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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라는 질문 앞에 서면 어떻게 말할까. 젊은 청춘일 때는 사랑, 희망, 정의라고 답했던 것 같다. 오십이라는 중년을 관통하면서 확실히 나의 대답은 달라졌다. 내 몸을 살리는 밥(쌀)과 내 정신을 살리는 책으로 산다고 말한다. 올해는 이 위대한 질문에 대하여 성실하게 답을 했던 시간들이 있었다.

시월의 마지막 밤, 군산 한길문고의 에세이팀들은 소위 출간기념회를 가졌다. 상주작가 배지영씨의 도움으로 글을 쓰기 시작한 사람들이 모여 처음으로 자신의 책을 냈다.

나도 역시 일 년 전부터 글쓰기를 시작했고, 모아진 글을 출판하자는 제의에 합류해서 결국 책을 냈다. 책을 내는 과정 역시 쉽지만은 않았다. 그러나 인적, 물리적, 시간적 협조자들 덕분에 11명의 지역 출간 작가라는 무대에 서게 되었다. 감개무량이란 말 밖에 달리 표현할 길이 없다.
 
생각보다 거창해서 놀랐던 출판기념회.
 생각보다 거창해서 놀랐던 출판기념회.
ⓒ 박향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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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으로 맞이한 출간 기념회 무대는 상상 외로 컸다. 시장, 국회의원도 오고, 지역내외에서 책 관련인들이 왔다. 코로나로 인해 행사의 참석자 수를 50명 미만으로 제한해서 책을 낸 사람들의 가족도 두 세 명만 초대받았다.

자기소개 역시 1분을 넘기지 않아야 해서 꼭 할 말을 하기 위해 몇 번을 연습했다. 행사 두 시간 전, 현장 분위기도 보고 걸려 진 책 소개 플래카드 앞에서 사진도 찍었다. 참 살다보니 이런 일도 있구나 싶어서 내심 가슴이 두근거렸다.

기념회를 위해서 바삐 움직이는 한길문고 대표와 직원들, 축하음악을 준비한 현악단 3총사, 페이스북 생방송을 준비해준 지인을 보면서 다른 누군가의 기쁨을 함께하는 그들의 모습에 절로 감사의 마음이 흘러 나왔다. 잠시 후 사회자의 인사말로 기념회가 시작됐다. 여린 초록이 가득 한 봄날, 경쾌한 발걸음으로 줄지어 소풍가는 어린이들처럼 11인의 작가는 자신을 소개했다.
 
군산 지역작가 11인의 책을 전시해 둔 책장.
 군산 지역작가 11인의 책을 전시해 둔 책장.
ⓒ 박향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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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이는 그 자리까지 오게 된 마음 속 사연에 울먹이고, 어떤 이는 꼼꼼히 적어온 사연을 읽으며 감사했다. 또 어떤 이는 글을 쓰며 힐링했다 하고, 어떤 이는 첫 발을 떼니 두 번째 발은 더 빨리 뗄 수 있도록 열심히 노력하겠다고 했다. 나도 역시 상주작가와 남편과 아들딸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 그리고 시장님의 축사가 생략된 시간을 1분만 더 쓰겠다고 하며 내 책에게 부여한 의미 하나를 전했다.

"학생들과 봉사활동을 한 지 만 10년입니다. 그 중에서 겨울철이 되면 난방(연탄)을 준비해서 소외계층에게 전하고 있습니다. 올해는 코로나로 인해 접촉이 많은 바자회를 할 수 없습니다. 이 책의 가장 뒷면에 보시면 책 수익금의 20퍼센트가 기부금으로 적립된다고 썼습니다. 여러분이 한 권을 사시면 어려운 사정에 있는 누군가의 방을 따뜻하게 데울 연탄 3장이 준비됩니다. 꼭 사주시길 뻔뻔하게 강력하게 부탁합니다."

사실 내 책은 다른 사람들보다 3일이나 먼저 나왔다. 출간기념회 날까지 최소 100권은 팔아서 기부금을 마련하고 싶었다. 코로나로 인해 무료급식센터에 참여하게 된 후 지금까지 정기적으로 점심식사를 준비하는 봉사를 하고 있다.

올해 여유가 된다면 일차적으로 이 곳에 쌀을 기부해야겠다고 결정 했었다. 운 좋게도 내가 책을 쓰게 되었고, 판매수익금으로 기부할 쌀을 구할 수 있겠다는 목표는 나의 글쓰기 동력이 되었다. 행사 날까지 나는 120권을 팔았고, 급식센터에서 1일 점심에 사용되는 쌀 50kg을 기부하게 되었다.
 
