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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1편에서 계속 이어집니다.

- 흔히들 동네 서점을 운영한다고 하면 낭만적이라거나 혹은 식당 같은 곳에 비해 크게 할 일이 없다고 생각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저도 그랬습니다. (웃음) 하지만 책을 보면서 서점 운영 또한 피할 수 없는 생존의 문제이고, 생각보다 고된 육체노동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서점 운영 일과는 어때요?

"낭만도 있지만 서점 일이란 정말 끊임없는 노동의 연속이에요. 우선 문을 열고, 청소를 합니다. 그리고 상한 책이 없는지 살피면서 정리해요. 서점의 역할은 어떤 손님이 언제 오더라도 그 모습 그대로 유지하는 것이라고 봐요. 흐트러지거나 어지러운 진열을 보여주면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책을 분야별로 정리하면서도 시각적으로는 깔끔하게, 그리고 눈에 띄도록 큐레이션하고 있습니다.

정리가 끝나면 이런저런 입금 업무를 처리합니다. 그 이후에 문을 열고, 손님을 맞아요. 손님들이 책을 보고 놔두면 흐트러지기 때문에 계속 손님을 맞으면서 책을 정리합니다. 그러다 주문한 책이 오면 재고를 어디에 꽂을지 생각하고 또 정리합니다. 어서어서는 포스기가 없어서 머릿속으로 책의 재고와 위치를 기억해야 하고요. 손님이 없거나 비는 시간에는 틈틈이 책을 읽습니다. 그래야 새로 들어오는 책의 속도를 맞출 수 있거든요.

사실 서점 사장이 책을 추천하면 독자들은 웬만하면 믿고 구매하는 경우가 많아요. 그래서 책임감을 더 느끼게 됩니다. 보통 이렇게 하루를 보내고요, 주말에는 저녁에 독서 모임이나 작가와의 만남 같은 행사를 진행합니다. 특히 일요일 밤에는 금, 토, 일 3일간 빠진 책을 채워야 하기 때문에 거의 새벽에 퇴근한다고 보면 됩니다.
 
어서어서 행사 사진
 어서어서 행사 사진
ⓒ 박정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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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실 한때 동네 서점이 유행처럼 생겨나기도 했고, 또 그만큼 현실의 장벽을 이기지 못하고 많이 사라지기도 했습니다. 어서어서는 월 매출이 4000만 원 정도 된다는 인터뷰 덕분에 굉장히 이슈가 되기도 했죠.

"이 인터뷰를 통해 꼭 바로잡고 싶은 게 있는데, 4000만 원 매출은 가장 매출이 높았을 때였어요. 그런데 그 인터뷰 때문에 사람들이 그게 평균 월 매출이라고 생각해서 여러모로 오해가 좀 있습니다(웃음). 이거 꼭 내보내 주세요."

- 네, 더 이상 오해에 휩싸이지 않도록 꼭 싣도록 하겠습니다(웃음). 어쨌든, 무사히 자리 잡기까지의 과정을 상세히 서술한 덕분에 책은 서점 주인장의 분투기인 동시에 자영업자를 위한 마케팅 혹은 브랜딩 도서로 읽히기도 하는 것 같아요. 어서어서가 여기까지 올 수 있었던 가장 결정적인 원인은 어디에 있다고 보세요?

"평균 월 매출 4000만 원까지는 아니어도 어느 정도 자리는 잡은 건 사실입니다. 우선 시기가 너무 좋았어요. 제가 어서어서를 오픈하고 얼마 안 돼서 황리단길이라는 단어가 생기고, 이 길이 이슈가 되기 시작했습니다. 많은 예능 프로그램의 주제가 경주였어요. 그렇게 시기가 맞물리면서 자연스럽게 홍보가 됐죠.

그런데 황리단길이 이슈가 되었지만 경주에는 딱히 기념품이라고 할 만한 것이 없습니다. 사실 경주가 아니라도 여행을 가면 뭔가 추억하고 기념하고 싶은 물건을 하나쯤 사고 싶잖아요. 그런데 경주는 황남빵 정도 말고는 별로 없거든요. 어서어서가 그 점에 정확히 부합한 측면이 있습니다.

우선 읽는 약 책 봉투의 인증샷이 나름대로 유행이 되었습니다. 누군가에게 선물할 때도 이름을 적을 수 있으니 일반 포장지보다 훨씬 의미가 있어서 그 점도 많이들 좋아하셨어요. 또 커플이나 친구끼리 오면 서로 책을 골라서 선물하는 분들도 있었고요. 그러면서 일종의 기념품의 역할을 한 것 같습니다."
 
- 기념품이라고 하면 어서어서 책갈피도 빼놓을 수 없을 것 같습니다.


"네. 맞습니다. 어서어서에서는 책을 구매하면 책갈피를 함께 증정합니다. 이 책갈피는 서점에 비치된 스탬프를 찍어서 직접 완성할 수 있게 만들었어요. 스탬프는 날짜, 이니셜, 경주의 아이콘 등 다양한 종류가 있습니다.

보통 책갈피를 받으면 처음에는 '이걸 왜 주는 거지?' 하는 표정이지만 스탬프를 찍기 시작하면 두 팔 걷어붙이고, 엄청 고민하면서 찍습니다(웃음). 그렇게 자기만의 추억이나 기념품을 또 하나 만들 수 있고, 이렇게 만든 걸 SNS에 올리면서 자연스럽게 홍보가 되니 이것도 매출에 일조한 것 같습니다."
 
