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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미는 곧 일상의 건전성을 판단할 수 있는 바로미터가 된다. 운동이 취미였던 사람이 운동을 안 하게 된다거나 운동이라면 학을 떼던 사람이 운동을 시작하게 되었다는 건 그의 일상이 어떤 방향으로든 조금 틀어졌다는 걸 의미한다.

나에겐 독서가 그런 존재인데 학생 때와 직장인의 독서가 다르고, 평일과 주말의 독서가 다르고, 또 그 하루의 스트레스 축적량에 따라서도 독서가 달라진다는 걸 몸소 깨닫는다.
 
 그날그날의 컨디션에 따라 책의 장르가 결정된다.
 그날그날의 컨디션에 따라 책의 장르가 결정된다.
ⓒ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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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학생 때와 지금은 독서를 하는 목적이 다르다. 학생 때는 무언가를 얻기 위해 책을 폈다면 지금은 뭐라도 덜어내고자 책장을 넘긴다. 지금 내 머릿속에 뭐라도 집어넣기 위해서가 아니라 지금 내 머릿속에 가득 찬 것들을 새로 고침하기 위해 책을 읽는다. 외우지 않아도 되는 것, 확인하지 않아도 되는 것, 보고하지 않아도 되는 것들로 머리를 씻어내기 위해서 말이다.

직장인이 할 수 있는 가장 효율적인 취미가 독서이기도 하다. 타고난 악바리 기질로 인턴 기자로 근무하는 4개월 동안 근무 중에 단 한 번도 화장실을 가지 않을 정도였던 나에게 독서는, 가장 대충 할 수 있는 가장 유익한 활동이었다. 이렇게 대충해서 남의 노력과 통찰의 결과물을 통째로 훔칠 수 있다는 사실이 정말 매력적이다.

누군가의 피, 땀, 눈물로 완성됐을 작품을 배춧잎 몇 장과 맞바꾼 뒤 아무렇게나 굴리고 접고 끄적일 수 있다는 것이 좋다. 내가 노력하지 않았을 때 다른 이의 노력을 아무렇게나 쟁취한다는 것이 이토록 행복하다는 것에 약간의 죄책감을 느낄 정도로 말이다.

그날그날의 컨디션에 따라 책의 장르가 결정된다. 사랑과 낭만이 가득한 주말에 고르는 책은 사랑에 관한 산문이거나 시집이거나 에세이일 확률이 높다. 하지만 팀장과 부장과 과장이 죽음의 버뮤다를 형성해 나를 죄어올 때는 얘기가 다르다. 버뮤다에서 에덴동산으로 순간 이동을 하게 해줄 소설을 골라야 한다.

반면에 직장 생활에 진한 회의감을 느끼거나 퇴근을 했음에도 오후에 있었던 일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을 때는 인간관계나 처세술에 관한 책을 처방한다. 물론 그 모든 책의 결론은 '너도 그 사람에게 중요하지 않고 그 사람도 너에게 중요하지 않다'는 것이지만. 그것을 스스로 깨닫고 편안한 잠자리에 들기란, 고민이 그것 빼고도 5조 5억 개 정도 되는 직장인에게는 불가능에 가까우므로.

지난주까지는 직장 처세술에 관한 책을 읽었다. 작은 일도 큰일로 부풀려, 내 잘못이 아닌 게 내 잘못이 되고, 궁극적으로 사과할 게 없는데도 사과를 해야 하는 상황이 괴로웠다. 그것조차 최선을 다해 열정적으로 임하는 나 자신도 구질구질했다.

남들은 그냥 철판 깔라는데, 내겐 도저히 그런 철판이 없길래 그냥 사과를 열심히 하는 쪽을 택했다. 다행히 민망할 정도로 고개를 조아리는 후배에 당할 선배는 없었지만, 모든 일이 끝나고 나니 깊은 한숨이 새어 나오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라는 말이 자연스레 새어 나왔다.

이번 주에는 소설을 읽어야겠다. 어떤 방식으로든 이미 끝난 일을 완전히 떠나기 위해, 지금 이 순간에도 다른 대안이 없었을지에 대해 고민하는 나를 멈추기 위해 소설의 세계로 도망쳐야겠다. 다음주는 부디 사랑과 낭만이 가득한 에세이를 읽게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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