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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 53년 차인 내가 처음으로 돈을 벌었다. 5개월째 내 통장에 돈이 들어오고 있다. 적은 돈이지만 정말 신나는 일이다. 나는 '이 돈을 생활비로 쓰지 않을 거야'라고 야무지게 결심했었다. 더 큰 목표를 위해 이 돈을 쓸 거란 다짐을 했었다. 

이 돈을 어디에 쓸까? 매번 궁리를 하면서 기분 좋은 상상을 했다. 마음은 한껏 부풀어 올랐다. 그리고 딸들 손자들에게 "할머니 돈 번다. 내가 맛있는 것 사줄게" 하면서 자랑을 늘어놨다.

그런데 그 결심은 오래가지 않았다. 돈이란 쓰고 싶을 때 필요한 곳에 적절하게 쓸 때 빛난다. 나는 가끔 고3 손자에게 격려 용돈을 투하하고 대학 다니는 손자가 찾아오면 그때도 용돈이 나간다. 딸들이랑 사위와 함께 모일 때면 얻어먹지만은 않고 의기양양하게 밥을 산다. 집에서 먹는 특별식에도 돈을 쓴다. 적은 돈도 유용하게 쓰니 기분이 엄청 좋다. 돈을 벌어 쓰는 기쁨을 알 것 같다.

어제는 비싸지 않은 옷을 두 벌 샀다. 집에서 입는 실내복으로, 한 벌은 동생에게 주고 한 벌은 내 것. 만날 오래된 옷을 입다가 새옷을 입으니 아이마냥 입가에 미소가 번진다. 옷도 가끔 새로운 걸 입어야 새 기운이 충전된다. 나이 들었다고 새 옷을 사지 않으니 의기소침하고 사는 재미가 없었다.
  
돈이란 사람에게 기운을 솟게 하는 힘이 있는 듯하다. 남편에게 생활비를 받아 쓸 때는 언제나 넉넉하지 못했던 마음이 지금은 내가 돈을 벌고 내가 쓴다고 생각하니 조금 너그러워졌다고 해야 하나. 적은 돈을 가지고도 부자가 된 듯 마음이 풍요롭다. 부식비로 아끼던 돈도 '그래 사자' 하고서 산다. 돈은 쓰고 싶을 때 써야 사는 맛이 난다.

그 기분을 모르는 사람은 '그 나이에  적은 돈을 벌러 왜 시간을 버리나' 할 것이다. 그런 말을 할 것 같은 사람이 내 주변에 더러 있다. 그런 사람에게는 절대로 자랑을 안 한다. 내 깊은 사생활을 속속들이 나열하기는 싫다. 내 삶을 다른 사람이 평가하는 것은 더욱 싫은 일이다.  사람은 저마다 생각의 가치가 다르다. 나는 내가 가지고 있는 가치대로 나 답게 산다. 누가 뭐라 한들 상관없다. 가는 길이 옳다고 생각하면 그 길을 간다.

아침 먹고 설거지를 마친 후 외출복을 입고  치장을 한다. 그동안 옷장 속에 숨어 있던 옷도 빛을 보게 되니 옷들도 좋아할 것 같다. 요란한 옷차림은 아니지만 여하튼 깨끗한 옷차림을 하고 준비물 가방을 챙겨  출근하듯 집을 나선다. 남편은 내 출근 기사님이 됐다. 그 또한 싫지 않은 일이다. 왜냐하면, 내가 일하는 곳 주변에는 넓은 공원이 있다. 남편은 내 일이 끝날 때까지 공원에서 운동하고 놀기도 하고, 때론 구시가지 골목골목을 돌아다닌다. 결혼하고 처음 세들어 살았던 곳드을 순회하듯 찾아다니며 추억을 소환한다. 변한 지금 모습이 놀라워 하면서. 

