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는 엄마가 안 계신다. 엄마가 네 살 무렵 생모는 돌아가셨다. 외할아버지는 새 장가를 들었고, 새 엄마는 자식을 내리 일곱을 낳았다. 엄마는 아버지 집을 떠나 같은 마을에 살았던 친척 이모 집에서 자랐다. 이모라고 해도 촌수로는 꽤 먼 사이였다. 친척 이모 부부는 자녀가 없어서 엄마를 딸처럼 어여삐 여기며 키웠다고 했다. 나는 그 '친척 이모'를 외할머니처럼 여기며 자라왔다. 이 글에서는 편의상 '할머니'라고 부르겠다.
 
엄마 사주로는 원래 30대 중반에 명줄이 끊어질 운명이었는데, 할머니의 간절한 기도로 어언 70을 넘기게 되었다. 할머니는 '세상에 가장 불쌍한 사람이 어미 없는 새끼들'이라며, 저녁마다 까만 벽에 대고 주문을 외우며 엄마의 수명이 길어지길 기도했다. 할머니의 기도가 아니었더라면 나는 어린 나이에 '어미 없는 새끼'가 되었을지 모른다 생각하며 가끔씩 가슴을 쓸어내리곤 한다.
 
엄마의 기억 속에 생모와 연관된 음식 추억은 없을 것이다. 생모는 여장부였다고 하는데(엄마의 오빠들 얘기에 의하면) 엄마의 기억 속에는 아파 누워있는 모습만 아스라이 남아있다. 엄마랑 마주앉아 뜨신 밥 한 그릇 나눈 기억이 없는 우리 엄마. 마흔 넘은 딸은 이제와 그 엄마가 안쓰럽고 애틋하다.
 
그 대신 엄마는 국수를 먹거나 참외를 먹을 때, 친척 이모 할머니를 떠올렸다. 둘 다 할머니가 좋아하시던 음식이었다. "할머니가 참 국수 좋아하셨는데..." "참외 보면 할머니 생각난다..." 그래서 나도 국수와 참외를 보면 외할머니 생각이 난다. 말의 힘이란 주술 같다. 할머니가 돌아가신 지 10년도 지났다. 심지어 나는 할머니가 국수, 참외를 맛있게 잡수신 걸 한 번도 본 적 없는데 그 음식들을 보면 이따금 할머니 생각이 난다. 할머니는 그 음식 속에 영원히 살아계신 것 같다. 음식은 영원한 그리움이다.

그리움으로 버무리고 그리움으로 삭힌 다큐멘터리 <밥정>
 
다큐멘터리 <밥정>의 한 장면.  임지호 셰프는 스스로에게 묻는다. '어머니는 무엇일까?' '엄마란 무엇일까?' 그 질문의 끝이 어디일지, 자신도 궁금하다고 했다. 그 질문의 힘으로 그는 전국 산천을 떠돈다.

▲ 다큐멘터리 <밥정>의 한 장면. 임지호 셰프는 스스로에게 묻는다. '어머니는 무엇일까?' '엄마란 무엇일까?' 그 질문의 끝이 어디일지, 자신도 궁금하다고 했다. 그 질문의 힘으로 그는 전국 산천을 떠돈다. ⓒ (주)하얀소엔터테인먼트

 
엄마와 다큐멘터리 <밥정>을 보았다. 방랑식객 임지호 셰프가 어머니를 그리워하며 전국 산천을 다니면서 식재료를 구하고 음식을 만드는 이야기다. 임지호 셰프가 세 살 때, 생모는 임지호 셰프를 본가에 데려다놓고 돌아가는 길에 교통사고로 돌아가셨다고 한다. 생모에 대한 그리움을 가눌 길 없어 먼 산만 바라보며 그리움을 삭이는 어린 의붓아들과 그 아들을 그저 애끓는 가슴으로 지켜봐야했던 양어머니. 그 사람들의 애잔한 모습들이 늦가을에 산그늘 내려앉듯 가슴에 쓸쓸하게 퍼진다.
 
