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C 서울과 수원 삼성은 K리그 전통의 라이벌이다. 두 팀의 맞대결은 '슈퍼매치'로 불리우며 K리그 최고의 흥행카드로 꼽혀왔다. 하지만 최근 몇 년간 두 팀의 위상이 나란히 하락세를 거듭하면서 이제는 '슬퍼매치'라는 자조섞인 농담으로 불리우는 지경이 됐다.

서울과 수원은 올시즌 나란히 파이널 A그룹 진입에 실패했다. 상하위스플릿 제도가 도입된 이래 전통의 강호 두 팀이 모두 6위권 이내 진입에 실패한 것은 사상 최초였다. 두 팀 모두 올시즌 성적부진으로 나란히 사령탑이 잇달아 교체되는 우여곡절을 겪은 것도 닮은 꼴이었다. 수원은 이임생 감독-주승진 대행 체제에 이어 현재 박건하 감독이 지휘봉을 잡고 있고, 서울은 최용수 감독에 이어 최근 김호영 감독대행까지 물러나며 수원전에서는 박혁순 코치가 임시로 지휘를 맡아야했다.

수원과 서울은 지난 26일 수원월드컵경기장에서 K리그1 23라운드이자 파이널 B그룹의 첫 경기를 치렀다. 양팀의 맞대결은 올시즌 세 번째지만 파이널 B에서는 최초로 열린 슬퍼매치였다. 수원은 아담 타가트의 헤트트릭을 앞세워 서울을 3-1로 제압했다. 양팀은 올시즌 슬퍼매치에서 1승1무1패로 팽팽한 균형을 이뤘다. 통산전적에서는 서울이 35승24무 33패로 여전히 앞서고 있다.

수원에서는 의미가 남다른 1승이었다. 수원이 서울을 이긴 것은 2015년 4월 18일 홈에서 열린 경기(5-2 승) 이후 무려 1989일만(만 5년 5개월 8일)이었다. 수원은 이 기간 서울을 만나 18경기 연속 무승(8무10패)에 그치며 라이벌전이라는 의미를 무색케할 정도로 열세에 몰렸다. 박건하 감독의 수원 데뷔전이었던 13일 20라운드에서도 서울은 2-1로 발목을 잡으며 한때 수원을 최하위의 위기로 몰아넣기도 했다.

하지만 수원은 파이널라운드에서 서울에 설욕에 성공하며 9위(6승6무11패, 승점24)로 뛰어올랐다. 수원은 지난 22라운드에서 강원에 2-1 역전승을 거둔데 이어 오랜만에 연승행진을 이어가며 상승세를 타고 있다. 특히 이날 경기전까지 리그에서 고작 5골에 그치며 저조했던 타가트가 헤트트릭을 기록하며 살아난 것이 고무적이다. 타가트는 수원 선수로서는 최초로 슬퍼매치에서 해트트릭을 기록한 선수로도 이름을 올리게 됐다.

시즌내내 득점력 부족으로 고전했던 수원은 최근 2경기에서만 5골을 추가하며 팀득점을 23골로 늘렸다. 파이널B그룹에서는 강원(27골)에 이어 두 번째로 많은 득점이다. 팀간 승점차가 크지않은 상황에서 다득점은 각팀의 막판 순위 경쟁에 결정적인 변수가 될 수 있는 부분이다. 수원으로서는 구단 레전드 출신이기도 한 박건하 감독을 늦게나마 영입한 효과가 서서히 나타나고 있는 분위기다.

반면 서울은 여전히 파이널 B그룹에서 가장 높은 7위(7승4무12패, 승점 25)를 지키고 있지만 강원-수원과는 이제 불과 승점 1점차이며 다른 팀의 경기결과에 따라 순위가 추락할수 있는 상황이다. 최하위 인천(승점 18)과 불과 7점차밖에 나지않는다는 것을 감안하면 서울도 강등권 경쟁에서 마냥 안심할수 있는 분위기가 아니다.

서울은 파이널 B추락에 이어 수원과의 슬퍼매치를 앞두고 이미 또다른 악재가 발생했다. 최용수 감독에 이어 팀을 이끌어왔던 김호영 감독 대행이 파이널라운드를 코앞에 두고 전격 사임한 것. 김호영 대행은 한때 강등권까지 몰렸던 서울을 중위권으로 반등시켰으나 구단으로부터 정식 감독 승격에 대한 확답을 받지못했고 결국 사임을 선택했다. 사령탑의 공백속에 서울은 라이벌전을 제대로 준비할수 없었고 어수선한 집중력은 경기에서 그대로 나타났다.

