, 모두가 모든 언어를 배울 필요는 없는 것이다.
 
 인도인들은 어떤 언어를 '원어민처럼' 하지 못한다는 자괴감에 빠지지 않는다.
 인도인들은 어떤 언어를 "원어민처럼" 하지 못한다는 자괴감에 빠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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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에서 현지인들을 가르치는 일본어 강사의 말에 따르면, 인도인들은 '부끄러움을 모르는 학습자들'이었다. 실수를 두려워하지 않고, 할 수 있는 표현을 자랑하기를 좋아했다. (나 포함 한국인들이 흔히 그러듯) 문법과 발음이 틀릴 때마다 신경쓰는 태도가 없고, 일단 아는 말은 틀리거나 말거나 편안하게 한다는 뜻이다.

프랑스 정부에서 운영하는 어학원 알리앙스 프랑세즈의 인도 분원에서 프랑스어 초급반은 인기가 많지만 상급반까지 계속 배우는 학생은 3%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초급 프랑스어를 익히는 인도인들은 (실수를 부끄러워하지 않는 아이 같은 태도 덕분에) 굉장히 빨리 늘지만, 100시간 정도 배우고 나면 생존을 위해 충분히 배웠기 때문에 더 이상 나오지 않는다고 한다.

이는 같은 알리앙스 프랑세즈의 일본 분원과는 딴판이다. 일본인들은 프랑스어 수업을 일단 시작하면 이후 몇 년이나 지속하여 상급반까지 가는 경향이 있다. 한국인들도 언어에 대한 태도는 비슷하다. 어떤 언어를 '마스터'해야 한다는 생각이 있는 것이다.

거대한 언어 용광로

언어에 대한 인도인들의 느슨한 태도는 역사적인 배경이 있다. 수천 년 전부터 언어들이 중첩되고 융합되어왔기 때문이다. 이렇게 언어들이 뒤섞이고 녹아드는 현상을 슈프라흐분트(Sprachbunt, 언어 연합)라고 부른다.

우선 기원전 1500년 전에 인도-유럽 민족이 남쪽으로 광범위하게 이주하면서, 이들이 남부의 드라비다족 언어(타밀어, 칸다나어, 텔루구어, 말라얄람어 등) 사용자들에게 산스크리트어 같은 인도-아리아계 언어의 사용을 강요했다. 이후 3000년에 걸쳐서 두 어족의 언어들은 점차적으로 혼합되어 단어와 문법, 발음까지 서로 차용되었다. 그래서 현재의 산스크리트어는 인도-유럽어인데도 드라비다족 언어의 문법 특징도 갖게 되었다.

그 다음으로 700년경에 페르시아어를 사용하는 이슬람교도가 서서히 남인도를 정복하면서 페르시아어와 산스크리트어가 섞인 힌두스타니어라는 언어가 생성되었고, 12세기 중반 이후 힌두스타니어는 힌디어와 우르두어로 분화되었다.

마지막으로 이 복잡한 혼합 상태에서 영국의 침략으로 영어가 상륙했다. 인도 영어 자체도 지역색이 뚜렷하여 각 지방 사람들이 서로의 영어를 알아듣지 못하는 일이 허다하다.

슈프라흐분트는 여러 세대의 수많은 사람들이 매우 많은 언어를 배우고 기억하기 위한 인지적 부담을 감소시키기 위한 노력의 결과이다. 뚜렷한 경계를 지닌 언어적 실체들을 받아들이기에 인간 두뇌는 한계가 있다. 그래서 언어들을 공유하기 위한 언어들의 연합체가 생겨난다.

예를 들어 인도에서는 각 언어들의 배후에 '단문법'이 깔려 있다. 소리가 다르고 서로 다른 어휘를 사용하지만 문법은 거의 똑같은 것이다. 따라서 새로운 언어를 배울 때 기존의 문법 틀에 새로운 단어들만 덧붙이면 되는 식이다.

영어에서는 '어려워서 하나도 못 알아듣겠어'라고 말하고 싶을 때 '나한테 그리스어처럼 들려(It's greek to me)'라고 표현한다(한국어에서는 '이거 완전히 외계어야'에 해당하겠다). 인도에서는 이해가 되지 않는 감성일 것이다. 인도에서는 '나에게 타밀어처럼 들려'라는 말은 '응, 그래서 얼추 알아듣겠어'라는 의미일 테니까!

인도 텔레비전에서는 힌디어 방송이 힌디어 문장에 영어 단어를 섞어 말하다가, 영어 문장을 말하다가, 영어 문장에 힌디어 단어를 섞어 말하는 식으로 나온다(한국에서 이런 식으로 방송이 나갔다가는 '보그체'냐 '현대판 이두'냐 하면서 욕을 먹었을 것이다).

언어에 대한 느슨한 태도가 인도에서 쓰이는 공용어뿐 아니라 프랑스어에까지 적용된다는 점이 흥미로웠다. 나는 지금까지 언어에 대해 '원어민처럼 완벽하지 못하면 그 언어는 통달하지 못한 것이다'라는 엄격한 관점을 갖고 있었는데, 이 역시 하나의 고정관념에 불과했던 것이다. 나를 포함한 한국인들이 가진 원어민다움에 대한 생각을 다시 한 번 돌아보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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