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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교육모순은 심화되고 아이들은 상처받고 있다. 교육주체인 교사 또한 고통 받고 있다. 아이들은 어느 순간 학교에 가는 걸 더 이상 즐거워하질 않는다. 학교가 자기성장을 경험하는 공간, 바로 행복을 주는 공간이 아니기 때문이다. 사토 마나부 교수(도쿄대)의 표현대로 아이들은 배움으로부터 도망치는 것이다. 사실 이것은 교육문제 가운데 가장 심각하다. 언론에 의해 왜곡된 것 중 하나가 바로 이것이다. 따돌림이나 학교폭력보다 배움으로부터 벗어나려는 현상이 아주 심각하고 광범위하게 벌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교사들 역시 학교생활을 통해 보람을 느끼지 못한다. 아이들과 관계 맺기는 겉돌고 학교일상은 뭐가 바쁜지 매일 사무적으로 돌아가는 게 우리교육의 현실이다. 넘치는 과다한 행정업무와 잡무로 교사들은 지쳐있고 교육의 본질인 수업연구와 상담은 생각보다 쉽지 않다.
 
따돌림이나 학교폭력은 일본 내 1%에 지나지 않는다고 사토 마나부 교수는 언급했다. 오히려 중요하고 심각하게 받아들여야 하는 교육문제는 아이들이 <배움으로부터 도망하는 현상>이라고 역설했다. 사토 마나부 교수의 교육철학은 혁신학교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쳤다.
▲ 사토 마나부 교수가 쓴 <배움으로부터 도주하는 아이들> 책 표지  따돌림이나 학교폭력은 일본 내 1%에 지나지 않는다고 사토 마나부 교수는 언급했다. 오히려 중요하고 심각하게 받아들여야 하는 교육문제는 아이들이 <배움으로부터 도망하는 현상>이라고 역설했다. 사토 마나부 교수의 교육철학은 혁신학교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쳤다.
ⓒ 북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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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교육은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일까? 어느 곳에서 실타래가 뒤엉켰기에 이토록 난맥상을 보이는 것일까? '학벌=권력=금력'이라는 학교이데올로기는 오늘도 아이들을 고통으로 짓누르고 교사를 입시기술자로 변질시킨다. '교육개혁'의 이름으로 공교육이 망가지는 동안, 1타 강사나 강남 족집게 강사가 선망의 대상이 되고 사교육산업 시장이 기형적으로 번창했다. 사교육산업으로 억대 연봉, 수십 억, 수백억 대 주식부자가 탄생했다. 학교인지 학원인지 구분하기 어려울 정도로 줄타기를 하는 게 우리네 교육현실이다. 한 마디로 한국사회는 물질이 인간의 영혼을 압도하고 교육을 잠식해 들어갔다.

교사들 가운데 일부는 더 이상 교육의 본질에 천착하지 않는다. 무엇이 교육인지, 우리가 추구해야 할 교육의 목적에 대해 더 이상 성찰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아이들에게 유리한 것! 입시에 유리한 것은 회자되어도 무엇이 교육인가에 대한 성찰과 논의는 거의 실종됐다. 한 마디로 학교교육활동에서 현실적으로 피로도가 너무 높기 때문이다. 묵직한 이데올로기와 거대한 현실에 압도돼 쉼 없이 돌아가는 기계의 톱니바퀴로 살아가는 것으로 자족한다.

6년 전 끔찍한 세월호 참사를 겪었음에도 원통한 죽음 앞에 한국 교육은 변한 게 없다. 그래서 나는 교육 관료들에게 묻고자 한다. 교육개혁을 정말로 원하는지 그분들께 묻고 싶다. 진정으로 우리교육현실을 변화시키고 싶은지 가슴으로 되묻고 싶다. 고통 받는 아이들을 구하고 존재감을 잃고 상처 받는 교사들에게 정말로 희망을 주고 싶은지 되묻고 싶다.

진심으로 교육을 개혁하고자 한다면 가장 먼저 위에서 아래로 내려다보는 시선을 거둬들여야 한다. 무엇보다 교사를 '감시와 통제의 대상'으로 바라보는 낡은 시선을 멈춰야 한다. 그것은 교육활동의 주체인 우리 교사들을 존중하는 방식이 아니기 때문이다. 오히려 감시와 통제보다 신뢰와 도움의 손길을 내밀어야 한다. 교사를 전적으로 신뢰하고 교사회의에 의결권을 부여해 보라! 우리는 이미 진보교육감들이 10년 전부터 실천해온 혁신학교의 소중한 경험 사례를 알고 있다. 교육을 흉내 낸 게 아니라 실제 교육의 참모습을 드러낸 것이기에 그러하다.

