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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80년대 고 김근태 의원, 고 박종철 열사 등 많은 민주인사들을 고문해서 악명 높았던 서울 용산구 옛 남영동 대공분실(현 경찰청인권보호센터)에서 2018년 12월 26일 오후 이관식 ’민주인권기념관으로 다시 태어납니다’가 열렸을 당시. 사진은 고 박종철 열사가 물고문을 받고 사망한 509호실.
▲ 남영동대공분실에서 "민주인권기념관"으로 1970-80년대 고 김근태 의원, 고 박종철 열사 등 많은 민주인사들을 고문해서 악명 높았던 서울 용산구 옛 남영동 대공분실(현 경찰청인권보호센터)에서 2018년 12월 26일 오후 이관식 ’민주인권기념관으로 다시 태어납니다’가 열렸을 당시. 사진은 고 박종철 열사가 물고문을 받고 사망한 509호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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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영동 대공분실'은 그 시절을 함께 살았던 사람들 대부분의 몸 안 어딘가에 눌러 붙어있는 장소다. 특히 당시 '운동권' 사람들 모두, 끌려가서 당한 사람은 더더욱, 치가 떨려 기억은 고사하고 말로라도 소리 내고 싶지 않거나, 너무나 할 말이 많지만 가슴부터 벌렁거려 숨이 가빠오거나, 언젠가는 한바탕 기억과 말을 끄집어 올려 쏟아내야 허파 속 깊은 곳까지 숨길이 뚫릴 것 같은, 분열과 치욕의 단어다.

남영동 대공분실은 지리적 위치가 아닌 심리적 덩어리다. 검고 외지고 먼 어디지만 불투명해서 오히려 속이 빤히 보이는, 확연한 공포다. 느닷없이 쳐들어와 누군가를 아니 누구라도 체포(逮捕)해서 들어내 실어다 처박아버리면, 고스란히 당할 수밖에 없는 불가항력이다.

살아 돌아온 사람도 도무지 경로를 모르는, 아마 거리와 골목들과 세상이 끝난 막다른 벽이고, 하여 각자 속 절벽이다. 명칭과 소리의 무게만으로 지금도 누군가는 뇌와 심장이 얼거나 피가 치솟아 혼과 몸이 나자빠지는, 너무 밝아 깜깜하고 속수무책으로 춥고 무더운 무저갱이다.

남영동 대공분실은 전철 남영역을 나와 오른쪽 바로 옆 골목 안쪽 약 100미터 지점이고, 뒷마당은 철로와 이어져 있다. 내 중학 시절 3년을 지나다닌 길 바로 옆이고, 지금 사는 곳에서 걸어 10분 거리이며, 빵집과 순대국밥 집과 김밥 집 근처 호텔 앞이다. 재작년 처음 간 날 그 위치가 너무 천연덕스러워 기가 차고 서러웠다.

말의 세계에 감금된 것들... 여성서사로 본 국가보안법
 
'말의 세계에 감금된 것들_여성서사로 본 국가보안법' 온라인 전시 페이지 첫 화면.
 "말의 세계에 감금된 것들_여성서사로 본 국가보안법" 온라인 전시 페이지 첫 화면.
ⓒ 민주인권기념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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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국해양연구소'라는 간판으로 위장했더라는 그곳의 새 이름은 '민주인권기념관'이다. 올해로 제정 72주년이 된 국가보안법의 폐지 캠페인을 위해 '국가보안법을 박물관으로' 전시회 추진위원회가 꾸려졌고, 추진위원회와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가 공동으로 전시회 <말의 세계에 감금된 것들_여성 서사로 본 국가보안법>을 개최하고 있다. 코로나 19의 여파로 한동안 온라인(VR) 전시로 이어지다가 9월말부터 10월 18일까지 다시 현장 전시도 병행하게 됐다(온라인 전시(클릭) : https://www.dhrm.or.kr/online-exhibit)

그 시절의 국가폭력과 희생을 기억하기 위해 민주인권기념관은 당시의 외부와 내부 건축구조를 최대한 그대로 살려놨다. 철 대문을 들어서자 바로 보이는 중앙정원에는 12개의 문이 설치물로 전시돼 있다. 

건물 5층 조사실들마다 있는 문을 상징하는 그 설치물은, 세상과 국가권력과 이웃과 각자의 내면들 사이에서 열리고 닫히고 잠그고 두드리는 문이기도 하다. 문마다에는 웅얼거리거나 혹 악다구니를 하는, 지금도 여전히 절망이어서 아직도 갈구하는 12개의 질문들이 적혀 있다. 
 
