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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아버지의 부고를 급작스럽게 받게 됐다.
 작은아버지의 부고를 급작스럽게 받게 됐다.
ⓒ pexel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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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말의 어느날, 느즈막하게 눈을 뜨고 게으름을 피우다 '이제 일어나야지' 하는데 문자 메시지가 왔다. "금일--- 변OO가 운명하셨습니다." 낯익은 이름. 작은 아버지의 성함이었다. 잠시 멍한 채로 있다가 누구한테 세게 한 대 얻어맞은 듯 정신이 번쩍 들었다.

다시 한 번 문자를 확인했다. 분명 작은 아버지의 함자 세 글자. 불과 한 달 전에 뵙고 왔는데. 그때 분명 "작은 아버지 또 올게요" 하고, 작은 아버지도 알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셨는데... 채 한 달도 안 돼 이렇게 허망하게 돌아가시다니.

조금 정신이 들자 이제 '엄마'가 걱정됐다. 이제 겨우 원기를 회복하고 있는 중인데... 분명 장례식장에 가려고 하실 텐데... 장례식장에서 밤샘 하시겠다고 하면 어쩌지... 아니나 다를까 엄마에게서 전화가 왔다.

"작은 아버지 소식 들었지? 나 좀  데리고 가."
"언제 가실 건데요?"
"얼른 가야지. 그래도 엄마가 집 안에서 제일 어른인데..."
"밤샘 할 건 아니죠?"
"잠은 집에 와서 자야지."

장례식장 가는 차 안에서 엄마와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었다.

"지난번 뵙고 올 때 상일에게 집 비우지 말고 옆에서 지켜보라고는 했지만, 그래도 이렇게 빨리 가실 줄은 정말 몰랐다."

엄마는 어느 정도 작은 아버지의 죽음을 예견하고 계셨던 모양이다. 그럼에도 생각보다 너무 빨라 놀라신 듯했다. 엄마는 어떻게 작은 아버지의 상태를 예견하셨을까. 

"지난번 뵀을 때 숨쉬는 게 다르더라고. 사람이 숨을 들이쉬고 내쉬어야 하는데... 영 그렇더라고."

분명 우리도 엄마랑 같이 작은 아버지를 뵀는데... 이런 게 연륜이고 지혜인가. 

큰엄마를 보자 울음을 터뜨린 상주들 
 
상주들은 큰엄마를 보자 금방 눈물이 그렁그렁해졌다.
 상주들은 큰엄마를 보자 금방 눈물이 그렁그렁해졌다.
ⓒ 변영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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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주들은 큰엄마를 보자 금방 눈물이 그렁그렁해졌다. 부모를 잃은 어린 아이의 서러움과 애처로움이었다. 이미 중년이 돼도 부모를 잃으면 모두 이렇게 어린아이처럼 불안해하고 어쩌지를 못한다. 생전에 일흔이 넘은 아버지가 어느날 회심곡을 들으시다가 "난 이제 아버지도 엄마도 없는 고아다"라면서 몹시 슬퍼하시는 모습을 본 적이 있다. 부모를 잃은 자식들은 그렇다. 늘 서럽다. 나이와는 상관없이 그렇다.

엄마와 작은 어머니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서로를 부둥켜 안고 서글프게 울기 시작했다. 두 분은 그렇게 한동안 아주 서럽게 '곡'을 했다. 두 분의 '곡소리'에는 스무살이 조금 넘은 꽃 다운 나이에 변씨네로 시집 와서 한 시어머니를 모시고 살았던 긴 세월이 담겨 있었다. 이상하게도 두 분의 곡소리가 내 귀에는 '대화'처럼 들렸다.

'아이고 형님, 아이고 형님, 아이고... 이렇게 허망하게 가네요. 저 사람이. 긴 시간 병상에 누워 고생만 하다가 갔어요. 이제 전 어떻게 살아요. 미우나 고우나 그래도 저 사람 보고 살았는데... 아이고 형님...'
'아이고 자네가 기운을 내야지. 아이고... 자네도 할 만큼 했네... 이제 잘 보내야지. 간 사람은 간 거고... 자네도 그동안 너무 힘들었잖은가...'
'아이고... 아이고...'

마루바닥에 엎드려서 두 분은 그렇게 서로를 위로하는 '곡'을 했다.  피가 섞인 형제는 아니지만 두 분은 누구보다 속속 저간의 사정을 꿰뚫고 있을 것이니 엄마의 눈에는 작은 엄마가 몹시 안스러워보였을 것이고, 작은 엄마에게도 엄마는 그 모진 세월을 알아주는 유일한 사람이었을 것이다. 두 분의 곡소리가 자식들의 폐부를 찔러댔다. 뒤에 선 두 분의 자식들도 함께 눈물을 쏟았다.

그때 늙은 엄마는 집 안의 '제일 큰 어른'이었다. 작은 엄마와 상주들이 서럽게 쏟아내는 울음을 다 받아주고 다독여 주는 맏어른이었다.