교사에게 공무원 출퇴근 시간을 강제하기보다 교사의 교육활동을 전면적으로 돕고 지원하는 단위로 교육부는 거듭나야 한다. 과거 경남 거창고등학교가 크게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전적으로 교육의 본질에 깊이 천착한 학교장과 교사를 절대적으로 신뢰한 결과였음을 기억해야 한다. 그 학교는 당시 학교 담벼락도 없었고 교사 출퇴근 시간도 없었다. 그러나 교무실 책상엔 책이 가득가득했고 아이들은 교무실에 오는 걸 즐겨했다. 지금도 제대로 된 혁신학교에선 교사들이 간혹 밤 12시가 되도록 자발적으로 수업연구나 교육활동에 정성을 기울이는 게 현실이다.

우리의 교육현실은 어떠한가?

교무실 책상엔 책보다 공문서철이나 잡다한 게 널브러져 있고 책은 간소하다 못해 초라할 지경이다. 아이들은 교무실 오는 것을 불려오는 걸로 생각해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왜 핀란드 교육개혁은 성공하는데 한국의 교육개혁은 길고 긴 터널의 어둠 속에 갇혀 있는지 생각해 볼 일이다. 교사를 절대적으로 신뢰하고 교사의 자율성을 극대화한 핀란드 사회는 학교가 '행복발전소'로 변화했다. 나아가 핀란드 교사는 사회적 신뢰와 존경을 한 몸에 받는 지위와 권위를 누리고 있다.

그래서 교육부에 쓴소리를 드리고자 한다. 가장 먼저 교원성과급제도를 즉시 폐지할 것을 요청한다. 코로나 바이러스도 바이러스지만 바이러스 시국은 무엇이 잘못돼 있는지를 여실히 드러내 주었다. 학급당 학생 수 감축은 이젠 피할 수 없는 한계에 이르렀다. 교원성과급제도 역시 그동안 교육의 본질을 훼손한 잘못된 정책이었음은 누누이 제기돼 왔다. 그럼에도 교사를 돈으로 유인하는 성과상여금제도는 교육의 본질을 외면한 채, 교사의 자존감에 깊은 상처를 안겨다 주었다. 교육계에 씻을 수 없는 상처를 남긴 최악의 정책이자 교육적폐임을 고백한다. 학교현장에 갈등과 불신을 조장하고 교육 아닌 것을 교육인 것으로 위장하게 한다. 이미 웃음거리로 전락한 천박한 제도임이 여실히 드러났다.

교사로서 자기발전을 꾀하는 것은 당연한 직업적 속성이고 아이들 앞에서 '좋은 선생님'으로 남고 싶은 것은 모든 교사의 천성이자 본능이고 바람이다. 이를 성과금이라는 돈으로 유인해 연수를 받게 하고 유인하는 것이 과연 온당한지 되묻고 싶다. 성과상여금으로 인해 무수히 많은 교사들이 이미 상처 받을 대로 받았음을 기억해 두시라! 교육활동을 시장의 상품처럼 천박하게 변질시키고 교사를 천박한 환경 속에 가둬버린 행위에 대해 성찰해야 한다.
 
서울시 교육청은 전국에서 유일하게 고사기간 사전 단체연수계획서를 결재 받은 경우 교사의 자율연수를 허용하고 있다. 교육청과 전교조 단협의 결과이다. 그럼에도 개별 연수일 경우 학교현장에선 고사기간 조퇴로 결재 받고 퇴근할 것을 요구받는다.
▲ 2019년 1월 서울시 교육청에서 보낸 <교직원 복무관리 철저 재당부> 공문 서울시 교육청은 전국에서 유일하게 고사기간 사전 단체연수계획서를 결재 받은 경우 교사의 자율연수를 허용하고 있다. 교육청과 전교조 단협의 결과이다. 그럼에도 개별 연수일 경우 학교현장에선 고사기간 조퇴로 결재 받고 퇴근할 것을 요구받는다.
ⓒ 하성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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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으로 교사를 통제하는 가장 표본적인 관행 내지 교육관료의 태도를 지적하고자 한다. 바로 교육공무원법 41조 연수에 대한 교육관료들의 태도이다. 교육공무원법은 국회에서 입법과정을 통해 통과된 상위법이다. 감히 교육관료들이 필요에 따라서 자의적으로 유권해석을 하여 학교현장에 강요하거나 감사로 겁박해선 안 된다. 그럼에도 오늘날 학교풍경은 어떠한가? 교사의 자율성이 발휘될 수 있는 공간을 스스로 가둬버리는 결과를 초래했다.

