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30 07:44최종 업데이트 20.10.30 07: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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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10월 15일, 미국 로스엔젤레스 국제공항에서 체포된 전 국방부 장관 살바도르 씨엔푸에고스. ⓒ Noticia Imagen 화면 캡처

 
오보이길 바랄 만한, 속보였다.

지난 10월 15일, 멕시코 직전 대통령인 엔리케 페냐 니에토(Enrique Peña Nieto) 정부에서 국방부 장관을 역임(2012-2018)한 살바도르 씨엔푸에고스 세페다(Salvador Cienfuegos Zepeda)가 미국 로스앤젤레스 국제공항에서 체포됐다. 4성 장군으로 국방부 장관에 이르기까지 이미 멕시코 군사와 국방 관련 요직을 거쳤고 충성과 명예를 목숨보다 중시하는 멕시코 고등군사학교의 교장까지 지냈던 이력을 가지고 있기에, 그의 체포 소식은 멕시코 시민들에게 충격적일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마약 관련이었고, 또한 멕시코도 아닌 미국이 개입한 체포였기에 혼돈과 놀라움은 증폭되었다.


체포 당일 구속적부심사가 이루어졌다. 죄목은 마약 제조, 마약 밀수, 마약 유통, 그리고 돈세탁까지 총 4건이나 되었다. 살바도르 씨엔푸에고스 전 국방장관 측 변호사가 급히 미국으로 건너가 피의자가 72세의 고령이라는 점과 교도소 내 코로나바이러스 감염 우려를 이유로 보석 허가를 신청했다. 그가 가진 전 재산이라는 점을 강조하며 75만 달러를 보석금으로 제시했지만, 미 사법 당국은 이를 기각했다. 죄가 중하고 도주와 증거인멸이 우려된다는 이유였다.

멕시코 대통령 안드레스 마누엘 로페스 오브라도르(Andrés Manuel López Obrador, AMLO)는 기자회견을 통해 전 국방부 장관의 체포 사실을 공식 발표했다. 현 멕시코 정부는 전혀 몰랐던 일이고, 그간에 어떤 조사도 진행하지 않았음을 밝혔다.

반대로 미국은 이미 멕시코 전 국방부 장관 살바도르 씨엔푸에고스가 마약 카르텔 두목과 수백 건의 문자를 직접 주고받은 사실과 그 내용을 증거로 확보하고 있었다.
 

멕시코 대통령 엔리케 페냐 니에토 (사진 우측)과 그의 최측근이었던 국방부 장관 살바도르 씨엔푸에고스.(사진 좌측) ⓒ Noticia Imagen 화면 캡처

 
전 국방장관과 마약 카르텔의 내통

살바도르 씨엔푸에고스 전 국방부 장관과 연결된 멕시코 카르텔 조직은 나쟈릿(Nayarit) 주에 근거지를 둔 H2였다. 멕시코 중부 태평양 연안 지역이다. 멕시코 마약 카르텔 중 비교적 신생 조직에 속하고 영향력은 작지만, 멕시코 마약 카르텔의 본산이라 할 수 있는 신알로아(Sinaloa)주와 국경 지역에서 여전히 막강한 영향력을 과시하는 벨트란 레이바(Beltran Leyva) 카르텔의 하부 조직이다. 주 활동은 멕시코에서 가장 왕성한 위력과 맹위를 떨치고 있는 신알로아 카르텔을 압박함과 동시에, 태평양에 면한 지리적 이점을 활용해 연안을 따라 쾌속정이나 잠수정을 이용해 미국으로 올라가는 마약의 중간 기점 역할이다.

살바도로 씨엔푸에고스 전 국방부 장관의 체포와 함께 미국 마약당국이 이런 정보를 발표하고 나자 멕시코 언론들은 지난 수년 간 멕시코에서 가장 막강한 조직이었던 신알로아 카르텔을 둘러싸고 발생한 사건들을 다시 기사화하기 시작했다. 물론, 이전 기사들에 비해 훨씬 예리하고 정교한 기사였다. 조각조각 파편화된 사건들이 하나의 맥락으로 이해되기 시작했다. 단서는 전 국방부 장관과 마약 카르텔 두목 간의 내통이었다.

