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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엄마가 오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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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천 개의 바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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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 집이 끝나는 저녁
오늘도 연이가 혼자 남았어요.'


나는 해질녁 거리에 설 때마다 막막해진다. 돌아갈 집이 이젠 없는 것도 아닌데, 돌아갈 집이 아득히 멀게만 느껴진다. 아니 때로는 돌아갈 집이 없는 것마냥 서러워진다. 내 안 어딘가에 어린이 집에 홀로 남은 연이와 같은 '분리 불안'(이렇게 엄마와 떨어지는 것에 대해 불안을 느껴 잠시도 떨어지지 않으려고 하는 것)이 여전히 남아 울컥 울컥 올라온다. 

엄마가 종종 늦게 오는 연이가 느끼는 마음은 어떨까, 이 나이 되도록 그 시절의 서러움에 가슴이 서늘해지는데, 연이는 외려 아기 곰을 달랜다. '조금만 더 기다리면 오실 거야'라고. '다람쥐 반 때 전철이 고장나서 늦었다'고.

걱정마, 걱정마 

곰돌이가 '하늘로 떠서 어린이집에 올 수 있을까?'라고 걱정스레 물어보면 연이는 말한다. '걱정마, 걱정마'라고. 연이는 엄마를 믿는다. 조금 늦더라도 자신을 데리러 올 거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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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행히도 연이와 엄마 사이에는 '애착'이 공고하게 쌓여있는 듯 보인다. 그러니 혹 엄마가 오지 않을까 불안해 하는 대신, 아이들이 모두 떠난 어린이집에서 자신의 '상상력'을 총동원해서 엄마를 기다린다.

흔히 '마음 먹기'에 달렸다고들 한다. 그런데 그 '마음 먹기'가 쉽지 않다. 미래에 대한 불안, 어쩌면 발생할지도 모를 사태, 그리고 무엇보다도 관계에 대한 불투명한 마음, 아니, 그것보다는 더 큰 기대, 그런 것들이 '마음'을 흐트려 놓는다.

<엄마가 오는 길>의 이야기는 그저 이야기 자체로만 보면, 늦은 엄마를 기다리는 어린 연이의 '자기 돌봄'이다. 하지만, 그 연이가 하는 이야기의 행간들이 우리의 마음을 울린다. 흐트러진 마음을 돌보는 건, 결국 그 누구도 아닌 자기 자신으로부터 시작이라는 걸. 저 어린 연이도 하는데 그 마음 먹기가 안돼서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고통받는다. 

연이라고 엄마를 기다리는 시간이 쉬울까. 지금도 아닌 다람쥐반 시절에 전철이 늦었던 기억까지 들춰내고, 얼토당토 않은 커다란 케이크를 끌어오며, 연이는 엄마를 기다리는 막막한 시간을 채운다. 곰돌이가 물었을 때 '걱정마, 걱정마'는 다름아닌 바로 연이 자신에게 건네는 '토닥임'이다. 
 
 엄마가 오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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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기다림의 시간을 채우는 건 자기 자신이라는 걸 기특하게도 연이는 안다. 엄마가 왜 안 오지 하는 불안 대신, 한껏 부풀린 생각 속에서 길어낸 코끼리와 하마와 곰과 악어가 밀어주는 전철과 들기조차 힘든 케이크와 새들이 인도하는 풍선을 든 엄마로 인해 연이의 시간은 다른 빛깔을 가진다.

그 '판타지' 만연한 빛깔의 기다림을 만들어 낸 건 연이 자신이었다. 그래서, 엄마가 왔을 때 연이는 말할 수 있다. '있잖아, 나 오늘 종이접기 되게 잘했어'라고. 아마도 칭얼대며 엄마를 기다렸다면 연이는 저렇게 말할 수 없었을 것이다.

'긍정 심리학'은 결국 '마음 먹기'를 말한다. 행복은 삶에서 오는 평온함과 안락함이라고 한다. 하지만 이 평온함과 안락함이 더 많은 부와 지식 권위로 보장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똑같은 상황이라도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본인의 결정과 판단에 따른 것이라고. 적극적으로 심신을 만족스러운 상태로 만들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심리학의 대가들이 오랜 연구 끝에 결론 내린 걸, 어린 연이가 똑부러지게 해내고 있다.

안과를 다녀왔다. 거의 시력이 나오지 않는 오른쪽 눈에 병명조차 외우기 힘든 이름이 붙었다. 선생님 말씀, 이 병은 '스트레스'로 인해 생기는 병'이라고, '스트레스'를 받지 않으면 된다고, 마음을 편하게 잡수시라고. 다 늙어서도 눈에 맞는 주사가 무섭다는 이 환자의 우문에 현답을 주신다.

그러고 돌아와 만난 연이, 하마와 코끼리와 풍선, 자신이 아는 모든 것을 끄집어 내어 늦는 엄마의 '스토리'를 만들며 자신을 달래는 어린 연이, 그래서 헐레벌떡 달려온 엄마에게 칭얼거리는 대신 자신이 오늘 하루 잘 지냈다는 말로 외려 엄마의 미안함을 달래주는 의젓한 연이에게 마음 한 켠이 저리면서도 숙연해진다.

그러고 보면 이제라도 연이를 만났으니 다행이다. 연이를 만나는 이 시절이, 이제는 마음의 병을 더는 만들지 말라고 나에게 오는 시절인가 싶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개인 블로그 https://blog.naver.com/cucumberjh에도 실립니다.


엄마가 오는 길

모토시타 이즈미 (글), 오카다 치아키 (그림), 김소연 (옮긴이), 천개의바람(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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