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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동네서점인 한길문고에서 '엉덩이로 책 읽기 대회'를 열었다. 날씨도 적당히 선선하고 딱 기분 좋은 밤이다. 나는 시작 시간보다 조금 빨리 한길문고로 발걸음을 옮겼다. 조용히 책들과 만나기 위해서다. 한길문고 매대를 천천히 한 바퀴 돌아보며 많은 작가들의 책표지를 한 번씩 눈여겨 보며 천천히 음미했다.

책 표지는 다양한 문장들로 사람들 시선을 끌어당긴다. 내가 좋아하는 정서와 맞는 책 표지를 찾으려 한참을 책을 만나보았다. 왜냐면 내가 참여하는 에세이 반에서 각자 자기 책을 내기 때문이다. 책 표지도 자기가 결정을 해야 하고 편집과 디자인까지 신경 쓸 일이 많다.

서점의 책들은 많은 이야기를 담고 사람들을 기다리고 있는 듯하다. 나는 책의 숲에서 맡는 책 냄새가 참 좋다. 이 책들 제목 뒤에 숨겨진 많은 사연들이 궁금하다. 모든 사람들의 인생이 숨겨진 책들, 만약에 세상에 책이 없다면 사는 게 얼마나 삭막하고 재미가 없을까, 책들이 보물처럼 느껴지는 요즘이다. 많은 사람들은 책에서 위로를 받고 또한 모르는 지식을 탐구도 한다. 책으로 사람은 소통을 하고 사는 셈이다.

매대에 누워있는 책들, 그 책을 쓰기 위해 작가들은 얼마나 수많은 시간을 고뇌하고 삶을 통찰하며 글 썼을까, 미루어 짐작이 간다. 나는 아직 초보 글 쓰는 사람이지만 글 쓰는 작가들의 마음을 조금은 알 것 같다.

책 읽기 대회가 열리는 한길문고에서 점장님이 어김없이 열을 재고 연락처와 주소를 적는다. 코로나19로 가는 곳마다 자기의 흔적을 남기고 다닌다. 한길문고에서 만나는 대표님은 항상 밝은 미소로 사람들을 반갑게 맞이해 준다. 서점 안은 언제나 포근하고 책이 있어 지루할 틈이 없다.

또한 그곳 점장님의 살짝 웃는 살인 미소가 사람을 매료시킨다. 그 멋진 모습이 나는 너무 좋다. "책은 언제 나오나요? 책 나오면 제가 한 권 사겠습니다" 하면서 나에게 말을 건넨다. 그 말이 내 마음에 촛불을 밝히는 것처럼 기분이 환해진다. 정말 책이 나오긴 하나보다.

책이 나오지도 않았는데 벌써 사준다는 사람이 있으니 엄청 기분 좋은 일이다. '아, 내가 책을 내는구나', 이건 한길문고가 아니었으면 또 상주작가인 배지영 작가가 아니었으면 도저히 가능한 일이 아닌 것이다. 아무튼 기분은 좋다.

처음 시도 해보는 일, 엉덩이로 책 읽기가 시작됐다. 1시간 동안 절대로 엉덩이를 떼고 움직이지 말고 책만 읽어야 한단다. 물은 마셔도 되지만 화장실을 가면 안 되고 똥꼬에 팬티가 끼어도 움직이면 안 된다니. 그런 표현을 대 놓고 하다니 폭소가 터진다. 

​나는 심호흡을 한번 하고 긴장된 마음으로 책을 읽기 시작했다. 내 눈은 근시다. 집에서는 안경을 벗고 생활하고 밖에 나올 때만 안경을 쓴다. 집에서 습관처럼 안경을 벗고 책을 읽었다.

