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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매일 이용하는 교통, 그리고 대중교통에 대한 최신 소식을 전합니다. 가려운 부분은 시원하게 긁어주고, 속터지는 부분은 가차없이 분노하는 칼럼도 써내려갑니다. 교통에 대한 모든 이야기를 전하는 곳, 여기는 <박장식의 환승센터>입니다.[기자말]
우리가 매일 이용하는 교통, 그리고 대중교통에 대한 최신 소식을 전합니다. 가려운 부분은 시원하게 긁어주고, 속터지는 부분은 가차없이 분노하는 칼럼도 써내려갑니다. 교통에 대한 모든 이야기를 전하는 곳, 여기는 <박장식의 환승센터>입니다. - 기자 말 

- 1편 사연 많은 단성역, KTX는 지나는데 역은 사라지네에서 이어집니다.
 
낙동강 강변을 달려가는 중앙선 열차. 12월 15일부터는 볼 수 없는 풍경이기도 하다.
 낙동강 강변을 달려가는 중앙선 열차. 12월 15일부터는 볼 수 없는 풍경이기도 하다.
ⓒ 박장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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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는 연말이면 청량리역과 신 안동역 사이에 KTX의 운행이 시작된다. 청량리역에서 제천, 영주를 거쳐 안동까지 2시간 정도에 닿는 KTX는 안동을 크게 변화시킬 전망이다. 안동 역시 본격적인 1일 생활권에 들 수 있고, 이미 관광도시로 이름이 높은 안동에 더욱 많은 사람이 오게끔 할 수도 있다.

하지만 아쉬운 변화도 많다. 시내 한복판에 있어 관광객들의 사랑을 받았고, 가수 진성이 부른 노래 <안동역에서>의 배경이 되었던 지금의 안동역은 70년 넘게 영업했던 현재의 위치에서 사라진다. 낙동강 앞 산허리를 지나며 기적을 울렸던 철길 역시 사라진다.

다만 철길이 사라지며 생길 긍정적인 변화도 있다. 일제가 철길을 부설하면서 훼손되었던 문화재가 원래의 자리에 돌아오고, 열차가 오가는 충격으로 기울었던 탑도 다시 원래대로 뻗은 모습을 하게 된다. 영주를 지나 안동으로 가는 철길의 마지막 모습은 어떨까.

기관차 갈아끼우는 마지막 기차역, 영주역 

영주역을 지나 남쪽으로 내려가는 모든 무궁화호 열차는 모두 8분 정도를 역에서 보내야 한다. 가락국수집이 있다면 한 그릇 하기에도 충분한 시간이다. 영주역은 한국의 기차역에서 마지막 남은 기관차를 갈아끼우는 기차역이다. 영주역에서 안동을 거쳐 경주로 가는 철길은 아직 전철화가 되어 있지 않아, 전기기관차가 들어갈 수 없기 때문.

청량리부터 힘차게 달려온 열차가 영주역에 멈추면 센 힘으로 치악산과 죽령을 넘었던 전기기관차의 임무는 끝난다. 열차가 도착하기 무섭게 달려온 직원들이 연결기를 해체하면 전기 기관차는 세 시간 가까이 끌고 왔던 객차와 헤어진다. 그 자리에는 육중한 소리를 내며 디젤 기관차가 달려와 객차 앞에 바싹 붙는다.
 
기관차를 갈아끼우는 마지막 기차역인 영주역의 모습. 여객열차가 도착할 때마다 베테랑들의 숙련된 솜씨로 기관차를 갈아끼우곤 한다. 이 역시도 이번달 중순부터 볼 수 없는 풍경이 된다.
 기관차를 갈아끼우는 마지막 기차역인 영주역의 모습. 여객열차가 도착할 때마다 베테랑들의 숙련된 솜씨로 기관차를 갈아끼우곤 한다. 이 역시도 이번달 중순부터 볼 수 없는 풍경이 된다.
ⓒ 박장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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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열차에 달라붙어서도 안 된다. 연결 때의 충돌이 상당해 자칫하면 승객들이 놀랄 수도 있다. 직원들의 수신호에 따라 세웠다 느리게 갔다를 여러 번 반복해야 승객들이 놀라지 않게 객차가 연결된다. 직원들이 객차와 기관차 사이에 관이며 전선이며를 잔뜩 끼우면 열차는 출발할 수 있는데, 모든 과정이 약 5분 만에 이루어진다.

