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정치인, 지식인, 혹은 스타들의 목소리만 넘쳐나는 속에서 진짜 이 사회의 주인인 노동자들의 목소리를 살려내고자 합니다. 노동자 개인의 삶을 인터뷰하면서, 어릴 적 꿈과 직장을 구하는 과정, 일터에서의 보람, 힘든 점, 그리고 노동자의 권리에 대한 의식의 변화 등을 중심으로 진솔한 삶을 기록합니다.[기자말]
학교 비정규직 노조 대전지부 수석부지부장, 경력 19년차의 학교 급식실 조리 실무사 민경임씨.
▲ 민경임 학교 급식 조리 실무사 학교 비정규직 노조 대전지부 수석부지부장, 경력 19년차의 학교 급식실 조리 실무사 민경임씨.
ⓒ 민경임

관련사진보기

 
"학창시절 꿈이요? 까맣게 잊고 살았는데...... 몇 년 전 쯤 노조 지회장을 맡으면서 어릴 적 꿈이 뭐였는지 기억을 더듬어 본 적이 있어요. 너무 아득해서 오래 걸렸죠. 그렇게 찾아내고 보니 '현모양처'였더라고요. 하하."

학교 비정규직 노조 대전지부 수석부지부장, 경력 19년차의 학교 급식실 조리 실무사 민경임씨는 학창시절 꿈을 묻는 질문에 '현모양처'라 대답했다. 10대의 경임씨에게 '현모양처'란 '튀지 않는 사람, 평범한 사람, 여럿이 있으면 있는지 없는지도 모를 정도의 사람'을 의미했다.

"자랄 때 이사를 많이 다녔어요. 10대 때 잠깐 살았던 동네에 늘 골목에서 악다구니를 쓰는 아줌마가 있었는데요. 항상 화가 나 있었고, 아이들에게 소리 지르고 그랬죠. 남편은 늘 술에 취해 아줌마에게 시비를 걸곤 했는데, 그러면 술만 마시고 돈은 안 벌어온다고 아줌마도 악을 썼던 것 같아요. 그 아줌마를 보면서 저는 '저렇게 살지 않고, 조용한 엄마, 아내로 가족을 품어주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생각했던 것 같아요.

하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그 아주머니를 조금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원래부터 그랬던 것이 아니라, 너무 힘들어서 그렇게 됐을 거라고요. 우리 학교 비정규직 조리 실무사들이 그랬으니까요. 계속 무시당하니까, 너무 힘드니까 정말 오랫동안 참다가 폭발했는데, 참아온 시간만큼 폭발력이 컸어요."


높은 노동강도, 잦은 산재... 절대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2000년 둘째아이가 유치원에 다니게 되자, 민경임씨는 하루 종일 육아에 매달리던 삶에서 얼마간 여유가 생겼다. 경임씨는 아이들을 돌보면서 할 수 있는 직장을 찾아보다가 초등학교 2학년인 첫째와 출퇴근 시간이 같은 학교 급식 조리사에 눈이 갔다.

"그때는 아이들이 집에 돌아올 시간에 엄마가 집에 있어야 한다는 생각이 강했어요."

한식조리사 자격증을 따고 그해 12월에 첫째가 다니는 초등학교에 원서를 넣었다. 그렇게 경임씨의 직장 생활이 시작되었다. 아침 8시에 출근해서 오후 4시에 퇴근했다. 그렇게 한 달을 일하고 첫 월급을 받았는데, 30만 원이었다. 당시 초임교사 임금이 70만 원 정도였으니 절반에 못 미치는 수준이었고, 최저임금보다 적은 금액이었다.

아르바이트가 아닌 8시간 노동이었으나, 한 가정의 생계를 꾸릴 수 없는 금액이었다. 그리고 이러한 사정은 2008년까지 계속되었다. 학교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조금씩 연대하기 시작하면서 2008년에 임금이 80만 원 정도로 인상되었다. 그러나 방학 중 급여가 지급되지 않기 때문에 현재에도 정규직의 60% 정도의 임금을 받고 있다.

