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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생 새내기라는 꼬리표를 아직도 덜렁덜렁 매단 채 가을학기를 맞이한 딸이 드디어 떠났다. 다음주에 대면 강의도 있고, 온라인으로 모집된 미술 동아리에도 참여해야 된다고 설렘으로 가득했다. 대학생이 되었어도 여전히 고3처럼 온라인 강의 듣고, 얻어놓은 제 방에서 일주일 이상 살아 본 적이 없었다. 그곳에 있어도 불안하니, 부모랑 함께 있는 편을 택했다.

딸은 아르바이트로 식당일과 아동센터의 학습도우미 등을 하면서 생애 처음으로 돈을 벌었다. 학교를 다니는 중이라면 매주 10만 원씩의 용돈이 있었겠지만 집에서 같이 산다고 오히려 용돈은커녕 스스로 벌었고 돈의 사용도 헛되지 않게 쓸 거라고 목록도 만들어 보여주었다.

첫 월급을 탄 날 할머니께 봉투를 드리면서 할아버지 제사 때 쓰라고 하니 얼마나 대견했겠는가. 심지어 내가 글을 쓰는데 노트북도 없이 늦게 사무실에 있는 엄마가 안쓰럽다고 노트북을 사줄까 하는 말을 하기도 했다. 물론 걱정 말라고 거절한 그 돈은 적금 통장으로 직행했다.

"나에게 알바는 성년식 이후 진짜 어른 같은 느낌을 갖게 해주었어. 매달 월급이 들어올 때마다 경제활동을 하는 나 자신이 뿌듯하고 동시에 엄마 아빠의 마음을 더 많이 이해해 볼 수 있었던 시간이었어. 하루에 고작 몇 시간 일하고도 서운한 점, 힘든 점을 고스란히 다 떠들었는데, 두 분은 어떻게 힘든 내색 한번을 안 했는지 정말 존경해 엄마"라고 애교를 떨었다.

바쁜 현대 사회에서 매일 같은 일을 반복하는 건 너무나도 지루하지만. 그것을 이기는 것은 그 이상의 책임감뿐이라고 생각했단다. 그사이 많이도 컸구나, 했다.

딸아, 너를 언제나 믿는다

1학기 초 온라인수업에 잠시 방황했던 때를 제외하고 딸은 온라인대학생활에 잘 적응했다. 독일어 수업시간에는 원어민 교수로부터 칭찬도 받았다고 학점이 분명 잘 나올 거라고 자랑했다. 2학년 때는 기숙사에 들어갈 수 있다고 걱정하지 말라고 했다. 워낙 기계에 익숙한 세대들이라서 그런지 온라인 수업에 불편함이 있어도 금방 처리했고 무엇이든 긍정적으로 해석하고 받아들였다.

다만 한 가지, 딸의 마음을 불편하게 했던 것은 바로 주거로 들어가는 비용이었다. 작년에 아들이 한 것처럼 대학이 결정되고 기숙사 신청을 했다. 고속버스로 3시간이 걸리는 원거리 지역이라 기숙사입사는 당연한 줄 알았다. 그런데 예비번호 90번대를 받았다.

딸은 서울 소재 학교를 선택했고, 사립대의 비용에 대한 부담감도 잘 알았다. 기숙사 들어가서 열심히 공부하면 장학금도 받고 알바도 하면서 제 용돈도 벌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런데 첫 단추인 기숙사가 탈락하니 본인도 부모인 우리도 맘이 답답해졌다. 딸을 혼자서 자취시키기에는 아직도 어리다고 느꼈기 때문에 오로지 기숙사만이 해결책이었다. 그렇다고 합격한 학교를 보내지 않는다는 것은 더욱더 말이 안 되었다. 딸의 학교 주변에 있는 원룸, 셰어하우스, 하숙방 들을 구할 수가 없다는 말이 들려오자, 더욱더 조바심이 생겨 상경한 때가 1월 2주 차였다.

지방에서 서울이란 곳에 거주지를 정한다는 것은 상상 이외로 많은 어려움을 동반했다. 나만 해도 대학 졸업 후 서울에서 7년 정도 살았는데, 지하 단칸방을 나오기까지 5년여 시간이 걸렸다. 남편 역시 서울살이를 하면서 옥탑방을 벗어나는 게 가장 큰 소원이었다. 우리 부부의 젊은 날의 초상을 빈한한 서울살이에 비춰보니, 더욱더 딸의 주거 조건이 신경 쓰였다.

"이제 아이들이 둘 다 수도권에 있으니, 어차피 애들 보러 올라올 때마다 잘 곳도 필요하네. 너무 싼 방값에만 맞추지 말고 우리들도 편하게 잘 수 있는 방을 찾아줍시다."

