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21 07:40최종 업데이트 20.09.21 1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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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아무도 모른다>의 한 장면. ⓒ 디스테이션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영화 <아무도 모른다>는 일본에서 실제 있었던 '스가모 아동 방치 사건'을 모티브로 하고 있다. 영화도 충격적이지만 현실은 훨씬 더 참혹하다. 어쩌면 감독이 관객들을 배려하여 그나마 수위를 조절했는지도 모르겠다.

스가모 아동 방치 사건은 1988년 도쿄에서 발생한, 네 아이의 어머니가 아이들을 버리고 가출한 뒤 아이들끼리만 생활하다 발견되어 당시 전 일본을 충격에 빠뜨린 사건이다. 아이들의 어머니는 사귀던 남성의 아이를 낳은 뒤 6년을 함께 살았는데, 어느날 아이 아빠가 가출하면서 홀로 아이를 키우다 혼인신고는 물론 아이의 출생신고도 되어 있지 않다는 것을 발견한다. 이후로도 여러 명과 사귀고 헤어지고를 반복하던 어머니는 각기 다른 남성에게서 4명의 아이를 더 출산했고, 계속해서 아이들의 출생신고를 하지 않았기에 아무도 그들의 존재를 알지 못했다. 영화 <아무도 모른다>의 제목 역시 여기에서 나왔다.

네 아이와 엄마... 그리고 다섯 명의 아버지

셋째의 경우 태어난 지 얼마 안 되어 병으로 죽었는데, 어머니는 그런 아이의 시체를 악취제거제와 함께 밀봉하여 벽장 속에 보관하였으며, 그러다 얼마간의 돈과 함께 첫째에게 동생들을 잘 부탁한다는 편지를 남기고 장기간 잠적한다. 이후 보호자 없이 홀로 남겨진 아이 넷은 경찰에 의해 발견되기까지 약 8개월간 자신들끼리 생활해야 했고, 12세였던 장남이 5세, 3세, 2세였던 어린 동생들을 손수 돌보았다고 한다. 처음에는 동생들의 기저귀도 갈아주고 음식도 챙겨 먹이던 장남은 나중에는 생필품과 식료품을 살 돈도 없는데다 육체적, 정신적 피로가 극심하여 동생들은 방치한 채 친구들과 노는 데만 골몰하다시피 했다고.


이후의 불행은 대략 예상 가능한 수순이다. 공과금을 내지 않아 전기, 수도, 가스가 차례로 끊겼으며 길에서 오가며 사귄 장남의 친구들로 인해 집은 불량학생들의 아지트가 된다. 이 과정에서 아직 어린 동생들 역시 달리 갈 곳이 없었기에 계속 집 안에 함께 머물러 있었는데, 울음을 그치지 않는 막내를 첫째의 친구들이 옷장에서 여러번 반복하여 떨어트리다 사망하게 하는 사건이 발생한다. 과거에 어머니가 동생의 시체를 처리하는 것을 지켜보았던 첫째는 막내동생의 시체를 인적이 드문 곳에 유기한다.

그러던 어느날 어른이 부재하다는 것을 눈치챈 집주인의 신고로 경찰이 복지과를 대동하여 방문하면서 이 참혹한 비극은 세상에 알려지게 된다. 경찰은 극심한 영양실조 상태에 있는 세 아이를 비롯하여 벽장 속 영아의 시체까지 발견한다. 아이들의 어머니는 뉴스에서 해당 사건의 보도를 본 뒤 혹시나 하고 경찰에 출두하였다가 바로 구속되었으며, 첫째의 경우 막내동생을 살해하고 시체를 유기한 혐의로 구속될 위기에 처했다가 조사과정에서 전모가 밝혀져 보호 감호소로 이동하게 되었다고 한다.

영화를 보고서, 영화의 배경이 된 실제 사건을 알아보고 나서, 마음이 무척 힘들었다. 슬픔과 분노가 주체가 되지 않을 지경이었는데, 사실은 화를 낼 대상 자체가 불분명하기 때문에 더욱 화가 났다. 실제 사건에서는 어떠했을는지 모르지만 영화 속에는 이런 장면이 나온다. 왜 자신들을 제대로 돌보아 주지 않느냐면서 불만을 표하는 장남에게 어머니가 다음의 대사를 하는 장면. "나는 행복해지면 안 돼? 나도 힘들어." 영화를 보고난 뒤 내내 이 말이 마음 속에 맴돌았다. 아이들이 가엾고 화가 나는 것과는 별개의 감정이다.