"불과 2년 전까지도 하는 일에 비해 급여가 턱없이 적었죠. 지금이라고 그렇게 나은 것도 아니지만요. 저희 집은 맞벌이를 하지만, 혼자 벌어 가족을 부양하는 분들은 퇴근하고 파트타임 일을 또 하시기도 해요. 같이 근무하는 한 분도 집에 가서 저녁을 해놓고 6시에 출근해서 나이트클럽 주방 일을 하셔요. 아이들은 서울 올라가서 공부하고 남편은 편찮으셔서 일을 못하는 상황이거든요."

민경임씨는 한꺼번에 수백 명 분의 음식을 만들어내고 위생 관리하는 일이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은 아니라면서, 조리실무사들의 숙련 노동이 얼마나 많은 것을 감당하는 중요한 일인지 설명했다.

"식재료를 다루는 일도 남들이 보기엔 대충 하는 것 같지만, 손에 익고 눈에 익어 매번 계량을 하지 않아도 몇 리터쯤이고 몇 kg 쯤인지 양을 알 수 있어야 하고, 무거운 것을 들 때나 삶거나 튀겨낼 때 어떤 요령으로 하는지 세밀하게 익히고 있어야 사고를 피할 수 있어요. 사실 급식실은 굉장히 위험한 곳입니다."

학교 급식실은 위험할뿐더러 노동 강도 또한 건설노동자 못지않다. 2019년 학교 비정규직 노조의 산업안전실태조사 결과를 보면, 학교 급식 조리 실무사 가운데 93.7%가 근골격계 증상을 겪고 있다. 이는 노동강도가 강한 선박 제조업보다도 훨씬 높은 수치이다. (선박 제조업은 70~80%)

무상의 가사노동과 맞물려 저평가되어 온 여성의 사회적 노동

그럼에도 오랜 세월 임금 및 복지 차원에서 큰 차별을 받아온 것은 그들이 하는 일이 대부분 가정에서 여성이 담당해 왔던 '돌봄 노동'의 연장선상에 있었기 때문이다. 2017년 7월 학교 비정규직 노조 파업 당시 이언주 의원(당시 국민의당)의 발언은 이러한 의식을 잘 보여준다. 이 의원은 급식 조리사들을 가리켜서 '솔직히 조리사라는 게 별 게 아니다. 그 아줌마들, 그냥 동네 아줌마들'이라며 '밥하는 아줌마가 왜 정규직화돼야 하는 거냐?'라 말해 물의를 빚었다.

민씨는 당시 이 의원의 발언을 회상하며 이렇게 덧붙였다.

"급식 조리 실무사 일은 절대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에요. 아이들을 위한 일이라는 사명감이 없었다면, 저 역시 19년씩 버틸 수 없었을 겁니다."

2018년 교육부의 실태조사 결과를 보면, 2015∼2018년에 전국 초·중·고 급식실에서 발생한 산재 사고는 총 2365건이다. 무거운 것을 들다가 미끄러운 바닥에서 넘어져 골절상을 입거나 조리기구에 데여 화상을 입는 경우가 많고, 고강도 노동이 누적되어 근골격계 질환으로 이어지는 경우, 기름 연기가 가득한 환기가 잘 안 되는 환경 때문에 폐질환을 얻기도 하고, 베이거나 찔리거나 물체에 맞거나 손가락이 절단되는 사고도 발생했다.

특히 2018년에는 700건이 넘는 산재 사고가 발생해서 2015년에 비해 1.5배가 증가했다. 제주에서는 지난 5월 음식물쓰레기 감량기를 청소하던 조리실무사가 사고로 네 손가락을 잃었다. 2018년 10월 첫 번째 사고 이후 같은 사고가 세 번이나 발생했음에도 별다른 조치는 취해지지 않았다.
 
