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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게는 몇 년에서 길게는 십수년간 감옥에서 억울한 삶을 살았던 이들이 삶을 포기하지 않고 결국 재심을 통해 자신의 진실을 밝혀내게 한 힘은 무엇이었을까.

김평강의 구술 = "일본에서 와서 증인들을 섰거든. 판사가 묻더라고. 이 사람은 그런 사람 아니라고 일본에서 온 사람들이 그렇게 말해줬어. 그래도 검사는 모든 게 애매합니다만 극형에 처해주십시오. 사형받으니까 증인들이 법정에 다 나와서 이거 다 형사가 써 준거라고 했어. 그런데도 판사가 검사에게 되묻더라. 이거 어떻게 해야 하냐고. 그래도 그대로 해주십시오. 그게 재판이라. 그래도 일본 친구들에게 고마울 수밖에.

광주로 이감 갔을 때 교도관들도 다 알더라고. 당신은 죄가 없다고. 광주교도소 있을 때 우리 아들이 면회 온 적이 있는데 교도관이 우리 아들더러 '너네 아버지 그런(간첩) 사람 아니다. 그러니 열심히 공부하고 살아라'라고 하더라고. 고맙더라고. 그래도 아들 말 들어보니 군대 갔을 때 나 때문에 고생 많이 했다고 해."


무죄를 믿어준 사람들
 
 강광보씨가 손수 만든 '조작간첩 기억관' 수상한집. 그는 피해자가 말할 수 있는 곳이 있어야 한다고 했다.
 강광보씨가 손수 만든 "조작간첩 기억관" 수상한집. 그는 피해자가 말할 수 있는 곳이 있어야 한다고 했다.
ⓒ 변상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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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옥 후 사복형사들의 감시를 받고 매달 일과를 경찰서에 보고해야 하는 보안관찰이 있었지만 김평강은 묵묵히 견뎌냈다. 그의 무죄를 믿어주었던 동창이 안기부 지부장을 할 무렵 그의 도움으로 보호관찰에서 해제되기도 했다. 김평강의 평소 성품을 아는 마을 주민들은 그의 무죄를 믿어주었다. 아내 양정옥 역시 반공연맹과 부녀회 활동으로 마을 사람들에게 신임을 얻었다.

김평강은 결국 재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았다. 김평강의 무죄를 누구보다 믿었던 가족, 일본과 고향에 있는 지인들의 지지 덕분이었다.

김평강의 아내는 재판이 진행되는 동안 변호사 선임하랴, 면회 가랴, 생계유지하랴 몸이 열 개라도 모자랄 정도였다. 항소심을 받으려고 남편이 광주교도소로 이송되었을 때는 광주의 한 사찰에 머물며 남편 뒷바라지를 했다. 남편이 감옥에 있는 동안 겨울에 보일러도 틀지 않고 살았다고 한다. 아빠는 감옥 가서 고생하는데 우리만 좋은 것 먹을 수 없으니 먹을 것도 먹지 말자 그러면서 살았다고 한다.
 
아바이는 이날 이때까지 딱밤 한 번을 안 했어요. 생전 가야 큰 소리 한 번 안 치고 여자를 위하고 살아요. 지금도 밥하기 힘드니까 웬만해선 나가서 먹자고 하고, 매 끼니마다 밥 먹으면 약 따박따박 챙겨주고, 우리 아바이가 나한테 말도 못하게 잘해요. 땅에다 놓기도 아깝다고 해.
- <폭력과 존엄 사이 - 간첩 조작 사건 피해자를 만나다>(은유 저, 오월의봄>
 
간첩의 아내가 짊어진 삶의 무게가 얼마일까. 그래서인지 출소 후 아내에게 더욱더 잘하려고 애쓴다.

김평강의 구술 = "고생 많았지... 고생 많았어... 고맙다고 말하고 싶은 마음이 있지 얼마든지... 너무 고맙고 너무 고마워... 이혼도 안 하고 살았으니... 일본에서 같이 살았으니까 알지 내가 간첩이 아니라는 걸... 내가 일본서 어떻게 살았는지 알거든. 그래서 더 미안해..."

김인근씨는 마을 사람들의 지지와 도움으로 어머니와 살 수 있었다고 한다. 4.3 당시 총상으로 손과 턱이 잘린 채 돌아온 어머니를 위해 이름 모를 마을 사람들이 밤마다 마루 위에 쪽지와 함께 호박과 소고기 등을 놓고 갔다. 쪽지에는 어머니 치료하는 데 도움이 될 내용과 '힘내영 인근아, 어머니 말 잘 듣고, 살암시민 살아진다'라고 적혀 있었다. 이름 모를 이웃들의 도움으로 어머니와 김인근씨는 그렇게 조금씩 회복해 갈 수 있었다고 한다.

