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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을 사색의 계절이라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덥지도 춥지도 않은 쾌청한 날씨가 이어지는 때라, 그동안의 조급함은 잊고 차분히 자신을 들여다보기에 적당한 계절이라는 의미일 것이다.

그런데 학원 강사인 내게 가을은 더도 덜도 없이 딱 '기말고사의 계절'이다. 사색은커녕, 산더미같이 쌓인 교재와 프린트물 속에서 씨름 하다 보면 눈코 뜰 새 없이 하루가 간다. 그래서 내게 가을은 먹어도 먹어도 배고픈, '식욕의 계절'이기도 하다.

학원 강사에게 가을은, 식욕의 계절
 
 점심 메뉴로 돈가스가 나올 때면, 나는 세상에 이렇게나 많은 돈가스가 있다는 데 놀라곤 한다.
 점심 메뉴로 돈가스가 나올 때면, 나는 세상에 이렇게나 많은 돈가스가 있다는 데 놀라곤 한다.
ⓒ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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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부터 쉬지 않고 이어지는 수업 때문에 요즈음 나는 끼니 때를 놓치기 일쑤다. 그러다가 수업 도중 배에서 꼬르륵하는 소리가 나면, 그제야 비로소 '밥심'이란 말이 떠오르면서 정신이 번쩍 든다. '밥심'이라는 말이 주는 든든함, 뜨뜻함에 기대서 불쑥 나도 모르게 이런 말이 튀어나오는 것이다.

"그래, 다 먹고 살자고 하는 일인데 일단 밥부터 먹자."

그런데 밥을 먹기에 앞서 나 역시 대한민국의 여느 평범한 직장인들처럼 똑같은 고민에 빠질 수밖에 없다. 다름 아닌 직장인들의 영원한 난제, '대체 오늘 점심은 뭘 먹지?'가 바로 그것이다.

사실 나는 출근을 하지 않는 날엔 보통 느지막이 일어나서 첫 끼를 먹는다. 첫 끼를 먹는 때가 오후 두 시일 때도 있고 세 시일 때도 있다 보니 세 끼를 다 챙겨 먹은 것이 언제인지 기억도 안 난다. 그런데도 꼭 출근만 했다 하면 '끼니'에 이토록 민감해지는 이유는 대체 뭘까?

그런데 최근 기말고사가 임박해 오면서 이제 나는 더이상 점심 메뉴를 두고 고민할 필요가 없어졌다. 쉬는 시간 15분 안에 점심을 후다닥 먹어 치우지 않으면, 꽉 차 있는 수업 스케줄을 소화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요즘 내가 일하는 학원의 점심 메뉴를 결정하는 것은 순전히 상담실 직원의 몫이 되었다. 결국, 근래 나의 점심 메뉴는 늘 '복불복'이다.

덕분에 점심 메뉴 결정권을 쥔 직원의 노고가 이만저만한 것이 아니다. 한 사람 한 사람의 입맛을 모두 맞출 수는 없기 때문이다. 국물을 시키자니 치우는 것이 번거롭고, 면을 시키자니 수업이 길어지면 불기 마련이고, 너무 맵거나 기름진 것은 호불호가 나뉠 것이 뻔하다. 그럴 때 제일 만만한 것이 하나 있는데, 바로 돈가스다.

점심 메뉴로 돈가스가 나올 때면, 나는 세상에 이렇게나 많은 돈가스가 있다는 데 놀라곤 한다. 기본에 충실한 일반 돈가스에서 치즈 돈가스, 고구마 돈가스, 그 둘을 합친 치즈 고구마 돈가스, 매운 돈가스, 카레 돈가스… 딱히 입맛이 까다롭지 않은 나는 그중 무엇을 시켜주어도 남김없이 다 잘 먹는 편이다. 그런데 사실 속으로는 조금 아쉽다. 고백하자면, 나는 돈가스라면 일가견이 있는 사람이다.

