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명의 시민기자가 개의 기사를 작성하였습니다. 시민기자 전환하기
2019년 전태일에서 김용균으로 김용균 1주기 추모주간을 앞두고, 비정규직노동자들의 행진이 있던 날.
▲ 2019년 전태일에서 김용균으로 김용균 1주기 추모주간을 앞두고, 비정규직노동자들의 행진이 있던 날.
ⓒ 김용균재단

관련사진보기

 
지난 9월 3일은 전태일 열사의 어머니이자 노동자의 어머니인 이소선님의 기일이었다. 1970년 11월 13일 전태일은 평화시장의 끔찍한 노동현실을 고발하고 노동법전과 제 몸을 불사르며, '우리는 기계가 아니다',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며 절규했다. 병원에 실려 간 전태일은 어머니에게 말했다. "내가 못다 이룬 일을 어머니가 대신 이뤄주세요" 어머니는 그러겠노라고 약속했다.

전태일 열사가 이루려고 했던 것은 평화시장 가장 낮은 곳에서 일하는 어린 시다들이 장시간 노동에 시달리지 않고 적절한 휴식을 취해 더 이상 폐병을 앓다 해고되고 죽지 않도록, 발육부진을 겪고 있는 어린 소녀들이 사람답게 살 수 있도록 해 보자는 것이다. 태일은 가장 낮은 곳의 시다들이 인간답게 일할 수 있다면 당연히 미싱사, 재단사들도 행복하게 일하는 일터가 될 것으로 생각했다.

열사가 미처 다 이루지 못한 꿈인 노동자들의 조직 노동조합은 열사가 돌아가신 지 14일 만에 평화시장 노동자들과 이소선어머니가 함께 만들었다. 청계피복노동조합이다. 어머니는 전태일 열사의 유언을 돌아가시기 전까지 온몸으로 지켜 내셨다. 하지만 전태일 열사가 염원했던 구호 '우리는 기계가 아니다', '사람답게 살고 싶다', '근로기준법을 지켜라' 요구는 지금도 달성되지 않았다.

이른바 민주화가 진전됐다는데, 독재정부가 민주정부가 됐다는데 인간을 일회용 소모품으로 만들며 돈의 독재는 더욱 커졌고 자본에 의한 경제 위기와 재난은 사회적 약자들을 쥐어짜며 고통을 가중시키고 있다. 전체 노동자 중 비정규직 노동자가 70%가 넘고, 최저임금 노동자로 살게 하고 있다. 출근했다 퇴근하지 못하는 노동자가 한 해 2400명이고 이들 대부분이 비정규직이다.

2018년 12월 김용균 청년비정규노동자의 억울한 죽음에 유가족이 앞장서고, 비정규노동자들이 '우리가 김용균이다' 나서서 함께 싸웠다. 노동조합, 시민사회가 힘을 합쳐 싸웠다. 김용균 투쟁은 한국사회의 산업재해와 비정규직 문제가 얼마나 심각한지 전사회적으로 보여주는 큰 싸움이었다.

이 투쟁이 가능했던 것은 김용균이 일했던 현장에 노동조합이 있고, 입사한 지 3개월 밖에 되지 않은 김용균이 조합원은 아니었지만 '문재인대통령 비정규직과 만납시다' 피켓을 든 인증샷을 찍는 용기를 담은 실천이 있었기 때문이다. 청년노동자들의 연이은 산업재해 죽음으로 더 이상 이렇게 노동자를 죽일 수 없다는 절박함이 세상을 울렸고 전태일 이소선을 잇는 역사처럼 김용균 김미숙으로 이어지는 투쟁의 역사가 있었기에 가능했던 싸움이다.

하지만 여전히 노동자들은 힘들고 괴롭고 갈 길이 멀다. 김용균 투쟁 과정에서 50년 만에 산업안전보건법이 개정되었지만 '김용균 없는 김용균법'으로 노동현장에서의 산재사망사고는 줄어들지 않고 지속되고 있다.