현직 국방부 장관과 마약 카르텔 두목 사이에 돈과 정보가 오고 간 사실이 단순히 멕시코 전역 각 곳에 근거지를 둔 마약 카르텔 조직들 간의 난세와 흥망에만 영향을 미쳤다면, 그의 체포 소식을 접하는 시민들의 분노가 그나마 덜 할 것이다.

지난 2006년 멕시코 정부가 '마약과의 전쟁'을 선포한 후 정부군과 마약 카르텔과의 무장 충돌은 너무 공공연하여 어지간한 규모의 무장 충돌이 아니고서는 뉴스 축에도 끼지 못할 정도가 되어버렸다. 간혹 공중파 방송 뉴스에서 생중계되는 정부군과 마약 카르텔의 총격전 장면은 여느 전쟁터에서 종군기자가 촬영하는 것이 아닐까 싶은 생각마저 들 정도다. 수천 발의 총알들이 빗발치고 때로는 조명탄까지 쏴 올리는 현장이 그대로 뉴스에 전달된다. 때로는 멕시코 뉴스가 할리우드 판 전쟁영화보다 스펙터클하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1년에 공식적 숫자로만 최소 3만 명 이상의 사망자가 발생하니, 실제로 여느 전쟁보다 참혹한 전쟁이기도 하다.  
 

2019년 10월 17일, 엘 차포 아들 체포 작전 다음 날 시내 중심거리에 방치된 불탄 차량. 교전 당시 신알로아 카르텔 조직원들은 시민들의 차량을 탈취하여 태우면서 거리 곳곳을 봉쇄했다. ⓒ Noticia Imagen 화면 캡처


최근에는 정부군과 무장 충돌하는 장면을 마약 카르텔이 직접 촬영하여 실시간으로 SNS 상에 올리기도 한다. 정부에 대한 조롱이고 시민에 대한 과시와 위협인 셈이다. 군 병력이 마약 카르텔의 중화기에 밀려 퇴각하는 장면이나, 마약 카르텔이 군 병력의 작전 차량을 탈취하여 희화화하듯 낙서하고 두들겨 부순 뒤 공공기관이나 학교 앞에 진열하는 장면들을 직접 SNS를 통해 생중계한다.

이 모든 일련의 사건들 중 군인들이 마약 카르텔의 매복에 걸려 목숨을 잃거나 작전 중 이유를 알 수 없는 상부의 명령으로 무리하게 퇴각하는 상황들이 반복되었다. 그러니 군인들이 작전에 들어갈 때마다 자신들의 상관 중 누군가는 마약 카르텔과 닿아 있을 것이라는 두려움을 갖게 되고, 이는 곧 군인들의 사기 저하로 이어지면서 또 다른 문제를 야기하고 있다.

작전에 투입되는 군인들 각자가 어떻게든 개죽음을 면하고자 전전긍긍한다는 소문이 공공연하다. 그럼에도 마약 카르텔과 닿아 있을 만한 상관이 군부 최고의 수장인 국방부 장관일 것이란 사실은 감히 상상치 못했을 것이다. 살바도르 씨엔푸에고스의 체포를 두고 멕시코 정부가 당장 군 병력의 사기를 걱정한 것도 당연한 일이었다.

처음이 아니다

게다가 살바도르 씨엔푸에고스의 체포가 더욱 충격적인 이유는 이번이 처음이 아니란 사실이다. 작년 지지난 정권(펠리페 칼데론 이노호사 대통령, 2006-2012)에서 6년 내내 치안 장관을 지냈던 헤나로 가르시아 루나(Genaro Garcia Luna)의 체포 및 구속과 판에 박은 듯 하니 개인의 이례적 사고쯤으로 여길 수 있는 여지는 애당초 사라진 셈이다.

헤나로 가르시아는 작년 12월 미국에서 체포되었다. 치안장관에 이르기 전 멕시코 연방수사국 수장을 지냈다. 그 역시 마약 제조, 마약 밀수, 마약 유통이라는 3종 세트로 엮였고 그에 더해 멕시코 마약 카르텔로부터 수백만 달러를 뇌물로 받은 죄목이 더해졌다. 이쯤 되면, '나르코 국가'라는 치욕이 더 이상 오명이 아닌 사실에 가깝다는 낙담이 멕시코 안팎에서 흘러나올 수밖에 없다.

