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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민화 I '호녀', 작가는 단군신화를 색다르게 해석해, 웅녀보다 호녀를 더 부각시키다
 최민화 I "호녀", 작가는 단군신화를 색다르게 해석해, 웅녀보다 호녀를 더 부각시키다
ⓒ 김형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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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민화(1954~)가 우리 상고사를 캔버스에 소환시킨 <옛날 옛적에(Once Upon a Time)>가 갤러리현대(신관)에서 10월 11일까지 열린다.

최 작가와 현대갤러리가 함께 연 첫 전시라 의미가 깊다. 화가가 1990년대 말부터 구상해 20여 년 동안 공들인 전시다. 전시에는 60여 점의 회화와 40여 점의 드로잉 및 에스키스(큰 작품을 제작할 때의 준비 단계로서 작은 종이나 천에 간단히 구도를 그려 보는 것)가 함께 선보인다.

이번 전시 전반에 대해 미술사학자 김계원은 "최민화는 도상과 색감의 혼성, 드로잉 테크닉과 한국화적인 필선, 비워내는 배경의 처리를 통해 서사에 리얼리티와 역동성을 부여하고 고대를 형상화하는 자신만의 스타일을 구축했다"라고 호평했다.

최민화는 "내게 신화를 다루는 일은 오늘의 문제를 다루는 것과 같다"고 말한다. 과거의 현재화, 현재를 이상화하는 방식으로 <삼국유사>를 현대미술로 번역한 셈이다. 작가의 화풍과 희랍조각과 인도의 힌두양식도 뒤섞였다. 다시 말해, 유라시아적 요소도 융합돼 있다.

그럼 여기서 최민화 그림을 더 잘 감상하기 위해, 평생 삼국유사를 그린 고(故) 이만익과 최민화를 잠시 비교해 보자. 이만익은 "삼국유사가 오늘 우리의 삶과 먼 이야기가 아니다"며 삼국유사를 주요 테마로 삼았다. 그 중에서도 짜릿함을 주는 '선덕여왕'을 한 편을 감상해보자. 
 
이만익 I ‘선덕여왕도‘ 캔버스에 유채 1983
 이만익 I ‘선덕여왕도‘ 캔버스에 유채 1983
ⓒ 이만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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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덕여왕'은 문화뿐만 아니라 천문학(과학)도 중시한 '르네상스' 군주였다. 그래서 '첨성대'도 만들었다. 그런데 그녀를 홀로 사모하다 상사병으로 미친 '지귀'라는 사내가 있었다. 여왕이 그 이야기를 듣고 자신을 사모하다 잠든 그에게 당신의 팔찌를 슬며시 얹어 놓고 갔다는 우리 가슴을 조이게 하는 판타지가 기록되어 있는데 그걸 그렸다.

삼국유사는 백남준의 마음도 사로잡았다. 왜 그랬을까? 1992년 도올 선생과 인터뷰에서 그는 "삼국유사는 우리 판타지의 보고로 그런 요소를 죽여서는 안 된다"고 했고, 1995년 '광주비엔날레' 때, 소설가 김훈과 인터뷰에서도 "삼국유사는 인간의 판타지도 역사가 될 수 있다는 걸 보여줬다"라며 우리의 기질과 정서까지도 역사화한 이 책을 찬양했다. 그럼 이제 전시작품을 감상하기에 앞서 잠시 작가에 대해 알아보자. 
 
최민화 I '시간 속으로' 캔버스에 유채 131×162cm 1998
 최민화 I "시간 속으로" 캔버스에 유채 131×162cm 1998
ⓒ 최민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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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홍익대 미술교육과에서 회화를 전공, 82년부터 '민화(민중의 꽃)'로 이름을 바꿀 정도로 민중화에 몰입했다. 80년 광주를 입체화한 작품을 '서울현대미술전'에 출품했으나 안기부검열로 강제 압수됐다. 그래서 81년 한국을 떠나 미국과 멕시코 등에서 1년 2개월 간 거주했다. 귀국 후 다시 작가 활동을 재개했고, '부랑', '분홍', '6월', 시리즈를 남겼다.

그때나 지금이나 그의 회화는 사진과 차별화되는 강력한 인상을 남겼고 '회화의 힘'을 보여주었다. 87년 6월 항쟁 때 민주화 '성지(聖地)'는 사실 연세대와 명동성당이었다. 위 작품을 보니 당시 분위기가 고스란히 살아난다. 지금과 같이 돈이 모든 것을 지배하는 신자유주의 시대에는 대학이나 교회가 그때처럼 신성한 위엄과 권위를 지키지 못하고 있다.

