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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 여행은 언감생심, 국내 여행조차도 꺼려지는 요즘입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이 아까운 계절을 '집콕'으로만 보낼 순 없죠. 가벼운 가방 하나 둘러메고, 그동안 몰랐던 우리 동네의 숨겨진 명소와 '핫플레이스'를 찾아보는 건 어떨까요? 전국 방방곡곡 살고 있는 <오마이뉴스> 시민기자들이 큰마음 먹지 않고도 당장 가볼 수 있는, 우리 동네의 보석 같은 장소들을 소개합니다.[편집자말]
광주 사람들은 복 받은 사람들이다. 밑도 끝도 없이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냐 할지도 모르겠지만, 다른 건 다 몰라도 '엎어지면 코 닿을 거리'에 세계적 명산, 무등산을 두고 있다는 것 하나만은 광주의 축복이다.
 
광주시내에서 바라본 무등산. 봉우리들의 높낮이가 크게 차이 나지 않는 무등산은 산 전체가 마치 하나의 봉분 같다. 그래서 광주사람들은 무등산을 ‘어머니 산’이라 부른다
 광주시내에서 바라본 무등산. 봉우리들의 높낮이가 크게 차이 나지 않는 무등산은 산 전체가 마치 하나의 봉분 같다. 그래서 광주사람들은 무등산을 ‘어머니 산’이라 부른다
ⓒ 임영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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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확하게 검증된 사실인지는 모르겠지만, 인구 140만 이상이 모여 사는 대도시와 해발 1000m 이상의 높은 산이 맞닿아 있는 곳은 세계 어느 곳에서도 광주를 제외하고는 그 사례를 찾아보기 어렵다고 한다.

어쨌거나, 광주 어디에서라도 마음만 먹으면 30분 이내에 무등산에 안길 수 있는 '숲세권'에서 살고 있다는 건 행운이다. 이만하면 광주 시민들은 복 받은 사람들이라고 해도 과히 틀린 말은 아니다.  

무등산에서 가장 늦게까지 단풍을 볼 수 있는 곳, 원효사

10월 초 설악에서 시작된 단풍이 중부 지방을 관통하며 한 달여 만에 남도 땅, 광주 무등산까지 내려와 만산홍엽을 이루고 있다. 단풍이 하루 약 20km의 속도로 남하한 셈이다. 이는 봄꽃이 북상하는 속도와 같고 사람이 하루에 편안히 걸을 수 있는 거리와 맞먹는다. 가을 단풍과 봄꽃, 그리고 사람. 셋의 속도가 서로 엇비슷하다. 모두 다 자연의 일부이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원효사 가는 길. 가을 단풍이 절정을 이루고 있다. 산수동 5거리에서 원효사까지 약 30 여 분간 이런 길이 이어진다
 원효사 가는 길. 가을 단풍이 절정을 이루고 있다. 산수동 5거리에서 원효사까지 약 30 여 분간 이런 길이 이어진다
ⓒ 임영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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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 시내에서 무등으로 오르는 길은 크게 두 개의 코스가 있다. 동구 운림동 증심사로 이어진 길과 북구 금곡동 원효사로 가는 길이 있다. 무등산의 동쪽인 증심사 쪽은 비교적 대중교통이 발달되어 접근이 용이하다 보니 산행객들의 약 7할 이상이 이 코스를 이용한다. 자연스럽게 상업시설이나 미술관 등 문화시설이 많이 들어서 있다.

반면, 무등산의 북쪽인 원효사로 가는 길에는 광주의 옛 성터인 무진고성지, 충장사, 충민사, 운암서원 등 문화유산들이 즐비하게 늘어서 있어 광주 문화의 원형을 찬찬히 들여다 불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교통이 다소 불편한 관계로 사람들이 북적거리지 않기 때문에 요즘 같은 언택트 시대에는 오히려 안성맞춤이다.

가을이 서서히 꼬리를 감추고 있는 시기. 가는 가을이 아쉽다면 무등산에서 가장 늦게까지 단풍을 볼 수 있는 곳, 원효사 가는 길에서 만추홍엽을 만끽해보시길 강추한다.