중앙선의 대부분 열차는 안동역에서 종착한다. 하루 세 번 부산까지, 하루 두 번 대구까지 가는 열차를 뺀다면 안동까지는 디젤기관차와 겨우 30분 정도를 함께하는 셈. 어쩌면 비효율적인 방식이기에 빨리 전철화를 해야 되었겠지만, 이설 계획이 있는 만큼 섣불리 전차선을 깔기도 어려워 이런 방식이 유지되었다.

과거에는 대전역에서도, 동해역에서도 흔하게 볼 수 있었던 광경인데다, 시간을 때우려는 이들 덕분에 '가락국수'까지 유행했을 정도로 기관차 교체는 하나의 문화가 되었다. 이제는 마지막 남은 영주역 이남 중앙선에 KTX까지 개통되는 만큼 전기기관차가 전구간을 운행할 수 있게 되어 사라질 공산이 크다.

기관차가 바뀌면 객차의 분위기도 적잖이 바뀐다. 디젤기관차의 귀청이 떠나가는 소음과 묘한 기름냄새가 객차 안에도 스며든다. 영주역을 출발한 열차에서도 이따금 보이는 전신주 대신 탁 트인 창가 풍경이 눈에 띈다. 78년간 전철화가 이루어지지 않았기에 즐길 수 있는, 한 달 뒤면 볼 수조차 없게 될 모습이다.

구비구비 돌아가는 안동 철길 사라지니... 문화재 돌아온다
 
임청각 앞에 우뚝 들어선 철길이 낙동강 앞을 꽉 막고 있다. 12월 중순 중앙선이 이설되면 달라질 풍경이기도 하다.
 임청각 앞에 우뚝 들어선 철길이 낙동강 앞을 꽉 막고 있다. 12월 중순 중앙선이 이설되면 달라질 풍경이기도 하다.
ⓒ 박장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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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주를 떠나 안동으로 가는 길의 반절 정도는 잘 닦여 있다. 2013년 영주댐 공사로 인해 일부 구간이 수몰되며 문수에서 옹천 가는 철길을 미리 개통했기 때문. 하지만 영주와 안동의 경계인 옹천 즈음에 오면 다시 원래의 선로로 내려와 달리기 시작한다. 이따금씩 터널도 지나고, 평탄한 논밭도 지나는 전형적인 시골 철길이다.

중간에 지나는 마사역과 이하역은 2007년 이후, 서지역은 2006년 이후 승객을 받지 않는데다, 역을 지키는 사람도 없어 입구가 막혀 있는 간이역이다. 인근에 사람 사는 마을이 있지만, 값이 헐한데다 더 자주 다니는 버스 등에 수요를 모두 뺏긴 지 오래인지라 서울, 원주나 대구 쪽으로 마실 나갈 일이 아니고서야 열차를 탈 일이 없었던 동네들이다.

하지만 마주오는 열차를 잠시 비켜주는 곳으로는 세 역만큼 제격인 곳이 없었다. 세 역은 안동 종점에 조금 늦게 들어오는 열차가 안동역에서 제 시간에 출발한 열차를 비켜주는 곳이기도 했고, 여객 열차가 느릿느릿 석탄을 싣고 가는 열차를 추월해 지나가는 곳이기도 했다. 이런 모습도 이번 겨울이 지나면 볼 수 없다.

서지역에서 열차가 몸을 크게 한 바퀴 돌면 낙동강변이 보인다. 월영교 뒤에는 멀리 안동댐도 보인다. 낙동강의 강변을 따라 2.5km 정도를 달리는데, 그 가운데에는 임청각과 고성 이씨 탑동파종택을 지난다. 두 곳은 80년 전 일제에 의해 중앙선이 부설되었을 때 큰 아픔을 겪었던 곳이기도 하다.

