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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대집 대한의사협회 회장 등 협회 관계자들이 9월 14일 서울중앙지법 앞에서 환자사망 의사구속 사태 규탄 긴급 기자회견을 가졌다
▲ 법원 앞 의사구속 반대 집회 최대집 대한의사협회 회장 등 협회 관계자들이 9월 14일 서울중앙지법 앞에서 환자사망 의사구속 사태 규탄 긴급 기자회견을 가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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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8월과 9월 연달아 의사 두 명이 법정 구속돼 주목을 받았습니다. 한 명은 유령수술(환자가 동의하지 않은 의사가 환자 전신마취 상황에서 몰래 수술하는 것) 혐의로 사기죄 및 의료법 위반 유죄 판결을 받은 그랜드성형외과 전 원장 유아무개씨로 의료계에서도 문제점에 대해 공감하는 모양새지만, 다른 한 명 의사의 법정구속엔 대한의사협회(의협)가 나서 규탄 기자회견을 할 만큼 논란이 거셌습니다. 의료계는 유령수술이 아닌 정상적인 의료행위에서 유발된 사망사고이기 때문에 법정구속이 과하다는 반응입니다.

대희가 죽고 그간 많은 의료사고가 처리되는 과정을 지켜봐 온 저로선 이번 법원의 판단이 낯설게 느껴집니다. 그간 법원은 명백한 의료사고조차 가볍게 처리해 지탄을 받아왔기 때문이지요. 의료계가 이처럼 반발하는 것도 그간의 법원 판결과 온도 차가 컸기 때문일 겁니다.

어머니가 최대집 회장에게 입장을 요구한 이유

뉴스를 보고 어머니께 전해드리니 흥미로운 이야기가 돌아왔습니다. 어머님께선 8월부터 매일 아침 법원, 대검찰청, 서울중앙지검 앞에서 1인시위를 하고 계십니다. 그런데 지난 9월 14일 법원 앞에 기자회견을 하러 온 의협 관계자들과 한바탕 소동을 빚으셨다는 겁니다.

최대집 의협 회장과 다른 임원들에게 다가가서 '권대희 사건'에 입장을 내달라고 요구하셨다는 겁니다. 아들인 제 입장에서는 안타까우면서도 제가 하지 못 하는 일을 나서서 하시는 모습이 참으로 대단해 보였습니다.
 
고 권대희 어머니 이나금씨가 최대집 의사협회장에게 왜 부당한 의사들에 대해서는 의사협회에서 아무런 입장표명이 없는지 규탄하고 있다.
▲ 항의하는 의료사고 유족 고 권대희 어머니 이나금씨가 최대집 의사협회장에게 왜 부당한 의사들에 대해서는 의사협회에서 아무런 입장표명이 없는지 규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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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사람들이 모인 자리에서 목소리를 높이는 건 아니지 않느냐, 이제 아는 사람들도 조금 생긴 '권대희 사건'인데 어머니의 항의로 이미지가 나빠질까 걱정된다고 했더니 어쩔 수가 없으셨답니다. 증거에 따라 과실이 인정된 의사가 금고형을 받는 것에 대해서도 대대적으로 기자회견을 하면서, 의사의 유령수술로 아까운 생명을 숨지게 한 사건엔 한 마디 입장도 내지 않는 전문가집단에 화가 나셨다네요. 그런 상황이라면  제가 현장에 있었던들 어떻게 말릴 수 있겠습니까.

의협에선 이번 해프닝 이후로도 권대희 사건에 대해 아무런 입장을 내놓지 않고 있습니다. 그들이 이제껏 걸어온 행보를 생각하면 당연한 일일 겁니다. 권대희 사건이 화제가 된 뒤 자신이 의사임을 밝히며 응원의 메시지를 전해온 일부 깨어 있는 분들도 있었지만, 그들조차 나서서 목소리를 내주진 못했지요.

그래서 이번엔 제가 의협이 그토록 관심을 갖는 이 사건을 살펴봤습니다. 도대체 뭐가 문제기에 의협이 기자들을 모아 법원 앞에서 기자회견까지 했나 하고요.
 
장폐색 환자 사망사고 의사, 법정구속

관련 기사들에 따르면 사건은 이렇습니다. 2016년 강남세브란스 병원에서 뇌경색 등으로 치료를 받던 82세 환자 A씨가 대장암으로 의심돼 입원했습니다. 두 명의 의사가 A씨를 담당했습니다.

두 의사는 A씨가 대장암에 걸렸는지 확인하기 위해 대장내시경을 실시하기로 하고 장 세척제를 투여했습니다. 그런데 하루 만에 A씨가 숨진 겁니다. 사인은 대장파열로 인한 다발성 장기손상이었죠.