원효사로 가기 위해서는 광주시내 산수동 5거리에서 자동차로 약 30분 정도 울창한 숲 속을 달려야 한다. 1187번 시내버스도 다닌다. 1187번은 무등산 정상의 높이 1187m에서 유래했다. 무등산 옛길도 도로를 따라 잘 정비되어 있어 등산로로 각광을 받고 있다.

이 길은 숲이 울창해 광주사람들에게 드라이브 코스로 인기가 좋은 길이다. 초보 운전자들이 운전 연수를 많이 하는 일명 '산장 가는 길'이다. 1960~1970년도에 신혼 여행지로 각광받던 '산장호텔'이 있어서 붙여진 이름이다.
 
원효사 일주문
 원효사 일주문
ⓒ 임영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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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효사 지구 버스 정류장에서 내려 오른쪽으로 살짝 눈을 돌리면 원효사 일주문이 보인다. 곧바로 들어서기보다는 잠깐 들러야 할 곳이 있다. 거기에 광주를 대표하는 '가을의 시인', '고독의 시인' 다형 김현승(茶兄 金顯承 1913~1975)의 시비가 정류장 아래 길 모퉁이에 있기 때문이다.

평양에서 태어났지만 광주를, 무등산을 고향으로 삼고 살았던 김현승 시인의 시비는 광주 곳곳에 여럿 있지만, 개인적으로 봤을 때 무등산에 있는 시비가 가장 아름답지 않나 싶다. 교과서에도 실렸던 시 <눈물>이 서예가 장전 하남호의 글씨로 새겨져 있다.

더러는/ 옥토(沃土)에 떨어지는 작은 생명이고저···/ 흠도 티도/ 금가지 않은/ 나의 전체(全體)는 오직 이뿐!···

시도 한 편 읽었으니 이제 원효사로 가자. 일주문을 지나자마자 색들의 향연이 펼쳐진다. 울긋불긋 나무들이 만들어 내는 단풍 터널에 숨이 턱 막히고 꽃멀미, 아니 단풍 멀미가 날 지경이다. 여기서부터 원효사까지 구불구불 이어지는 약 500여미터의 길은 늦가을 무등산에서 가장 아름다운 단풍 길이 된다.

대낮인데도 길은 만추홍엽으로 어두 컴컴하면서 검붉게 물들어 있다. 산도 붉고 나무도 붉고 나도 붉다. 나무들이 토해 내는 색들이 언뜻언뜻 보이는 푸른 하늘과 아름다운 보색을 이룬다. 사람들이 왜 '곱게 물든 가을 단풍은 봄꽃보다 아름답다'라고 하는지 알겠다. 속세를 벗어나 또 다른 세상에 들어온 느낌이다. 사바 세상이 있다면 바로 이곳이 아닐까.

천년고찰 원효사가 품고 있는 문화유산   
 
무등산 원효사. 절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이 1300여 년 전 신라시대 원효대사가 무등산의 아름다움에 반해 창건했다고 전해 진다
 무등산 원효사. 절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이 1300여 년 전 신라시대 원효대사가 무등산의 아름다움에 반해 창건했다고 전해 진다
ⓒ 임영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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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나무와 단풍나무가 어우러진 길을 조금 더 오르자 길모퉁이에 그리 넓지 않은 부도밭이 나온다. 조선시대 말에 조성됐다는 부도전에는 원담화상과 회운당의 부도, 원효 스님의 부도가 있다.

원효사는 절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이 1300여 년 전 신라시대 원효대사가 무등산의 아름다움에 반해 창건했다고 전해진다. 조선 선조 때 승병장이었던 영규대사가 수도를 했고, 젊은 시절 한때 승려였던 고은 시인도 19세 때 출가하여 잠시 여기에 머물렀다.

대부분 한국 사찰들이 그러했듯이 원효사도 정유재란 때 불타 없어진 것을 광해군 때 중창하였으나 6·25 때 다시 잿더미가 됐다. 그 뒤 1954년에 일부를 복구하였고 1980년도에 대웅전과 명부전을 다시 지었다.
   