학교 앞 원룸 중 값이 싼 곳을 들어가자 숨이 턱 막힐 것 같은 공간이었다. 평균치에 해당한다는 보증금 1000만 원, 월세55만 원(공과금 별도)방을 찾았다. 2학년이 되면서 자취를 선택한 아들 방세와 합하면 매월 100만 원의 지출이 예상되었다. 그래도 어쩌랴, 성인으로서의 첫 출발을 주름지지 않게 해주고 싶은 것이 모든 부모의 마음인 것을. 신학기 준비도 할 겸, 2월 1주 차부터 월세를 내기로 계약서를 썼다. 그날 동시간대에 부동산에는 나와 같은 부모가 네 팀이나 있어서 이런저런 얘기도 했다.

1월 마지막 주, 전국에 코로나로 인한 비상사태가 선포되었다, 그 뒤로 모든 학교의 개학이 연기되더니 1학기가 가버렸다. 내가 태어난 이래 처음 겪는 기가 막힐 전염병으로 모든 일상이 마비되었다. 어른들 말씀에, 전쟁은 눈에 보이기라도 했지, 보이지 않는 공포 속에 모든 사람과 사회가 갇혀버렸다. 10개월이 지나는 지금까지도 코로나의 수세는 전혀 밀리지 않았다.

청정지역이라고 불리는 내 지역에서도 소수의 확진자가 있었고 그때마다 나의 생계일터인 학원 역시 멈추었다 열었다를 반복했다. 학원 운영하면서 처음으로 겪어보는 일들이 많았다. 소상공인 대출도 받아보고, 나라에서 주는 긴급 고용지원금도 받았다. 대면 수업에서 비대면 수업으로의 코스도 늘려서 학생들의 결원을 보충하는 노력도 했다.

이를 본 아이들은 단기 알바를 하면서 제 몫을 하려고 노력했다. 딸은 2학기를 맞이하면서 훨씬 더 실질적 계획을 세웠다. 여전히 학교에 대해 자부심을 가지고 수업에 임했고 평생 잊지 못할 세대인 온라인 새내기의 재미도 찾는다고 했다. 수업 이외의 대외 활동을 할 수 없고 성인으로서 필요한 경험 부족은 아쉽지만 고등학교와 달리 본인이 짠 시간표 안에서 스스로 시간을 운영하는 주인이 된 자신의 모습이 좋다고 했다.

2학기 등록금 고지서를 보여주면서 학교에서 1학기 코로나특별장학금 10만 원을 주었다고 했다. 1학기 때와 달리 대학교 등록금 환급에 대한 자신의 의견을 강하게 표출하기도 했다.

"엄마, 학교 등록금에는 수업료뿐 아니라 시설과 서비스 이용 비용이 들어 있는 거잖아. 그걸 사용하지 못하고 또 학교 수업도 크게 개선되지도 않았어. 학교마다 사정은 달라도 친구들이나 학우들의 의견들을 들어보면 생각이 거의 비슷해. 학교를 그만두지 못하는 학생들의 약점을 이용하는 것 같아. 코로나가 아니어도 어떤 학생은 스스로 벌어서 학교에 다니는 경우도 엄청 많잖아. 학교 차원에서 등록금을 일부 반환한다거나 적절한 조치를 했으면 좋겠어."

"2학기 수업 형태도 문제가 있지. 현실은 비대면이 마땅한데 학생들의 의견을 무시한 채 대면을 끼워 넣기 식으로 해서 등록금 환불요청을 무마시키려는 학교 정책을 받아들일 수 없지. 엄마는 어떻게 생각해? 총학에서 이 부분 때문에 총장과의 대화를 시도하는데 애들은 집에나 가라고 했다는 말이 있어. 대학교수가 어떻게 그런 말을 하는지."

'총학'이란 용어를 쓰면서 총학의 입장을 지지한다고 해서 우리 부부는 내심 놀랐다. "저러다가 벌써 데모하는 거 아냐, 당신처럼"이라고 남편에게 말했더니, "대학생이 되어 자신의 생각을 표현하는 것은 지극히 마땅한 일이지"라고 했다.

딸의 질문에 나는 대답했다.

"너의 마음속에 가득 찬 청춘의 열정과 에너지가 좋다. 불평이 아닌 탐구와 이의제기가 좋다. 무엇을 하고자 하는 너의 의지와 갈망하는 자유가 좋다. 지식을 탐구하고 사람을 만나고 싶어 하는 너의 자세가 좋다. 기존의 질서에 의문을 가하고 변화를 추구하는 너의 도전이 너무 좋다. 그러나 행동 속에 기다림이 있어야 진정한 삶의 자세를 배우는 거 같아. 너무 서두르지 마. 지금도 분명 가치 있는 시간이야. 너의 의지로 안 되는 것을 너무 미안해하지 마. 언제나 너를 믿는다. 사랑해."

태그:#새내기대학생, #대학생들록금환불정책, #코로나장학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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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과 희망은 어디에서 올까요. 무지개 너머에서 올까요. 오는 것이 아니라 '있는 것'임을 알아요. 그것도 바로 내 안에. 내 몸과 오감이 부딪히는 곳곳에 있어요. 비록 여리더라도 한줄기 햇빛이 있는 곳. 작지만 정의의 씨앗이 움트기 하는 곳. 언제라도 부당함을 소리칠 수 있는 곳. 그곳에서 일상이 주는 행복과 희망 얘기를 공유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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