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일 군산 월명체육관에서 열린 MG새마을금고 KBL컵대회 조별리그 A조 1차전 오리온과 상무의 경기에서 오리온 강을준 감독이 작전을 지시하고 있다.

20일 군산 월명체육관에서 열린 MG새마을금고 KBL컵대회 조별리그 A조 1차전 오리온과 상무의 경기에서 오리온 강을준 감독이 작전을 지시하고 있다. ⓒ KBL

 
올해부터 프로농구 고양 오리온에서 한솥밥을 먹게 된 강을준 신임감독과 이적생 이대성이 순조로운 첫 출발을 알리며 다가오는 2020-2021 시즌에 대한 기대감을 높였다. 오리온은 지난 22일 오후 군산월명체육관에서 열린 2020 MG새마을금고 KBL컵 C조 조별리그에서 부산 KT를 90-79로 제압했다. 이틀 전 첫 경기에서 상무를 제압했던 오리온은 예선 2승으로 조 1위를 차지하며 가장 먼저 4강행 티켓을 확보했다.

지난 시즌이 끝나고 FA(자유계약선수) 자격을 얻으며 최대어로 꼽혔던 이대성은 올해 5월 오리온과 3년 보수 총액 5억 5000만 원에 계약했다. 울산 현대모비스-전주 KCC에 이어 KBL에서 세 번째 소속팀이다.

이대성은 한국 프로농구에서 보기 드문 '유니크한' 스타일의 선수로 꼽힌다. 공수겸장의 장신가드로 1, 2번을 모두 소화할 수 있고 해결사 본능도 뛰어나다. 하지만 개성이 뚜렷하고 자신이 팀의 중심이 되고 싶은 '주인공' 의식이 강해서 호불호가 엇갈리는 선수이기도 하다. 이대성은 코트 밖에서도 여느 한국 선수들과 달리 거침없이 할 말을 다하는 솔직한 오픈 마인드로 유명하다.

이대성은 유재학 감독과 함께 했던 울산 현대모비스에서 라건아(KCC)-양동근(은퇴)과 함께 우승주역으로 활약했고, 2018-19시즌 챔프전 MVP까지 올랐다. 하지만 지난 시즌 KCC로 전격 트레이드된 이후로는 달라진 역할과 팀 스타일에 적응하느라 다소 부진했고 부상까지 겹치며 인상적인 활약을 보여주지 못했다. 코로나19 사태로 시즌이 조기종료되면서 FA가 된 이대성은 일찌감치 여러 구단들의 관심을 받았고, 한때 KT행이 근접한 것처럼 보였으나 협상이 결렬되면서 결국 뒤늦게 영입전쟁에 뛰어든 오리온의 손을 잡았다.

하필 야생마같은 이대성을 지휘하게 된 새로운 감독은 바로 '성리학자' 강을준이다. 오리온은 지난 시즌까지 무려 9년간 장기집권하며 팀의 우승까지 이끌었던 추일승 전 감독과 결별했다. 당초 프랜차이즈 스타 출신인 김병철 코치가 지휘봉을 넘겨받을 것이라는 예상이 많았지만 오리온은 의외의 카드인 강을준 감독을 선임하며 많은 팬들을 놀라게 했다.

강 감독은 창원 LG 사령탑에 물러난 이후 무려 9년 만의 현장 복귀다. 그는 KBL 사상 가장 오랜 공백기를 거쳐서 감독으로 복귀한 사례라는 진기록도 세웠다. 강 감독은 재임기간 LG를 꾸준히 플레이오프로 이끌기는 했지만 번번이 6강의 벽을 넘지 못했고, 전술적 역량이나 현대농구의 트렌드에 어울리는 인물인지를 놓고 평가가 엇갈리기도 한다. 

사실 강을준 감독이 농구팬들에게 유명세를 얻게 된 계기는 농구보다는 오히려 화려한 작전타임 어록에 있었다. 강 감독은 '니갱망'(니가 경기를 망치고 있어), '완빵(한 방) '성리학(승리했을때 영웅이 나타나)' 등 무수한 명언들을 배출해낸 농구계의 어록제조기로 꼽힌다. 강 감독 특유의 구수한 영남 사투리 억양과 맞물려 농구팬들은 그에게 '코트의 성리학자'라는 별명을 붙여줬다. 물론 당시에는 약간 비판적인 조롱의 의미도 섞여있었지만 이제는 강을준 감독의 아이덴티티를 상징하는 대표적인 수식어가 됐다.

