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05 19:18최종 업데이트 20.11.05 2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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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3일(현지시각) 미국 뉴욕 타임스퀘어에 있는 전광판에 대선 투표 결과를 보기 위해 사람들이 모여있다. ⓒ 연합뉴스

 
"그대는 보이는가. 치열한 전투 중에도 우리가 사수했던, 새벽빛을 뚫고 나부끼는 깃발이."

미국 국가(國歌)의 일부분이다. 수만리 자유의 땅을 찾아 새로운 국가를 세웠던 미국인들이 그토록 자랑스러워했을 깃발. 치열한 전투도 마다하지 않고, 그렇게 밤 새워 지킨 깃발이 여명의 빛을 뚫고 나부끼는 것을 바라볼 때의 마음, 그것이 애국심이 아니고 무엇일까.


하지만 11월 4일 새벽을 맞은 미국인들이 길거리에 나부끼는 성조기를 보는 마음은 사뭇 달랐을 것 같다.

대통령 선거는 미국과 한국 등 대통령제를 채택하고 있는 민주주의 국가가 가진 최고의 정치 축제다. 하나의 깃발 아래 수많은 다양한 목소리들을 담아내겠다고 다짐하는 최고의 지도자를 결정하는 날이다. 그래서 승자는 그러한 내용의 서약을 하게 되고, 패자 역시 그렇게 바란다는 덕담을 던져주는 것이 관례다. 그래서 축제였다. 어쨌든 적어도 미국에서는 그랬다.

하지만 21세기 들어 갈수록 혼탁해지는 미국 대선은 이제 더 이상 축제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국민들을 불편하게 만들고 있다. 국민을 위한 행사가 아닌 국민이 걱정하는 행사가 돼버렸다.

국민이 걱정하는 행사가 되어버린 미국 선거

개표가 시작된 지 하루가 넘었지만 46대 미국 대통령의 윤곽은 여전히 드러나지 않고 있다. 물론 개표과정의 장기화 가능성이 전혀 예상치 못했던 일은 아니다. 다만 복잡하기로 소문난 미국 대선 제도 위에 선거에 임하는 정치인들의 물불 가리지 않는 사투가 더해지면서 이제 미국 대선은 방향을 완전히 잃은 듯하다.

초반 기세를 잡아나가던 트럼프 대통령은 분열을 예고라도 하듯 조기 승리를 선언해 버렸다. 대선과 같은 민감한 시기에 후보자의 발언 한마디가 얼마나 중요한가는 새삼 거론할 필요도 없다. 지지자들은 극도로 민감해 있고, 후보자의 말 한마디 한마디에 격하게 반응한다.

대선에 임하는 후보자는 자신의 지지자들을 향해 자신감을 피력하고 응원도 구해야 하지만, 경우에 따라서는 국가를 위해 적절한 선을 지키도록 호소해야 할 때도 있다. 그럴 때 국민들은 승패를 떠나 그에게서 지도자상을 본다.

그런데 후보자 스스로 나서 지지자들을 자극하고 분열을 유도하기 시작하면, 그때는 이미 민주주의의 공정한 게임을 포기한다는 신호로 받아들여야 한다. 심지어 후보가 도전자가 아니고 현직 대통령이라면.

사전투표가 이미 미국에서 법제화돼 있고, 이전 선거에서도 활용되었다는 것을 미국 유권자라면 모르는 사람이 거의 없다. 심지어 이번 선거에서 사전투표에 참가한 유권자는 실질적으로 1억 명이 넘는 것으로 집계되고 있다. 전체 유권자 2억 330만 명의 절반에 약간 못 미치는 엄청난 숫자다. 이미 미국 유권자들은 사전투표를 선거의 중요한 일부분으로 인정하고 있다는 의미다.

개표 과정에서 사전투표함이 먼저 열릴 수도 있지만 나중에 열릴 수도 있는 것은 당연. 그리고 대부분의 주(state)에서 투표함이 나중에 개봉된다는 것도 알려져 있었다.

