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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혜, 흑임자, 순댓국... 이 맛있는 걸 그동안 왜 어르신들만 먹었을까요? 젊은이들이 예스러운 우리 고유의 음식에 푹 빠졌습니다. 이른바 '할매 입맛'을 가진 밀레니얼 세대가 늘어나면서, '할매니얼'(할매+밀레니얼)이라는 신조어까지 생겨날 정도입니다. '할매니얼 가이드'는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맛깔나는 우리 음식, 숨겨진 맛집, 나만 아는 노포 등을 소개하는 기획입니다.  [편집자말]
뼈와 고기를 함께 넣고 무쇠 가마솥에서 우려낸 백가네 곰탕. 맑고 뽀얀 국물맛이 일품이다.
▲ 양주시 가래비 장터에 있는 "백가네곰탕" 뼈와 고기를 함께 넣고 무쇠 가마솥에서 우려낸 백가네 곰탕. 맑고 뽀얀 국물맛이 일품이다.
ⓒ 변영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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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 바람이 불기 시작하면 부지불식간에 뜨끈뜨끈한 곰탕이 생각난다. 뽀얀 국물에 송송 썬 파를 듬뿍 넣고 뜨거운 밥 한 사발 풍덩 말아서 김치와 함께 먹으면 배고픔과 가슴 속의 헛헛함까지 한 방에 해결된다. 곰탕 한 뚝배기에 행복 만땅이다. 

시골에 가면 가끔 들르는 곰탕집이 있다. 시골 장터, 허름한 건물에 있는 이 식당은 무쇠 가마솥에서 몇 시간 동안 정성껏 우려낸 뽀얗고 맑은 국물이 일품이다. 다른 식당에서는 1만2000원 하는 가마솥 곰탕이 단돈 8000원인데 서비스로 수제 떡갈비까지 나온다.

 백가네 무쇠 가마솥 '찐' 곰탕
  
경상도 현풍곰탕식으로 우려낸 백가네 곰탕. 진한 국물과 부드러운 고기가 일품이다.
▲ 백가네곰탕 경상도 현풍곰탕식으로 우려낸 백가네 곰탕. 진한 국물과 부드러운 고기가 일품이다.
ⓒ 변영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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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만에 양주시 가래비 장터에 있는 '백가네 곰탕'을 찾았다. 오늘도 '백가네 곰탕' 가게 앞에는 변함없이 대형 무쇠 가마솥이 걸려 있었다. '하루에 딱 100그릇 양만 한정 판매'라는 현수막도 그대로였다.

"사실은 백 그릇 더 팔아요." 어떤 아저씨가 고자질하듯 귀띔을 해 준 적도 있지만 그 아저씨도 하루종일 앉아서 곰탕 수를 세어 보지는 않았을 텐데, 어떻게 알고 그렇게 말을 할까. 하루에 가마솥 두 개로 제일 맛있게 우려낼 수 있는 양만큼만 팔겠다는 주인장의 마음으로 이해하면 될 터였다.   

지어진 지 80년이 다 되어가는 허름한 단층 건물에 들어선 비좁은 식당은 손님들로 북적였다. 몇 개 안 되는 홀 테이블은 이미 모두 사람들로 꽉 차 있었다. 벽지는 이미 색이 바랜 지 오래고 여기저기 낙서로 가득했다. 모두 손님들이 남기고 간 낙서인데 개중에는 제법 '시' 냄새가 나는 글도 있었고, '술잔이 앞에 놓여 있으니 어찌 술을 마다하리오' 같은 어느 주당의 글도 있었다. 

아래쪽 벽면에는 병뚜껑을 활용한 아기자기한 인테리어 장식도 보였다. 요즘 새로 생기는 으리으리한 식당들에 비하면 초라했지만 오래된 식당이 풍기는 편안함이 있었다. 한창 바쁜 시간인지라 남편은 주방일을 보고 아내는 부지런히 음식을 날랐다. 