올해만도 삼표시멘트에서 3개월 동안 두 번의 사망사고가 있었다. 강화도 공사장 30대 노동자가 철골 구조물에 부딪혀 숨졌고, 김용균이 일했던 한국서부발전 태안화력에서도 기계(스크루)를 혼자 옮겨 실으려던 화물노동자가 기계에 깔려 숨졌다. 삼성중공업에서도 일하던 현장에 화재로 인해 한 명이 숨지고, 직장내 괴롭힘으로 힘겹게 버티다 끝내 목숨을 끊은 19살 여성노동자, 쿠팡 부천신선센터에선 코로나19 확진자가 있었음에도 안전조치를 취하지 않아 150명이 넘는 확진자가 나오고 가족까지 확진되어 의식불명상태로 있다. 조리실 바닥 청소를 하다 독한 청소약품으로 인해 목숨을 잃었고 38명의 목숨을 앗아간 이천물류창고 화재참사, 현대중공업 울산조선소에서 30대 노동자가 용접할 때 나오는 아르곤 가스로 인해 숨졌다. 모두 비정규직 노동자들이다.

1970년 청년노동자 전태일이 겪었던, 평화시장 시다들이 겪었던 노동현실은 50년이 지난 2020년에도 현재 진행형이다. 2020년 '시다'들인 비정규노동자들은 부당한 대우, 위험한 업무, 일상적 해고로 엄청난 생계위협의 고통을 받으면서도 '악'소리도 못 내고 있다. 개인적으로 대응하는 것은 엄두를 낼 수 없는 현실이다. 정말 바뀌지 않는 노동의 시간, 노동의 세상이다.

그래서 전태일 정신은 여전히 시퍼렇게 살아 있어야 한다. 전태일과 역사를 살다 지친 이들이 태일의 '투쟁'이 아니라 태일의 인간적인 면모로 '나눔 온정'만 강조하여 노동과 투쟁의 기운을 제거하려 한다. 그러나 절대적 희망이었던 근로기준법을 화형하고 노동자들의 목숨 건 투쟁으로 이 어둔 세상 빛줄기 하나 내자는 그 투혼이 여전히 필요한 세상이다.

시다 여동생들의 건강과 행복을 위해 근로기준법이 필요했지만 아직도 5인 미만 사업장, 특수가 붙은 노동자들은 그 법에서도 배제되어 있다. 이들은 심지어 헌법적 권리인 노동조합을 만드는 권리도 부정되어 왔다. 노동조합을 만들고 노동자들에 대한 헌법적 권리가 전면적으로 보장되는, 사람이 사람에게 괴물이 되지 않는 세상을 향한 50년 전 전태일 열사의 바람은 지금 우리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바람이다.

헌법에 보장되어 있는 노동3권은 50년 전에도 지금도 보장되고 있지 못하다. 전태일 50주기에 전태일 3법이라는 이름으로 운동이 일어나고 있다. 노동자 시민의 중대재해가 발생했을 때 기업‧최고 책임자‧실소유주, 공무원 책임자 등에 대한 처벌이 가능한 중대재해기업처벌법. 5인 미만 사업장 노동자‧특수고용‧간접고용‧플랫폼 노동자까지 포함시키는 근로기준법 11조 개정. 모든 노동자의 노동조합 할 권리를 위해 '근로자'와 '사용자' 정의를 확대하여 노동3권을 보장하도록 하는 노조법 2조 개정 운동이 그것이다.

지금당장 우리가 함께 할 수 있는 것! 전태일 3법을 만들도록 힘을 모아나가자. 정규직 노동자들은 노조의 힘으로 전태일 3법을 만들고, 비정규직 노동자는 현실적 문제를 해결하는 투쟁으로 전태일 3법을 만들자. 우리 사회 모든 양심과 지성은 사회 빈곤과 차별의 근간을 고치는 연대로 전태일 3법을 주목하고 힘을 모으자. 어려운 현실이지만, 살기 위해, 사람답게 살기 위해 용기를 내고 싸워야 한다. 가만히 앉아서 죽을 수는 없지 않은가. 코로나19로 어려운 시기 많은 노동자들이 노동조합으로 모여 '악' 소리라도 내며 함께 사람답게 사는 길을 만들어 가자. 전태일의 50년이 어둠과 좌절이 아니라 희망의 전진이 되게 하자.

덧붙이는 글 | 글쓴이는 김용균재단 운영위원이자 비정규노동자의집 꿀잠 운영위원장인 김소연 님입니다.


댓글3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진실과 정의를 추구하는 오마이뉴스를 후원해주세요!

후원문의 : 010-3270-3828 / 02-733-5505 (내선 0)

오마이뉴스 취재후원

2019년 10월 26일 출범한 사단법인 김용균재단입니다. 비정규직없는 세상, 노동자가 건강하게 일하는 세상을 일구기 위하여 고 김용균노동자의 투쟁을 이어갑니다.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