그리고 이번 선거에서 특히 사전투표자들 가운데 민주당의 조 바이든 후보를 지지하는 목소리가 많을 것이라는 것은 익히 알려진 사실이다. 따라서 공화당의 도널드 트럼프 후보는 초반에 많은 표를 얻어 후반에 쏟아져 나올 바이든 후보의 지지표를 압도해야 승산이 있다는 것도 초보적 선거 전략을 가진 사람이라면 이미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현직 대통령이라면 초조해할 지지자들을 독려하면서도 스스로는 신중함을 잃지 말아야 한다. 트럼프 후보 입장에서 자신이 승리할 가능성과 패배할 가능성이 비슷하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한다. 그래서 지지자들을 향해서도 신중했어야 한다. 패배할 가능성까지 염두에 두고. 왜? 그는 현직 대통령이기 때문에.

예측한 수순으로 가는 트럼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대선 다음날인 4일(현지시간) 새벽 워싱턴DC 백악관에서 선거 결과에 대해 연설하고 있다. ⓒ AP=연합뉴스

 
정치인(politician) 가운데는 영민한 사람들이 있다. 용기가 하늘을 찌르는 사람들도 있다. 모든 분야에서 그렇겠지만 정치인으로서도 이런 것들은 큰 덕목이다. 하지만 국가 지도자(statesman)의 가장 큰 덕목은 영민도 용기도 아닌 현명함이다. 나와 우리의 이익뿐 아니라 공동체의 이익까지 포용할 줄 아는 덕목이 없다면 본질적 의미의 정치는 포기해야 한다. 학문적 의미에서 정치라는 것은 다양성을 하나의 체계 안에 수렴하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현명함을 가지지 못한 정치인이 선거에 승리한다면 공동체 입장에서는 그 이상 불행이 있을 수 없다. 현재 벌어지고 있는 미국 선거의 혼탁함은 그래서 상당부분 현직 대통령이자 도전자인 도널드 트럼프 후보에 기인한다.

그는 이번 선거의 도전자이지만 지난 선거의 승자다. 그리고 4년 동안 세계 최강의 미국을 이끌어 왔다. 과연 4년 후의 미국이 세계 최강 국가로서 존중을 받을 만했나? 자국의 이익만 추구하다 지구촌 공동체의 공생 기회를 놓치지는 않았나?

혹여 '대통령이 지국 이익만 챙기면 됐지 남의 나라 이익까지 신경 써야 하냐'는 반박이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그것이 위에서 말한 정치인과 국가지도자의 차이가 아닐까?

공동체의 공멸이 곧 자신에게 돌아오는 피해라는 것은 자명한 사실. 지난 4년간 미국의 수많은 정책 전문가들은 미국의 신(新)고립주의가 궁극적으로 미국에 해가 될 것이라는 지적을 해왔다. 그런데도 트럼프 행정부는 지난 4년 동안 세계문화유산을 공동 관리하자는 유네스코를 탈퇴했고, 지구의 환경을 함께 고민하자는 파리협약을 탈퇴했다. 유럽의 미국 동맹국들과 국제원자력기구(AIEA)마저 이란이 핵 합의를 준수하고 있다고 인정함에도 불구하고 극적 타협을 이뤘던 이란핵합의에서도 탈퇴했다.

그렇게 해서 얻은 미국의 이익이 무엇인가? 특정 분야별 단기적 현금 이익 외에 오히려 미국의 중장기적 지도력은 많은 한계를 드러내 보였다. 중국 때리기를 이어가지만 굴복을 시키는 데에 한계를 보이고, 서유럽은 미국과의 긴밀한 협력관계에 깊은 의구심을 드러내고 있다. 한국과 일본 같은 전통적 맹방 안에서도 회의적 목소리들이 커가고 있다.

이런 위기 상황에서 트럼프 대통령은 다시 승리를 원하고 있고, 현지 시간으로 4일 저녁 승기가 바이든 후보 쪽으로 기울자 이번에는 소송전을 예고하고 나섰다. 그가 승리 선언을 했을 때도 선거는 끝나지 않았고, 소송전을 벼르고 나설 때도 선거는 끝나지 않았다. 현지시각으로 5일 새벽 4시인 지금까지도 개표는 끝나지 않은 상태다.

개표의 추이에 일희일비하는 그가 안쓰럽기도 하지만, 미국의 대통령이기에 연민으로 바라볼 수만은 없다. 소송전 발언은 승리선언보다 더 심각한 민주주의의 위기를 초래할 수 있기 때문이다.
 

