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농구 울산 현대모비스의 양동근이 지난 11일 오후 울산 동천체육관에서 열린 자신의 은퇴식이 끝난 후 유재학 감독과 악수하고 있다.

프로농구 울산 현대모비스의 양동근이 지난 11일 오후 울산 동천체육관에서 열린 자신의 은퇴식이 끝난 후 유재학 감독과 악수하고 있다. ⓒ 연합뉴스

 
한국 남자 프로농구(KBL) 최다 우승에 빛나는 명문 울산 현대모비스에 올시즌은 '리빌딩의 시간'이다. 지난 시즌을 끝으로 KBL 역대 최고 선수이자 모비스의 심장으로 꼽히던 양동근이 은퇴했고, 라건아-이대성 등 우승 주역들이 하나둘씩 팀을 떠나며 새 판짜기가 불가피해졌다. 모비스는 코로나19로 조기종료된 2019-20시즌을 8위(18승 24패)로 마쳤다.

모비스는 올시즌을 앞두고 터줏대감 유재학 감독과 재계약한데 이어 이적시장에서는 장재석-김민구-이현민-기승호 등 외부 FA들을 폭풍영입하고 거물급 외국인 선수 숀 롱과 계약하는 등 활발하고 알찬 움직임으로 기대를 모였다. 많은 농구팬과 전문가들은 모비스를 올시즌 6강 이상이 가능한 다크호스로 평가했다.

하지만 뚜껑이 열린 뒤 모비스는 생각보다 고전하고 있다. 개막 이후 서울 SK와 원주 DB에 연패했던 모비스는 3번째 경기에서 '최약체'로 꼽히는 창원 LG를 잡고 겨우 첫승을 신고했으나, 지난 주말 2연전에서 고양 오리온과 안양 KGC에서 다시 연패를 당하며 1승 4패로 9위까지 추락했다.

모비스는 시즌 초반 슈팅 난조와 외국인 선수의 부진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모비스는 경기당 80.4점, 야투율 43.4%로 모두 8위에 그치고 있는데 3점슛은 고작 26.5%(31/117)에 그치며 리그 최하위다. 가장 3점슛 성공률이 높았던 것은 유일하게 승리한 LG전에서 기록한 31.6%(6.19)에 불과했다. 지난 KGC전에서도 3점슛을 23개나 시도했으나 림을 가른 것은 겨우 6개에 지나지 않았다. 김민구-전준범-김상규 등 모비스에서 슛을 책임져야할 선수들의 자신감이 많이 떨어진 모습이다.

숀 롱(13.2점 .7.2리바운드)의 기복도 아쉽다. NBA 필라델피아 세븐티식서스와 휴스턴 로키츠에서 뛰었고, 지난 시즌까지 호주리그에서 정상급 빅맨으로 활약하며 거물급 외인으로 기대를 모았던 롱은 최근까지 부상의 영향인지 들쭉날쭉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개막 2경기에서 한 자릿수 득점으로 부진했던 롱은 LG전에서 21점 6리바운드로 첫 승을 이끌었지만 오리온전에서는 다시 8득점 8리바운드에 그쳤다. KGC전에서는 비록 팀은 패했지만 24점 15리바운드로 올시즌 첫 20-10을 기록하며 다시 좋은 모습을 보였다.

공격적인 능력은 확실하지만 장단점이 뚜렷한 편이다. 착화신장 208cm의 장신임에도 골밑에서 자신보다 높이가 낮은 빅맨들을 압도하지는 못하고 있다. 오리온전에서는 자신보다 10cm 이상 작은 리온 윌리엄스(196cm)에게도 의외로 파워에서 밀려 고전하는 모습을 보였다. 롱이 슈팅 범위가 넓은 선수라고 하지만 페인트존에서 확률 높은 장악력을 더 보여줘야 국내 선수들이 활용할 공간이 더 넓어진다. 수비 상황에서도 활동범위 자체는 넓지만 모비스의 수비 전술에 대한 적응도가 떨어져서 2대 2 수비 상황에서 위치선정에 종종 문제를 드러내고 있다.

유재학 감독은 일단 롱의 출전시간을 조절하며 인내심을 가지고 기다려주는 모습이다. 2옵션 외국인 선수 자키넌 칸트가 17.6점, 7.2리바운드로 기대보다는 잘해주고 있지만, 경기를 승리하기 위해서는 에이스로 기대했던 롱이 더 팀의 중심을 잡아줘야한다.

'3쿼터 미스터리'도 모비스가 풀어야할 숙제다. 유재학 감독도 지적했듯이 모비스는 올시즌 3쿼터 평균 득점이 불과 13.8점에 그치며 다른 쿼터(1쿼터 21.2점, 2·4쿼터 22.4점)에 비하여 유독 떨어진다. 올시즌 모비스는 3쿼터에 20점 이상 넣은 경기가 아직 전무하다. 지난 KGC전에서도 3쿼터에 10점에 그치는 동안 상대에 무려 25점을 내주며 대등하던 경기흐름을 한순간에 내주는 등 이상하리만큼 경기가 풀리지 않는 상황이 반복되고 있다. 꼭 특별한 원인이 있는 문제라기보다는 심리적인 징크스에 가까운 부분이다.

굳이 이유를 찾자면 모비스가 안정적인 베스트 멤버 조합을 아직 구축하지 못한 것과 관련이 있어 보인다. 모비스는 최근 몇 년간을 통틀어 올시즌 선수구성이 가장 큰 폭으로 바뀌었다. 엔트리 12명을 고르게 활용하고 10명 이상이 10분 이상을 출장할 정도로 주전과 벤치의 구분이 줄어들었고 선수들간의 손발도 아직은 매끄럽지 않다.

공격과 수비 조합에서 모두 확실한 '계산'이 서지않으니, 전반에 잘 풀리던 경기력도 후반이 되어 180도 달라지는 일이 생길 수밖에 없다. 3쿼터 부진이 득점과 슛 성공률에 국한된 문제라면, 4쿼터까지 포함하면 후반 승부처에서 수비가 급격히 무너지는 패턴의 반복이 모비스의 부진에 더 치명적으로 작용하고 있다.

결국은 은퇴한 양동근의 공백이 가장 두드러지는 부분이기도 하다. 양동근은 기복 없는 개인성적은 물론이고 팀이 어려울 때마다 경기운영과 해결사 역할에 이르기까지 사실상 '코트의 감독' 노릇을 수행하며 모비스의 중심을 잡아주곤 했다. 개성 강한 외국인 선수들조차도 양동근의 지휘를 존중하고 따를 정도였다. 공격이 안 풀리면 수비에서라도 앞선에서부터 상대 가드를 악착같이 압박하는 양동근의 근성이 선수단의 사기까지 덩달아 올려주곤 했다.

보여지는 기록이나 포지션 측면은 다른 선수들로 메울 수 있지만, 당장 양동근의 노련한 리더십과 악착같은 파이팅까지 대체할 만한 선수는 아직 보이지 않는다. 함지훈도 어느덧 노장이고 이적생인 김민구나 장재석은 자신에게 주어진 역할을 수행하기도 벅차보인다.

유재학 감독으로서는 모비스가 후반만 되면 상대에게 흐름을 내주고 급격하게 흔들리는 상황이 반복될 때마다 양동근의 빈 자리가 더욱 그리울 수밖에 없을 것이다. 단기간에 극복되기는 어려운 고민이다. 과연 시간은 모비스를 위한 해답이 되어줄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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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산현대모비스 유재학감독 숀롱 양동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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