국보 182호로 지정된 아흔아홉 칸 규모의 고성 이씨 종택 임청각. 조선시대의 대표적인 고택으로도 이름이 높다. 하지만 이 집은 독립운동의 전진기지 역할로도 사람들에게 알려져 있다. 독립운동가 이상룡 선생이, 그리고 이상룡 선생의 집안에서 배출한 11명의 독립운동가가 일제에 맞서 싸운 중심지가 바로 임청각이었던 것.
 
임청각의 모습. 중앙선 철길이 이설되면 원래의 위용을 되찾을 전망이다.
 임청각의 모습. 중앙선 철길이 이설되면 원래의 위용을 되찾을 전망이다.
ⓒ 박장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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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청각에 가보면 아흡아홉 칸이라는 이름과 달리 실제로는 예순 칸 남짓만이 있는 것이 보인다. 일제가 중앙선 철길을 임청각 복판을 지나도록 부설한 탓에 건물 3분의 1 가량이 헐려나가 지금까지 오고 있단다. 열차의 영향은 또 있다. 육중한 기차가 한 대 지날 때마다 임청각 건물 전체가 울린다. 

선로가 옮겨지면 80년 동안 임청각에 사는 이들을 괴롭혔던 육중한 열차 소리도, 철길에 밟혀 사라진 행랑채와 바깥채가 돌아올 수 있다. 철길에 막혀 굴다리로 들어가야만 했던 임청각 가는 길도 훨씬 널찍해지고, 본디 볼 수 있었던 낙동강도 다시 임청각에서 바로 볼 수 있게 된다.

80년간 선로가 괴롭혀왔던 곳은 또 있다. 탑동파종택 앞에 우뚝 선 법흥사지 칠층전탑. 과거 종택과 임청각은 법흥사가 있던 자리였는데, 이 자리에 유일하게 남은 통일신라시대 전탑이라 국보로도 지정되었단다. 하지만 80년간 전탑 바로 옆에 육중한 기차가 오가다보니 탑이 꽤나 기울었다.

정부는 중앙선 철길이 이설되는 대로 임청각과 법흥사지 칠층전탑의 복원 공사에 착수한다는 방침이다. 문재인 대통령도, 정세균 국무총리도 3년 전과 지난 달 임청각을 방문해 해당 지역의 복원 의지를 드러내곤 했다. 선로가 사라지면 사라졌던 건물도, 기울었던 탑도 바로 선다. 이설이 어쩌면 슬픈 이야기만은 아니란 이야기다.

'첫 눈이 내리는 날 안동역 앞에서...'
 
안동역의 모습. 12월 17일이면 멀리 떨어진 곳으로 이전한다.
 안동역의 모습. 12월 17일이면 멀리 떨어진 곳으로 이전한다.
ⓒ 박장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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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에 날려버린 허무한 맹세였나 / 첫눈이 내리는 날 안동역 앞에서 / 만나자고 약속한 사람 / 새벽부터 오는 눈이 무릎까지 덮는데 / 안 오는 건지 못 오는 건지 / 오지 않는 사람아 / 안타까운 내 마음만 녹고 녹는다 / 기적소리 끊어진 밤에" - 가수 진성의 <안동역에서> 중에서

안동역이라는 이름만 들으면 노래 하나가 생각날 수밖에 없다. 트로트를 모르는 사람이라도 한번씩은 알 법한 가수 진성의 <안동역에서>. 20년 무명가수였던 진성 본인에게도, 지역을 대표할 노래가 없었던 안동에도 이 노래는 퍽 알려진 노래가 되어 안동역 앞에 노래비가 세워질 정도가 되었다.

안동역의 분위기는 묘한 따뜻함이 감돈다. 경북 북부를 대표하는 역답지 않게 승강장도 크지 않고, 역 건물 역시 비교적 크지 않아서 더욱 그런 것만 같다. 하지만 열차가 한 대 도착할 때마다 역과 주변이 여느 기차역 못잖게 북적인다. 역 앞 역시 관광객과 지역 주민들이 뒤섞여 만수상을 이룬다.