죽음의 학살에서 도망쳐 나온 김인근씨와 어머니는 마을사람들과 공동체 덕분에 살아졌다. 빨갱이, 폭도 가족을 돕는 것은 목숨을 거는 일이다. 목숨을 걸고 그녀를 도왔던 그들은 음식과 마음을 나눴다.

김인근의 구술 = "이불 위에 엎드려 막 혼자서 울다 보니 잠들었는지 쓰러졌는지... 울다 보니 우.... 하는 소리가 나 깜짝 깨어보니... 세상에 없는 귀신이 나타난 거예요. 만화책에도 없는 귀신.... 어... 어... 하다 보니 어머니... 어머니가 총을 일곱 방을 맞아서 은비녀도 없어지고 머리를 앞으로 풀어 헤치고... 목을 관통당해서... 우리 어머니는 (심장만) 안 맞으니까 산 거예요... 그 어머니를 모셔서 어디 병원에도 가보지 못하고... 폭도니 빨갱이니 (얘기를 들을 테니까) 집 안에서만... 동네 분들이 어디 분들인지 너무 고마워... 어머니가 밉게는 살지 않은 것 같아. 소고기도 갖다놓고 글을 써 놨는데... 아이고 우리 먹으라고 갖다줬구나... 어머니는 먹지도 못할 건데... 고기 육즙을 어머니 입에 흘려 넣으면 다 흘러나와 버려... 내가 수건을 대서 어머니 조금만... 조금만... 하면 입으로 조금 내려가고... 그렇게 했습니다.

피고름이 퍼져서 2주가 되어가니 살이 썩어 떨어지기 시작하고... 소고기를 얇게 포 떠서 아픈 부위에 대고... 병원에 못 데려가니까... 그리고 쪽지에 '어머니 말만 잘 들엄시민 살아진다'... 이번에 책에도 '살암시민 살아진다'... 그렇게 써 놓으면... 아이고 그걸 보면... 자다가 일어나서 그걸 읽어보고 읽어보고... 이런 어른이 있으니 난 살겠다... 뒷날에는 호박을 갖다 놓은 거라... 끓여서 어머니 드리고... 창피한 말이지만 씻어낼 소독물이 없으니까 소변 받아서 그걸로... 그랬습니다."


4.3은 제주의 고통이자 슬픔이지만 그 상처를 이기고 회복하는 것 역시 공동체의 일이었다. 서로 죽고 죽이는 야만의 현장에서 결국 사람을 살리는 것은 그 땅에 사는 사람이다.
  
강희철씨도 다르지 않다. 그의 사연은 일찍이 언론에 알려졌고, 그 덕분에 교도소에는 15개국 앰네스티 회원의 편지가 항상 날아들었다. 친지들은 "겁나서" 편지도, 면회도 조심하던 그때 얼굴도 이름도 알지 못하는 저 바다 밖 어딘가의 사람이 '관심을 가져주고, 나의 억울함을 알아준다'라는 사실이 큰 위로가 되었다. 이후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의 도움으로 인권 변호사를 만나 재심을 준비할 수 있었다.

오경대씨도 크게 다르지 않다. 그는 재심에서 무죄 판결을 받기까지 힘들고 어려웠지만 자신을 믿고 지지하는 아내와 가족을 위해서 힘을 냈다고 한다. 수 천평에 이르는 감귤나무밭을 함께 일구며 고생한 것보다 자신의 과거 때문에 받은 가족들 마음의 상처에 더 미안함을 느낀다고 했다.

오경대의 구술 = "옛날부터 세월이 약이라는 말이 있잖아. 내가 뭐 고향에 크게 빚진 게 없으니까. 나 혼자 벌 받은 것뿐이지. 나쁜 짓 하거나 간첩 활동한 것이 없으니까. 단순히 속아서 간 거. 그거 하나 가지고. 참 어리석었다, 그런 생각뿐이지. 눈총은 따갑지. 그거는 어쩔 수 없어요. 흉보는 사람들이 표현 안 하면 모르잖아. 속으로 생각하는 걸. 속은 많이 상하지.

