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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이효재 이화여대 명예교수의 빈소가 5일 오전 경남 창원경상대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됐다. 발인은 6일이다. 2020.10.5
 이이효재 이화여대 명예교수의 빈소가 5일 오전 경남 창원경상대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됐다. 발인은 6일이다. 2020.10.5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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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미니스트 1세대 이효재 교수 사망 소식을 듣고

지난 4일 이효재 교수가 세상을 떠났다. 국내 최초 여성학과 설치를 주도하고, '부모 성 같이 쓰기 운동' 및 호주제 폐지 등에 앞장섰던 사람. 1990년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본격적으로 제기해 한국정신대대책협의회(현 정의기억연대)를 출범시키고, 국회의원 비례대표 여성의원 50% 할당제를 주장한 사람. 한국 사회 페미니즘 운동을 이끌어 온 한국 1세대 페미니스트인 이 교수가 없었다면 지금 우리의 삶은 달랐을 것이다.

불과 15년까지만 해도 법적으로 호주를 중심으로 다른 가족구성원이 종속되는 호주제가 있었다. 호주제는 사실상 가부장제가 법적으로 보호받는 제도였다. 남성을 중심으로 하는 호주 승계는 남편이 사망하면 아내가 아닌 아들이 승계받았다. 여성은 결혼 전에는 아버지에게 결혼 후에는 남편에게, 남편 사망 후에는 아들에게 종속되는 삶을 살아야했다. 호주제는 남아선호사상을 부추겼고, 가족 구성원의 자율성과 존엄성, 평등한 관계를 해친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부성 강제 승계를 통해 가족제도를 유지 시키는 호주제는 1995년 여성단체에서 처음으로 문제제기했다. 2000년 호주제 폐지 국회 청원이 시작되고, 위헌소송을 거쳐 2005년 최종적으로 헌법재판소에서 헌법불합치 판결을 받았다. 이 일에 앞장선 이가 이효재 교수다.

2005년이면 내가 대학을 졸업한 이후 취업 준비 중이던 때다. 결혼 전인 나는 아버지에게, 결혼을 일찍 한 친구 두 명은 남편에게 예속된 상태였다. 호주제가 폐지되면서 우리는 자유로워졌고, 2011년 결혼 후에도 나는 누구에게도 종속되지 않았다. 호주제 폐지는 여성들의 법적인 자유와 평등을 인정받는 첫 걸음이었다. 지금 내가 누리는 권리와 자유는 앞선 페미니스트들의 노력 덕분이다.

계란을 맞았던 메리와 같은 길을 걸었던 이효재 교수

이효재 교수 사망 소식을 접하고 메리가 생각났다. 그림책 <메리는 입고 싶은 옷을 입어요>를 펼쳤다.

책 표지를 보면 의아한 혹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아니면 화가 난 표정으로 양편에 갈라선 사람들이 가운데에 있는 소녀를 쳐다보고 있다. 아이 눈을 가리는 엄마도 있다. 이런 시선에 아랑곳하지 않고 반달눈을 한 채 힘차게 팔을 저으며 걸어가는 한 아이가 있다. 아이의 이름은 메리. 이 아이가 무슨 일을 했길래 사람들이 쳐다보는 걸까?
 
 메리는 입고 싶은 옷을 입어요.
 메리는 입고 싶은 옷을 입어요.
ⓒ 원더박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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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에는(그렇게까지 옛날은 아니고요), 소녀들은 바지를 입을 수 없었대요. 상상이 되나요?"


첫 페이지에 나오는 이 말을 통해 책 내용을 짐작할 수 있다. 바지를 입을 수 없었던 시대에 대한 이야기라는 추측을 하고 페이지를 넘기면 소녀들이 답답하고 무겁고 숨쉬기 힘든 치마를 입고 있다. 소녀들 옆 페이지에 바지를 입은 남자 아이들은 물구나무도 서고 공도 차고 자유롭게 놀고 있다. 복장으로 활동을 제한하던 시대. 법으로 남성에게 여성을 종속시켰던 호주제가 생각난다.