4일(현지시간) 미국 대선 경합 주(州) 가운데 한 곳인 미시간주 디트로이트의 TCF센터에 마련된 개표장 앞에 부재자 투표용지 함이 도착해 있다. 철저한 경비 속에 운송된 이들 부재자 투표용지는 검증을 거친 뒤 개표에 들어간다. 미시간주는 개표 후반 들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조 바이든 민주당 후보가 피 말리는 접전을 보이고 있다. ⓒ 연합뉴스/EPA

 
미국 민주주의의 위기

현대의 선진 정치는 민주주의와 법치주의라는 두 원리로 구성된다. 민주주의란 프랑스 혁명 이후 권력세력으로 등장한 시민계급이 집단으로 모여 대화와 타협으로 모든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의지의 산물이다. 한편 법치주의는 그러한 타협 원칙이 자칫 무원칙으로 흐를 수 있음을 감시하고 분쟁발생시 최종 판단을 해주는 장치를 말한다.

민주주의는 생물처럼 끝없이 움직이고, 법치주의는 부동의 반석이 되는 역할을 한다. 민주주의는 그렇게 해서 현대의 의회 정치를 낳았고, 법치주의는 엄격한 사법 권력의 독립을 보장하도록 했다.

극단적 법치주의는 민주주의 원리를 조롱하고 경시하게 만들며 점점 민주주의의 입지를 좁히게 만드는 위험을 내포하고 있다. 반대로 법치가 없는 민주주의도 원칙 없는 야합과 혼란을 야기할 수 있다. 그렇게 두 원리는 상호 견제와 감시를 하는 다양한 장치들을 보완하며 민주국가를 발전시켜 왔다. 두 원리가 조화를 이루는 사회가 '열린사회'이자 강한 사회다.

그런데 근래 들어 미국과 한국 등 여러 나라에서 대화와 타협의 대상인 정치적 문제들을 법정으로 끌고 가 최종판단을 구하는 일이 잦아지고 있다. 만약 사회가 그 방향으로 지속한다면 그 사회의 미래에는 민주주의의 실종과 법 만능주의만 존재하게 된다. 법치는 원시사회에도 있었고 여전히 권위주의와 전체주의 사회에도 존재한다. 심지어 법치는 권위주의와 전체주의를 지탱하는 근간이기도 하다.
 

현지시각 4일 미국 대선 개표가 진행중인 가운데 입장 발표에 나선 바이든 후보가 주먹을 불끈 쥐고 있다. ⓒ 연합뉴스/AP

 
이제 미국 대선의 개표가 마무리돼 가고 있다. 남은 일정상 조 바이든 후보의 승리 가능성이 다시 높아졌다. 조만간 바이든 후보는 승리를 선언할 가능성이 높다. 이미 민주당 내부에서는 인수위원회가 꾸려진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트럼프 후보 측은 이를 인정하지 않을 것이다. 사전투표의 부당함을 주장하며 궁극적으로 미국 수정헌법에 대한 위헌 투쟁으로 갈 것이다. 그렇게 되면 공은 주 법원에서 연방 대법원으로 넘어갈 수 있다. 그것이 트럼프 후보 측의 전략이기도 했다. 선거 직전 연방 대법원 판사 지명을 기억해보자.

물론 이렇게 되면 법리적 해석이 나올 것이다. 미리 예측하기 어렵지만 지금까지의 미국 판례들을 보면 정치적 판단을 요하는 문제들을 연방 대법원에서 자의적으로 판단하는 경우는 상당히 드물다. 다행히 아직까지 미국의 연방 대법원은 정치가 법치에 휘둘리지 않을, 또 법원이 정치판의 뒤치다꺼리로 전락하지 않을 정도의 '현명함'은 가지고 있는 듯하다. 물론 지켜볼 일이다.

민주주의 원리가 배제된 법치주의는 권위주의로 흐를 수 있다는 사실, 미국인들이 이번 선거를 통해 되새겨봐야 할 문제다. 미국사회가 간혹 '법이 지배하는 전체주의'라는 오명을 듣는 이유를 특히 2020 미 대선 다음날 트럼프 대통령은 기억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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