그리움은 임지호 셰프의 평생 원동력이 되었다. 어머니들의 눈물값을 하며 살아야겠다고 생각하고, 요리에 자신을 던진 임지호 셰프. '다른 사람은 돈을 주면 하고, 돈을 안 하면 안 한다'지만, 임지호 셰프는 자신을 키워준 어른들의 눈물값을 하는 마음으로 한눈 팔지 않고 치열하게 살아왔다고 고백한다. '눈물값'이라는 그 말이 자꾸 눈을 찌른다. 생각해보니 우리는 누군가의 눈물값으로 이만큼 산 것 같다. 그 중에서도 엄마의 눈물값이 가장 흔했으며 가장 귀했다.
 
좋고 귀한 식재료를 보면 어머니를 떠올린다는 임지호 셰프. '이걸로 어머니에게 음식을 만들어드리면 좋았을 텐데...' 그에게 음식은 곧 그리움이었다. 아무리 걸판지게 한상 차려도 가시지 않는 그리움. 그는 만나는 사람에게 음식을 대접하면서 그들이 혹시 어머니의 먼 혈육이라도 되어, 음식을 맞이했으면 좋겠다고 말한다. 이미 그 마음 속에는 어머니가 들어와 있던 걸까.
 
다큐멘터리 <밥정>의 한 장면 어머니들의 '눈물값'을 해야된다는 생각에 하루하루를 치열하게 살았다는 임지호 셰프. 저 찬란한 밥들은 눈물값이 피워낸 꽃들 아닐까.

▲ 다큐멘터리 <밥정>의 한 장면 어머니들의 '눈물값'을 해야된다는 생각에 하루하루를 치열하게 살았다는 임지호 셰프. 저 찬란한 밥들은 눈물값이 피워낸 꽃들 아닐까. ⓒ (주)하얀소엔터테인먼트

 
 
다큐멘터리 <밥정>의 한 장면 영화 속에서 인상깊었던 장면 중 하나는 임지호 셰프가 동네 사람들을 불러다 음식을 대접하는 장면이었다. 음식은 모름지기 그렇게 나누어야 맛이다.

▲ 다큐멘터리 <밥정>의 한 장면 영화 속에서 인상깊었던 장면 중 하나는 임지호 셰프가 동네 사람들을 불러다 음식을 대접하는 장면이었다. 음식은 모름지기 그렇게 나누어야 맛이다. ⓒ (주)하얀소엔터테인먼트

  
우리 엄마를 딸보듯 바라본다
 
나는 엄마가 계셔서 엄마의 부재라는 것을 잘 모른다. 엄마가 안 계신 그리움이라는 것도 모른다. 짐작조차 할 수 없다. 나도 나이를 어느정도 먹어서인지, 내가 엄마가 되어, 우리 엄마를 딸처럼 바라볼 때가 있다.
 
'우리 엄마는 그 어린 나이에 어떻게 결혼했을까' '맞벌이하면서 어떻게 우리를 키웠을까' '외로우면 어떻게 했을까' '남들이 친정엄마 이야기하면 엄마는 누굴 떠올렸을까'... 엄마 등을 쓸어주고 싶고 엄마 손을 잡고 싶다. 엄마 그리움 삭이며 살아오느라 우리 엄마 정말 애쓰셨다고.
 
누군가를 위해 음식을 만들고싶다는 그 마음. 그리움이 없는 음식은 그저 한 끼의 식사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그리움을 나누는 밥정. 엄마가 옆에 계실 때 따뜻한 밥 한끼, 그 그리움을 조금이라도 더 나누고싶다는 생각을 했다.
 
엄마는 영화를 보고 난 후 경기도에 사는 언니에게도 전화해서 영화 소식을 알렸다. 너무 좋다라는 말씀을 연신 하셨다. 그날 밤 집에 돌아와서 잠자리에 들려고 하는데 엄마에게 전화가 왔다. 늦은 시각이라 깜짝 놀라 전화를 받으니 엄마는 "영화 잘 보았다. 아직까지도 여운이 오래오래 남는다"고 말씀하셨다. 음식보다 더 진하고 푸진 그리움 밥상 덕에 엄마와 나의 가을 밤이 오래오래 행복했다.
다큐멘터리 밥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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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아픈 것은 삶이 우리를 사랑하기 때문이다. -도스또엡스키(1821-18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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