곱게 물든 가을 단풍은 봄꽃보다 아름답다
 곱게 물든 가을 단풍은 봄꽃보다 아름답다
ⓒ 임영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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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 입구에 다다르자 높은 석축 위의 범종각과 원효루가 속세에 찌든 중생에게 "어서 와 잠시 쉬었다 가라"며 길손을 반긴다. 원효루에 오른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회암루(悔巖樓)'라는 현판이 걸려 있었는데 언제 '원효루'로 바뀌었을까. 그건 그리 중요치 않다. 중요 한건 원효루에서 바라보는 무등산의 가을 절경이다. 기둥과 창방 사이로 수채화 액자가 마치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가까이 있는 단풍과 기암괴석이 어우러진 의상봉에서부터 멀리 정상의 천·지·인왕봉까지 무유등등(無有等等)한 무등의 모습이 한눈에 들어온다. 옛 시인묵객들도 이곳의 8가지 절경을 '원효 8경'이라 부르며 시·서·화의 주제로 삼아 많은 작품을 남겼다.
 
원효루에서 바라보는 무등산의 가을 절경이다. 기둥과 창방 사이로 수채화 액자가 마치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원효루에서 바라보는 무등산의 가을 절경이다. 기둥과 창방 사이로 수채화 액자가 마치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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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효사는 아름다운 풍경 못지않게 많은 문화유산들을 간직하고 있다. 원효대사를 모시는 개산조당(開山祖堂) 벽면에는 원효대사가 한밤중 해골에 담긴 썩은 물을 마시고 깨달음을 얻었다는 벽화가 그려져 있고 안에는 광주광역시 유형문화재 제15호로 지정된 만수사 범종이 있다.

요사채로 사용 중인 무등선원에는 특이하게도 서양화풍으로 그려진 불화가 한 점 있다. 한국 서양화의 거장 오지호 화백이 그린 후불탱화다. 6·25 때 불타버린 원효사의 복원사업이 한창이던 1954년 독실한 불교신자였던 장모의 간청으로 이 불화를 그렸다고 한다. 오지호 특유의 강렬한 색채와 단순미가 잘 표현된 걸작으로 평가받고 있지만, 아쉽게도 원본은 송광사에 있고 원효사에는 영인본이 남아 있다.
 
한국 서양화의 거장 오지호 화백이 서양화풍으로 그린 후불탱화. 오지호 특유의 강렬한 색채와 단순미가 잘 표현된 걸작으로 평가받고 있다
 한국 서양화의 거장 오지호 화백이 서양화풍으로 그린 후불탱화. 오지호 특유의 강렬한 색채와 단순미가 잘 표현된 걸작으로 평가받고 있다
ⓒ 원효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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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대 대웅전 중창공사를 할 때 출토된 소조 불두. 광주광역시 유형문화재 제8호
 1980년대 대웅전 중창공사를 할 때 출토된 소조 불두. 광주광역시 유형문화재 제8호
ⓒ 국립광주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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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대 대웅전 중창공사를 할 때 출토된 금동불입상, 청동불두, 흙으로 만든 소조불두, 청동보살입상 등은 광주광역시 유형문화재 제8호로 지정돼 국립광주박물관에 전시 중이다.

요사채에서 멀지 않은 곳에 용과 다람쥐, 새, 쥐, 거북이 등의 동물이 새겨져 있는 팔각 원당형의 아름다운 승탑이 하나 서 있다. 어느 스님의 것인지는 모르지만 고려 초기의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광주광역시 기념물 제7호로 지정된 '원효사 동부도'가 숲 속에서 '제행의 무상함'을 설하고 있다.

"가을여행 멀리 가지 마라, 쓸쓸해진다"라는 어느 시인의 말이 떠오르는 늦가을이다. 속절없이 가는 가을이 못내 아쉽다면 멀지 않고 사람들 붐비지 않는 곳에서 만추의 서정을 만끽해 보는 것도 나름 가을여행의 묘미가 아닐까 싶다. 무등산 원효사가 그러기에 딱 좋은 곳이다.

태그:#무등산 원효사, #만추홍엽, #무등산 원효사 가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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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동문화재단 문화재 돌봄사업단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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