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흥민의 소속팀 토트넘은 지난 18일(현지시간) 열린 웨스트햄과의 2020-21시즌 잉글리시 프리미어리그 홈경기에서 무려 6골을 주고받는 난타전 끝에 3-3으로 비겼다. 이 경기는 여러모로 큰 화제를 모았다. 최근 절정의 호흡을 이어가고 있는 손흥민-해리 케인 듀오의 활약상에, 레알 마드리드에서 7년 만에 돌아온 가레스 베일의 토트넘 공식 복귀전이기도 했다.

경기내용은 드라마틱했다. 토트넘은 전반에만 손흥민(1골 1도움)과 케인(2골)이 3골을 합작하는 파괴력을 선보이며 3-0으로 앞서갔다. 누가 봐도 토트넘의 완승 분위기로 흘러가는 듯 보였다. 하지만 후반에는 좀 다른 의미에서 축구팬들에게 큰 충격을 선사했다.

토트넘은 경기 종반이던 후반 27분 이후에만 웨스트햄에 내리 3골을 내주는 호러쇼 끝에 뼈아픈 무승부를 기록했다. 승점 2점을 허무하게 날린 토트넘은 2승 2무 1패로 리그 6위에 머물렀다. 공교롭게도 베일이 교체 출장하고 이날 최고의 활약을 보이던 손흥민이 벤치로 물러난 이후에 벌어진 사태라 경기 후에도 뒷말이 무성했다. 베일의 부진과 조제 모리뉴 감독의 선수교체 타이밍, 토트넘의 불안한 수비 집중력 등이 대량실점의 원인으로 지목되어 비판이 쏟아졌다.

하지만 단지 한 경기만으로 토트넘의 전체적인 상황을 평가하려 드는 것은 과도한 오해를 낳기 쉽다. 자칫 섣부른 결과론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먼저 이날 베일의 투입은 과연 잘못된 결정이었을까. 모리뉴 감독은 후반 27분 스티븐 베르흐베인을 빼고 베일을 투입했다. 리드하고 있는 상황에서 안정적인 경기운영을 선호하는 모리뉴 감독의 성향을 감안하면 수비자원을 투입했어야겠지만, 당시는 토트넘이 3골차로 앞서고 있었다. 장기적으로는 손흥민-케인과 함께 베일을 공격의 핵심으로 활용해야할 토트넘으로서는 부담이 적은 상황에서 베일의 실전감각을 끌어올리기에도 무난한 타이밍이었다.

물론 베일의 경기력은 아직 정상이 아니었던 것은 사실이다. 가장 아쉬운 장면은 3-2까지 추격당한 후반 추가 시간에 케인이 찔러준 스루패스로 완벽한 일대일 찬스를 잡고도 슈팅이 골대를 빗겨나간 순간이다. 베일이 쐐기골을 만들 수 있었던 황금 찬스를 날리면서, 곧바로 웨스트햄의 마지막 공격에서 뼈아픈 동점골을 내주는 장면으로 이어졌으니 베일의 실수가 더욱 부각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추가득점 실패 이전에 먼저 3골차 리드를 지키지 못했다는 게 더 근본적인 문제였다. 토트넘이 후반 막판 10분간 허용한 3실점 중 두 골은 세트피스 상황에서 나왔고, 한 골은 토트넘 센터백 다빈손 산체스의 자책골이었다. 공격수인 베일이 토트넘의 실점 상황에서 영향을 미친 장면은 없었다. 그보단 파비안 발부에나 등 피지컬이 좋은 선수들을 앞세운 웨스트햄의 역습을 맞아 몸싸움과 제공권에서 갈수록 열세를 보인 것이 진짜 문제였다. 이는 웨스트햄전만이 아니라 현재 토트넘 수비의 고질적인 문제중 하나다.

마찬가지로 손흥민을 끝까지 교체하지 말았어야했다는 지적도 너무 결과론적인 해석이다. 토트넘은 올시즌 개막 이후 유로파리그 예선을 포함하여 어느 때보다 빡빡한 일정을 소화하고 있으며, 손흥민도 이 때문에 불과 몇 주 전 햄스트링 부상을 당하는 아찔한 순간을 겪기도 했다. 그럼에도 손흥민은 이날 후반 35분 토트넘 선발멤버 중에서는 가장 늦게 교체됐다. 당시 3-0으로 앞선 상황에서 부상에서 회복된 지 얼마 안 된 선수를 끝까지 풀타임 출전시켰다면, 모리뉴 감독은 이겼더라도 또다시 혹사 논란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을 것이다.