강을준 감독과 이대성의 만남은 일찍부터 농구팬들로부터 화제를 모았다. 두 사람 모두 자신만의 농구관과 개성이 뚜렷하기로 둘째가라면 서러울 인물들이다. '영웅이 필요없다고' 이야기하는 강을준 감독과 누구보다 '영웅이 되고 싶은' 이대성의 조합이 상극이 될 것이라는 우려도 많았다. 이대성이 강을준 감독의 니갱망(아이반 존슨) 시즌2가 될 것이라는 전망도 있었다. 오리온 구단으로서도 '모 아니면 도'에 가까운 카드를 둘이나 한꺼번에 영입한 것은 큰 모험을 한 셈이었다.

뭔가 '예능'이 나올 것 같았던 기대와 달리, 첫 선을 보인 오리온의 전력은 오히려 '다큐'적으로 진지한 가능성을 보여줬다. 외국인 선수 제프 위디가 부상으로 제 컨디션이 아닌 상황에서도 오리온은 국내 선수들이 적극적으로 공격을 주도하는 모습을 보이며 경기를 쉽게 풀어나갔다.

특히 선수들에게 끊임없이 자신감을 강조하는 강을준 감독의 모습이 돋보였다. 슛이 빗나가거나 턴오버를 저지르고 벤치의 눈치를 보는 장면이 많이 줄었다. 오리온은 KT전에서 11개의 3점슛을 폭발시키며 42.3%에 이르는 높은 성공률을 기록했다. 기대 반 우려 반이었던 이대성의 활용도에 대해서도 크게 전술적인 제약을 두지 않고 자유롭게 원하는 플레이를 펼칠 수 있도록 배려하는 모습이었다.

이대성은 첫 경기 상무전에선 11득점 7어시스트를 기록했지만 포인트가드로서 패스에 주력해야 한다는 부담을 느낀 탓인지 적극성이 부족했고 효율도 떨어졌다. 하지만, KT를 상대로는 찬스에서 과감한 공격본능을 드러내며 24점 8어시스트 2스틸을 기록하며 맹활약했다. 확실한 포인트가드가 없는 오리온에서 이대성이 메인 볼핸들러 역할을 맡게 되는 시간이 길어질 것은 분명하지만, 상황에 따라 1, 2번을 오가며 팀을 위하여 볼 소유권을 자제하고 간결한 플레이에 집중하는 균형감각도 필요하다는 것을 보여준 장면이다.

이대성에게 있어서 오리온에서의 올시즌은 진정한 홀로서기를 위한 증명의 시간이기도 하다. 재능 면에서는 KBL 정상급 선수로 손색이 없지만, 주인공 본능과 볼 핸들러에 대한 집착 때문에 다루기 힘든 선수라는 꼬리표도 붙어있다.

그가 모비스와 KCC에서 다소 상반된 모습을 보이자 '유재학 감독이 선수의 장단점을 효과적으로 잘 컨트롤한 덕분'이 아니냐는 의문도 붙었다. 공교롭게도 이대성과 닮은 꼴로 자주 비교되는 김효범(은퇴)은 모비스를 떠나며 유재학 감독과 결별한 이후 SK에서 FA 대박을 터뜨렸고 원하던 에이스의 자리도 차지했지만 정작 선수로서의 경력은 점점 내리막길을 걸었던 바 있다. 이대성이 김효범의 전철을 밟게될지, 아니면 자신만의 새로운 성공기를 써내려갈지도 주목된다.

오리온은 지난 시즌 최하위에 그치며 아쉬운 시즌을 보냈다. 하지만 누구보다 개성 넘치는 강을준 감독과 이대성이 새롭게 가세한 올시즌은 오리온에선 예능적으로나 다큐적으로나 흥미로운 장면이 많이 쏟아질 것은 분명해보인다. '성리학자'와 '나르시스트'의 예측불허 동행은 과연 해피엔딩이 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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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대성 강을준감독 고양오리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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