어서어서의 약 책 봉투와 책갈피
 어서어서의 약 책 봉투와 책갈피
ⓒ 박정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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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서어서와 관련된 앞으로의 계획은 어떤 것이 있을까요?


"솔직히 말하면 지금의 어서어서는 관광객을 위한 서점이라고 할 수 있어요. 그게 늘 아쉬운 지점입니다. 서점의 역할은 동네 사람들이 와서 편하게 머무르고, 책을 살 수 있어야 하는데 아직 어서어서는 그렇지 못합니다. 보통 관광객과 경주 시민의 비율이 8:2 정도고, 많으면 9:1까지 가기도 합니다.

저는 가끔 학생들이 오면 너희들은 뭘 하면서 지내고, 어디서 노는지 물어봐요. 그러면 할 게 없다고 합니다. 주말에 타지에 가서 쇼핑하는 정도가 전부라고 합니다. 경주가 문화재는 많지만 미술관이나 전시장 같은 것이 없어요. 저는 동네 사람들이 편하게 올 수 있는 서점, 어린 친구들을 위한 새로운 문화 공간이 필요하다고 생각하게 됐습니다.

장기적으로 그런 공간을 만드는 것이 어서어서의 앞으로의 계획이라고 할 수 있어요. 그래서 지금은 힘닿는 데까지 열심히 하고, 풀지 못했던 것을 어서어서 2호점을 통해 만들고 싶습니다. 어떤 공간이 될지 아직 만들어지지 않았으니,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고 계획 중입니다."

- 서점 어서어서를 떠나 개인 양상규의 꿈은 뭔가요?

"음… 크게 봤을 때 저의 꿈은 좀 더 영향력 있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좀 이상하게 들리나요? 저는 경주에서 태어나고 경주에서 자란 사람으로, 경주가 너무 좋습니다. 경주 하면 고즈넉하고, 녹색이 많고, 높은 건물이 없다는 것이 특징이라고 할 수 있고, 또 그것이 경주의 경쟁력이라고 생각해요. 그 모습이 좋아서 많은 사람들이 경주에 방문하죠. 그런 만큼 지금 경주의 모습 그대로 후손들에게 물려주고 싶은 마음이 있어요.

그런데 이게 군의 문제인지, 시의 문제인지, 문화재청의 문제인지 모르겠지만 자꾸 뭔가를 지으려고 하고, 뭔가를 추가하려고 합니다. 문화재 옆에 미감을 해치는 건물을 짓는다든지 하는 식으로 말이죠. 이걸 막기 위해 협동조합 같은 곳에 가입해서 이런저런 활동을 하고, 뜻이 맞는 사람들과 많은 얘기를 나누고 있습니다. 예전 인터뷰에서 지금의 경주를 유지할 수 있도록 조금이라도 영향력을 발휘하기 위해 시의원에라도 출마하고 싶다고 한 적이 있습니다. 경주를 지키고 보존하는 데 일조하는 사람이 되는 것이 저의 큰 꿈입니다." 
 
경주 풍경
 경주 풍경
ⓒ 박정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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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나요?


"저와 비슷한 처지의 자영업자들에게 드리고 싶은 말씀입니다. 어떤 분야에 있는지에 따라 하는 일이 다를 수는 있지만 자영업자라면 저와 비슷한 어려움을 느꼈을 것이고, 비슷한 고민을 했을 것이고, 또 비슷하게 이겨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점에서 제 책을 통해 어떤 식으로든 영감을 얻을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사실 대단한 비법을 담은 책이라기보다 읽으면서 위로받을 수 있는 내용이 더 많다고 생각해요. 저도 마찬가지지만 다들 어려운 시기를 지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잘 견디면서 함께 힘을 냈으면 좋겠습니다."

그런 사람이 있다. 부드러워 보이지만 그 안에 단단한 내공이 자리 잡고 있는 사람. 섬세하지만 쉽게 흔들리지 않는 사람. 양상규씨를 인터뷰하면서 느낀 점이다. 그러고보면 서점 어서어서도 비슷하다. 횡리단길과 어울리는 편안한 분위기를 자아내지만 있어야 할 것들이 있어야 할 자리에 정확히 놓여 있다. 치밀하게 계산된 큐레이션과 어서어서만의 인테리어가 아니면 불가능한 일일 것이다.

그가 쓴 책도 마찬가지다. 술술 읽히지만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분명하게 전달된다. 공간도 사람이 만들고, 책도 사람이 쓴다. 그러니 공간도, 책도, 만든 사람이 보이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일 것이다.

어서어서도 코로나의 직격탄으로 인한 매출 감소는 피해 갈 수 없었다. 하지만 지금껏 그래왔듯, 어서어서는 문을 열고, 손님을 맞을 것이다. 그렇게 켜켜이 쌓인 하루하루의 기록은 미래의 책방 주인, 혹은 현재의 자영업자에게 작은 위로를, 어떤 아이디어를 줄지 모른다.

책방 어서어서도, 책 <어디에나 있는 서점 어디에도 없는 서점>도, 이 땅의 모든 자영업자들도 건투를 빈다.
 

어디에나 있는 서점 어디에도 없는 서점 - 대형 서점 부럽지 않은 경주의 동네 책방 ‘어서어서’ 이야기

양상규 (지은이), 블랙피쉬(2020)


태그:#어디에나있는서점어디에도없는서점, #동네서점, #동네책방, #경주서점, #어서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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