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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나이가 많았어요."

박택운씨(남, 가명)는 대학교 비정규직 청소업무에 지원했다. 필기시험은 없고 체력 테스트로 당낙이 결정되었다. 박택운씨는 줄넘기와 물건 들고 달리기에서 월등한 점수를 받아 합격했지만, 학교 측에 주민등록 등본을 제출하자, 나이가 많다며 합격을 취소했다. 박택운씨 나이는 68세이다.

박택운씨는 억울했다. 체력 테스트 결과, 자기보다 어린 사람보다 월등했는데, 나이가 많다는 이유로 입사가 좌절됐기 때문이다. 개인의 특성, 직업 적합도는 고려하지 않고 나이로 사람을 구분 짓는 게 잘못이라는 생각에 이르렀다.

박택운씨는 돈을 벌어야 한다. 큰아이는 대학원 박사과정을 밟고 있다. 둘째는 아직 취업 하지 못하고 아르바이트를 전전한다. 큰아이 학자금과 두 자녀의 결혼자금을 준비하려면 은퇴했다고 일을 쉴 형편이 아니다.

박택운씨는 젊은 시절 중국집을 10여 년 운영했다가 망했다. 그 이후 인생 이모작을 위해 사회복지를 공부하고 자격증도 따고 현장에서 노인을 돌보거나 상담 일을 하다가 60이 되자 정년으로 퇴직했다. 중국집을 운영할 때는 4대 보험에 가입하지 않았고, 그나마 사회복지 현장에서 일하는 동안 가입한 국민연금이 있었지만, 액수가 얼마 되지 않았다. 퇴직 후에도 건강했기에 재취업을 시도했지만 번번이 좌절했다.

사람이 나이가 들어서 어떤 일에서 퇴직하는 것은 노화 과정에서 자연스러운 일이지만, 강제적 떠남이라는 의미도 있어 노인들에게는 불안과 긴장을 가져오는 사건이다. 퇴직은 노인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가족, 집단, 사회로 연결된다. 퇴직한 노인들은 자녀들의 부양에 의존하든가, 국민연금, 기초연금, 사회보장 등 노인복지에 기대든지, 아니면 고용안정을 통한 노동시장에 계속 머물러야 생존이 가능하다.

생존 가능한 방법 중 자녀에게 부양받는 것은 사회문화의 변화와 자녀들도 자기 한 몸 먹고 살기 힘든 시대여서 기대하기 어렵다. 복지에 의존하는 것은 재정 부담으로 오히려 노인들이 재정만 축내는 사람으로 인식되어, 혐오 대상이 될 수 있다. 결국 노동시장에 오래 잔류하는 것이 유일한 생존법이다. 스스로 정신과 육체를 잘 관리하고, 법으로 정년제가 없다면 가능하지 않을까!

노동시장에서 차별

박택운씨는 육체적 정신적 요인보다 연령이라는 규정에 따라 사회적 관계 및 활동능력을 상실했다. 박씨는 사회복지 일을 하면서 한 번도 일 못 한다는 소리를 듣지 않았다. 지역 기초자치 단체장 상과, 복지기관의 표창장도 받았다. 하지만 연령 등급화를 통해 건강하지 못하거나 무능한 노동자를 배척한다는 정년 퇴직제도 때문에 활동 공간을 잃었다.

이 경험은 다시 노동시장에 재진입 과정에서도 차별로 다가왔다. 전에 했던 일을 하고 싶었다. 노하우도 있었지만, 할 수가 없었다. 퇴직한 박택운씨에게는 아파트 경비, 청소 같은 단순 노무직 밖에 주어지지 않았다. 그렇지 않으면 월 27만 원 받는 노인 일자리가 전부다. 고용 차별, 직종 차별이 이런 게 아닐까?

박택운씨는 재취업과정에서 고령자 적합 직종이 있다는 걸 알았다. 고령자 적합 직종이란 상대적으로 힘이 덜 들고 고령자가 수행해도 생산성 차이가 적다고 판단되는 직종이다.

박택운씨는 이 일을 선택할 수 없었다. 자신이 벌어야 하는 돈에 비해 임금이 낮았기 때문이다. 자기가 하고 싶은 일도 아니었다. 이 직종들은 단순 노무직에 치우쳐 있다. 예를 들면 주유원, 주차장 관리원, 주정차 위반 단속원, 수금원 공원관리원, 안내, 수위, 조경관리원, 건널목 관리원, 일반 포장원 , 간병인 등이다.