그는 일단 구상화가로서 홍대 시절 필력을 단단히 하는데 소홀함이 없다. 그림에 모든 것을 건다는 정체성을 세웠다. 늦었지만 2017년 '이인성미술상'을 받았고 국립현대미술관, 서울시립미술관, 대구미술관, 일민미술관, 삼성미술관(리움) 등에 그의 작품이 소장되어 있다.

계율보다 자비가 더 중요하다 
 
최민화 I '달달박박(염불승)' 캔버스에 유채 116.8x91cm 2020
 최민화 I "달달박박(염불승)" 캔버스에 유채 116.8x91cm 2020
ⓒ 김형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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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 삼국유사의 백미라 할 만한 '노힐부득'과 '달달박박'를 보자. 둘은 어려서부터 마음이이 잘 통하는 죽마지우, 좋은 가문에 태어나 훌륭한 교육을 받고 아리따운 규수를 만나 행복하게 살았다. 그러던 어느 날 갑자기 둘은 똑같이 삶에 대한 깊은 회의에 빠진다.

그래서 세속을 등지고 성불하기 위해 '백월산 무등곡'으로 들어간다. 둘은 북쪽암자와 남쪽암자에서 3년간 나름 열심히 수행했고 마침내 나란히 성불한다. 노힐부득은 '미륵불'이 되었고, 달달박박은 '아미타불'이 되었다. 그런데 사실 미륵불은 미래불이라 급이 더 높다.

그런 차이는 왜인가? 그들 앞에 어떤 낭자가 나타나면서다. 그 여인은 처음에는 '달달박박'에게 가 날 어두우니 하루 자게 해 달라 청했으나, 자신이 닦은 3년 공이 깨질까 그녀를 배척했다. 할 수 없이 그녀는 '노힐부득' 찾아가 또 청했고, 그녀를 안쓰럽게 본 그는 그녀를 받아들인다. 또 만삭이라 아이를 낳게 도와줬고 또 목욕하자고 해 그마저 응했다.

그랬더니 목욕물이 금빛으로 변했다. 그녀는 '관음'의 화신이었던 것이다. 물에 들어간 노힐부득 피부도 금빛이 되었다. 앞에 연화대가 생기고 거기 앉으니 '미륵불'이 된 것이다. 다음날 닥닥박박은 친구가 실수한 게 아닌가 해 가보니 벌써 성불이 돼 있어 깜짝 놀랐다. 노힐부득은 친구에게 여기 물이 남았으니 너도 목욕해보라고 권해 '아미타불'이 된다.

여기에 불교의 깊은 진리가 담겨 있다. 계율의 집착보다 중생에 대한 자비가 더 중요하다는 놀라운 메시지다. 그런데 '달달박박'을 작품명으로 삼은 것은 최민화만의 역발상이다.
 
최민화 작가. 뒤 '천제환웅(신시에 오다)' 캔버스에 유채 97x130.3cm 2018
 최민화 작가. 뒤 "천제환웅(신시에 오다)" 캔버스에 유채 97x130.3cm 2018
ⓒ 김형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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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이번에 처음으로 최민화 작가를 봤다. 그의 모습이 삼국시대 백제인을 연상시킨다. 호리호리한 몸매에 목소리도 나직하다. 여성적이나 강한 의지가 불타고 있었다. 그에게는 아직도 못 다한 예술적 잠재력과 화가로서의 무한한 가능성도 엿보인다.

작가 말에 의하면, 이 시리즈는 90년 말부터 시작했단다. 그림 속 주인공만 해도 50명이 넘는다. 그는 중국, 인도, 터키, 그리스, 이집트, 중앙아시아 등을 돌아봤단다. 인도 힌두사원 갔을 때 허가 없이 출입하려다 목숨까지 위태로울 수 있었다는 경험담도 전한다. 그러나 국경과 민족, 인종과 종교를 엄격히 구분하는 서구의 근대개념는 거부한다.
 
최민화 I '정읍사' 캔버스에 유채 90.9x72.7cm 2020(부분화). <악학궤범>에 있다
 최민화 I "정읍사" 캔버스에 유채 90.9x72.7cm 2020(부분화). <악학궤범>에 있다
ⓒ 갤러리현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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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는 삼국유사에 나오지는 않는 '정읍사(井邑詞)'를 보자. 백제가요로 전해지는 가장 오래된 시가다. 캔버스의 물성이 느껴질 정도로 예리한 필체와 투명한 파스텔 톤으로 묘사되었다. 그 노래의 애틋함은 삼국유사에 나오는 신라 향가 '공무도하가'를 연상시킨다.