마침 옆 테이블에 자전거 동호회 회원들이 있기에 "여기 자주 오세요?" 하고 물었더니 "얼마 전에 한 번 먹어봤는데 맛이 있어서 지나갈 일이 있으면 꼭 먹고 간다"고 말했다. 식당 구석구석에서 사람 사는 냄새가 물씬 풍겼다. 

'음 좋군' 소리가 절로 나오는 뽀얀 국물 

알다시피 곰탕은 사골, 우족, 소꼬리, 뽈살, 반골 등을 넣고 오랜 시간 푹 '곤' 음식으로 임금님의 수라상에도 올랐던 귀한 음식이다. 1527년 조선 중종 22년에 발간된 훈몽자회에는 곰탕이 국에 비해 국물이 진하며 공이 많이 들어가는 진귀한 음식이라고 적혀 있다고 한다. 황해도 해주곰탕, 전라도 나주곰탕, 경상도 현풍 곰탕을 3대 곰탕으로 꼽는다고 한다. 

백가네 곰탕은 경상도식인 현풍곰탕을 모티브로 한 곰탕으로 사골, 우족, 꼬리, 반골을 넣고 여섯 시간 이상을 무쇠 가마솥에서 우려낸다. 당연한 얘기지만 국물이 뽀얗게 보이기 위해 우유, 밀가루 등 어떤 첨가물도 넣지 않는다. 순수하게 뼈와 고기만 푹 고아낸 국물이다. 
  
우족, 사골, 꼬리, 반골을 넣고 푹 곤 백가네곰탕.
▲ 백가네곰탕 우족, 사골, 꼬리, 반골을 넣고 푹 곤 백가네곰탕.
ⓒ 변영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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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문한 '모듬 곰탕'이 나왔다. 뽀얀 우윳빛 국물이 예전 그대로였다. 소뼈를 우린 국물이 누린내나 비릿함 하나 없이 어떻게 이렇게 고소할 수 있는지 정말 신기하다. 

송송 썬 파를 듬뿍 넣고 소금으로 간을 한 다음 국물을 저으니 가라앉아 있던 고기들이 묵직하게 숟가락에 걸렸다. 꼭 낚시라도 하는 것 같다. 낚싯대로 하나씩 건지는 것이 아니고 투망을 던져 한꺼번에 왕창 건져내는 손맛이라고나 할까. 

국물 한 숟가락 떠서 맛을 보았다. 내가 기억하는 맛 그대로였다. 혀에 뭔가 쩍쩍 들러붙는 듯한 걸쭉한 느낌. 음 좋군… 소리가 절로 나왔다. 뜨끈한 국물이 목젖을 타고 내려가면서 온몸을 덥혀주는 듯했다.
 
가마솥에 곤 백가네 곰탕 수육 전골
▲ 백가네곰탕 수육전골 가마솥에 곤 백가네 곰탕 수육 전골
ⓒ 변영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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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기를 건져 간장 소스에 찍어 입에 넣었다. 딱딱하지도 너무 흐물거리지도 않는 딱 적당한 식감이었다. 잡내도 없었다. 우족, 도가니, 뽈살, 꼬리살 등의 두께와 크기가 딱 한입에 먹기 좋았다. 

도가니는 미끌거리면서도 쫄깃하고 뽈살은 담백했다. 다른 집 곰탕은 몇 점 건져 먹다 남기곤 하는데 마지막 고기 한 점까지도 다 먹었다. 밥과 국수는 건드리지도 않았는데 고기와 국물로 벌써 배가 불러왔다. 떡갈비도 먹어야 하는데 야단났다.

백가네 곰탕의 또 하나의 별미는 떡갈비다. 주인장이 직접 양념을 하고 빚은 수제 떡갈비다. 모양도 두툼하고 동글동글 먹음직스럽게 생겼다. 모든 메뉴에 서비스로 나온다. 

두꺼우면 익히는 것도 쉽지 않은데 겉은 바삭하고 속은 촉촉하게 육즙이 그대로 살아 있었다. 떡갈비로만 배를 채우고 싶은 만큼 맛이 좋았다. 실제로 손님들 중에는 떡갈비만 포장해 가는 사람도 많았고 일부러 떡갈비를 사러 오는 사람도 있었다. 

