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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동네 책방의 역사모임에서 <라틴아메리카의 역사>를 함께 읽고 있어요. 올해 5월부터 시작했는데 거의 5개월 만에 상권을 끝냈고, 이번달부터 하권을 읽기 시작했어요. 모임을 통해 오랫동안 그들의 역사를 읽어내려가다 보니, 그동안 나를 지배했던 가치관이 나의 것이 아니라 '지배자의 것'이었음을 안타깝게 깨닫고 있습니다.

라틴아메리카 역사의 시작

라틴아메리카 역사는 어떻게 시작되었을까요? 기원전 수만 년 전, 몇 번이나 반복되었던 빙하기의 말미에 아시아의 인류가 빙하를 건너, 북아메리카의 끝자락을 건너와 아메리카 대륙에 정착하게 되었어요. 그런데, 빙하기는 머지않아 끝났고, 따뜻해진 기후는 얼음으로 간신히 연결되었던 아메리카 대륙을 거대한 섬으로 만들어 버렸지요.

꽤 오랫동안, 아메리카 대륙은 태평양과 대서양의 커다란 바다에 둘러싸인 채, 대륙 안에서 형성된 문명을 누리며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아시아와 유럽이 수많은 정복전쟁을 통해 문화를 교류하고, 새로운 기술들을 발견하며 문명을 성장시켜 나가는 동안, 그들의 문명은 석기에서 청동기에 머물러 있었다고 해요.

다른 문명과의 교류가 없이 거대한 대륙 안에서 성장한 문명에 대해 남겨진 기록은, 우리가 당연하게 여겼던 어떠한 '공통점'도 발견할 수 없었으니 이해하고 해독하는 것도 불가능했죠. 지금까지도 인류가, 갑자기 사라져버린 (혹은, 정복자들에 의해 순식간에 멸망한) 잉카나 마야의 문명을 해독하기 어려워하는 것도 당연해 보입니다.

공통점 없이 남겨질 수밖에 없었던 독자적인 기록이었을 테니까요. 수많은 SF 영화에서 라틴아메리카의 문명에 대해 외계인의 클리셰를 동원하는 이유도, 우리가 여전히 그들을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이겠죠?

그렇게 청동기 문명의 끝자락에서 그들만의 방식으로 살아가던 그들이 만나게 된 것은, 머나먼 바다를 건너온 유럽인들이었어요. 1492년에 거대한 함선을 앞세워 건너온 철기문명의 이방인들은, 무기로도, 질병으로도, 정치력으로도, 도저히 거스를 수 없는 압도적인 힘을 앞세워 대륙을 순식간에 정복해 버리고야 말죠.

제대로 된 정복전쟁도 없이 그들이 무너질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절대적인 '문명의 시차' 때문이었다고 생각해요. 지금껏 콜럼버스의 대항해에 대해 가졌던 '모험과 도전'이라는 호의적인 시각이, 끔찍하게 부끄러워지는 순간이었어요. 우리는 왜 지금껏 '정복자'의 시각으로 세계를 이해하려 했을까요?

라틴아메리카는 그 후로도 오랫동안 식민지에서 생산되는 자원들로 구대륙을 먹여살렸고, 금이나 은, 설탕과 염료에서, 커피와 카카오로 이어진 그들의 착취는 여전히 힘을 갖고 있죠. 게다가, 심각한 질병으로 90퍼센트에 가까운 원주민들이 몰살당하자, 부족한 노동력을 보충하기 위해 아프리카에서 실어 나른 노예들은, 지금까지도 아메리카 대륙을 위협하는 인종 갈등의 근본적인 원인이기도 해요.

농업이나 광물 자원의 종속에서 시작된 식민지의 착취는, 18세기 후반 산업혁명 이후로는 구대륙에서 팽창적으로 증가한 공업 생산품들의 소비시장 역할까지 수행하면서 공고해지고야 말았죠. 21세기를 살아가는 지금까지 남미의 많은 나라들이, 여전히 농업, 광업, 목축업과 같은 1차 산업에 머무를 수밖에 없는 것도 당연했습니다. 

식민 지배의 시작은 스페인이었지만 해군력을 앞세운 영국은 곧바로 제국 확장의 주도권을 차지하게 되어요. 하지만 1, 2차 세계대전을 겪으면서 세계 질서의 주도권은 자연스럽게 미국으로 넘어갔고, 남미에 대한 착취도 미국의 역할이었죠.

