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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9일 홍성의 한 카페에서 주선미 시인을 만났다.
 지난 19일 홍성의 한 카페에서 주선미 시인을 만났다.
ⓒ 이재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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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의 장기화로 세상은 잠깐 멈춤이 반복되고 있다. 인류가 코로나19 이전으로 돌아갈 수가 없듯이 시인 이전의 삶으로 돌아갈 수가 없을 것 같다는 시인이 있다. 충남 홍성에서 활동하고 있는 주선미(55) 시인이 바로 그 주인공.

시인은 나이 오십이 넘어 늦깎이로 등단했다. 그래서일까. 시인은 등단하자마자 1년에 한 권씩 시집을 쏟아냈다. 주선미 시인은 지난 2017년 <시와 문화>에서 신인상을 받아 등단했다. 시집으로는 <안면도 가는 길>(2018), <일몰, 와온 바다에서>(2019), <통증의 발원>(2020)을 펴냈다.

첫 시집은 고향 안면도를 주제로 썼다. 주선미 시인은 일상을 사진이 아닌 시로 찍는다. 서울에 올라가 바라본 동묘 벼룩시장도, 늙은 호박과 심지어 이모티콘조차도 그에게는 시가 된다.

한때 우울증 증세까지 경험했던 그는 등단 이후, 본격적으로 시를 시작하면서부터 세상이 다르게 보이기 시작했단다. 그는 "이제는 나의 안위만이 아닌 소외계층을 위한 시를 쓰고 싶다"고 말했다. 시인의 이야기를 듣다 보니, 시인의 삶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을 것 같다는 시인의 말을 조금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시인은 평범한 주부였다. 스물다섯에 결혼해 홍성 광천에서만 32년을 살았다고 했다. 그에게는 두 명의 아들이 있다. 첫째는 경찰 공무원, 둘째는 회사원이다. 언듯 보기엔 남부러울 것 없는 삶이란 생각도 든다. 하지만 그에게는 늘 시가 필요했는지도 모른다. 그래서일까. 엄마와 주부가 아닌 시인 주선미로 이력을 다시 쓰고 있는 그의 모습은 그 자체로도 '밝은 빛'이 나는 것 같았다.   

시인은 요즘 충남 한국민족예술단체총연합 홍성지부에서도 활동하고 있다. "세 번째 시집이 나왔어요"라는 시인의 수줍은 인사말에 혹해 엉겹결에 그의 시집을 읽었다. 그의 시에는 단어를 비틀어 놓고 즐기는 언어유희도 없었다. 지나친 비유와 은유로 머리를 아프게 하지도 않았다. 그 대신 1960년대생 특유의 투박하고 담백한 언어들이 시집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오히려 그래서 더 정이 간다고 해야 할까.

지난 19일 홍성의 한 카페에서 시인을 만났다. 시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인터뷰는 어느덧 자연스럽게 수다가 되었다.

고향에서 삶으로, 삶에서 소수자 향한 관심으로

- 코로나19 이전에는 여행도 자주 다닌 것 같은데 여행이 취미인가.
"지금도 시간이 나면 틈틈이 밖으로 나가곤 한다. 보통 하루에 3시간 정도는 아이들 과외도 하고, 교통이 불편한 시골 아이들의 등하교도 도와주는 일을 한다. 차를 새로 산 지 5년이 되었는데 34만킬로미터(km)를 탔다. 일 때문에도 그렇고, 시의 소재를 찾기 위해 많이 돌아다닌 것 같다.

가만히 앉아서 시를 쓰는 스타일이 아니다. 돌아다니고 발로 뛰면서 시를 쓴다. 자주 가는 곳은 아산의 공세리 성당과 인천의 배다리 책방이다. 호수주변도 자주 거닐곤 한다. 돌아다니는 과정에서 시의 소재를 자연스럽게 찾는 편이다.

- 2017년에 등단하셨는데, 비교적 늦은 나이에 등단을 한 것 같다. 이유가 있었나.
"등단은 늦었지만 시는 꾸준히 써왔다. 시를 본격적으로 쓴 것은 2004년 <홍성신문>에 시를 처음 발표하면서부터다. 어릴 때부터 책읽기와 글쓰기를 좋아했다. 중학교 때는 문예반에서도 활동했다. 처음에는 짧은 서정시를 주로 썼다. 시를 본격적으로 쓰기 시작하면서 전보다는 할 말이 많아졌다. 그래서 시가 점점 더 길어지고 있다(웃음)."