'옛날부터 그래왔으니까'라고 생각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메리는 달라져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바지를 입고 학교에 갔다. 남자 옷인 바지를 입은 메리에게 사람들이 계란을 던지며 화를 낸다. 물건을 훔친 것도, 누군가를 때린 것도 아닌데 메리가 죄를 지은 것처럼 반응하는 사람들.

메리는 왜 사람들이 자기 옷에 신경 쓰는지 알 수 없었다. 밤새 고민한 메리는 다음 날 자신이 입고 싶은 옷인 바지를 입고 학교에 간다. 메리의 바지를 반대하는 마을 사람들이 피켓을 들고 정문 앞에서 화난 얼굴로 메리를 저지하려고 한다.
 
"넌 남자애 옷을 입고 있잖니!"
"남자애 옷이 아니에요! 나는 내 옷을 입었을 뿐이라고요. 미안한데 길 좀 비켜 주시겠어요? 수업에 늦었거든요."


메리의 당당함에 어른들은 놀라고 메리는 교실 문을 힘차게 열고 들어간다. 교실 안에서도 똑같은 일이 벌어질까 봐 걱정하면서...

교실 안에는 메리처럼 바지를 입은 여자아이들이 있었다. 아이들은 다시는 예전으로 돌아가지 않았다.

분홍과 노랑 형광색으로 메리의 밝고 당당한 모습을 표현한 그림이 귀여운 이 책은 앞뒤 면지에 주제를 담아냈다. 앞 면지에는 바지에 '남자 옷', 치마에 '여자 옷'이라고 적혀 있다. 책을 다 본 뒤 보게 되는 뒷 면지에는 '남자 옷'과 '여자 옷'에 X 표시가 되어 있다.

남자 옷, 여자 옷이 아닌 입고 싶은 옷을 입을 수 있는 선택권이 없었던 1800년대. 책 속 메리인 메리 에드워즈 워커는 최초로 바지 입기를 시도한 여성 중 한 명이다. 그녀는 바지를 입었단 이유로 경찰서에 잡혀가기도 했다. 여성은 의사가 될 수 없다고 했던 당시 의대를 졸업해 의사가 되고, 남북전쟁이 일어나자 군의관으로 활약한 메리 에드워즈 워커. 1919년 87세 나이로 사망할 때까지 자기가 입고 싶은 옷을 입은 메리 덕분에 오늘날 우리가 입고 싶은 옷을 마음대로 입을 수 있다.

책에서 메리가 교실 문을 열고 들어갔을 때 친구들이 바지를 입고 메리를 맞이하는 장면을 좋아한다. 누군가 새로운 것, 이전과 다른 것을 시도했을 때 호응하는 사람이 없다면 저지하는 사람들에 의해 짓밟히거나 무모한 도전으로 끝나고 말 가능성이 크다. 메리가 바지에 대한 고정관념을 깨고, 그것을 입었을 때 같이 호응하고 공명한 사람들이 있어서 변화가 이루어졌다.

이제 우리가 이 교수를 이어 목소리를 내야 할 때

<메리는 입고 싶은 옷을 입어요>를 보면서 아무도 가지 않았던 길을 개척한 이효재 교수의 삶을 상상해보았다. '나라면 저렇게 할 수 있었을까?' 고개를 위아래가 아닌 좌우로 흔들게 된다. 교실에서 바지를 입고 메리를 기다릴 순 있겠지만, 앞장서서 계란을 맞긴 힘들 것 같다.

이제 교실에서 메리를 기다리던 소녀들이 밖으로 나올 때다. 페미니스트 1세대인 이효재 교수의 외침에 우리가 호응해야 한다. '위안부' 문제, 가부장 문화 없애기, 분단 사회 속 여성과 가족 문제, 차별금지법 등 우리 사회 성별로 인한 차별 철폐에 목소리를 내야 한다. 이것이 이효재 교수를 애도하는 길이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개인 블로그에도 개제 합니다.


메리는 입고 싶은 옷을 입어요

키스 네글리 (지은이), 노지양 (옮긴이), 원더박스(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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