칠레 역사상 가장 뜨거웠던 3년의 기록
 
대통령궁에서 자결해야 했던 아옌데의 비극 <아옌데의 시간>은 칠레의 대통령이었던 살바로드 아옌데의 집권기였던 1970년부터 1973년까지의 기록을 그래픽 노블로 그린 작품입니다. 게다가, <라틴 아메리카의 역사>를 같이 읽다보니, 그들의 비극이 되풀이되는 현실이 너무나 안타까웠어요.
▲ 대통령궁에서 자결해야 했던 아옌데의 비극 <아옌데의 시간>은 칠레의 대통령이었던 살바로드 아옌데의 집권기였던 1970년부터 1973년까지의 기록을 그래픽 노블로 그린 작품입니다. 게다가, <라틴 아메리카의 역사>를 같이 읽다보니, 그들의 비극이 되풀이되는 현실이 너무나 안타까웠어요.
ⓒ 아모르문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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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소개하고 싶은 <아옌데의 시간>은 강대국의 틈바구니에서 똑같은 비극을 되풀이하고 있는 칠레에 대한 이야기이자, 작은 승리에 안주해서는 안 된다는 각성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게다가, 현재의 칠레와 남미가 벗어나지 못하는 지배의 굴레가, 지금의 대한민국에서도 중요하게 읽힐 수 있는 상징적인 이야기로 읽혀서 함께하고 싶었습니다.  

<아옌데의 시간>은 가상의 인물인 미국인 기자, 존 니치의 시선을 통해 아옌데가 선거에서 승리하던 1970년부터 미국의 지원을 받던 피노체트 군부의 쿠데타에 의해 무너져버린 1973년까지의 이야기를 담은 그래픽 노블입니다.

작년에 칠레의 시위를 보면서 읽었던 <살바도르 아옌데: 혁명적 민주주의자>(관련기사 : 칠레의 2019년... 대한민국이 얻어야 할 교훈)와는 달리, 아옌데 대통령의 집권 시기에만 집중하여 읽을 수 있었기에, 만화라는 장르의 장점을 이용한 적절한 선택이라고 느꼈어요.

여기에 올해 다시 읽은 아옌데는, 80년 전에 칠레에서 있었던 '호세 마누엘 발마세다' 대통령 집권기의 비극이 그대로 되풀이되는 역사라는 것을 알고 난 후 만나다 보니 더욱더 아프게 읽히네요. 

호세 마누엘 발마세다는 1886년부터 1891년까지 칠레의 대통령이었어요. 질산 비료의 원료였던 구아노의 주도권을 두고, 파라과이, 볼리비아와 벌였던 태평양전쟁 (1879~1883) 직후에 집권하면서, 중요한 자원이었던 구아노의 국유화를 통해 국가의 경제를 강건하게 하고, 공교육을 강화하여 국가의 기반이었던 민중을 지지기반으로 확보하고자 하였습니다.

하지만, 영국의 지원을 받고 있던 의회 기득권의 저항에 부딪혀 축출되고, 망명지였던 아르헨티나에서 자결하고 말아요. 그 후로 칠레는 영국이 주도하던 다국적 자본가의 지배에 억눌리게 되었고, 민중의 빈곤과 억압은 그 끝이 보이지 않았죠.

발마세다의 비극에서 구아노라는 자원을 구리로 바꾸고 영국의 지배를 미국으로 바꾸면, 이야기는 그대로 1970년에 집권했던 아옌데의 것이 됩니다. 쿠바 혁명의 성공과 1962년에 있었던 미사일 위기로 잔뜩 겁을 집어먹은 미국이, 영국보다 더 집요하게 아옌데를 방해한 것이 달라진 점이라면 달라진 점이겠죠.

당시 소련과의 이념전쟁으로 한창이던 미국은, 라틴아메리카 전체가 공산주의에 잡아먹히는 것을 막아야만 했습니다. 그들은 모든 정보력을 동원하여, 아옌데를 무력화시키는 것에만 집중합니다. 그리고, 아옌데의 충실한 조력자로 보였던 '아우구스토 피노체트'를 자신들의 무기로 선택했죠.
 