기사들에 따르면 당시 CT 영상에 장폐색 증상이 심하게 나타났음에도 장 세척제를 투여해 문제가 있었다고 합니다. 대장에 생긴 암이 대변이 내려가는 길을 막아 폐색 증상이 나타나고 있는데 대변량을 급격하게 늘리는 세척제를 투여하니 대장이 압력을 버티지 못하고 터졌다는 겁니다.

재판에서 의사들은 완전 폐색이 아닌 부분 폐색이었다고 주장했습니다. 장 세척제를 투여해도 문제가 없었다는 주장이지요. 하지만 법원은 이들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X-ray와 CT 촬영을 진행했다고 하고 이를 근거로 전문기관 감정을 받았을 테니, 완전 폐색으로 볼 여지가 있었다는 뜻이겠죠. 영상 판독과 조치에 중대한 과실이 있었다는 판단입니다.

기사에 언급된 판결문내용에 따르면 환자에게 장폐색 가능성이 낮다고 판단해 환자에게 장 세척제를 투여하기로 한 경우에도 그에 따른 부작용 위험성을 충분히 설명해 환자가 그 위험성을 충분히 인식한 상태에서 장 세척제 투여받을 지 여부를 스스로 결정해야 한다고 보고 있었습니다. 그런 점에서 업무상 주의의무를 위반했다는 것이죠.
 
물론 의사도 사람입니다. 실수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환자와 가족에게 정확하게 상황을 설명해야 합니다. 판결에서도 이 부분이 중요하게 참작됐는데 기자회견까지 나선 의협은 이 내용을 언급하지 않았습니다. 그저 정상적인 의료행위에 대해 법정구속은 있을 수 없다는 주장뿐이었지요.

의사에게만 권리가 있는 게 아닙니다. 환자의 권리도 의사의 그것에 비해 결코 가볍지 않습니다.

떠난 대희를 생각해봅니다. 대희가 그 성형외과에서 홀로 수술을 받기 전 작성한 동의서에는 대희의 이름이 잘못 적혀 있었습니다. 집에서 가족끼리 친근하게 부르는 예명을 동의서에 작성한 것이죠. 그런데 병원은 신분증 확인조차 하지 않았기 때문에 이를 알지 못했습니다.  

과다출혈로 사망에 이를 수 있는 수술을 하면서도, 수술 전 보호자 단 한 명에게 연락조차 없었습니다. 수혈할 피도 없는 그 병원에서 수술 중에만 3500cc의 피를 흘렸는데도, 저나 어머니에게 연락하지 않았죠. 심지어는 돈을 좀 더 벌기 위해 동시에 3명 수술을 감행했고, 수술이 끝나고는 상태가 호전되지 않은 대희를 두고 의사들이 모두 퇴근해버렸습니다. 

그 후 이 병원은 응급상황이 되어 119를 부를 때에도 보호자에게 연락이 없다가, 의식이 없어서 중환자실 입원을 위해 보호자 동의가 필수적인 상황이 되자 그제야 동생 휴대폰을 열어 제게 연락했죠. 수술 중 가벼운 사고가 있었다며 별로 심각한 일이 아닌 것처럼요.
 
모든 의료사고에 공정하게 대응해주십시오

의협은 의료사고로 사망한 사고에 대해 다른 접근법을 취해야 합니다. 법원이 중대한 과실로 판단해 금고에 법정구속까지 했다면 그와 같은 일이 왜 발생했는지를 살피고, 재발을 막아야 합니다. 그것이 존중받을 수 있는 전문가 집단의 역할입니다.

위험이 우려되는 경우 환자와 가족에게 상황을 설명하고 동의를 구해야 합니다. 그렇게 하지 않았다면 그것은 의사 개인의 문제일까요, 아니면 환자와 가족을 충분히 존중하지 않는 의료계의 인식과 문화 때문일까요. CT 영상에서 완전폐색 가능성이 보였음에도 이를 제대로 판단하지 못했다면 그 이유는 무엇일까요.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실수일까요, 검토할 시간이 충분치 않은 환경 때문일까요.

기자들을 모아 기자회견을 하고 법원 앞에서 간부들이 1인시위를 할 생각이 있다면, 먼저 이런 부분부터 철저히 검증하고 논하는 게 의사집단의 역할일 겁니다. 이날 기자회견에서 최대집 의협 회장이 법정구속된 교수가 어린 두 딸의 부모라는 점을 강조하자 저희 어머니는 "의사만 가족이 있나요?"하고 외치셨다고 합니다. 

의사 뿐 아니라 의료사고로 사망한 사람에게도 가족이 있습니다. 부디 그들의 마음을 한 번만 헤아려주시는 의료인이 되어주시길 간곡히 청합니다.

부족한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대희 형 태훈 올림.

덧붙이는 글 | 권대희 사건에 대한 재수사와 관련자 처벌을 구하는 국민청원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동참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https://www1.president.go.kr/petitions/592912


태그:#장폐색환자사망, #의사구속반대, #의사협회집회, #권대희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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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료정의와 약자의 문제에 관심이 많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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