마지막이란 생각으로 시작했는데... 이제 4년 차   

'백가네 곰탕'은 이제 겨우 4년 차 곰탕집이다. 물론 '백가네 곰탕'이라는 식당은 오래 전부터 있었지만 주인이 바뀌었으니 새 식당이라고 하는 것이 맞을 것이다. 주인장은 4년 전 백가네 곰탕을 인수하기 전까지는 곰탕은커녕 밥장사도 해본 적이 없었다. 

양주시에 연고가 있는 것도 아니었다. 서울에서 이런저런 장사를 하다 잘 안 돼서 '이번이 마지막이다'이란 생각으로 '백가네 곰탕'을 덥석 인수했다. 꼬박1년간을 식당에서 일을 하면서 곰탕 끓이는 법을 배웠다. 

여유 자본이 없어 주방이나 인테리어에도 전혀 손을 못 댄 채 옛날 간판을 달고 영업을 시작했다. 사장과 곰탕 맛만 바뀐 셈이다. 그런데 사람들이 어떻게 알았는지, 맛있다는 소문을 듣고 찾아오는 손님들이 늘어나서 지금은 꽤 자리가 잡혔다. 
 
저녁장사를 위해 새로 지은 밥
▲ 백가네 곰탕  저녁장사를 위해 새로 지은 밥
ⓒ 변영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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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장에게 맛을 내는 데에 '특별한 비법'이 있냐고 물었더니 '좋은 재료와 정성이 최고의 비법'이라는 답이 돌아왔다. 매일 새벽 5~6시면 가게에 나와 뼈와 고기를 손질하고 대여섯 시간을 푹 고아 그날 장사할 국물을 준비한다. 두 개의 가마솥에 고기와 뼈를 같이 넣고 4번을 우려낸다. 

점심시간이 지나자 가마솥 한 개가 텅 비었다. 이제 남은 가마솥 곰탕은 저녁 장사거리다. 그러니까 가마솥 2개에서 나오는 곰탕이 100그릇이란 얘기다. 손님이 많은 날은 일찌감치 동이 나기도 한다고. 실제로 기자도 가서 헛걸음한 적이 있었다.  
  
백가네 곰탕은 인근 주민들과 주변 상가나 관공서 직원들 사이에 맛집으로 소문나 코로나19로 많은 식당들이 힘들 때도 크게 어려움이 없었다고 한다. 정작 힘든 것은 코로나19를 빙자해 육류수입업자와 유통업자들이 고깃값을 올리는 것이다. 곰탕 가격을 7000원에서 8000원으로 올린 이유가 여기에 있다고 말했다.  
 
양주시 가래비장터에 있는' 백가네 곰탕'. 매월 4.9일에는 가래비5일장이 열린다.
▲ 백가네곰탕  양주시 가래비장터에 있는" 백가네 곰탕". 매월 4.9일에는 가래비5일장이 열린다.
ⓒ 변영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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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심 부리지 않고 초심을 잃지 않고 꾸준히 해야죠. 가격을 유지하는 게 힘들지만 우리가 이익을 덜 남기면 돼요. 손님들 맛있게 드시는 모습 보는게 제일 뿌듯해요. 나중에 아내의 성을 따라 'O가네 곰탕'이란 간판을 다는 것이 꿈이죠." 

주인장은 저녁 장사 준비를 하느라 또 바쁘게 움직였다. 요즘 곰탕에 떡갈비까지 주면서 8000원밖에 안 하는 곰탕집이 있나 싶다. 국물 맛도 이렇게 진국인데 말이다. 마침 매월 4, 9일에는 가래비 5일장이 선다. 겸사 겸사 나들이 한번 가봐도 좋겠다. 

덧붙이는 글 | 취재


태그:#곰탕, #백가네곰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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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박사, 한국여행작가협회정회원, NGPA회원 저서: 조지아 인문여행서 <소울풀조지아>, 포토 에세이 <사할린의 한인들>, 번역서<후디니솔루션>, <마이크로메세징> - 맥그로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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