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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 단풍.
 가을 단풍.
ⓒ 피은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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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니스엘보'라는 병으로 팔에 주사를 맞으러 다닌 적이 있다. 병원에서 주사를 맞기 직전에 내가 취하는 태도는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다. 하나는 '주사가 아프면 어떡하지? 아플까 봐 두려워'라고 여기는 태도. 또 하나는 '까짓것 주사가 아프면 얼마나 아프겠어?'라고 여기는 태도.

신기하게도 전자의 태도를 취할 땐 주사가 아픈 것 같았고 후자의 태도를 취할 땐 주사가 아픈 줄 몰랐다. 후자의 태도를 선호하게 된 이유다. 후자의 태도를 이젠 다른 일에도 적용하기를 좋아한다.

혼자 아무도 없는 골목길을 걸으며 불량배가 나타날 것 같은 공포를 느낄 때 또는 혼자 호젓한 산길을 걸으며 귀신이라도 나타날 것 같은 공포를 느낄 때 '무섭다. 제발 아무것도 나타나지 마라'라고 생각하면 겁이 난다. '까짓것 뭐든 나타나려면 나타나라'라고 생각하면 겁이 나지 않는다.

모기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잠을 자려던 밤에 모기가 방 안에 있다는 걸 알았을 때 '내가 잠자는 동안 모기에 물리면 어떡하지?' 하고 불안해 하면 잠이 안 온다. 하지만 '어디선가 배부르게 피를 먹고 온 모기일지도 몰라. 설사 내 피를 빨아먹는다고 해도 까짓것 작은 모기가 먹으면 얼마나 먹겠어?' 하고 대수롭지 않게 여기면 잠이 온다.

내가 어떤 일을 바라다가 실망하게 되거나 최선을 다해 노력했는데 그 결과가 만족스럽지 않을 때 '아휴, 속상해' 하고 받아들이면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 반면에 '까짓것 이번엔 죽어 주겠어' 하고 받아들이면 마음이 편해진다.

이러한 마음가짐이 필요함을 또다시 느끼게 해 주는 글을 책에서 만나 반가웠다. 혜민 스님이 <완벽하지 않은 것들에 대한 사랑>에서 다음과 같이 쓴 글이다.
 
우리에겐 배짱의 한마디가 필요합니다.

내가 느끼는 열등한 부분에 대고 "그래서 어쩌라고?"라고 한번 외쳐보는 거예요. 예를 들어 시험만 보면 긴장하고 떠는 나에게 "그래 나 좀 긴장한다. 그래서 어쩌라고?"라고 하는 것입니다. "내가 다른 경쟁자들에 비해 키가 좀 작다. 그래서 어쩌라고?", "우리 집 좀 가난하다. 그래서 어쩌라고?" 이렇게 인정해버리고 나면 살짝 분한 마음이 올라오면서 그 열등한 요소를 치고 올라가려는 용기가 나오게 됩니다.

 

앞으로 어떤 시험을 앞둔 이가 있다면 그에게 최선을 다해 공부를 하되 시험 보는 날엔 '시험을 잘 봐야 할 텐데' 하고 걱정하지 말고 '까짓것 시험을 망치면 어때서?' 하고 편하게 마음먹으라고 말하고 싶다.

이제까지 말한 게 자기가 자기를 속이는 이야기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그런데, 여러 일을 겪으며 사는 우리에겐 이런 속임이 필요한 것 같다. 난 이것을 지혜로운 속임이라고 생각한다. 어떤 상황에 처하든 조바심을 버리고 여유를 택해 자신에게 유리한 상황을 만드는 것은 행복의 비결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어려운 일이 닥치면 어찌할 바를 몰라 쩔쩔매다가 누군가에게 의지하여 평안을 얻는 것도 하나의 방법일 수 있지만, 자기 힘으로 평안을 얻는 것이야말로 최고의 방법이다. 담력이 있는 본인 자신보다 더 신뢰할 수 있는 지원군이 어디 있겠는가.

덧붙이는 글 | '피은경의 톡톡 칼럼'의 저자입니다. 이 글은 개인 블로그에도 실렸습니다.


태그:#칼럼, #생활 칼럼, #피은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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