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13 18:23최종 업데이트 20.10.13 18: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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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 1년이라도 편히 살다 가고 싶습니다. ⓒ 송성영

 
선무당이 사람 잡는다는 말도 있지만 암환자가 되면 돈에 눈 먼 어지간한 돌팔이 의사보다 암에 대해 잘 알게 된다고 합니다. 암은 생사가 걸린 중병이기에 그만큼 적극적으로 대처한다는 것이지요. 나 또한 암 관련 서적이나 인터넷 정보를 접할수록 병원의 '3분 진료' 의사들에게서는 들을 수 없는 암의 실체에 대해 좀 더 깊이 있게 알게 되었습니다.

다양한 암 관련 서적을 통해 나름 암 치료에 대한 대략적인 실체를 파악, 수술을 거부하기로 결심하는 과정에서 내 생각과 근접한 책을 발견했습니다. <암, 생과 사의 수수께끼에 도전하다>(청어람 미디어)라는 책입니다. 저자는 일본의 유명한 저널리스트이자 최고의 지식인으로 손꼽는다는 다치바나 다카시. 방광암 수술을 받은 그는 암 관련 자료를 철저하게 수집 분석하여 이 책을 통해 암과 생명의 본질을 정면으로 파헤치고 있습니다.

과학적 자료와 세계 최고의 암전문가들의 입을 통해 '현대의 의학으로는 암은 불치병'이라 결론을 내리고 있는 그는 일본인 특유의 어법으로 조심스럽게 말합니다.
 
"암을 대하는 올바른 자세는 '암과 끝까지 싸운다' 가 아니라 '암과 공생한다'고 할까. 적당한 관계를 유지한다는 것은 암이 흉포하게 날뛰지 않도록 조심하면서, 동시에 암을 철저하게 타도해서 완치하겠다는 생각도 하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병세가 빠르게 악화되는 진행 암이 되지 않도록 노력하지만 깨끗한 치료도 요구하지 않으며 그저 증상이 악화도 개선도 되지 않는 안정 상태 (종양이 커지지도 작아지지도 않는 불변상태)에 만족한다는 것입니다. 이 점에 대해서는 나와 인생관이나 가치관이 다른 사람도 있을 수 있습니다. 나는 생각이 다릅니다. 끝까지 싸우겠다고 반발하는 사람도 많겠지만 여하튼 나는 현재 그렇게 생각함을 말해둡니다." - <암 생과사의 수수께끼에 도전하다. 28쪽>

나는 이 말에 전적으로 동감합니다. 하지만 무지하면 용감하다고 나는 그보다 한발 더 앞서 나가기로 했던 것입니다. 그는 방광암 수술을 받았지만 나는 위암 전절제 수술을 거부하기로 한 것이지요. 수술과 항암치료는 암과의 공존이 아니라 암과의 처절한 싸움이기 때문에 죽는 그날까지 암과 함께 살아가기로 했습니다. 누구는 황당무계한 궤변이라 하겠지만, 단 하루라도 편히 살다가 세상을 뜨는 것이 당사자인 나뿐만 아니라 두 아들을 비롯한 주변 사람들 또한 고통을 덜 받을 수 있는 현명한 선택이라 여겼습니다.

"수술 하지 않으면 어쩌시려고?"
 

"수술 하지 않으면 어쩌시려고?" ⓒ 송성영

 
수술을 포기하기 전에 이미 서울 큰 병원을 통해 받아 왔던 한 달 치 위장약을 하루치만 먹고 팽개쳐 버렸습니다. 혈변과 함께 쓰러지기 전, 가끔 속이 쓰려 이런저런 위장약을 몇 차례 복용했는데 먹을 때뿐이지 별 효과가 없더군요. 오히려 위장약을 복용할수록 속 쓰림이 좀 더 악화되고 있다는 느낌을 떨쳐 버릴 수 없었습니다.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속이 쓰릴 때마다 민간요법으로 공복에 생감자를 갈아 마시는 것이 위장약보다 편했습니다. 어쨌든 약이나 병원을 내려놓고 나니 속이 후련했습니다.

그럼에도 의학적 근거가 빈약한 이 황당한 결심을 수술 후 완치 될 것이라 굳게 믿고 있는 두 아들에게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참으로 난감했습니다. 그래도 어쩌겠습니까. 고심 끝에 아이들을 불러 앉혔습니다. 암 판정을 받은 지 대략 열흘만이었습니다.


"아빠 수술 접어야겠다."
"엥? 그게 뭔 소리여!"
"수술 안 한다고."
"수술 한다 했잖어? 수술 하지 않으면 어쩌시려고?"
"자연요법으로 대신하려고."