이 노래는 전주의 속현인 정읍(井邑)에서 행상인 남편을 기다리는 아내가 부른 것이다. 그녀는 남편이 오래도록 돌아오지 않았으나, 이를 실망하거나 원망하지 않고 오직 천지신명께 빌 뿐이었다. 소박한 표현 속 리듬감 넘치는 간절한 노랫가락이 큰 울림을 준다.

최 작가의 뭔가 흐릿하게 보이는 화풍이 특징이다. 그는 그림에 힘을 빼고 살포시 앉은 듯하다. 그림에도 '예(禮)'를 갖춘 것인가. 회화의 모든 기술을 망라하되 힘을 빼고 톤을 낮춘다. 그는 다 그리지 않고 덜 그린 것 같아 투명한 여백미를 역설적으로 보여준다.
 
최민화 I '신시(神市)' 캔버스에 유채 각 97x130.3cm 2020(부분화). 신시를 시장으로 묘사하다
 최민화 I "신시(神市)" 캔버스에 유채 각 97x130.3cm 2020(부분화). 신시를 시장으로 묘사하다
ⓒ 갤러리현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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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이번에 선보인 작품 중 '삼국사기'에는 안 나오는 단군신화를 뺄 수 없다. 환웅이 하늘에서 무리 3천과 농경에 꼭 필요한 '풍백(風伯), 우사(雨師), 운사(雲師)'를 이끌고, 태백산 신단수(神壇樹)에 내려와 신시를 세웠다는 이야기. 태백산은 지금의 묘향산으로 추정된다. 그런 풍경을 상상만 해도 가슴이 설렌다. 작가는 기존통념과 다르게 시장으로 그렸다.

환웅은 신시에서 곡식, 질병, 형벌 등 인간사 360여 가지 일을 주관하면서 세상을 다스렸단다. 신시는 훗날 단군이 평양에 도읍하여 고조선 건국 때까지 환웅의 중심지였다. 여기에는 모든 것과 평화롭게 공존하려는 우리 민족의 이상적 염원이 담겨있다.

그밖에도 '해모수', '거타지' 같은 작품에서는 우리가 살기 위해 몸부림치는 치열함과 '가배(영고)'와 '동이족'같은 작품에서는 일상에 활력을 주는 축제와 향연의 면모를 잘 보여준다. 이렇게 최민화는 우리 상상력의 영토를 확장시킬 뿐만 아니라, 고대 신화, 설화, 전설 등을 변형시켜 회화의 영역과 범주마저도 건드리는 '메타회화'적 경지로 끌어올렸다.
 
최민화 I '범망경(梵網經)' 캔버스에 유채 97x130.3cm 2020
 최민화 I "범망경(梵網經)" 캔버스에 유채 97x130.3cm 2020
ⓒ 갤러리현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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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에서 언급했지만 최민화 도상에서 동방인, 서역인 이런 구분이 없다. 그는 회화란 뭐든지 가능하단다. 회화에서 중요한 색으로 오방색, 전통힌두색도 섞여 썼다. 과거, 현재, 미래와 근경, 중경, 원경도 혼합돼 있다. 신과 인간과 야수도 동급으로 그려져 있다.

위에서 보듯 유불선 도상이 다 들어갔다. 그들은 연꽃을 무대로 한자리에 모아 놓았다. 이들은 중생의 애달픈 삶을 관망한다. 그래서 '범망경'인가. 이 경전은 대승불교의 기초계율이다. 그러나 범본(梵本)이 120권 61품이 있었다는 구전만 전해지고 있을 뿐이다.

우리는 이번을 통해 작가가 탐구해온 미적 여정을 재확인할 수 있다. 보석 같은 문화유산인 '한국의 고대 이야기(Once Upon a Time)'를 우리 현재와 연결시키면서 그만의 독특한 회화적 조형으로 탈바꿈시켰다. 앞으로 최민화 화풍이 어떻게 바뀔지 벌써 궁금해진다.

덧붙이는 글 | [최민화 전시도록 26일까지 온라인으로 볼 수 있다]
https://issuu.com/galleryhyundai/docs/_______/50?fbclid=IwAR2Y0vpa_46BxIW_CHaJhdVI-o0uUZtQiTZsGIFxxOyvyWcWsbwY_TCEc60


태그:#최민화, #이만익, #삼국유사, #백남준, #유라시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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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중 현대미술을 대중과 다양하게 접촉시키려는 매치메이커. 현대미술과 관련된 전시나 뉴스 취재. 최근에는 백남준 작품세계를 주로 다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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