행인지 불행인지, 작년 12월 전전 정부에서 연방 치안 장관을 지낸 헤나로 가르시아가 체포되면서 현 정부 연방 치안 장관인 알폰소 두라소 몬타뇨(Alfonso Durazo Montaño)에 대한 무언의 감시가 한층 촘촘해졌고, 지난 10월 15일 직전 정부에서 국방부 장관을 지낸 살바도르 씨엔푸에고스가 체포되자 현 정부 국방부 장관인 루이스 산도발 곤살레스(Luis Sandoval Gonzalez)에 대한 감시가 다시 촘촘해졌다. 이 두 사건은 어찌 보면 현 정부에 대한 사전 경고인 셈이다.

그럼에도 '나르코 정부'라는 오명으로부터 현 정부 역시 온전히 자유롭진 못하다. 특히 작년 10월 멕시코 강성 마약 카르텔인 신알로아 조직 두목 엘 차포(2017년 미국으로 인도)의 아들을 체포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사건들은 여전히 국민들의 실망과 의심을 사기에 충분하다.
 

2019년 10월 17일 엘 차포 아들 체포 작전 다음 날까지도 시내 곳곳에서 작전 중 사망한 자들의 사체가 수습되지 못한 채 방치되었다. ⓒ Noticia Imagen 화면 캡처

 
2019년 10월 17일, 신알로아 주의 주도 쿨리아칸(Culiacan)에 군 병력을 투입하여 안가에 은거한 엘 차포의 아들을 체포했지만 결국 두 시간 만에 다시 풀어줄 수밖에 없었던 사건이다. 체포까지는 성공했지만, 체포와 동시에 동시다발적으로 무장한 카르텔 조직원들이 정부군에 선전포고를 하면서 주도 한 복판에서 시가전이 벌어졌다. 거리 곳곳이 카르텔 조직에 의해 봉쇄되었고 시민들의 차량이 불에 탔고 그 와중에 군 병력은 밀리기 시작했다. 시민들은 정부로부터 작전이 중단될 때까지 어떤 보호와 정보도 받지 못했다. 오직 SNS를 통해 실시간으로 공유하는 시민들의 리포터가 정보의 전부였고 보호는 각자의 영역이었다.

결국, 15시 45분에 시작된 작전은 17시 30분쯤 중단될 수밖에 없었다. 체포했던 엘 차포의 아들을 풀어주고 군 병력이 퇴각했다. 즉각적으로 내외신 기자들이 중단인지 실패인지를 캐물었다. 당일 밤 국방부 장관 루이스 산도발 곤살레스는 기자회견을 통해 작전은 실패가 아닌 중단이었음을 강조했다. 하지만 그가 언급한 중단의 이유는 차라리 실패의 이유에 다름 아니었다. 군 당국의 전략 미흡을 언급했고 군 병력의 화기 열세를 인정했다. 전략과 화기 모두 신알로아 마약 카르텔이 우세했음이 공식적으로 밝혀졌다. 언론들은 "멕시코 정부가 마약 카르텔에 앞에 무릎을 꿇었다"라는 내용의 제목들을 1면 톱기사로 타전했다.

불과 두 시간 만에 작전이 중단되었지만 정부가 발표한 공식 사망자는 8명에 이른다. 그 중 다섯 명은 마약 카르텔 조직원이고 나머지 세 명은 각각 시민과 군인과 탈주범이었다. 당일 시가전이 벌어지는 와중에 마약 카르텔 신알로아 조직은 주도 쿨리아칸에 주둔한 군부대를 급습하여 군용 차량과 무기를 탈취하였고 교도소를 습격하여 수감 중이던 조직원들을 탈출시켰다. 약 스무 명이 탈출하였지만 다시 검거된 죄수는 11명에 불과하였다.

이 외에도 작전 진행 중 총 9건의 건물 방화와 42건의 차량 방화, 19건 이상의 도로 봉쇄, 그리고 14건의 시가 교전이 발생했다. 군 병력이 엘 차포의 아들을 풀어주고 퇴각하면서 시가 교전은 멈췄지만, 다음 날까지도 시내 중심가 곳곳에 사체와 불에 탄 차량들은 수습이 되지 않은 채 널브러져 있었다.