민경임씨가 근무한 20년 동안 조리사 1인이 최대 180명의 급식을 담당하는 인력 배치기준은 한 번도 바뀌지 않았다. 이는 현재 관공서에서 1인당 50~80명 수준으로 인력 배치를 하고 있는 것과 대비된다. 올 3월에 처음으로 180명의 배치기준은 140명으로 조정됐다.(고등학생 120명) 학교 비정규직 노조의 4년간의 싸움의 결과였다. 그러나 140명 역시 턱없이 많은 숫자다. 위의 표는 2019년 초중고 평균 조리사 1인당 급식인원수 통계 비교. 타 기관에 비해 2~3배 정도 많은 것을 볼 수 있다.
▲ 조리사 1인당 급식수 평균 비교 (2019년 김종훈 국회의원실 제공)  민경임씨가 근무한 20년 동안 조리사 1인이 최대 180명의 급식을 담당하는 인력 배치기준은 한 번도 바뀌지 않았다. 이는 현재 관공서에서 1인당 50~80명 수준으로 인력 배치를 하고 있는 것과 대비된다. 올 3월에 처음으로 180명의 배치기준은 140명으로 조정됐다.(고등학생 120명) 학교 비정규직 노조의 4년간의 싸움의 결과였다. 그러나 140명 역시 턱없이 많은 숫자다. 위의 표는 2019년 초중고 평균 조리사 1인당 급식인원수 통계 비교. 타 기관에 비해 2~3배 정도 많은 것을 볼 수 있다.
ⓒ 학교비정규직 노조(김종훈의원실)

관련사진보기

 
학교 급식실이 이렇게 위험해진 이유 가운데 가장 큰 것은 '학교 급식 조리 실무사 인력 배치기준'의 문제이다. 민경임씨가 근무한 20년 동안 조리사 1인이 최대 180명의 급식을 담당하는 인력 배치기준은 한 번도 바뀌지 않았다. 이는 현재 관공서에서 1인당 50~80명 수준으로 인력 배치를 하고 있는 것과 대비된다. 올 3월에 처음으로 180명의 배치기준은 140명으로 조정됐다.(고등학생 120명) 학교 비정규직 노조의 4년간의 싸움의 결과였다. 그러나 140명 역시 턱없이 많은 숫자다.
 
"음식 양도 그렇지만, 뒤처리가 어마어마해요. 급식실은 전처리실, 조리실, 후처리실 이렇게 3~4개의 실로 되어 있는데, 거기에 있는 모든 기구들을 닦아야 하고, 식당에 있는 식탁 정리, 컵, 식판, 수저, 젓가락 닦고 열탕소독해야 하죠. 여름에는 앞에 목부터 배까지 땀띠가 생겨요. 그렇게 6월부터 8, 9월까지 땀띠로 고생하다가 10월쯤 되면 발이 시리기 시작해요. 겨울에는 동상으로 고생하죠. 급식실 일을 오래하면 안면에 홍조가 생기는데, 피부과에 가면 '화상'이라고 이야기해요."


'직업에 귀천이 없고, 모든 노동이 평등하다'는 말에 대해 어찌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민씨의 목소리는 다소 높아졌다.

"현실에서 노동은 절대 평등하지 않아요. 매일 학교에서 아이들 밥을 주고, 아이들은 밥을 먹는데, 학교에서는 우리의 존재 자체를 모르죠. 누가 밥을 주는지 몰라요. 행정실 직원이라고 되어 있지만, 행정실에서 하는 단체활동에 참여하는 경우는 거의 없고, 대다수 학교에서 행정실 소속으로 인정받지 못하고요. 선생님들도 매일 식사하면서 학교 급식실이 어떤 곳이고, 조리 실무사들이 어떻게 일하는지 알지 못합니다. 그래서 식사하러 와서 '이모님, 어머님'이라고 호칭하며 일반 음식점의 종업원 대하듯 하는 일도 있고요. 실제로 국민의 80%가 임금 노동자이고 그중에 절반이 비정규직 노동자인데도 아이들에게 '너는 노동자가 될 거야'라고 가르치지 않죠. 저도 그 교육을 못 받았어요."

