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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청장 지시사항으로 재난목적 예비비 16억 지출
수의계약으로 진행할 만큼 시급한 사안이었나 문제제기 일어


서울 은평구청은 지난 9월 10일부터 은평구 전 세대에 접촉식 체온계 배부를 시작했다. 은평구청 재난안전대책본부는 지난 5월 가을 환절기에 코로나 19 재유행이 우려됨에 따라 사전 예방을 위해 체온계를 배부하기로 결정했다. 이에 접촉식 체온계 20만 개 구입을 위해 재난안전목적 예비비 15억 원을 집행했고 통장과 주민자치위원 등을 통해 배부했다. 

체온계 배부에 대한 주민들의 반응은 엇갈리고 있는 상황이다. "구민 세금으로 체온계를 지원 받아 좋다", "퇴근하고 와서 체온계가 없어 걱정하며 잠들었던 적이 있는데 구민들에게 배부해서 안심되고 좋다"는 반응이 있는가 하면, "체온계에 너무 과도한 예산을 집행한 게 아니냐", "수의계약으로 진행할 만큼 긴급하게 체온계를 구비해야 할 상황은 아니다"라는 등의 부정적 반응도 이어졌다.

22일 열린 은평구의회 임시회에서도 양기열 의원(국민의힘, 갈현1·2동)과 나순애 의원(더불어민주당, 응암2·3동)은 체온계 구입에 많은 예산을 집행하며 수의계약으로 진행된 점 등은 문제라고 지적하는 등 체온계 구입과 관련해 논란이 일고 있는 모양새다. 

김미경 구청장 지시로 시작된 체온계 구매, 16억 집행 과정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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접촉식 체온계 구매는 5월 27일 코로나19 대응 28차 대책회의에서 '김미경 은평구청장 지시사항'으로부터 시작됐다. 이에 6월 23일 재난안전목적 예비비 사용계획을 수립하고, 7월 1일자로 은평구청 기획예산과는 예비비 사용을 승인했다. 

체온계 구매는 조달청 경쟁입찰방식이 아닌 수의계약을 통해 진행됐다. 수의계약은 통상 일반 기업 2천만 원, 여성·장애인 기업은 5천만 원 규모까지 가능하지만 코로나19와 같이 긴급 복구가 필요한 재난에 해당하는 사항에 대해 입찰에 부칠 경우는 지방계약법 시행령에 따라 금액한도 없이 1인 견적 수의계약을 추진할 수 있다. 이에 근거해 은평구청은 16억 규모의 체온계 구입을 수의계약을 통해 진행했다.

체온계 선정과정에서 20만개 이상의 물량확보가 가능한 제품과 품질 보장을 위해 의료기기로 인증된 제품을 고려했다고 구청 관계자는 밝혔다. 이에 따라 독일 제품이면서 중국 공장이 OEM으로 생산하는 KD-133 모델과 국내에서 생산되는 HT-200A 모델 두 가지가 선정됐다. 

수의계약으로 업체를 선정하면서 은평구청은 두 가지 체온계를 다루는 업체 중 의료기기를 취급하는 도·소매 업체 중 단기간 내 최소 5만 개 이상 물량확보가 가능한 업체를 고려해 선별했다. 이를 통해 최종 6개 업체가 선정됐는데 이중 최저가를 제시한 업체 3곳을 선정했다고 구청은 밝혔다.

이렇게 선정된 업체를 통해 총 세 차례를 나눠 체온계 구매를 실시했다. 7월 13일 계약을 체결한 1차 구매에서는 A업체를 통해 KD-133 체온계 5만 개를 개당 9천 원에 구매했고, 8월 31일 계약을 체결한 2차 구매에서는 KD-133 체온계 5만 개를 개당 7500원에 구매했으며, 9월 7일 계약을 체결한 3차 구매에서는 HT-200A 제품 10만 개를 개당 5900원에 구매했다.

개당 가격에 대해서 은평구청 관계자는 "계약을 요청한 시점에 가격비교 사이트 D사에 나타나 있는 시장가격을 중심으로 가격이 선정됐다. 은평구 로고를 삽입하는 것까지 포함해 당시 실제 시장 최저가격보다 적게는 200원 많게는 1천 원까지 가격을 낮춰 진행을 했다"고 밝혔다.

해당 제품들이 올해 초까지만 해도 3천 원 정도에 가격이 형성됐는데 2배 이상 가격을 지불하고 체온계를 구매했다는 점에 대해서는 "코로나19 이전에는 체온계 수요가 높지 않아 가격이 저렴했는데 코로나19가 우리나라에 나타나기 시작한 2월부터 꾸준히 가격이 상승해 가격 조사를 하던 6월경에 체온계 가격이 높게 형성된 것 같다"고 말했다.

은평구청 자치안전과 관계자는 이번 체온계 배부 이유에 대해 "코로나19 방역으로 마스크 배부나 방역 물품 제공 등을 해왔는데 이후에 구청이 구민들에게 할 수 있는 것들은 무엇이 있을까 고민했고, 아이디어가 나온 것이 전 세대에 체온계를 나눠주는 것이었다. 집 밖에 나설 때 체온을 측정하고 밖으로 나가면 예방효과가 있을 것이라 판단했다"고 말했다.

전 세대에 체온계 배부한 '보편적 복지', 적절했을까

체온계 배부를 두고 코로나19 시대 선별적 복지냐 보편적 복지냐를 두고 다양한 목소리가 제기되고 있다. 구청장 의지에 따라 선별적 복지 혹은 보편적 복지를 결정했던 것인데, 시민들의 의견 등 여론 파악이나 공론화 과정 없이 재난안전목적 예비비를 집행한 것은 너무 일방적인 행정이라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구산동에 거주하는 직장인 A씨는 "체온계 구매에 16억을 집행하면서 어떤 의사결정이 내부에 있었는지 궁금하다. 왜 체온계를 전 세대에 배부하는 만큼 공론화 과정이 필요했다고 생각된다"고 말했다. 

불광1동에 거주하는 직장인 B씨는 "선별적 복지냐 보편적 복지냐는 여전히 시대적으로 해결되지 않은 논란거리이다. 그런데 구청장의 지시사항에 의해서 체온계 배부가 이루어지고 16억이라는 세금이 이렇게 쓰여지는 모습을 보니 정책이나 사업을 진행할 때 단체장의 의지가 그만큼 중요하다는 게 느껴진다"고 말했다.

또한 B씨는 "복지 방식을 떠나서 체온계가 정말로 전 세대에게 지급해야 할 만큼 시급하게 구매해 배부해야 할 물건은 아니었던 것 같다. 만일 필요했다면 전 세대에 배부할 게 아니라 필요 세대에 지급하는 방안이 더 적절했지 않았을까 생각된다"고 말했다.

어떤 복지를 어떤 대상에게 제공할지를 결정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복지 필요성에 대한 공론화가 필요하고, 지출 대비 효과가 분석돼야 한다.

하지만 이번 은평구청의 체온계 배부는 의사결정 과정에서 아쉬움이 남을 수밖에 없다. 은평에는 참여예산이나 협치 구조가 갖춰져 있는 만큼 이 같은 예산을 지출할 시엔 시민들과 소통을 통해 협의할 수 있는 과정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은평시민신문에도 실립니다.


태그:#은평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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