나는 녀석들을 설득하기 위해 수술과 항암제 등의 부작용과 5년 생존율에 대한 문제점 등을 나열했고, 녀석들 역시 책이나 인터넷 검색 등을 통해 나름 습득한 일반적인 정보, 암 산업에서 흔히 말하는 수술하지 않으면 죽고 수술하면 살 확률이 높다는 것, 위를 전부 잘라내고도 끄떡없이 일상생활을 하는 사례들을 나열하며 아빠를 설득하려 했습니다.

"에이참, 아빠! 왜 그래 불안하게... 말기라면 우리도 아빠 뜻에 반대하지 않지만 중기라서 수술하면 얼마든지 살 수 있다잖어. 그리고 좋은 항암제도 많이 나왔다는데... 현대의학을 너무 부정적으로만 보는 것 아냐?"

"그건 아니다. 니들이 의사들이 내놓은 정보들을 내게 말했듯이 그건 의사들 관점에서 단면만 보기 때문이다. 현대의학이 피를 쏟고 다 죽어가는 나를 살렸잖아. 생명을 살리는 의학을 왜 부정적으로 보겠어. 나 또한 충분히 그 덕을 봤는데... 그럴 이유가 전혀 없지..."

 

가능한 병원을 멀리하고 천둥벌거숭이처럼 살아온 내가 위를 다 잘라내고 병원을 오가며 항암치료를 받는 것은 야생동물을 철장에 가둬 두는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 송성영

 
암환자들에게 선택의 여지를

현대의학이 나름 암 정복에 한 발짝 다가서고 있다는 차세대 항암제를 개발한다는데 누가 부정적으로 생각 하겠습니까. 다만 그동안 나온 항암제들 모두가 부작용이 있어 왔고 거기다가 치료 효과가 뛰어나다는 차세대 항암제라 할지라도 일부 암에만 적용되고 그 가격 또한 가난한 내가 감당할 수 없는 고가입니다. 그럼에도 그 차세대 신약이 모든 암을 치료할 수 없다는 문제점을 지적하고자 하는 것이지요.

대부분 새로 선보이는 항암제, 면역항암제의 경우 회당 600만 원이 넘는 고가이다 보니, 1년 생활비 5~6백 만 원으로 살아가는 나 같이 가난한 사람들에게는 그림의 떡입니다. 돈 있는 일부 계층에만 혜택을 보게 된다는 그런 불편한 진실을 말하는 것입니다. 거기다가 현대의학은 아직 그 어떤 암도 정복하지 못했습니다. 그런데도 선택의 여지도 없이 암에 걸리면 현대의학이 아니면 죽는다는 식의, 암산업의 처방을 똑바로 보겠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지만 의사나 현대의학을 비난하는 게 아니라 사실을 말하겠다는 것입니다. 나를 포함한 모든 암환자들에게 현대 의학의 새로운 암치료법은 분명 희망입니다. 하지만 그 어떤 수술이나 항암제가 나왔더라도 여전히 암은 정복된 것이 아니라는 사실, 그 불편한 진실에 고개 돌려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암 전문의가 암환자들을 위해 존재한다면 암전문의들은 암환자들을 위해 그 불편한 진실을 말해줘야 합니다.

병원 치료로 살아날 가능성이 반반인 나 같은 생과 사의 갈림길에 놓여 있는 암환자들에게 수술하지 않으면 곧장 죽을 것처럼 협박에 가까운 말만 할 수밖에 없는 것일까요? 왜 수술만 권유할까요?

의사는 수술하기 전에 환자에게 최소 5년 생존기간 동안 감당할 만한 재력이 있는지 환자의 상황을 고려, 수술이나 항암제 비용이 얼마나 들어가는지를 알려주고 그에 따라 살아날 경우의 수와 수술이나 항암제 치료를 받다가 고통스럽게 사망할 경우의 수, 수술하지 않으면 생존기간이 짧다 할지라도 수술, 항암치료보다 덜 고통스럽게 세상을 떠날 수 있다는 경우의 수 등을 제시해 환자들에게 선택권을 줘야 합니다. 단지 메스를 든 기술자가 아닌 인술을 펼치는 진정한 의사라면요.

또한 병원에 의존하지 않고 스스로 죽음을 선택할 수 있는, 죽음에 대한 존엄성을 일깨워 주거나 암환자의 상태를 고려해 대체요법이나 자연요법에 대한 장단점을 인식시켜 그 어떤 선택권을 줘야 한다는 것입니다.

대부분의 암 전문의들이 대체요법이나 자연요법을 무조건 부정적으로 보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의술을 배우는 의대에서 자연요법이나 대체요법을 배우지 않아 거기에 대해 무지하기 때문일까요? 진정한 의사라면 한의학을 포함해 대체요법이든 자연요법이든 사람을 살리는 그 모든 가능성을 열어 놓아야 한다고 봅니다.
 