비교적 육아와 가사에 적극적으로 협조하는 남편이 존재하는, 안락한 집에서 고작(?) 두 명의 아이를 키우며, 모든 생계를 홀로 책임지지 않아도 되는 나조차도 때로는 엄마라는 이름과 삶의 무게가 버거울 때가 있는데, 아이를 키우는 동안 끊임없이 나 자신의 바닥을 마주하고는 하는데, 과연 어린 여성 혼자 다섯 명의 아이를 감당하는 것이 가능했을 것인가.

물론 이런 이야기를 하면 그러게 책임도 지지 못할 애를 왜 낳았느냐며, 모든 것은 무책임하기 짝이 없는 어머니 개인의 잘못이라는 비난이 나올 것이다. 그러나 아이의 출생신고조차 어떻게 하는지 모르는 이가 피임에 대한 개념을 가지고 있었을 것인가. 대략 17~18세 무렵에 학교를 중퇴하고, 남자친구와 함께 살다가 피임도 뭣도 없이 대책없이 애가 생겨 낳고, 그러고서 남자친구는 잠적. 이후로도 여러번 남자가 바뀔 때마다 대책 없이 연애하고 대책 없이 출산하고 대책 없이 방치하고. 그렇게 삼십대 중후반에 아이 다섯을 돌보게 된 어떤 여성.

이것은 결코 그 어머니를 변호하기 위한 말은 아니다. 다만 나는 과연 그 여성의 어린 시절은 어떠했을지, 여성의 부모는 어떤 사람이었을지, 여성이 구속되는 동안 다섯 명이나 되는 아이의 아버지들은 도대체 무엇을 하고 있었을지, 그 아버지들은 어떤 사람들일지에 대한 생각을 멈출 수 없을 뿐이다. 어머니가 무책임하고 무절제하며 무지한 사람이라는 것과는 별개로, 그가 구속되어 재판을 받고 징역을 살고 온국민의 손가락질을 받을 동안, 밝혀지지 않은 다섯 명의 남성에 대해 생각하고 있는 사람들은 얼마나 될 것인가. 그들의 책임을 추궁하고 그들에게 분노하는 이들은 얼마나 될 것인가.

엄마만 엄벌하면 문제가 해결될까?
 

화재의 흔적 초등생 형제가 라면을 끓여 먹다 화재가 발생한 인천시 미추홀구 한 빌라 외벽이 17일 오전 검게 그을려있다. ⓒ 연합뉴스


1988년이니까, 또는 우리나라가 아니니까 그렇다고 생각하는 이들이 있을 수도 있겠다. 그러나 2020년 한국의 현실도 크게 다르지는 않다. 지난 14일 어린 형제가 부모가 없는 집에서 라면을 끓여 먹으려다 화재가 일어나 중상을 입는 사건이 일어났다.

언론은 형제의 사건을 두고 다시금 책임자 추궁에 나서고 있다. 아이들이 오래 전부터 방치되어 왔고, 아이들에게서 학대의 흔적이 발견되었으며, 아이들의 보호자인 엄마는 주의력 결핍 과다행동 장애가 있는 큰 아들을 자주 때렸다고. 언론은 아이들의 엄마가 전날 밤부터 집을 비웠다는 기사를 자극적으로 전달하며, 이런 기사 밑에는 어김없이 험악한 욕설이 가득하다.

물론 아이들을 방치한 것은 큰 잘못이고, 잘못된 행동에 대한 책임은 어떻게 해서든 져야할 것이다. 그러나 과연 지금 벌어진 모든 일이 오직 형제의 어머니 한 명만의 잘못일까? 코로나19로 학교가 문을 걸어닫은 상황에서 하루 종일 아이들을 홀로 감당해야 했을, 20살부터 아이를 연달아 낳고, 10여 년간 홀로 길러왔을 그 어머니 한 명을 닦달하고 다그치고 엄벌에 처하는 것으로 이 모든 문제가 해결되는 것일까?

어려움에 처한다고 모두가 무책임한 선택을 하는 것은 아니다. 모두가 힘들다고 남을 학대하고 괴롭히는 것 또한 당연히 아니다. 그러나 상황과 조건에 따라 책임감을 갖춘 선량한 시민이 될 수도, 반대로 충분히 악독해질 수도, 무책임해질 수도, 무감해질 수도 있는 것이 인간이다. 아이들의 엄마에게 모든 책임을 추궁하기 전에, 우리는 이 사회가, 우리 모두가, 이 사건에 있어서 방치된 아이들을 함께 방관한 일종의 가해자라는 사실을 먼저 생각해야 한다. 거기에서 출발해야만 아동 방임이나 학대 문제는 비로소 해결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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