안동역 바로 앞은 관광객들을 위한 곳들로 가득하다. 한창 추워진 겨울이면 생각나는 따끈한 찜닭을 파는 가게들도, 외지 사람들보다 현지 사람들에게 더욱 유명한 갈빗집들도 안동역 바로 앞에 모여 있곤 하다. 하회마을이나 도산서원으로 가는 버스들도 안동역전에서 시동을 걸고 객손들을 받는다.

하지만 교통의 중심지라는 이름도 옛말이 될 것만 같다. 임청각 일대의 철길을 끊어내면서 안동역도 안동 시가지 서쪽의 안동터미널 바로 앞으로 자리를 옮기기 때문. 하고많은 찜닭집도 관광객들이 자주 찾던 빵집도 그 자리에 그대로 있지만, 가장 많은 관광객들이 쏟아져나왔을 기차역이 옮겨진다는 것은 퍽 아쉬운 일이다.

그나마 다행스러운 점이라면 안동역의 마지막은 올해의 첫눈과 함께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다. 원래 계획대로였다면 11월에 이설이 될 예정이었지만, 이설 일정이 한 달 가량 늦춰지면서 첫눈과 함께 문을 닫을 수 있게 되었다. 마지막 첫 눈에는 '만나자고 했던 그 이'가 드디어 나올 수 있을까.

중앙선의 '첫눈 엔딩',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낙동강을 건너는 중앙선 열차. 12월의 보름이 지나면 다시 볼 수 없는 풍경이기도 하다.
 낙동강을 건너는 중앙선 열차. 12월의 보름이 지나면 다시 볼 수 없는 풍경이기도 하다.
ⓒ 박장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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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랫말이 그랬듯, 안동역은 첫눈이 내릴 즈음에 문을 닫는다. 12월 17일이면 영주역에서 단촌역 사이의 새로운 철길이 개통되기 때문. 안동역은 철길 지붕에 덮여 눈이 쌓일 새 없는 새로운 역에서 터미널과 마주보고 서게 된다. 올해 눈 구경을 하고 문을 닫는 것이 어쩌면 다행스럽게 느껴진다.

12월 14일에는 영주역과 단양역 사이의 새 선로가 개통한다. 영남의 첫 번째 기차역인 희방사역이 문을 닫고, 애환이 서렸던 단성역과 여러 슬픈 이야기를 낳았던 죽령고개도 터널로 대체된다. 2020년의 끝머리에 너무 많은 변화가 한꺼번에 중앙선 일대로 몰려드는 셈.

12월 말에 원주와 제천 사이의 구간도 개통되면 비로소 중앙선에 KTX가 들어선다. 지금은 3시간 30분 가까이가 걸리는 청량리와 안동 사이가 2시간 남짓으로 가까워지지만, 여러 풍경들을 철길 위에서 볼 수 없고 간이역이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다는 것은 아쉬운 면이 크다.

다행스러운 점은 중앙선의 대부분 구간을 일반인도 체험할 수 있는 철도 관련 어트랙션으로 만든다는 점. 각 지자체에서 절경과도 같은 중앙선의 옛 선로를 산책로로, 관광철도로 다시 태어나게 할 방법을 찾고 있다.

철로로서의 역사는 끝나지만, 사람들에게 길이 남을 풍경으로서의 역사만큼은 계속 이어가는 셈. 새로운 80년, 나아가 더욱 오랫동안 사랑받을 관광지가 될 모습을 기대해봐도 좋지 않을까.

태그:#중앙선, #이설, #안동시, #영주시, #임청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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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교통 기사를 쓰는 '자칭 교통 칼럼니스트', 그러면서 컬링 같은 종목의 스포츠 기사도 쓰고, 내가 쓰고 싶은 이야기도 쓰는 사람. 그리고 '라디오 고정 게스트'로 나서고 싶은 시민기자. - 부동산 개발을 위해 글 쓰는 사람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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