"진실은 어둠을 이길 수 있나요?" "상처는 어떻게 안아줄 수 있나요?" "이 세계에서 어떻게 살아가야 하나요?" "모든 권력은 어떻게 국민으로부터 나오나요?"...

모든 문은 경계다. 열거나 닫거나 잠그거나 두드려, 바깥이나 안을 향한 태도와 실천을 정하고 알리는 통로다. 전시관으로 사용되고 있는 본관 외부 옥상에는, 1990년 '국가보안법 철폐'라는 팻말을 들고 1인 시위를 하던 한 여성의 보도 사진이 설치물로 전시돼 있다.

전시관 1층 뒷문에서 시작해 조사실(고문실)들이 복도 양옆으로 늘어선 5층을 향해 허공으로 둥글게 말아 올라가는 철 계단은, 보는 것만으로도 눈과 손을 묶인 채 그곳을 끌려올라가던 이들의 공포가 엄습한다. 그리고 박종철과 김근태의 방이 따로 크게 꾸며져 있던 5층에, 11명의 '불온한' 여자들, 고애순, 권명희, 김은혜, 김정숙, 배지윤, 안소희, 유가려, 유해정, 정순녀, 유숙렬, 양은영의 방들이 만들어졌다.

화장실과 수도가 딸린 방안에는 사진과 함께 그녀들의 말들이 가득 차, 뒤늦게라도 귀 기울여 경청할 사람들, 국가보안법을 잘 아는 사람들뿐 아니라 아직 잘 모르는 후세대들을 기다리고 있다.

남성 피해생존자가 아닌 여성들의 경험과 기억과 말로, 국가보안법과 그 시절과 지금을 낯설고 새롭게 만나자는 것이다. '공백과 부재로 남아있던' 국가보안법 체제 속 여성들의 삶, 국가보안법 폐지 운동 속 여성들의 위치와 조건을 '다시 다르게 말하며', '여성의 시선으로 기억과 역사를 새롭게 구성'하는 전시다.

11명 피해생존자 여성들의 구술 중 일부를 배우 문소리와 조민수, 소설가 정세랑과 황정은, 영화감독 김일란과 임순례, 래퍼 슬릭, 가수 요조, 문학평론가 손희정, 세월호 참사 희생자 고 김시연의 어머니 윤경희, 변호사 이상희가 받아 녹음했다.

전시회 명칭과 동일한 제목의 책 <말의 세계에 감금된 것들_여성 서사로 본 국가보안법>(출판사:오월의 봄)으로도 출간됐다. 구술 작가단의 홍세미, 이호연, 유해정, 박희정, 강곤이 11명의 피해생존자 여성들을 인터뷰해 얻은 구술을 정리해 기록했고, 사진은 사진작가 정택용이 맡았다.

국가보안법에 붙들려 산 삶

한편, 그 방들 바깥에서도 수많은 여자들과 남자들이 국가보안법에 붙들려 살았다. 1957년생인 나는 1964년에 '국민학교'를 입학해 1980년 2월에 대학을 졸업했다. 내 학창시절 전부를 고스란히 박정희 치하에서 산 거다. 어리고 젊은 시절에 대한 기억 구석구석에 남아 아직도 시작만 하면 끝까지 줄줄 외워지는 국민교육헌장과 국기에 대한 맹세는, 블랙코미디 영화의 한 장면이다. 극장에 가면 모든 영화 상영 전 '국민의례'라는 이름의 일동 기립과 국기에 대한 배례와 애국가제창이 치러졌고, "박정희 대통령 각하께서는"으로 시작하는 '대한 늬우스'는 그 국민들의 귀에 죽을 때까지 박혀있다.

산아 제한 시절 속 내 20대 중반, 소파수술이라고 부르던 임신중지 수술을 공짜로 받기 위해 산부인과 수술대 위에서 마취 상태로 빠져들던 중, 환청으로 수술실 전체에 울렸던 노래가 애국가라니.

국민의 생각과 말과 삶의 틈바구니마다 국가보안법이 스며들어, 세세히 알지도 못하는 법의 기준과 꼬뚜리에 자타의 일상을 검열하고 감시하는 습(習)이 모두에게 생겨버렸다. 혹은 주변 누군가라도 끌려가면, 으레 도청당하려니 싶은 집과 사무실을 나와 입모양과 손짓으로 서로를 단속하고, 요행이 피한 나를 자책하며 '아, 이러고 사느니 차라리 잡혀갈 짓을 저질러버릴까, 내 발로 경찰서를 찾아가 버릴까, 아니면 몸에 불을 질러 단말마의 함성이라도 지르고 죽어버릴까' 괴로워했다.

