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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산 정약용 초상화.
 다산 정약용 초상화.
ⓒ 이재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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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가 생긴 이래 가장 많은 저술을 남긴 대학자"(정인보)라는 평이 따른 정약용의 글 중에는 많은 시와 시론이 포함된다. 1808년 겨울에 「학연에게 부친다」는 편지에서 "시대를 아파하는 것이 아니면 시가 아니다"라는 내용이 담겼다. 시(글)의 역사적 의미와 가치를 논하는 시론이라 하겠다.

당대의 사대부들이 중국 명인들의 싯구를 따오거나 음풍농월(吟風弄月)에 취해, 그것이 마치 풍류인 것인 양 행세할 때 그는 생생한 현실을 담는 조선의 시를 짓고 자식들에게 가르쳤다.

정약용에 앞서 연암 박지원도 "조선의 시를 쓰라"고 역설하였다.

"조선은 산천이며 기후가 중국 지역과 다르고, 그 언어나 풍속도 한나라, 당나라 시대와 다르다. 그런데도 글 짓는 법을 중국에서 본뜨고 문체를 한나라, 당나라에서 답습한다면, 나는 그 글 짓는 법이 고상하면 할수록 내용이 실로 비루해지고, 그 문체가 비슷하면 할수록 표현이 더욱 거짓이 됨을 볼 따름이다."  (주석 5)
 
정약용 선생이 유배하며 기거하시던 곳
▲ 다산초당 정약용 선생이 유배하며 기거하시던 곳
ⓒ 이상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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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약용의 시론 중 민족주의적인 글로 높이 평가받고 자주 인용되는 "시대를 아파하는"의 전문이다.

얼마 전 성수(醒叟) 이학규(李學逵)의 시를 보았다. 그가 너의 시를 논한 것은 잘못을 절절하게 지적한 것이니 너는 마땅히 따라야 할 것이다. 그러나 그의 시는 비록 뛰어나지만 내가 좋아하는 바는 아니다.

『시경(詩經)』이후의 시는 마땅히 두보(杜甫)를 스승으로 삼아야 할 것이다. 모든 시인의 시 중에는 두보의 시가 왕좌를 차지하게 된 것은 『시경』에 있는 시 3백 편의 의미를 이어받았기 때문이다. 『시경』의 시는 충신ㆍ효자ㆍ열녀ㆍ양우(良友)들의 측은하고 아픈 마음과 충후한 마음이 형상화된 것이다.

임금을 사랑하고 나라를 근심하지 않는 시는 시가 아니며, 시대를 아파하고 세속에 분개하지 않는 시는 시가 아니며, 아름다운 것을 아름답다고 하고 미운 것을 밉다고 하며, 착한 것을 권장하고 악을 징계하는 뜻이 담겨 있지 않은 시는 시가 아니다.

뜻이 세워져 있지 못한 데다 학문을 설익고, 삶의 대도(大道)를 아직 배우지 못하고, 임금을 도와 백성에게 혜택을 주려는 마음이 없는 사람은 시를 지을 수 없는 것이니 너도 그 점을 힘써라.
  
남양주정약용 역사트레킹
▲ 다산의 저작물 남양주정약용 역사트레킹
ⓒ 곽동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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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보의 시는 역사적 사실을 인용하는데 있어 흔적이 보이지 않아 스스로 지어낸 것 같지만 자세히 살펴보면 다 출처가 있으니, 이야말로 두보가 시성(詩聖)이 되는 까닭이다. 한유(韓愈)의 시는 글자 배열법에 모두 출처가 있게 하였으나 어구는 스스로 많이 지어냈으니 그것이 바로 시의 대현(大賢)이 된 까닭이다.

소동파(蘇東坡)의 시는 구절마다 역사적 사실을 인용하되 인용한 흔적이 있는데 얼핏 보아서는 의미를 깨달을 수 없고 여러모로 살펴서 인용한 출처를 안 다음에야 그 의미를 통할 수 있으니, 이것이 그가 시의 박사(博士)가 된 까닭이다.

소동파의 시는 우리 삼부자의 재주로 죽을 때까지 시만 공부한다면 그 근처까지는 가겠지만, 할 일도 많은 이 세상에서 무엇 때문에 그런 짓이나 하고 있겠느냐. 역사적 사실을 전혀 인용하지 않고 음풍농월이나 하고 장기나 두고 술 먹는 이야기를 주제로 시를 짓는다면 이것이야말로 시골의 서너 집 모여 사는 촌구석 선비의 시인 것이다. 이후로 시를 지을 때는 모름지기 역사적 사실을 인용하는 일에 주안점을 두어라.


주석
5> 박지원 지음, 김명호 편역, 『지금 조선의 시를 쓰라』, 131쪽, 돌베개, 2007.

 

덧붙이는 글 | <[김삼웅의 인물열전] 다시 찾는 다산 정약용 평전>은 매일 여러분을 찾아갑니다.


태그:#다산 , #정약용평전, #정약용, #다산정약용평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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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사독재 정권 시대에 사상계, 씨알의 소리, 민주전선, 평민신문 등에서 반독재 언론투쟁을 해오며 친일문제를 연구하고 대한매일주필로서 언론개혁에 앞장서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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