아버지의 확고한 결심에 두 아들의 눈빛이 흐려졌습니다. ⓒ 송성영

 
단 1년이라도 편히 살다 가고 싶습니다

"몇 기 암인지, 암의 진행 상태에 따라 병원 치료를 받고 살아남은 사람들이 많지만 병원을 믿고 선택했다가 고통스럽게 세상을 뜨는 경우도 허다한데 거기에 환자에 대한 존엄성, 죽음에 대한 존엄성이 없잖아. 이거 이상하지 않냐? 이건 암환자를 위한 것이 아니라 암 산업을 위한 거 아니냐? 항암제도 그렇다. 항암제로 치유되면 순전히 암산업의 덕이고 그 고가의 항암제조차 듣지 않아 죽게 되면 환자가 감수해야 하는, 그 과정에서 살아남거나 죽거나, 환자는 막대한 이익을 챙기는 암산업의 임상 대상이 되는 것이지. 살면 얼마나 더 살겠다고... 이런 불합리한 시스템에 내 생명을 맡기고 싶지 않다는 거다."

"아빠 흥분 하지마. 흥분하고 화내면 독이 된다는 거 잘 알잖아..."
"아, 그렇지. 그려 알았다. 그려 수술이니 항암제니 암 산업이니 골치 아픈 거 다 접어 두고 아빠가 자연요법을 선택한 것은 그동안 살아온 방식대로 살려구 하는 겨. 그렇게 살다가고 싶은겨."


"그럼 수술하고 나서 자연요법이나 대체요법 하면 되잖아?"
"그때가면 기운이 빠져 힘들 거다. 니들 생각해 봐라. 수술 후 하루에 일곱 여덟 차례 나눠서 식사를 해야 한다는데 산짐승처럼 살아온 내가 감당할 수 있겠냐."

"그래도 수술하지 않는 것보다 낫잖아. 위암 중기는 수술하면 얼마든지 살아날 가능성이 높다잖아? 왜 포기하려고 해."
"포기가 아니라 잘 살아보려구 그런다 이놈들아."

"수술하지 않고 어떻게 살 수 있어?"
"다시 말하지만 그건 의사들 말이고. 아빠에게 있어서 어떻게 사느냐 그게 문제지, 얼마나 오래 사느냐가 중요한 게 아니거든. 니들도 알다시피 아빠가 평생 그렇게 살아왔잖아. 남들 많이 벌고 살고자 할 때 적게 벌어먹고 살고자 했고......"


가능한 병원을 멀리하고 천둥벌거숭이처럼 살아온 내가 위를 다 잘라내고 병원을 오가며 항암치료를 받는 것은 야생동물을 철장에 가둬 두는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그렇게 되면 오히려 고통스럽게 죽음을 앞당길 수도 있을 것입니다.

"누차 말하지만 아빠는 5년을 고통스럽게 사는 것보다 단 1년이라도 즐겁게, 니들하고 웃어가며 그리 폼 나게 살다가고 싶다."
"1년만 산다고?"

"일테면 그렇다는 거지. 수술 안 한다고 1년만 살다가라는 법이 있냐? 그 이상을 살 것인지는 아무도 알 수 없지. 말기 암환자도 대체요법이나 자연요법으로 극히 드물긴 하지만 멀쩡하게 살아남는 사람들이 있는데 나는 중기니까 더 가능성이 있지 않겠냐? 아, 그리고 암전문의들이 말하는 것보다 좀 더 오래 살게 되면 그 누군가에게 도움이 될 수 있고 얼마나 좋냐... 사는 게 폼생폼사여. 폼 나지 않냐, 짧고 굵게."

"지금 농담이 나와?"
"니들한티 다 말하고 나니께 마음이 아주 가벼워졌다. 니들은 무거워졌겠지만, 그래도 내가 환자니까 니들이 나한티 맞춰 줬으면 한다."


아버지의 확고한 결심에 두 아들의 눈빛이 흐려졌습니다. 아버지에게 설득 당하지 않으려고 자신들이 알고 있는 암 상식을 동원했지만 소용없었습니다. 죽음을 각오한 고집불통의 아버지 신념을 꺾지 못한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기에 올 것이 왔구나 하는 눈빛이었습니다.
 

생사를 의사가 아닌 내 스스로 선택하자 속이 후련해 졌습니다. ⓒ 송성영




암, 생과 사의 수수께끼에 도전하다 - 다치바나 다카시의 암과 생명에 관한 지적 탐구

다치바나 다카시, NHK스페셜 취재팀 (지은이), 이규원 (옮긴이), 명승권 (감수), 청어람미디어(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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