그러니 안에서도 밖에서도 갇혀 죽은 듯 버텼고, 죽음을 열망하며 싸우다 제 몸을 불사르거나 줄줄이 떨어져 죽는 주검들을 쫓아 수습하고 사수하고 초상을 치르며, 차라리 갇힌 사람들이 부럽다고도 했고, 잡히면 이제 좀 쉬겠구나 싶기도 했다. 혹은 그 법에 갇혀 싸우느라 혹 자신의 신념에도 갇힌 듯 보이는 사람들에 충분히 동의하지 않더라도, 국가보안을 이유로 자유로운 생각과 몸을 가두고 진실을 왜곡하는 국가권력에는 더욱 동의할 수 없어 함께 싸웠다.
 
1970-80년대 고 김근태 의원, 고 박종철 열사 등 많은 민주인사들을 고문해서 악명 높았던 서울 용산구 옛 남영동 대공분실(현 경찰청인권보호센터)에서 2018년 12월 26일 오후 이관식 ’민주인권기념관으로 다시 태어납니다’가 열렸었다. 잡혀온 민주인사들은 1층에서 5층으로 곧장 올라가는 철제 나선형 계단을 이용하게 되며, 시끄러운 계단 소리와 구분되지않는 층간 높이때문에 위치 감각을 상실하게 된다. (어안렌즈 사용해서 벽면이 휘어보임)
▲ 민주인사 위치감각 상실하게 만든 나선형계단 1970-80년대 고 김근태 의원, 고 박종철 열사 등 많은 민주인사들을 고문해서 악명 높았던 서울 용산구 옛 남영동 대공분실(현 경찰청인권보호센터)에서 2018년 12월 26일 오후 이관식 ’민주인권기념관으로 다시 태어납니다’가 열렸었다. 잡혀온 민주인사들은 1층에서 5층으로 곧장 올라가는 철제 나선형 계단을 이용하게 되며, 시끄러운 계단 소리와 구분되지않는 층간 높이때문에 위치 감각을 상실하게 된다. (어안렌즈 사용해서 벽면이 휘어보임)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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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비쿼터스의 역설

그런데 지금, 그 피해생존자들 중 일부가 소위 촛불 '혁명' 운운하며 정권을 잡아 세운 문재인 정부 역시 신자유주의와 재벌의 정책부서라는 점에서는 더 수구적인 정권과 별반 차이도 없다. 갈수록 노동자와 빈민과 소수자들은 더 밀려나고 있고, 국가보안법 사범임을 레떼르 삼은 고위 인사들에 의한 여성에 대한 성폭력이 끊이지 않으며, 현 정부에서 국가보안법은 여전히 살아 583명이 입건되고 41명이 기소됐다. 

게다가 시민들은 그 시절 안과 밖을 살아낸 각자의 기억과 말을 뒤로 하고 근로자와 소비자와 납세자로 자본과 국가에 붙들려 빌어먹으며 사느라 시민권을 야금야금 내주다가, 급기야 코로나19 팬데믹을 맞아 방역과 긴급이라는 새로운 '국가보안'을 위한 국민감시법(개인정보법, 신용정보법, 정보통신망법)에 의해 CCTV, 신용카드사용내역, 휴대전화 위치추적과 통화지역추적, 전자출입명부(QR코드)와 무선인식(RFID), 택시미터기 등에 내 돈과 손으로 시민권을 마저 털어주며 살고 있다.

언제 어디서나 자유롭게 접속할 수 있는 유비쿼터스는, 언제 어디서든 감시와 밀고와 폭로의 장을 만들며, 폭압적이고 강제적인 '근접감시'(over the skin)의 시대를 넘어 유연하고 세세한 '밀착감시'(under the skin)의 시대를 살고 있다.

남영동 대공분실 5층 그녀들의 기억과 경험과 뒤늦은 말에 2020년 지금 제대로 응답하기 위해, 우리는 어디에 방어선을 치고 반격을 시작해야 할 것인가?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를 쓴 최현숙씨는 구술생애사 작가로 <할배의 탄생> 저자입니다.


태그:#국가보안법, #여성, #국가폭력, #민주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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