다음 날 모든 교육기관은 휴교령을 내렸고 상가들은 철시했다. 군 병력과 경찰 병력도 일절 순찰을 하지 않았다. 혹여 다시 마약 카르텔을 자극할까 우려함이었다. 그럼에도 피의 보복은 쉽게 끝나지 않았다. 군 병력이 퇴각한 이후 작전에 참여한 것으로 추정되는 경찰들이 수일에 걸쳐 시내 곳곳에서 피살된 것이다. 그것도 한 사람의 몸에 백여 발의 총탄을 난사하는 아주 잔인한 방식이었다. 그들의 살해 이유라면, 명령에 의한 작전 참여 그뿐이었다.
 

2015년 당시 멕시코 최고 보안 감옥에 수감되어 있던 엘 차포가 탈출을 위해 만든 터널. 총 길이 1500미터에 달하며 바닥에는 레일이 깔려 있었고 모토바이크를 이용해 탈출했다. 당시 그가 수감되어 있던 감옥은 진동 감지 장치가 되어 있었고, 보안을 위해 바닥과 벽 시멘트 두께를 1미터로 보강하였지만, 그가 수감된 독방 바닥으로 터널은 뚫렸고 그는 탈출했다. 이후 2016년에 검거되었고 2017년에 미국으로 인도되었다. 당시 멕시코에서 사법 주권이 거론되며 그의 인도에 대한 이견이 있었으나 살바도르 씨엔푸에고스가 국방부 장관이던 시절 그는 미국 사법 당국으로 인도되었다. 미국 양형 기준으로는 사형이 예상되었으나, 멕시코 정부가 미국에 인도 당시 사형 구형을 하지 않는다는 조건을 걸어 종신형이 선고되었다. (REFORMA 신문사 무상 제공) ⓒ REFORMA 신문사

 
'갓 파더'가 더 있다

공교롭게도 엘 차포와 내통하며 정보를 넘기고 이득을 취했던 전전 정부의 치안장관 헤나로 가르시아와 엘 차포를 제거하기 위해 정보를 넘기고 이득을 취했던 전 정부의 국방부 장관 살바도르 씨엔푸에고스는 같은 감옥에 수감되어 있다. 뉴욕 브루클린에 위치한 연방 감옥이다. 현재 콜로라도 알카트리스라 불리는 미국 내 최고 보안 감옥에 수감된 엘 차포 역시 작년 7월까지 같은 곳에 수감되어 있었다. 이미 종신형을 받은 엘 차포에 이어 헤나로 가르시아와 살바도르 씨엔푸에고스도 종신형 선고가 유력하다.

금번 살바도르 씨엔푸에고스의 체포와 관련한 미국 수사 당국의 작전명은 "El Padrino(The God Father)"였다. 체포된 전 국방부 장관이 과연 '대부'인가에 대해서는 정확한 확인이 어렵다. 그보다 더 위에 있는 누군가일 수도 있다는 이야기다. 거기에 쐐기를 박듯, 미국 수사 당국에서도 이미 다수의 멕시코 고위 정치인들에 대한 내사를 진행 중임을 밝히고, 그 중에 충분히 놀랄 만한 '대어급' 인사가 포함되어 있음을 언급한 바 있다.

헤나로 가르시아를 연방 치안 장관으로 임명한 펠리페 칼데론 이노호사 대통령(2006-2012)과 살바도르 씨엔푸에고스를 국방부 장관으로 임명한 엔리케 페냐 니에토 대통령(2012-2018)이 서둘러 자신들은 미국에서 체포된 피의자와 아무런 연관이 없음을 거듭 강조했지만, 그들이 앞으로 미국에 발을 딛긴 어려울 것이란 전망들이 쏟아져 나온다.

지난 번 헤나로 가르시아의 체포나 금번 살바도르 씨엔푸에고스의 체포가 미국 수사 당국의 방대한 정보수집 능력에 의한 것임은 부인할 수 없다. 다만, 그 정보의 상당부분이 서운한 마음과 분한 마음을 동시에 품었을 만한 엘 차포와 그 측근으로부터 나온다는 소문이 있으니, 어쩌면 멕시코 내 상당수의 고위 정치인들이 엘 차포를 미국으로 인도해버린 것을 뼈저리게 후회하고 있을지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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