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09 12:18최종 업데이트 20.10.09 1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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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국민들은 미국 역사상 가장 큰 행정부의 실패를 목격했습니다. 지난 몇 달 동안 21만 명이 사망했고, 7백만 명이 확진됐습니다. 사업체 5곳 중 1곳이 문을 닫았고 3천만 명의 사람들이 직장을 잃었습니다."

미 동부시간 10월 7일 밤, 마이크 펜스(공화당)와 카멀라 해리스(민주당)의 부통령 후보 토론회는 '순조롭게' 끝났다. 룰도 정책도 찾아볼 수 없었던 지난주 트럼프와 바이든의 '사상 최악' 토론과는 매우 달랐다. 당시 대략 난감한 표정을 지었던 앵커들은 이번 토론에선 여유를 되찾았다. 


미국 공영라디오방송 NPR은 부통령 후보 토론을 4가지로 요약했다.

1) 2020년 선거는 코로나 바이러스에 달려있다. 
2) 제대로 된 논쟁이 있었지만 사회자의 질문에 답하는 모양새는 아니었다.
3) 바이든-해리스를 극단적으로 공격한 펜스와 코로나 바이러스로 트럼프 대통령을 흔든 해리스. 두 선거 캠프의 전략이 그대로 반영됐다. 
4) 파리가 윙윙거렸다. 

 

7일(현지시각) 유타주 솔트레이크시티에 위치한 유타대학 킹스버리홀에서 진행된 미국 부통령 후보 TV 토론회에서 민주당 부통령 후보인 카멀라 해리스 상원의원의 발언을 듣고 있는 마이크 펜스 부통령의 머리 위에 파리 한 마리가 앉아 있다. ⓒ 연합/AP

 
토론 초반 펜스 부통령 머리에 앉은 파리 사진은 수십만 개의 '짤'을 만들어냈다. 

부통령 후보 토론이 끝나기 무섭게 올라온 트럼프 대통령 트윗("마이크 펜스가 이.겼.다.크.게!")에 수많은 댓글이 달렸다. 그중 하나가 "그는 카멀라에게만 진 게 아닌 듯. 파리에게도 짐"같은 거다.

'미 대선의 꽃'이라 부르는 대선 토론은 이번이 마지막이 될 것 같다. 후보인 현 대통령의 '코로나 확진'이라는 전대미문의 사건으로, 남은 두 번의 대선 후보 토론이 비대면을 치러질 예정인데 트럼프가 불참을 선언했기 때문이다. 

코로나 바이러스 진원지 백악관

대통령을 비롯한 주요 인사들의 코로나 확진 소식이 연일 계속된다. 정치전문지 <폴리티코>는 10월 1일부터 7일까지 백악관 발 코로나 확진자 명단을 날짜순으로 정리했다. 

10월 1일: 호프 힉스 백악관 고문
10월 2일: 도날드 트럼프 대통령, 멜라니아 트럼프 여사, 로나 맥다니엘 공화당 전국위원장, 마이크 리 공화당 상원의원, 존 젠킨스 노트르담 대학 총장, 톰 틸리스 공화당 상원의원, 켈리앤 콘웨이 전 백악관 고문, 빌 스테피언 트럼프 선거대책본부장.
10월 3일: 론 존슨 상원의원, 크리스 크리스티 트럼프 토론준비팀, 닉 루나 대통령 경호원
10월 4일: 클라우디아 콘웨이 전 백악관 고문 10대 딸
10월 5일: 케일리 매커너니 백악관 대변인, 보좌관 2명, 그레그 로리 목사 
10월 6일: 스티븐 밀러 대통령 수석 보좌관, 찰스 레이 해양경비대 부사령관, 대통령 개인 비서...


매체는 10월 8일 오전 현재 백악관 발 코로나 확진자는 35명에 이르고 대통령 측근과 내각에서 더 많은 사례들이 발생할 수 있다고 했다. 한국이라면 '코호트 격리'가 이루어져도 이상하지 않을 백악관 발 확진 러시다. 

이들 중 많은 수는 9월 26일 백악관 로즈 가든에서 열린 연방 대법관 후보자 지명식에서 감염된 것으로 보인다. 대통령이 정책을 발표하고 기자회견을 하는,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정원'은 수십 명의 확진자가 발생한 '가장 위험한 정원'이 되었다.

지명식에서는 아무도 2m 거리를 지키지 않았고 아무도 마스크를 쓰지 않았다. 앤서니 파우치 국립 전염병연구소장은 당시 행사장 참석자들 모두에 대한 추적 조사 필요성을 주장했지만 당시 현장을 취재하던 기자를 비롯한 대부분의 사람들은 아무런 연락을 받지 못했다고 한다. 아직 드러나지 않은 무증상 감염자가 더 있을 수 있다는 소리다. 
 

코로나19 확진 판정을 받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백악관 발코니에 서서 마스크를 벗고 있다. ⓒ 연합/EPA

 
코로나 확진 판정을 받은 대통령은 2일 저녁 뉴스가 나가는 시각에 헬기를 타고 백악관에서 미국 최고의 군 병원으로 이동했다. 주말 포함 총 사흘을 입원한 트럼프는 역시 5일 저녁 뉴스 시간에 헬기로 백악관에 돌아왔다. 그리고 성조기가 세워진 발코니에서 마스크를 벗고 거수경례를 하며 자신의 건재함을 알렸다. 14일 자가격리는커녕 정확한 감염 날짜, 2m 거리 유지, 마스크 착용 등 기본적인 감염 예방 수칙조차 지키지 않았다. 