웨스트햄전 이후 일부 영국 언론에서 나오고 있는 '베일이 손흥민의 프리킥 찬스를 가로챘다'거나 '손흥민이 나가고 베일이 들어오면서 토트넘의 집중력이 무너졌다'는 식의 악의적이고 선동적인 해석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은 신중할 필요가 있다. 영국은 축구의 인기가 높은만큼이나 여론의 흥미를 끌기 위한 선정적이고 자극적인 보도로도 악명이 높다. 심지어 축구전문가들이 나와서 해설하는 방송조차 개인의 감정이나 편파적인 해석을 드러내서 물의를 일으키는 경우도 많은 만큼 어느 정도는 걸러들어야한다.

토트넘은 웨스트햄전만이 아니라도 올시즌 '많이 넣고, 많이 먹는' 축구의 전형을 보이고 있다. 유로파리그와 컵대회를 포함하여 총 10경기에서 무려 28골을 넣고 13골을 실점했다. 프리미어리그만 놓고보면 15골(8실점)로 현재 리그 최다득점을 올리고 있다. 손흥민은 8골 4도움(리그 7골)-케인은 5골 7도움을 기록하며 토트넘 공격의 쌍두마차 역할을 하고 있으며, 여기서 두 선수가 합작한 득점만 벌써 8골이다. EPL 최고의 콤비로 자리잡은 이 듀오는 2015년 이후로는 무려 28골을 합작중이다.

그런데 공격에 비하면 수비는 아쉬움이 있다. 단순히 실점의 숫자보다도 더 문제는 '클린시트'가 없다는 것. 토트넘은 올시즌 10경기를 치르는 동안 아직까지 단 한번도 무실점을 기록하지 못했다. 한 수 아래의 약체팀들을 상대한 유로파리그나 대량득점으로 낙승한 경기에서도 수비는 꼬박꼬박 실점을 허용했다. 수비 중심의 실리축구에 능하다는 모리뉴 감독의 팀답지않은 결과다.

다만 이것이 과연 토트넘만의 문제인지는 좀 더 지켜봐야할 필요가 있다. 올시즌 프리미어리그는 이례적일 정도로 '베이스볼 스코어' 경기가 속출하고 있다. 한 팀이 3골 이상 넣거나 양팀 합쳐 6골 이상 터지는 경기가 쏟아진다.

리즈 유나이티드-풀럼(4-3) 에버턴-웨스트 브롬위치 알비언(5-2), 토트넘-사우샘프턴(5-2), 토트넘-맨유(6-1), 레스터시티-맨시티(5-2), 레스터시티-번리(4-2),웨스트 브롬-첼시(3-3), 아스톤 빌라-리버풀(7-2) 등이 모두 올시즌 5라운드까지 나온 경기들이다.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전통의 명문이자 강호로 꼽히는 맨유-맨시티-리버풀같은 팀들마저 한 경기 5~7골을 내주며 참패하는 굴욕을 번갈아가며 당했다.

이러한 프리미어리그의 다득점-다실점 현상은, 손흥민같이 개인 기량이 만개한 공격수들의 컨디션이 좋아서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으로 인해 지난 2019-20 시즌이 늦게 종료되면서 각 팀들이 훈련량과 조직력을 다질 시간이 부족했던 것과도 관련이 있다. 여기에 토트넘은 유로파리그 예선과 컵대회를 병행하는 혹독한 일정을 소화하느라 선수들의 체력부담이 더 컸다는 것도 감안해야한다. 그럼에도 토트넘은 시즌 전체를 놓고봤을 때 7승 2무 1패라는 준수한 결과를 거두고 있다.

웨스트햄전은 토트넘에게 있어서 뼈아픈 결과였지만, 이 경기만으로 베일의 기량이나 토트넘의 수비력을 저평가하는 것은 아직 이른 감이 있다. 모리뉴 2년차의 토트넘은 아직 완성된 팀이 아니라 만들어가고 있는 팀에 가깝다. 베일의 컨디션이 좀더 올라와서 손흥민-케인과 KBS 조합이 본격적으로 가동되고, 수비 조직력이 궤도에 오른다면 토트넘은 앞으로 더 좋은 경기력을 보여줄 수 있는 가능성이 더 높은 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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