교육공원법 제41조 내용은 이렇다.

"교원은 수업에 지장을 주지 아니하는 범위에서 소속 기관의 장의 승인을 받아 연수기관이나 근무 장소 외의 시설 또는 장소에서 연수를 받을 수 있다."

그렇다면 학교 시험기간 고사 종료 후 교사들이 자유롭게 자율연수를 할 수 있도록 허용하는 게 입법 취지에 맞다. 수업에 지장을 전혀 주지 않기 때문에 교사가 41조 연수 규정에 따라 국회도서관에 갈 수도 있고 교사들 동호인 모임 연수를 추진할 수도 있다. 그러나 현실은 감사 지적사항이 되고 있다. 전국에서 유일하게 서울시교육청만 전교조 서울지부와 단체협약을 맺은 결과, 사전에 부서별, 교과별 단체로 연수계획서를 작성해 학교장의 결재를 받은 경우에만 41조 연수를 인정해 주고 있다. 전국에서 서울시 교육청만 유일하게! 이조차도 고사기간 오후에 교사 개인적으로 41조 연수를 쓸 수 없게 만들어 놓았다. 아예 결재를 해주지 않는다.

교육공무원법 제41조 규정에 따라 교사가 수업에 지장을 주지 않는 고사기간 국회도서관에 가는 것조차 허용하지 않는 것이다. 이런 교육통제로 교육개혁이 잘 되기를 기대하는 것은 나무 위에 올라가서 물고기를 구하려는 행위와 다를 바 없다. 일부 교사들 비위나 일탈을 우려하여 교육공무원법 41조 조항을 교육부가 자의적으로 해석하는 것은 재량권을 넘어서는 행위라고 생각한다. 교육공무원법 41조에 명시돼 있듯이 수업에 지장을 주지 않는 고사기간에 교사 누구나 국회도서관을 가든 문화 활동이나 학술행사에 참여하든 자율연수를 할 수 있도록 하는 게 법의 취지이다. 다시 말해 교사의 자율연수를 적극적으로 보호하려는 게 입법취지인 것이다. 이 점에서 교육관료들의 성찰과 이해를 촉구한다.

또는 세간의 사회적 인식이 교사들은 방학도 있고 일찍 퇴근하는데 월급은 꼬박꼬박 받아간다는 왜곡된 시선을 의식해 교육통제를 강화하는 조치라면 더더욱 문제가 크다. 60이 넘어 정년퇴직을 앞둔 30년 된 교사 연봉은 그리 높지 않다. 교사 보수체계를 연봉 개념으로 이해하지 않고 방학 때 놀면서 월급 받아간다는 천박한 인식이야말로 교사를 모독하는 표현이다. 학교에서 매일 수업 3-4시간을 하고 행정업무와 온갖 잡무를 처리하다보면 8시간이 그냥 지나간다.

주5일 수업이 정착되면서 매일 7교시 수업이 끝나는 4시가 바로 퇴근시간이다. 따라서 대부분 교사들은 집에 가서 다음 날 수업연구를 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오랜 시간이 걸리는 시험 출제도 마찬가지이다. 아이들을 가르칠 준비도 되어 있지 않은 상태에서 교실 수업에 들어가는 것은 교사들 누구에게나 가장 고통스럽고 수치스러운 경험이기 때문이다. 수업이 아이들에게 감동을 선사하는 '예술'까지는 되지 못해도 이 땅의 모든 교사들은 자신의 교육활동으로 아이들이 감동을 받고 삶이 긍정적으로 변화하며 행복해지길 소망한다.

왜곡된 사회적 시선이나 그릇된 편견이 세간에 존재한다면 교육관료들이 적극 나서서 왜곡된 시선과 그릇된 편견을 바로 잡으려고 애써야 마땅하다. 그들 시선과 편견에 휘둘려 지금처럼 교사를 통제하는 정책을 지속하거나 강화한다면 교육개혁은 들어설 자리가 없다. 교육은 존재할 수 없는 것이다. 미래교육 100년을 위해서도 터무니없는 교육통제를 지속해선 안 된다. 더구나 교육관료들이 유권해석을 내릴 지위에 있는 것도 아니지 않는가!
 

태그:#교육공무원법 41조 연수, #교육개혁, #교육관료, #교육통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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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회원으로 가입하게 된 동기는 일제강점기 시절 가족의 안위를 뒤로한 채 치열하게 독립운동을 펼쳤던 항일투사들이 이념의 굴레에 갇혀 망각되거나 왜곡돼 제대로 후손들에게 전해지지 않은 점이 적지 않아 근현대 인물연구를 통해 역사의 진실을 복원해 내고 이를 공유하고자 함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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