종부의 위엄 
 
연륜이 만든 지혜와 존재감.
 연륜이 만든 지혜와 존재감.
ⓒ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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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그때 좀 거창하게 말을 하면 종부의 '위엄'을 본 것 같았다. 엄마는 학식이 뛰어나지도 않고 따로 종부의 행실에 대해서 교육을 받은 적은 없지만, 엄마 나름의 종부로서의 책임과 의무를 게을리 하지 않았다.

엄마는 늘 당신으로 인해 '한 집안에 내려오는 전통과 가문이 흐트러지는 것을 원치 않는다'고 하신다. 늘 당신이 베풀고 넉넉하게 마음을 썼다. 입과 몸가짐이 가볍지 않았고 말을 앞세우기보다는 행동이 빨랐다. 당신이 하신 일을 생색 내지도 않았고 불편한 심정을 밖으로 드러내는 법도 없었다. 남을 시키기보다는 당신이 먼저 했다. 힘들다고 하소연을 하는 것을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다. 그저 '묵묵히' 종부로서의 자신의 삶을 살았다.

큰 일이 있을 때면 늘 엄마와 크고 작은 실랑이가 일었다.

"왜 엄마 혼자서 다 해? 작은 집에서는 아무도 안 오는데?"
"왜 작은 어머니들이 할 일을 왜 우리가 해야 하는데?"
"딸은 오지도 말라면서 왜 일은 우리한테 시켜? 그러니까 이번엔 양도 줄이고 좀 사다 하자."
         
그럴 때도 엄마는 아무 소리 않고 당신의 일을 했다. 미련 맞아 보일만큼 말이다.

엄마가 생각하는 종부는 특별한 것이 아니다. '집안 대대로 내려오는 가풍과 전통을 따르고 잘 유지되도록 하는 것', 구체적으로는 조상의 제사를 잘 모시는 것이었을 것이다. 실제로 엄마는 1년에 열 번이 넘는 기제사와 종중 제사를 힘들다 소리 한번 안하시고 지냈다.

아버지가 돌아가시면 그만하실 줄 알았는데 오히려 더 챙겼다. 그것이 당신의 도리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조상님들에게 죄를 짓는 것 같다고, 마음이 편하지 않단다. 엄마는 팔십 평생을 그렇게 살아왔다. 그렇다고 요즘 사람들이 명절 증후군을 앓고, 시가에 가기 싫어하고, 제사 문제로 다투는 것을 이해못하는 것도 아니다. 다만, 삶의 마지막 순간까지 당신이 평생 맞다고 걸어온 그 길을 가고 싶어할 뿐이다.

"엄마는 그런 게 좋았어. 힘들다거나 귀찮다는 생각도 안 들었어. 명절이면 식구들 다 같이 모여서 얼굴 보고 하면 얼마나 좋아? 옛날에 1년에 열 번이 넘게 제사를 지낼 때도 엄마가 힘들다고 하는 거 봤니?"

엄마 말이 맞다. 단 한번도 엄마에게서 '힘들다, 내가 왜 변씨네 와서 이 고생이냐'라는 말을 들어본 적이 없었다. 한때는 '왜 여자만 남자집에 가서 모르는 친척들을 위해 며칠동안 고생을 해야 하느냐? 여자가 그 집 식모냐?'라고 악악대던 나도 지금은 그냥 엄마의 삶을 존중해 드리려고 한다. 전근대적이니 굴종적이니, 부당하다느니, 여권이 어떠니 하는 말들로 엄마의 삶을 상처내고 싶지 않다.

에피소드, 팔순 엄마의 '한 건'

집에 돌아와 엄마와 이런 저련 얘기를 나눴다. 

"발인 전날밤 10시가 넘어 내일 납골당에 모신 다음 마지막 제사 제물을 준비했냐고 물었더니 다들 그 생각은 하지 못했던 거라. 그제서야 제물을 챙긴다고 분주해서는... 으그..."
"맨날 그렇게 했는데 왜 그랬을까."
"그러게 말이다. 아니 맨날 제사를 지내면 뭐해. 그 많은 사람들 중에 그거 하나 못챙기고. □□이가 그러더라. 큰엄마가 말씀해주지 않으셨으면 어쩔 뻔 했냐고. 몇 번이나 감사하다고 하더라."

엄마는 그렇게 '한 건' 한 것이 좋으셨던 모양이다. 집 안의 큰 어른으로서의 역할을 톡톡히 하신 것이 못내 자랑스러우셨나보다. 몇 번이나 '의기양양'하게 그 얘기를 하셨다.

"엄마 맞아. 엄마는 우리 집안의 큰 버팀목이야."

노인 한 명은 도서관 하나와 맞먹는다고 한다. 살아온 인생만큼의 지혜가 가득하다는 말일 게다. 비록 보잘 것 없는 변씨 가문이지만, 한 가문의 종부로서의 엄마의 삶... '당신은 누구보다도 가치 있는 삶을 사셨습니다'라고 말씀해드리고 싶다.

태그:#팔순의 내엄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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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박사, 한국여행작가협회정회원, NGPA회원 저서: 조지아 인문여행서 <소울풀조지아>, 포토 에세이 <사할린의 한인들>, 번역서<후디니솔루션>, <마이크로메세징> - 맥그로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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