남편이 내게 들려준 이야기들이다. 우리는 정겨운 옛 기억을  더듬고 추억이 켜켜이 쌓인 지난 날을 생각하며 만감이 교차한다. 우리가 살았던 시절 활기롭던 모습은 사라지고 폐허처럼 쓸쓸해진 지금, 세월의 무상함이 마음을 시리게 하고. 함께 살아온 세월만큼 묵은 정 역시 켜켜이 쌓였기에 이야기 보따리 무게가 꽤 무겁다.

젊은 세대는 대부분 신시가지 아파트로 이주해서 그런지 구시가지에서 공동화 현상을 본다. 사람이 살지 않는 집은 온기가 없어 금방 무너져 내리고 잡초가 주인이 된다. 사람의 발자국 소리와 말소리가 들리지 않는 집은 페허처럼 쓸쓸하기만 하다.

집에만 있었다면 대화의 주제가 없었을 텐데. 내가 일하는 동안 남편은 이야깃거리를 만들어 온다. 나이 들어 노인 세대가 되면 찾아갈 곳도 마땅치 않아 외롭다. 그런데 나는 늦은 나이에 일도 하고 직장인들 속에 활기 넘치는 생활을 공유하면서 세상과도 연결을 한다. 또 날마다 만나는 그곳 사람들과 눈 마주치며 주고받는 인사하는 시간도 즐거움 중에 하나다. 나이 든 사람이 돈을 벌고 자기 일이 있다는 것은 자존감과 활기가 있어 삶에 윤활유가 된다.

나와 같이 일하는 짝꿍 어르신 나이는 여든이 훨씬 넘었지만 귀엽기까지 하다. 나이는 드셨지만 삶의 자세가 긍정적이고 꼭 필요한 말만 한다. 때론 살아가는 사생활도 같이 공유하면서 위로해 주는 사이로 우정을 쌓는다. 가끔씩 텃밭 농사 지었다고 상추며 호박도 가져다 주니 받아먹는 재미도 쏠쏠하다.  

우리는 담당 직원 선생님이 제시해주는 작업 안에 따라 일하면 된다. 서로 존중하며 의견도 조율을 하면서. 많은 사람과 어울리는 일이 없어 사람과 겪는 갈등도 생기지 않아 그 점도 좋다.

일하다 잠깐 쉬는 시간, 내가 가진 다양한 차를 가지고 가서 차맛을 즐기는 시간도 작은 즐거움이다. 담당 선생님도 차를 마시며 무척 좋아한다. 나는 이 나이에 일해서 돈도 벌고 세상과 연결도 하고 노년을 외롭지 않게  활기찬 생활을 할 수 있어 감사하다.
 
쉬는 시간 차 마시기 쉬는 시간 차를 마신다
▲ 쉬는 시간 차 마시기 쉬는 시간 차를 마신다
ⓒ 이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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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니어 클럽은 보건복지부에서 노인 복지와 일자리 창출을 위해 시행하고 있는 사업이다. 사무실 직원들은 어르신들을 부모님 모시듯 정성을 다해 친절하게 대해준다. 마음도 푸근하고 좋다. 시니어 클럽에서는 가끔씩 부서별 교육이 있다. 뒤에 앉아 작업을 하니 자연스럽게 교육 온 어르신들 말소리가 들린다. "집에서 무료하게 지내지 않고 활동하니 얼마나 좋아" 하고 한 마디씩 한다. "그래, 노인이 되면 갈 곳도 없는데 참 감사한 일이야"라면서 다른 사람도 대화에 끼어든다.

시니어 일자리는 외롭고 힘들게 살고 있는 노년의 삶에 활기와 생의 보람까지도 가져다준다. 건강을 유지하고 자립해서 자녀들에게 부담을 주지 않고 살고자 하는 의지가 담겨있다. 열심히 살고자 하는 노년의 삶에 박수를 보낸다.

나도 거부할 수 없는 노년 세대다. 내 앞에  다가오는 삶을 오면 오는대로 거역하지 않고 즐기며 건강이 허락하는 순간까지 노년의 삶을 아름답게 마무리하고 싶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기자의 브런치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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