- <시와 문화>에서 편집장도 맡고 있는 것으로 안다. <시와 문화>는 어떤 곳인가.
"시를 쓰기 시작하면서 사회문제에도 관심이 생겼다. 그전에는 아이들을 키우고, 가르치는 데만 신경을 쓰고 살았다. 음지에 있고 어렵게 사는 사람들에 대한 관심도 시를 쓰면서 생겼다.

2017년 등단을 한 이후, 조금씩 활동을 하다가 편집장까지 맡게 되었다. 잘 나가는 시인들은 어떤 형태로든 지면을 이용할 기회가 많다. 하지만 초보 시인들이나 가난한 시인들은 그렇지 못하다. <시와 문화>는 가난하고 잘 알려지지 않은 시인들을 위주로 시를 실어 준다. 지금은 회원이 대략 500명 정도 된다."

- 첫 시집은 고향 안면도를 주요 소재로 삼았는데, 고향에 대한 그리움 때문인가.
첫 시집은 2004년부터 쓴 시들이 포함돼 있다. 초기에는 마음속에 있던 이야기를 꺼내서 시로 썼다. 안면도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을 보냈다. 안면도에 대한 이야기가 많아서 시집의 이름도 <안면도로 가는 길>이라고 지었다.

나이를 먹어서 그런 것일 수도 있겠지만, 요즘은 세상이 참 팍팍하고 각박하다는 생각이 든다. 예전에는 밥만 먹을 수 있어도 평화롭고 행복한 시절이 있었다. 그 기억이 아직도 남아 있는 것 같다. 지금도 힘들 때면 고향 안면도가 생각이 나고, 엄마에게 가고 싶다는 생각을 하곤 한다."

- 세 번째 시집에 있는 광주 5.18 민주화운동을 소재로 한 '열다섯 동갑내기의 묘비명'이란 시가 인상적이었다.
"지난해 겨울 광주에 5.18 묘역에 다녀왔다. 사실 그때 묘비를 처음 봤다. 62년, 63년, 65년생 묘비에는 어린 나이에 사망한 내 또래 친구들이 많았다. 그들 중 누구도 죽을 것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너무 가슴이 아팠다. 집에 돌아와서 까지도 슬픔이 가시지 않았다. 그래서 시로 쓰게 되었다."

- 요즘은 어떤 내용의 시를 쓰고 있나.
"사실 나는 편안한 시를 주로 쓴다. 둘째 아들은 '안면도로 가는 길'이 가장 좋다고 한다. 읽으면 바로 이해가 돼서란다(웃음). 하지만 시인으로서 편안한 시만을 추구하는 것도 옳지 않다고 생각한다. 시를 쓰다보면 단어가 지닌 중의적인 의미도 생각해야 하고, 독자와 함께 조금 더 고민할 수 있는 주제로도 시를 써야 한다. 최근 나온 세 번째 시집부터는 그런 고민을 담기 시작했다."

- 시는 주로 언제 쓰나.
"주로 밤에 쓴다. 밤에 집중이 잘 되는 편이다. 밤을 새우며 책을 읽기도 하고 시를 쓰기도 한다. 요즘은 철학 서적을 주로 보고 있다. 좀 더 세련된 시를 쓰고 싶어서다. 배다리 헌책방에 자주 가는 이유도 저렴한 가격에 좋은 책을 많이 구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나에게 시는 숨 쉬는 것 그 차제" 

- 주선미 작가에게 시란 무엇인가.
"나에게 시란 숨이다. 숨 쉬는 것 그자체이다. 시를 쓰지 않으면 숨을 쉬지 못하는 것처럼 답답하다. 눈을 뜨고 있을 때나 눈을 감고 있을 때나 늘 시를 생각한다. 첫 시집을 냈을 때 너무나도 행복했다. 나는 집에서 순종적으로만 살았던 사람이다. 하지만 이제는 과거의 나로 돌아갈 수가 없을 것 같다."

- 뒤늦게라도 시인을 꿈꾸는 늦깎이 시인 지망생들에게 조언하고 싶은 말이 혹시 있나.
"절실하게 시를 쓰고 싶은 마음이 있다면 시를 써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전업 작가보다는 그저 취미 삼아 가볍게 시를 썼으면 좋겠다."

-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나.
"시를 쓰는 것 자체가 행복하다. 소외계층을 대변하는 시를 쓰고, 조금이라도 그들을 대변하고 싶다. 나의 안위만을 추구하고 싶지는 않다. 아직은 역량이 많이 부족하지만, 소수자들을 대변하는 역할을 하는 시인이 되고 싶다."

통증의 발원

주선미 (지은이), 시와문화사(2020)


태그:#주선미 시인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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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주의자. 개인주의자. 이성애자. 윤회론자. 사색가. 타고난 반골. 충남 예산, 홍성, 당진, 아산, 보령 등을 주로 취재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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