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벨업 아슬한 프로젝트' 아이린 레드벨벳 첫 유닛 아이린&슬기의 아이린이 9일 오후 온라인으로 진행된 리얼리티 <레벨업 아슬한 프로젝트> 랜선 제작발표회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레벨업 아슬한 프로젝트>는 레드벨벳의 단독 리얼리티 프로그램인 '레벨업 프로젝트'의 스핀오프 버전으로 레드벨벳 최초의 유닛인 아’이린&‘슬’기 를 기념, '아슬 자매' 둘만의 소중한 일상 만들기를 담은 프로그램이다. 웨이브 공개.

레드벨벳 멤버 아이린 ⓒ SM C&C STUDIO

 
잇단 논란으로 침몰하긴 했지만, 얼마 전까지만 해도 '가짜사나이' 출연진이자 유튜버 이근의 '너 인성 문제 있어?'는 올해의 유행어 중 하나였다. '인성'이란 무엇일까? 국어사전을 찾아보면 '인성'은 '사람의 성품', 혹은 '각 개인이 가지는 사고와 태도 및 행동 특성'으로 정리된다.

최근 한 스타일리스트 겸 패션지 에디터가 연예인의 갑질을 폭로하는 글을 게시하면서, 인터넷 커뮤니티는 발칵 뒤집혔다. 그리고 그 연예인이 걸그룹 레드벨벳의 리더 아이린이라는 점이 드러나면서 충격을 더 했다. 레드벨벳에서 아이린이 차지하는 비중은 적지 않았고, 팬덤의 규모도 컸기 때문이다. 

업계에서 15년을 활동해 온 베테랑은 폭로글에서 울분을 토했다. 20분간 이어진 폭언에 모멸감을 느꼈다고 했다. 이것은 누군가에게 굉장히 무겁게 받아들여질 수 있다. 갑과 을, 가해자와 피해자가 존재하는 사건이다. 과거 조현아의 '땅콩회항' 사건에 분노했던 한국인들의 역린을 자극할 수 있는 일이다.
 
사건을 대하는 미디어의 방식, 달라진 게 없다 

그러나 나는 이 사건이 소비되는 행태에 피로감을 느끼게 되었다(소비되는 행태에 피로감을 느낀다는 것은 잘잘못에 대한 것을 논하는 것과는 다른 이야기다). 아이린의 인스타그램에는 수많은 욕설이 달리고 있다. 새로운 폭로 글들이 적히는 과정에서, 신빙성이 없는 댓글이 달리기도 한다.

갑질은 우리 사회에서 퇴출되어야 할 행위지만, '그럼에도' 어느 한 사람을 끝까지 쫓아가 짓밟고 응징하는 것이 스포츠가 되어선 안 될 것이다. 그리고 언론은 그 스포츠에 일조했다. 10월 23일 업로드된 <스포츠동아> '[DA:이슈] '갑질돌' 아이린 인성, 복귀에 난색을 표합니다' 역시 자극적인 표현이 돋보인다. '갑질돌'이라는 합성어까지 만들어냈다.
 
같은 날 업로드된 <스포츠동아> 기사 '난색할 아이린 인성, 어떻게 살면 편 하나 없을까'에서는 '인성 수준 드러났다', '못난 인성', '대체 어떻게 살면 이렇게 편들어 주는 사람이 하나 없을까' 등 원색적인 표현이 거침없이 등장한다. 마지막 문단에 적힌 '예쁜 얼굴도 수준 낮은 인성이 보이는 순간 무용지물이다'라는 문장은 화룡점정이다. '나쁜 기사'다. 기자 개인의 감정이 그대로 지면에 반영된 것에 불과하다. 우리가 응당 언론에 기대할 수 있는 수준의 문장도, 통찰도 없었다.
 
아이린의 갑질이 사실로 밝혀진 상황에서, '갑질돌'이 맞지 않느냐며 반문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객관적 사실을 바탕으로 사안을 바라봐야 하는 기자나 언론이라면 자칫 누군가에게 평생 낙인이 될 수 있는 단어의 사용은 지양하는 것이 맞다. 더구나 '갑질돌', '못난 인성'과 같은 표현들을 사건의 본질을 희화화하거나 그 무게를 반감시키는 작용을 할 수도 있기에 최대한 정제해 표현하는 것이 맞다고 본다.

기존 연예인 사건 발생 때도 마찬가지였지만, 특히 이번 아이린 사건 발생 뒤 언론 보도가 안타까운 건 현상에만 집중하느라 정작 문제의 본질이 무엇인지 파고들지 않는다는 점 때문이다. '스타 갑질'은 잊을 만하면 터지는 문제로 구조에 대한 성찰이 필요했지만 최근 언론 보도에선 찾아보기 어려웠다. 쏟아지는 아이린 기사 속에서 한 가지 확신한 건 사건을 소비하는 언론들의 방식은 과거로부터 달라지지 않았다는 점이다. 
 
아니나다를까. '어뷰징' 행위도 뒤를 이었다. 위키 기반 언론 위키트리는 과거 '연예인병'을 언급했던 미르의 유튜브 영상을 거론하면서 '인성 논란 아이린을 겨냥한 듯한 팩폭 발언'이라는 제목의 기사를 쓰는 등, 어뷰징 기사를 양산하고 있다. 미르의 영상과 아이린의 갑질 행위 간에 아무런 인과 관계가 없다는 것은 자명하다.

유튜브 '가로세로연구소'는 라이브 방송의 썸네일 화면에 아이린의 얼굴을 크게 띄워놓고 '인성 문제 있어?'라는 자막을 써 놓았다. '스포츠동아', '한국면세뉴스', '디지털타임스' 등도 헤드라인에 똑같은 표현('인성 문제 있어?')을 썼다. 그들의 목적이나 지향하는 바가 뭔지는 알 수 없으나 이와 같은 보도 방식이 그 어떤 가치도 창출할 수 없음은 명확하다. 

이 사건의 본질은 누군가가 사람을 사람으로 대하지 않았다는 데에 있다. 언론이 이 사건을 보도하는 과정에서 가장 고려해야 할 존재는 피해자이며 '갑질'이라는 사건 그 자체다. 언론이 해야 할 일은 피해자가 이번 일로 피해를 받지는 않는지 등 피해자 중심의 보도다. 그러나 언론은 아이린을 둘러싼 상황, 동료들의 이야기 등을 실시간으로 보도하며 폭로전을 과열시키는 데 일조하고 있다. 이런 보도는 대중의 피로감을 높일뿐 아니라, 사건 해결이나 피해자의 상황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보다 많은 언론이 '너 인성 문제 있어?' 대신 '무엇이 인성 문제를 만들었을까?'를 논할 수 있기를 바란다.
아이린 갑질 레드벨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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