90년대 그 시절, 내가 사랑한 '돈까스'
 
 고백하자면, 나는 돈가스라면 일가견이 있는 사람이다.
 고백하자면, 나는 돈가스라면 일가견이 있는 사람이다.
ⓒ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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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어렸을 때, 엄마는 '경양식 집'을 해서 나와 오빠를 키웠다. 80년대 말에서 90년대 초중반, 어린 시절을 보낸 사람이라면 누구나 기억할 것이다. '돈까스'를 주문하면, 직원이 으레 "빵으로 드릴까요? 밥으로 드릴까요?" 물어오던, 추억의 장소를 말이다. 그 시절, 우리가 사랑한 것은 '돈가스'가 아닌 '돈까스'였다.

90년대 초반 내가 '국민학교'에 다니던 때, 나는 학교가 끝나면 곧장 엄마가 있는 가게로 달려가야 했다. 집에는 어린 내 끼니를 챙겨줄 사람이 아무도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테이블마다 장미꽃 한 송이가 꽂힌 꽃병이 놓여있던, 그 어두컴컴한 어른들의 세계에서 숙제를 하고, 그림을 그리고, 동화책을 읽고, 그러다가 엄마가 만들어주는 '돈까스'를 먹었다.

접시를 가득 채울 만큼 크고 넓적한 고기 위에 끼얹어진 연갈색 소스와 한쪽에 동그랗게 담긴 마카로니, 단무지, 양배추 샐러드가 딸려 나오던 그 먹음직한 '돈까스'가 아직도 나는 생생하다. '나를 키운 것은 팔 할이 바람이다'는 유명한 시구를 패러디 해보자면 나는 나의 어린 시절을 이렇게 정의할 수 있을 것 같다. '나를 키운 것은 팔 할이 돈까스였다'고.

막 나온 '돈까스'를 칼로 썰면, 바삭하게 잘 튀긴 고기일수록 '스삭스삭' 하는 소리가 선명하게 들린다. 적당한 크기로 썬 그것을 하나 포크로 콕 찍어 입에 넣으면 입안 가득 퍼지던 고소하고 기름진 맛이라니.

우리가 요즘 흔히 접하는 '돈까스'란 대부분 주방에서 미리 썰어놓은 고기를 미지근한 소스와 각각 다른 접시에 따로 내어 주는 '일본식 돈가스'다. 점심시간에 맞추어 학원에 배달되어오는, 일회용 도시락 용기 속에 가지런히 놓인 그 돈가스를 보면서 내가 아쉬워 하는 것은 바로 그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가끔 인터넷에 '옛날 경양식 돈까스'를 검색해 보곤 한다. 집 근처에 괜찮은 곳이 있다면 시간을 내서라도 꼭 한 번 가볼 심사로 말이다. 그런데 그렇게 가본 곳 중에 내 입맛을 만족시킨 곳은 한 군데도 없었다.

소스 색깔은 너무 진하고, 크기는 내 기억 속의 그것보다 적어도 삼 분의 일은 줄어든 모양새라 실망한 때가 더 많았다. 게다가 인테리어도, 흘러나오는 음악도 너무 세련되었다는 사실 역시 내게는 불합격 요소다.

그 시절, 나를 설레게 하던 '돈까스'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요즘같이 바쁠 때는 더 생각이 난다. 엄마가 만들어주시던 그 크고 촌스러운 돈까스가. 생각난 김에, 바빠서 당분간 고향 집에 못 내려가겠다는 투정 어린 문자를 보냈더니 우리 엄마 하시는 말씀이 명언이다.

"남의 돈 벌기가 어디 쉽겠니?"

남의 돈을 벌며 사는 게 녹록지 않아서, 사무치게 그리운 것들을 느긋하게 그리워할 여유마저 놓치고 사는 것 같아 아쉬운 마음이 드는 하루다.

'기말고사의 계절'을 무사히 지나고 나면, 고향 집에 내려가서 엄마한테 이것도 먹고 싶고 저것도 먹고 싶다고 좀 칭얼거려 봐야겠다. 무엇보다 삼십 년 전 어린 나를 감동시켰던 그 '돈까스'의 비법을 아직도 기억하시느냐고 넌지시 물어봐야겠다.

여전히 '돈까스'라는 말을 뱉으면 입안에 가득 침이 고이는 나는, 대체 언제쯤 어른이 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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