고령자의 과거 노동경력을 고려하지 않은 채 임시, 비정규직 확대에 그치는 고령자 적합 직종은 생애 동안 지속되어온 노동 경력을 활용할 수 있는 방향으로 전환되지 않는 한 폐지해야 한다. 노인이 재취업 상담을 하면 상담사들은 고령자 적합 직종으로 몰아대고, 권유하고 촉진하는 것 자체가 개인의 특성을 고려하지 않은 차별이다. 나이로 인한 차별 말이다. 고령자 적합 직종은 연령으로 고용 차별, 직종 차별을 공고히 하는 결과를 가져온다.

노인들에게 주어지지 않는 기회의 형평성

박택운씨는 학력, 경력, 근속의 차이에 의해 발생하는 임금 격차는 받아들이지만, 성, 지역, 인종, 연령 등에 불리한 제도나 관행에 의한 임금 격차는 받아들일 수 없다고 한다. 박씨는 사회복지 일에 다른 사람들보다 생산성이 뒤떨어지지 않을 자신이 있지만, 그에게 주어진 기회는 고령자 적합 직종이라는 단순, 노무직뿐이다.

나이는 사람의 정체성을 구성하는 수많은 요인 중 하나에 불과하다. 연령만으로 노동시장에서 퇴출을 강요하는 것은 각 개인의 차이에 대한 정보를 놓친다.

박택운씨는 "나이가 든다는 것은 부정적인 게 아니다. 문제는 나이듦과 쓸모없음을 동일시하는 게 문제다"라고 말한다.

노인은 생산성이 낮다고 생각하는 편견. 당신 말고도 일하려는 노인 쌔고 쌨다는 사회 인식. 노인에게 제공되는 일자리는 시혜적이라는 고정관념도 차별이 존재하게 만드는 중요한 요인이다.

한국노인인력개발원에서 2018년 설문조사를 했다. 60세 이상 노동자와 근무한 경험이 있는 사람을 대상으로 60대 이상 노동자에 대한 인식이 어떻게 바뀌었는지를 알아보기 위해서였다. 조사 결과 매우 긍정적으로 바뀌었다는 응답이 57%에 달했다. 60세 이상의 노동자는 성실성, 책임감이 높고, 기술 및 경험 전수, 전문성 측면에서 긍정적이라고 평가했다.

60세 이상과 같이 근무하는 노동자의 연령 주의가 가장 낮고, 과거에 60세 이상 노동자와 함께 근무한 경험이 있는 사람이 다음이고, 한 번도 같이 일해본 경험이 없는 사람에게 연령 주의 편견이 높게 나타났다. 노인 노동자와 자주 접촉한 사람은 노인 노동자를 긍정적으로 인식한 것이다.

연령차별은 개인의 개성과 장점을 평가하지 않는다. 연령에 따라 판단함으로써 능력 있는 사람을 활용치 못해 사회의 경제적 부를 감소시킨다. 또한 건강한 노인을 노동시장에서 조기에 퇴출해 사회보장제도의 안정적 운영을 어렵게 하고 사회적 비용을 증가시킨다.

박택운씨는 '늙었으니까, 퇴직했으니까'라는 이유가 자기가 노동시장에서 밀려나야 할 합리적인 이유일 수 있을까? 라고 묻는다. 노인을 만나는 노인복지 현장에 다시 취업하려고 해도 나이가 많으면 일을 시켜 먹기가 어렵다며 사회복지 기관들은 나이 많은 사람 채용을 꺼린다. 모집 시에 나이 제한을 두지 않지만, 서류전형에서 나이가 많으면 젖혀 놓는 게 현실이다. 현실은 합리적인 이유와는 거리가 멀다.

박택운씨가 말하는 합리적 이유란? 차별금지 관점뿐 아니라 적극적 고용정책 관점도 함께 고려해야 한다는 말 아닐까. 퇴직제도가 박택운씨를 노동시장에서 밀어내야 하는 합리적 이유일 순 없다. 연령 등급에 의한 차별일 뿐이다.

 

덧붙이는 글 | 격월간 비정규 노동에 10월호에도 실립니다.


태그:#노인연령, #정년제폐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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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 세대에게 존경받는 노인이 되는게 꿈. 꿈을 실천하기 위해 노인들과 다양한 실험을 진행중인 남자. 세대간 연대를 위해 청년세대의 주거 안정, 생활지원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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