대통령의 코로나 치료비용은 모두 국민의 세금으로 지불된다. <뉴욕타임스>는 지난 7일자 기사에서 코로나 바이러스 테스트, 3일간 입원 및 약물 치료, 월터 리드 병원을 오간 헬리콥터 운송 등의 항목으로 의료비용을 계산했다. 60세 이상 환자의 코로나 바이러스 입원비용 평균 $61,912, 거기에 구급 헬기 이용비용 $38,770을 합친 금액은 약 10만 불이었다. 트윗의 반응은 이랬다.

"우리의 세금으로 이 비용을 지불했습니다. 그는 세금을 내지 않았지만요."
"10만 달러가 넘는 최고 수준의 의료 서비스를 받은 대통령은 백악관에 돌아가 경기 부양 논의를 중단시켰더군요. 도움이 절실한 수백만 명 미국인들을 부정했습니다."
"대통령뿐 아니라 미국 국민 모두 무상 의료 서비스를 받아야 하지 않을까? #모두에게 건강보험을" 


별거 아니라고 큰소리치던 대통령의 치료비에 엄청난 국민 세금이 쓰인 사실에 많은 이들이 분노했지만 대통령은 태연히 트윗했다. 

"코로나가 당신을 지배하게 두지 말라. 코로나를 두려워 말라. 우리는 세계 최고의 약을 보유하고 있다. 백신은 곧 나올 것이다."

50배 넘는 조기 투표

7일 부통령 토론회의 백미는 밥 우드워드 기자가 최근 출판한 <분노>의 내용 인용이었다.  

"1월 28일, 부통령과 대통령은 이 전염병에 대한 정보를 보고 받았습니다. 이 치명적인 바이러스는 공기로 전염되고 젊은이들을 감염시킬 것이라는 얘기였지요. 그들은 앞으로 일어날 일에 대해 보고했고 당신들은 미리 알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당신들은 그것을 은폐했습니다." 

올 초 트럼프 행정부가 코로나 바이러스에 미온적으로 대처한 이유에 대해 많은 미국 국민들은 이 바이러스가 얼마나 치명적인지 대통령과 행정부가 몰랐기 때문일 거라고 생각했다. 미질병통제예방센터 CDC나 보건당국의 무능과 게으름이 이 사태를 만들었다고 여겼다. 설마 그 위험을 알고도 그렇게 아무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는 생각을 할 수 없었다. 하지만 미국 최고의 탐사보도 기자는 반박했다. 대통령이 자신에게 직접 공기 감염을 설명하며 치명적인 바이러스라고 주의를 준 녹음테이프를 풀어 보인 것이다. 왜 진작 공개하지 않았냐는 비난이 기자에게 쏟아질 정도였다. 

부통령 토론에서 진행자는 해리스에게 트럼프 행정부가 승인한 백신이 나오면 접종할 것인지 물었다. 

"닥터 파우치와 과학자가 우리에게 접종을 권한다면 난 제일 먼저 맞겠습니다. 하지만 도널드 트럼프가 권한다면 나는 거부할 것입니다." 

선거전 코로나 백신 개발로 반전을 노리던 트럼프 대통령에 대한 불신을 나타낸 대답에 펜스 부통령은 반발했다. 

"당신은 백신에 대한 대중의 신뢰를 계속 약화시키고 있소. 사람들의 삶으로 정치하지 마시오."

사람의 목숨을 정치에 이용하는 세력이 누군지는 토론을 지켜본 국민들의 몫일 것이다. 채 한 달이 남지 않는 대통령 선거, 트럼프 대통령은 사망한 긴즈버그 대법관의 후임 대법관을 서둘러 지명했다. 아이러니하게도 그 대법관 지명식에서 3명의 공화당 상원의원이 확진됐고 자가 격리 중이다. 한 표가 아쉬운 공화당으로선 큰 변수가 발생한 것. 
 

지난 9월 26일 백악관 로즈가든에서 열린 에이미 코니 배럿 연방대법관 후보자 지명식 ⓒ 연합/AFP

 
그럼에도 불구하고 트럼프가 지명한 대법관이 신속히 임용된다면 대통령 임기중 트럼프가 임명한 세 명의 종신 대법관과 공화당 성향의 판사들이 유리한 개표 결과를 판결할 것이란 계산이다. 바이든과의 표 차이가 예상보다 크지 않다면 지난 2000년 부시와 고어와의 대결에서 부시의 손을 들어준 것 같은 판결을 기대하는 것이다. 최후의 보루가 대법원일 가능성이 농후하다. 그러나 법률책에도 판례에도 없는 사건에 대법관의 판단을 좌우하는 것은 바로 미국 국민들의 표심일 것이다. 

"우리는 선거를 앞두고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투표하는 것을 본 적이 없습니다." 

조기 투표 데이터를 수집하는 미국 선거 프로젝트(United States Elections Project)에 의하면 선거 4주 전인 10월 초, 벌써 4백만이 넘는 미국인이 투표를 마쳤다. 이는 4년 전 대선에 비해 무려 50배가 넘는 수치이다. 위 단체의 플로리다 지역 책임자는 덧붙였다. 

"사람들은 마음이 정해졌을 때 투표합니다. 우리는 많은 미국인들이 벌써 누구를 찍을지 판단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10월 8일 밤 9시 현재 미국 내 코로나 사망자는 21만 2천 명. 4주 후 대선엔 미국 유권자의 65%인 1억 5천만 명이 투표할 예정이다. 이는 1908년 이후 가장 높은 비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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