그럴 때마다 얘기했지만 나는 남한테 진다는 생각 그것 같고, 남보다 조금 져버리자. 악한 마음을 가지니까 내가 괴로워, 내가 더 속상해. 그러다 보면 자기가 더 망가져. 가만히 생각해 보면 뭐 나이도 먹고 죽을 날도 멀지 않고 오히려 가족 때문에 자식만큼은 먼 타국에 가서 살고 있는데. 벗을 수 있는 문틈이라도 있으면 그 틈으로 바람이 들어오지 않겠느냐, 이런 맘으로 재심을 진행했습니다."


살 떨리고 치 떨리는 장소에 함께 선 이들이 있어 용기를 낼 수 있다. 말할 수 있는 용기, 살아갈 용기, 들춰낼 용기 그리고 진실을 위해 싸워갈 용기를 얻을 수 있다. 그것이 오늘 이들이 지금 여기에 서 있는 이유다.
  
오경대의 구술 = 50년이 조금 넘어 오랜만에 (고문을 당한 곳에) 와서 보니까. 솔직히 얘기해서 몸이 떨려요. 떨리고. 내가 지금까지 살아있나 그런 생각이 들어요. 그래서 그 자리에 찾아왔나. 찾아와서는 과거의 일이 아픈 가슴이 다시. 좀 속이 울렁거릴 정도예요. 말은 이렇게 하고 있지만... 그렇습니다. 그래도 같이 오니까 서로 말이라도 좀 하고. 서로 슬픔을 가슴에 품었던 분들이기 때문에. 그래서 세 분이 같이 다니는 거예요. 좌우지간 과거의 일을 들추어내서 저희 생활에 어떤 영향을 줄지 모르지만. 앞으로 (수감생활) 15년 동안 못 산 것을 더 살고 노력해서 살겠습니다. (웃음). (감사합니다. 선생님) 수고 많았습니다."

앞으로 편안히 살당 가게 해줍서
  
 탁본을 마무리하며 만세를 부르는 오경대, 김평강, 강광보(왼쪽부터)
 탁본을 마무리하며 만세를 부르는 오경대, 김평강, 강광보(왼쪽부터)
ⓒ 한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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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탁본은 종이에 남아 있지 않다. 종이에 새겨넣은 탁본의 무늬는 질감의 기억으로, 새로운 증언으로, 역사의 기억으로 남아 새겨질 것이다. 4.3에서 조작간첩까지 제주에서 자행된 모든 국가폭력의 상처는 어쩌면 오늘 이 한 장의 탁본에 어루만져진 손길에서 다시 치유되고 회복되고 있는지도 모른다.

김인근의 구술 = "오늘은 오난 막 웃어졈져(웃어져요). 성수랑 개똥이 찾아놓고. 우리 오라버니... 인근이 산수 가르치다 틀리면 꼭 머리만 때리던 오라버니... 이젠 인근이가 할멍이 되언(인근이가 할머니가 됐어요). 오빠 집안 재산 다 안 지켜 몬딱(몽땅) 날려 먹어도 욕하지 맙써(마세요). 오빠도 잘못하고 나도 잘못했주마는. 성수랑 개똥이 찾앙 할머니 곁에 오난(오느까). 모든 게 다 좋은 걸로 합써(하세요). 요번에 천도제영(천도제도) 인근이가 살아이시난(살이있으니까) 다 해수게. 오빠 섭섭히마랑... 내일은 지방법원에 인근이가 가그네(가면) 오라버니 죄 없게 도와달라고 하쿠다(할께요). 오라버니... 인근이 모든 걸 다 용서해줍서... 나만 살앙(살아서)... 너무나 죄송합니다."
  
 4.3 당시 희생된 조카들에게 미안함을 전하는 김인근씨. 미안함의 짐은 국가가 져야 하는 것이다.
 4.3 당시 희생된 조카들에게 미안함을 전하는 김인근씨. 미안함의 짐은 국가가 져야 하는 것이다.
ⓒ 한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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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만 살아 미안한 이들이 아니라, 살아남아 용기있게 진실을 말하고 역사를 증언하는 이들이다. 우리는 탁본하는 내내 마음속으로 이들에게 격려와 지지의 박수를 보냈다. '앞으로 편안히 살당 가게 해줍서'라는 김인근씨의 바람처럼 이들의 지금이 그 누구보다 행복한 날이 되길 바라마지 않는다. 그리고 그들의 외침대로 진실과 정의가 이뤄지고 밝혀지는 그 날이 되길 바라마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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