그런데 눈 가까이 책을 보며 읽으니 책 읽는 자세가 영 어설프다. 어쩌랴 정해진 시간을 보내야 한다. 그래야만 앉은 자세에서 엉덩이를 움직이지 않는다. 팔은 어쩔 수 없이 책상에 고이고 힘들면 내려놓는다. 다만 엉덩이만 신경 쓰고 움직이지 않았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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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네 서점에서 엉정이로 칙읽기 대회가 시작되고 모두다 마스크를 쓰고 책을 읽고 있는 장면
▲ 엉덩이로 책 읽기 대회 동네 서점에서 엉정이로 칙읽기 대회가 시작되고 모두다 마스크를 쓰고 책을 읽고 있는 장면
ⓒ 이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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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읽은 책은 배지영 작가의 에세이 <환상의 동네 서점>이다. 모두가 책 읽기에 몰두하고 조용하다. 가끔씩 책장 넘기는 소리만 들릴 뿐이다. 모두가 마스크를 쓰고서 견디는 한 시간, 책 속의 이야기에 몰두하다 보니 시간이 금방 흐른다.

배지영 작가는 유쾌한 분이다. 프롤로그에서 "감탄사는 갈고닦는 게 좋다. "햐", "우와"만 잘 해도 사람들의 기분을 북돋을 수 있다" 나는 그 말에 극 공감을 하면서, '아~~ 나도 이제 일상에서 실천이다'라고 마음으로 외쳤다.

배지영 작가는 상주작가를 하면서 시간들을 그냥 보내는 일이 없었다. 사람들과 소통하고 그 사람들의 꿈을 인도해 주는 인생 설계까지 해주며 삶의 방향도 돌려놓았다. 나도 그중에 한 사람이다. 작가님은 마치 산고를 겪는 엄마 마음이다. 나이 많은 사람들까지도 마음으로 품는다. 

<환상의 동네 서점>에는 내 이야기도 한 챕터로 차지하고 있다. 나는 책에 나온 사람이 된 것이다. 책 96페이지, '나는 이제 머뭇거릴 시간이 없거든요.' 이게 무슨 일인지 모르겠다. 배 작가 책에 2번이나 내 이름이 나오다.

'우와!' 신나는 일이다. '호랑이는 나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나서 이름을 남긴다'더니. 명예는 아니지만 이름이 불리는 건 기분 좋은 일인 것이다. 이런 대입은 너무 거창한 일인가? 아무튼 좋긴 좋다. 내 삶을 다른 사람 시선으로 보게 되다니. 

엉덩이로 책 읽기 대회가 끝나고 1시간 시급과 라면 5개도 받았다. 난생 처음 있는 일, 특별한 기분 좋은 경험이다. 나는 말하고 싶다. '삶이 지루하거든 새로운 일에 시도를 하고 도전하라'라고. 나는 도전하면서 새롭게 살고 있다. 내가 시도하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내 안의 동굴에서 요즘 말하는 코로나19 블루에 갇히고 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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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회 끝나고 카페에서 소감나누기
▲ 카페에서 대회 끝나고 카페에서 소감나누기
ⓒ 이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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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원 한 분이 전북 아파트 조합 공모전에 글을 써서 상금 50만 원 받았다고 차를 산다고 했다. 우리는 대회 끝나고 카페에서 한바탕 깔깔대고 웃음꽃을 피운다.

나는 젊은이들 속에 낯선 이방인이다. 젊음은 항상 활력이 넘치고 생동감이 있어 좋다. 나도 다 지나온 날들이다. 그냥 앉아서 그들 세상에 끼어 있는 것만으로도 좋다. 가을밤 엉덩이로 책 읽기 대회는 내 기억 속에 한 페이지로 남는다.

밤길을 걸으며 집으로 돌아오는 길, 풀숲에서 울어 대는 풀벌레 소리는 가을을 알리듯 정겹다. 우리 동네에는 언제나 찾아가 책을 만나는 '환상의 동네서점'이 있어 살기가 좋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기자의 브런치에도 실립니다.


환상의 동네서점

배지영 (지은이), 새움(2020)


태그:#엉덩이로 책읽기, #대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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