첫 책을 내고 가족들과 사진을 찍었다.
 첫 책을 내고 가족들과 사진을 찍었다.
ⓒ 박향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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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에서 많은 지인들이 나의 첫 책에 담긴 의도에 따뜻한 손길을 주었다. 한 권이면 될 것을 다른 친구들에게 선물하겠다고, 특히나 기부를 할 수 있다니 더 기쁘다고 말해주었다. 한길문고와 예스트 서점에서도 일부러 판매대의 전면에 배치해서 손님들의 눈길을 받게 했다.

기념회 다음 날, 두 서점에 놓았던 책 40여 권이 모두 나갔다. 더 갖다 놓아도 된다고 해서 소위 2쇄를 부탁했다. 유명한 작가의 1쇄란, 기본권수가 1000권 이상이라는데 우리는 최소 10권부터 인쇄해주니 병아리 작가들의 마음이 얼마나 편했겠는가.

다른 동료들도 처음엔 걱정과 두려움이 가득했다. "누가 얼마나 사주겠어요. 가족들이나 읽어야지요. 우리끼리만 읽어도 전 좋아요. 언제 책을 내고 출간 작가라는 말을 듣겠어요. 그냥 30권만 할 거예요." 그랬던 사람들이 며칠 사이에 100권 가까이 인쇄를 부탁하고 있다. 희망도서 대출시스템으로 시립도서관에서도 사주었고, 지인 한 명이 두 명에게 소개하다보니 당연히 부족했으리라.

"내가 말했지요? 최소 100권은 준비하셔야 된다고요. 홍보할 때는 우리 모두의 것을 함께 하니 다 잘 될 거예요. 함께 모이면 뭐든지 할 수 있어요. 한 사람 한 사람은 부족할 수 있지만, 그래도 우린 책을 낸 사람들이에요. 우리 각자의 이야기만큼 소중한 것은 없지요. 꾸미지 않고, 있는 그대로 쓴 우리들이 정말 자랑스럽기만 한데요."
"맞아요! 샘 말이 맞아요. 샘 덕분에 자신감이 생겼어요. 우리도 책 팔릴 때마다 기부금 낼게요."


역시 그렇지. 사람 사는 세상에 사람이 없으면 무엇으로 살아갈 것인가. 조만간 학원에서 비대면 바자회를 열 계획이다. 이날 모든 상품은 SNS를 통해서 판매할 것이다. 한 지인은 내 책에 나오는 엄마의 간장새우장 얘기를 잘 읽었노라고 왕새우를 기부한다고 전화했다.

기부 받은 새우를 엄마께 드리면 엄마는 세상에 둘 도 없는 맛난 새우장을 담아 주실 것이다. 어떤 지인은 천연 한방삼푸와 천연비누를 만들어 준다고 했다. 올해 텃밭 농사를 지어 적립한 기부금도 기다리고 있다. 또 내 책도 더 팔아야지 싶다.

벌써부터 학생들은 기다린다. 연탄기부금을 위한 바자회에 3년째 참여하고 있는 초등 5학년 소명이는 한 달 전부터 물어보기 바빴다. 올해는 언제, 어떻게 준비해야 되냐고. 작년처럼 어묵과 컵라면 하고 싶다고. 올해는 코로나로 인해 비대면을 위한 물건만 해야 될 것 같다 하니, 그것을 본인이 담당하고 싶다고 당차게 말했다. '이것이 참 교육이다!'라고 스스로 칭찬했다.

갈수록 차가워진 날씨에 코로나나 독감이 성행한다면, 연탄을 배달까지 했던 학생들의 봉사활동은 못할 것이다. 대신 쌀을 기부하는 방법을 생각하니 오히려 수혜 받는 가구 수가 늘어서 더 행복해진다. 벌써부터 세모의 끝자락이 나를 눌러 자극하지만 연초에 세웠던 올해의 목표를 읽어보면 못내 흐뭇하기만 하다.

내 평생 처음으로 책도 내고, 그 책이 팔려 기부금이 모여진다. 이제 중년이라는 결실의 시간이 지나고 있다. 노년을 향한 나의 사다리를 튼튼하게 하고 싶다. 그 자리에 새겨질 말을 무엇으로 정할까. 어떤 학자의 말처럼 '지혜와 성찰'을 쓰련다. 그곳에 나는 한 가지를 더한다. 따뜻한 세상을 만들 수 있는 것은 오로지 '나눔'.

태그:#군산지역작가춢판기념회, #어부마님울엄마, #박모니카, #한길문고, #예스트서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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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과 희망은 어디에서 올까요. 무지개 너머에서 올까요. 오는 것이 아니라 '있는 것'임을 알아요. 그것도 바로 내 안에. 내 몸과 오감이 부딪히는 곳곳에 있어요. 비록 여리더라도 한줄기 햇빛이 있는 곳. 작지만 정의의 씨앗이 움트기 하는 곳. 언제라도 부당함을 소리칠 수 있는 곳. 그곳에서 일상이 주는 행복과 희망 얘기를 공유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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