"피노체트는 특별할 것 없는 평범하고 친절한 군인처럼 보인다. 그는 안전과 공공질서, 그리고 정치적 사건이라는 매우 새로운 문제들에 완전히 도취되어 있다. 자신이 중요한 사람이라고 느끼는 것을 매우 즐거워하는 것이 분명하다." - CIA 비밀 전보, p.77

1973년의 칠레는 혼돈이었습니다. 미국은 어떻게든 민중의 연대를 망가뜨리고자 애를 썼고, 분열된 민중은 정체를 알 수 없는 적들 앞에 무력했습니다. 무너진 연대와 민중의 혼돈은, 미국이 선택한 군부에게는 좋은 기회였음은 물론입니다.

1973년 9월 11일, 피노체트가 이끄는 군인들은 전투기까지 동원하여 대통령궁을 공격하였고, 마지막까지 저항하던 아옌데 대통령은 자살을 선택하고야 말아요. 그 후로 칠레는, 40년이나 피노체트의 군부독재에 시달리며 국민의 절대다수가 빈곤에 시달리는 국가가 되고야 맙니다.

헌법을 다시 쓰기로 한 칠레 민중의 선택
 

코로나19 시대에 라틴아메리카의 역사를 읽어내려가는 것은, 지금껏 세상을 지배했던 지배의 논리가 허상이었다는 것을 절실하게 느끼게 하는 귀중한 기회가 되었습니다. 되풀이되는 역사의 비극을 끝내는 유일한 방법은, 오로지 그 나라의 민중이 스스로의 뜻을 세우는 길뿐임을 깨닫는 경험이기도 하고요.

라틴아메리카의 비극이 끝나지 않고 계속 되풀이되는 이유는, 그들이 여전히 식민 지배의 체제를 그대로 유지하고 있기 때문이니까요. 식민 지배의 주체는 계속 바뀌었지만, 기득권이 지키려 한 것은 그들의 이익이었으니 현재의 극단적인 양극화는 당연한 결말이 아니었을까요?  

그렇다면 2020년의 대한민국은 과연 어떤가요? 우리의 운명은, 우리 스스로가 결정하고 있나요? 적어도, 코로나19의 방역에 대한 단호한 태도는, 우리의 결정이고 잘한 결정이라고 보입니다. 덕분에, 안전하고 자유로운 대한민국에서 그간 나를 지배했던 사대주의의 시각과 선진국에 대한 열등감에서 조금은 거리를 확보할 수 있었으니까요. 

앞으로는, '선진국'이라고 이름 지어진 그들을, 무조건적인 동경의 시선으로 '관대하게만' 바라보지 않을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렇게 생각하면, 이런 가르침을 갖게 한 2020년의 고립이 마냥 '쓸데없던' 것만은 아닌가 봐요. 불행 중 다행인가요?

이 글을 쓰는 동안, 작년의 '지하철 요금 50원 인상'이 촉발한 시위에서 약속했던 칠레의 국민투표 결과가 나왔네요. 아옌데와 발마세다의 후손은, 드디어 민중의 선택으로 새로운 출발을 선언했습니다. 피노체트의 40년 군부독재를 청산하고 민중의 칠레를 건설하기 위한 헌법을 다시 쓰기로 한 거예요. 그들의 선택을 진심으로 응원하며, 아옌데의 마지막 연설을 옮깁니다. 
 
"역사는 우리 편이며, 역사를 만드는 것은 인민입니다. 깨어 있어야 합니다. 존엄하고, 더 나은 삶을 스스로 만들어 나아갈 수 있는 여러분의 권리, 그것을 지켜내야 합니다. ... 반역이 우리에게 강요한 이 잿빛의 쓰디쓴 순간도, 누군가는 반드시 이겨낼 것입니다. 그 점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리 멀지 않은 장래에, 자유로운 인간이 더 나은 사회를 건설하기 위해 당당하게 걸어갈 드넓은 길을 열어나갈 수 있을 것입니다. 칠레 만세! 인민 만세! 노동자 만세!" - 아옌데의 마지막 연설 발췌

책정보 :
<라틴아메리카의 역사> 상/하 벤자민 킨, 키스 헤인즈 지음/김원중 옮김 (그린비)
<아옌데의 시간> 카를로스 레예스 글, 로드리고 엘게타 그림/정승희 옮김 (아모르문디)

라틴아메리카의 역사 - 상

벤자민 킨, 키스 헤인즈 지음, 김원중, 이성훈 옮김, 그린비(2014)


아옌데의 시간

카를로스 레예스, 로드리고 엘게타 (지은이), 정승희 (옮긴이), 아모르문디(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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