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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 유·초·중·고의 등교 인원 제한이 3분의 2로 완화된 10월 19일 오전 서울 용산구의 한 중학교에서 학생들이 등교를 하고 있다
 전국 유·초·중·고의 등교 인원 제한이 3분의 2로 완화된 10월 19일 오전 서울 용산구의 한 중학교에서 학생들이 등교를 하고 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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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아침 방역 지도를 하러 아이들 등굣길에 서 있다 보니 날씨에 민감해졌다. 아침에 일어나면 창문을 열고 비가 오는지, 바람이 부는지, 기온이 높은지, 낮은지 확인하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한다. 비가 온 뒤라 그런지 오늘 아침은 정말 춥다. 바람까지 불어 더 춥다. 저절로 한숨이 나온다. "날이 추우니 옷 따뜻하게 입고 나가"라는 아내의 말이 "당신, 오늘 고생할 것 같으니 마음 단단히 먹고 출근해"라는 말로 들렸다.

밥맛도 없어 빈속으로 출근하는데 내가 전생에 무슨 죄를 지어 코로나19 학교 방역담당자가 되어 이 고생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고 보니 다른 선생님들보다 한 시간 가까이 먼저 출근해 열화상 카메라를 확인하고, 현관문을 개방하고, 일찍 등교한 아이들을 지도하는 이 일상도 8개월째다. 참 오래도 했다 싶었다. 8개월을 잘 버텨냈다는 생각보단 1월 중순인 방학까지 남은 두 달을 어떻게 버티나, 버틸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몸과 마음이 잔뜩 움츠러든 상태로 등교 방역 지도를 하는데 한 아이가 마스크 똑바로 쓰라는 말에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였다. 마스크의 효용성을 천천히 설명해도 비딱하게 서서 제대로 듣지 않았다. 등교 지도를 하다 보면 이런 경우가 하루에도 서너 번 있어 이제는 아이들의 이런 반응에 어느 정도 면역이 돼 화가 잘나지 않는 데, 오늘은 좀 견디기 힘들었다. 화를 간신히 누르고 마스크 잘 쓰라고 부탁하고 들여보내니 인사도 안 하고 가버렸다. 껄렁거리며 들어가는 아이의 뒷모습을 보며 내가 이 추운 날 이런 꼴 보려고 이 고생인가 하는 자괴감마저 들었다. 겨우겨우 등교 지도를 마치고 교무실로 가는데 내 표정이 너무 안 좋았는지 후배 선생님 한 분이 말을 걸어왔다.
 
"선생님, 추운데 고생하셨어요."
"그러게. 오늘은 좀 힘드네."
"힘내세요. 저도 열심히 도울게요."
"벌써 열심히 돕고 있잖아. 점심시간에도 자기 차례 아닌데도 매일 아이들 급식 지도하잖아. 나야 담당자니까 선생님이 매일 도와주니 고맙지만 그러지 마, 힘들어."
"아니에요, 제가 좋아서 하는 거예요."
"그 시간에 아이들 상담도 하고 좀 쉬기도 하고..."
"진짜예요. 아이들 얼굴 보고 싶어서 그래요. 담임을 맡고, 3학년 수업을 하지만 코로나 때문에 아이들이 항상 마스크를 쓰고 있어 아이들 얼굴을 제대로 본 적이 없더라고요. 그나마 점심시간에는 밥 먹으려고 마스크 벗잖아요? 그래서 급식 지도하는 거예요."


마스크를 벗은 아이들 얼굴 한 번 보려고 매일 급식 지도를 한다는 후배 교사의 얼굴은 행복해 보였다. 그런 후배 교사에게 아이들의 예의 없음에 분노해 힘들다고 푸념하고 있었다니 부끄러움에 고개를 들 수 없었다. 더욱이 아침부터 학교 방역 담당이 되고, 남들보다 조금 일찍 출근하는 내 처지를 전생까지 들먹이며 한탄한 나 자신이 너무 초라하게 느껴졌다.

창문 넘어 교실을 보니 담임선생님들이 아이들 한 명 한 명 체온을 재고 있었다. 복도에선 담임선생님 한 분이 아직 등교하지 않은 학생에게 전화를 걸어 깨우고 있었다. 교무실에 들어서니 보건 선생님은 코로나19 대처법을 아이들이 잘 안 들으니 문제를 내고 정답을 맞추면 선물을 주면 어떻겠냐고, 이미 선물 50개는 준비했다고 했다.

얼마 전 선생님들과 이야기하며 우리 학교에 코로나19 확진자가 나오지 않는 게 기적이라고 했는데 아니었다. 또 그 기적의 상당한 이유가 내가 열심히 해서라고 생각했는데 말도 안 되는 얘기였다. 매일 등교 시간과 점심시간 열화상 카메라 앞을 지키며 체온 체크를 돕는 행정실장님, 쏟아지는 계획서와 보고서 재촉, 하루 종일 이리 뛰고 저리 뛰며 환자를 돌보면서도 효과적인 지도법을 고민하는 보건 선생님, 보다 안전하고 쾌적한 환경에서 급식을 먹이기 위해 애쓰는 영양사 선생님과 조리 실무사 선생님들, 그리고 아이들 곁을 지키며 때론 어르고 때론 달래며 하루하루를 버텨내고 계신 담임선생님들. 그리고 코로나19를 묵묵히 견뎌내고 있는 아이들. 이들이 합심해서 만들어낸 성과였다.

그것도 모르고 난 이 모든 것들을 내가 다하고, 내가 제일 고생하고 있다는 착각 속에 빠져서 다른 선생님들을, 심지어는 학생들까지도 원망하고 탓하기만 했었다. 모두 모두 고맙고 미안했다.

코로나19는 끝날 기미는커녕 더 심해지는 것 같다. 어쩌면 우리 학교에도 확진자가 나올지도 모르겠다. 날씨가 더 추워지면 어제같이 감기 환자에 깜짝 놀라 학교 전체가 긴장하는 일도 더 자주 있을 것이다. 그리고 난 학교 방역담당자로서 짊어진 짐에 분명 더 힘들어 할 것이다.

오늘 난 후배 교사의 말을 통해 더 힘들고 지치겠지만 우리 선생님들은, 아이들은 분명 이겨낼 것이라는 확신이 생겼다. 내일은 날이 더 춥다고 한다. 걱정이다.

태그:#코로나19, #학교 방역, #선생님의 마음, #마스크, #고마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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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소재 중학교에서 근무하고 있는 교사입니다. 또 학교에 근무하며 생각하고 느낀 바를 쓰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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