서울은 이날 경기로 K리그 12개구단을 통틀어 시즌 첫 40실점 고지를 돌파하는 불명예 기록을 추가했다. 서울이 기록한 팀 득점(20골)의 정확히 두 배다. 시즌 내내 문제점으로 드러나고 있는 서울의 수비불안은 좀처럼 개선되지 않고 있다. 현재 박혁순 코치를 비롯한 서울의 코치진이 모두 성인팀 지도 경험이 1~2년 미만에 불과한 인물들이라 이들만으로 남은 파이널라운드를 맡기기에는 역부족이다. 감독대행 체제로 K리그 일정을 마치고 천천히 차기 감독을 물색하려던 계획이 완전히 어그러진 것이다.

한때 K리그 패권을 다투던 두 팀의 초라한 현 주소는 씁쓸한 여운을 남긴다. 두 구단 모두 한때 모기업의 든든한 지원을 바탕으로 스타 선수들을 끌어모으며 성적을 올렸지만 최근에는 더 이상 축구에 적극적으로 투자를 하지않는 실정이다. 감독의 영향력이 줄어들고 프런트 중심의 축구를 시도하고 있다는 것도 비슷하다.

수원과 서울은 몇 년간 리빌딩에 소홀했다. 염기훈(수원)-박주영(서울)같이 30대 중반을 넘긴 노장 선수들이 아직도 핵심전력으로 중용되고 있으며 이들의 전성기가 이미 지났음에도 대체자가 보이지 않는다는 게 두 팀의 현실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그나마 간혹 발굴해낸 외국인 선수나 젊은 유망주조차 몇 년 가지못해 국내외의 빅클럽들에게 머니 파워에서 밀려 빼앗기기 일쑤다. 수원과 서울은 이제 더 이상 우승에 도전하는 빅클럽이라기보다는 '셀링클럽'에 더 가깝다.

서울은 올시즌 기성용의 영입 문제로 홍역을 치렀다. 당시 여론이 들끓었지만 진짜 문제는 기성용보다도 서울이 우선적으로 필요한 포지션에 전력보강을 하려는 적극적인 의지가 없었다는 사실이다. 최용수 전 감독이 구단에 필요로 한 우선순위를 꼽자면 서울로서는 최 감독의 스타일과 맞지않았던 페시치가 떠난 외국인 공격수보강이 1순위였고, 수비라인이 그다음 순위였다.

상대적으로 오스마르-주세종-김원식-정현철 등 가용자원이 풍부한 서울의 중원에서 기성용은 '사치품'이지 '필수품'은 결코 아니었다. 더구나 우려한대로 기성용은 오랜 공백기로 인한 실전감각저하와 불안한 내구성으로 서울 복귀 이후에도 교체로만 간간이 출전했을뿐 팀에 실질적으로 기여하고 있는 부분은 크지 않다. 기성용의 이름값과 여론의 눈치에 끌려다니며 돈을 써야할 때도 제대로 쓰지 못한 서울 프런트가 자초한 실패였다.

심지어 수원은 구자룡-홍철 등 팀내 핵심자원들이 줄줄이 라이벌팀으로 이적하는 상황에서도 여름 이적시장까지 제대로 된 즉시전력감 영입이 아예 전무했다. 지원도 제대로 해주지않는 상황에서 이임생 전 감독이나 주승진 감독대행이 시도할수 있는 선택지는 한정될 수밖에 없었다. 상황이 어려울때마다 서정원 전 감독이나 박건하 감독처럼 구단 레전드 출신들을 소환하여 눈앞의 위기만 모면하려는 패턴도 반복된다. 올시즌 수원이 박건하 감독 체제에서 강등권을 벗어난다고 할지라도 이런 식이라면 수원의 미래는 앞으로도 어두워보인다.

수원과 서울이 올해 나란히 위기를 겪고 있는 이유에서 '감독의 문제'는 단지 일부에 불과할 뿐이다. 감독은 적어도 성적으로 결과에 대한 책임을 지기라도 하지만, 오늘날 구단 운영에 더 실질적인 책임을 지고 있는 프런트의 무능까지 덩달아 뒤집어써야하는 것은 부당하다. 슬퍼매치에서의 희비는 엇갈렸지만, 수원과 서울 모두 위기는 현재진행형이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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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삼성 FC서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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