민씨는 초중등교육법 안에는 '교원, 교사, 행정직'만 명시되어 있고, 급식 조리 실무사를 포함한 학교 비정규 노동자의 이름이 없다는 말을 덧붙였다. 이에 학비노조는 학교 안에 존재하되 이름조차 없는 학교 비정규 노동자들의 존재를 '교육공무직'이라는 이름으로 법적으로 명시해 달라고 요구하고 있다.

코로나 19로 늘어난 배식시간, 방역의 양
  
코로나19로 급식실 상황도 더 어려워졌다.

"지난 8월 14일에는 경기도에서 급식실을 소독하던 조리사가 메스꺼움과 어지럼증으로 쓰러지는 사고가 있었어요. 이렇게 조리사들은 늘 위험에 노출되어 있어요. 학교 측에서는 아이들이 일부만 등교하니 급식 양이 줄어들어 일이 줄지 않았느냐고 하는데 그렇지 않아요. 사회적 거리두기 때문에 급식 시간이 길어지고, 방역의 양이 늘어났어요. 오히려 노동 강도는 더 세졌다고 봐야 하죠. 더 큰 문제는 이렇게 거리두기를 한 상태에서 대책 마련 없이 전교생을 등교시키고 급식을 단행하면, 버티기 힘든 상황이 되리란 거예요. 반드시 대책을 마련해야 합니다."

그의 노조활동에 대해 가족들은 특별히 반대하지 않는다. 딸들은 엄마가 당당히 자기 일을 하는 모습이 보기 좋다며 응원해준다. 민경임씨는 지금까지 노조활동을 하며, 여성 노동자로서 '사회적 통념의 벽'을 느끼기도 했다.

"학비 노조 노동자들은 대부분 여성이거든요. 이제까지 많은 성과를 이뤄오긴 했지만, 그런데도 여성이기에 안 받아들여진다는 느낌을 받아요. 여성의 노동을 '사회적 의미의 노동'으로 인정하지 않으려 한달까요? 여성의 노동을 인정하는 순간 '다른 가치'가 생겨나기 때문이겠죠. 밥하거나 아이돌보기 같은 노동을 인정하지 않고, 당연한 것처럼 여기거나 드러내지 않으려는 사회적 경향이 있다고 생각해요."

우리 사회는 '엄마'의 사랑을 예찬한다. 집에서 아이들을 먹이고 보살피는 육아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모성의 고귀함'을 얘기한다. 그러는 한편 여성의 돌봄 노동을 경제적 관점에서는 '집에서 밥하는 아줌마, 아무나 하는 일'이라며 폄하하기도 한다. 학교 급식 조리 실무사들은 이런 왜곡된 시각의 모순을 고스란히 몸으로 겪고 있다.

그러나 아동과 청소년의 매일매일의 식사를 담당하여 그들의 신체를 길러내는 일이 다른 직업에 비해 효용성이나 경제적 가치가 적다고 말할 수 있을까? 마지막으로 민씨는 '학생들에게 자신들이 미래의 노동자임을 가르치는 교육이 필요하다, 그래야만 노동자가 되는 것을 꿈꿀 수 있는 사회가 될 것'이라는 말을 덧붙였다.

태그:#학교 급식 조리 실무사, #학교 급식실, #학교 비정규직 노조, #민경임, #조리 실무사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20 여 년의 교직 생활 경험을 바탕으로 구체적 절망과 섬세한 고민, 대안을 담은<경쟁의 늪에서 학교를 인양하라(지식과감성)>를 썼으며, 노동 인권, 공교육, 미혼부모, 입양 등의 관심사에 대한 기사를 주로 쓰고자 함.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