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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보세요. 옥천신문이죠. 저 구독하고 있는데요. 하나만 부탁해도 될까요? 지면에 로또 당첨번호 좀 실어줄 수 있나요?"

세월이 잔뜩 묻어난 목소리, 일흔에서 여든 사이 넘는 그런 음성이었다. 충북 옥천군 안내면 답양리에 사신다고 했다. 답양리면 한참 12가산 고개를 넘어야만 당도할 수 있는 오지 중의 오지였다. 고개가 가파르고 꼬불꼬불해서 눈이 오면 가지 못하는 그런 마을.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보니 로또 당첨번호는 토요일 티브이에서 발표되고, 옥천신문은 금요일에 발행되는데 한 주나 늦게 당첨번호를 받아보는 것이었다. 이게 왜 필요하실까? 지면에 담아낼 필요가 있을까.

여러 고민이 교차하던 그즈음에 예기치 못한 곳에서 불현듯 생각났다. 어르신 집에는 인터넷이 설치돼 있지 않으셨을 터이고, 스마트폰이 없을 터이며, 그러면 공중파 티브이 방송을 놓치게 되면 로또 당첨번호를 알 길이 없는 것이다. 오로지 바깥세상과 쌍방향으로 교통할 수 있는 매체는 '옥천신문'뿐인 것을 단박에 알아챘다.

그래서 말씀드렸다. "네, 어르신. 그렇게 할게요. 한 주가 지나도 그 로또 당첨번호가 필요한 것이지요? 그럼요. 실어드려야죠." 어르신은 고마워했다.

누구나 스마트폰으로 뉴스 본다는 착각
 
여전히 종이신문을 보는 사람들이 있다.
 여전히 종이신문을 보는 사람들이 있다.
ⓒ piki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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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오류와 착각에 빠지곤 산다. 인터넷은 어디서나 되니까, 스마트폰은 누구나 쓰니까, 어디에나 있으니까. 당연히 포털사이트 검색창에 물어보면 다 나오는 것을 굳이 종이신문을 통해, 그것도 한 주 늦게 보는 게 무슨 의미야.

여전히 인의 장막에 갇혀 있으면, 그들끼리만의 세상에 갇혀있으면, 잘 모른다. 성 밖의 사람들이, 장막 바깥의 사람들이 어떻게 사는지 관심조차 없다. 그리고 관심이 적어질수록 감수성이 옅어져 간다. 느끼지 못하는 것이다. 그들의 상황을, 불편함을, 고통을 알지 못하는 것이다. 알지 못하니까 느끼지 못한다. 감수성이 없어진다. 딴 나라 세상 이야기 같고 몇몇 소수의 이야기로 인지하기 쉽다.

그래서 물리적인 성벽은 없고 명시된 계급은 없지만 명확히 구분되는 지점은 분명 있다. 모른 채 하고 살아가는 것이다. 모르는 것이 마음 편하니까. 알면 시혜와 동정 한 스푼을 떨구면 그만이다. 그래, 그런 사람도 있지.

하지만, 그들은 소수가 아니다. 찾아보면 다수이다. 드러나지 않을 뿐, 숨죽여 살도록 강요받을 뿐, 필요할 때만 꺼내 쓸 뿐. 인터넷은커녕, 글자도 모르는 사람도 생각보다 훨씬 많다. 그래서 자기 이름으로 된 통장 하나 없이 농협과 관공서 가기 꺼리는 노인들도 수두룩 빽빽하게 많다. 모른다고 없는 게 아니다. 분명히 존재하는데 지워버리고 있는 것이다.

매주 신문을 사러 신문사에 들르는 사람들이 제법 많다. 월 1만 원 구독을 하면 우편으로 착착 알아서 배달을 할 텐데. 한 부에 2500원씩을 내고 신문을 사가는 분이 있다. '장터' 지면을 보는 분들이 대부분이다. 구인, 구직란, 월세, 전세란에 눈길을 주면서 쭉 훑어보신다.

그 지면 같은 경우 인터넷으로 무료 열람이 가능하지만(옥천신문은 유료구독제다 - 편집자 말), 꼭 와서 돈을 내고 사보신다. 인터넷 접근이 여의치 않은 사람들이다. 컴퓨터가 있다고 해도 켤 줄 모른다. 인터넷이 연결이 되어 있지 않으며 대부분 컴퓨터가 없는 사람들이다.

인터넷 비용 그 얼마나 된다고 금방 배우면 딴 세상이 열리는데, 라고 말하기 쉽지 않다. 친절하게 가르쳐줄 사람들도 없거니와 거기까지 이끌어줄 사회 서비스도 많지 않다. 신문사까지 버스를 타고 와서 신문값을 치르고 신문을 사보는 데는 나름의 이유가 있는 것이다. 누구한테 아쉬운 소리 하지 않고 자존심을 지켜가며 정보를 얻는 유일한 방법일 수 있다.

구독료도 못 내는 이들은 다행히 지역신문발전위원회에서 일부 구독료를 지원하고 나머지는 신문사가 지원하기 때문에 무료로 받아볼 수 있다. 정보 빈곤층인 이들에게 신문은 정말 양질의 자원이다. 한 번이라도 안 오면 득달같이 전화 온다. '저기 신문을 안 보는 것 같으니 우리 집으로 대신 넣어달라'는 연락도 온다.

그것이 과연 아무렇지 않은 일일까
 
22일 서울역 대합실에서 시민들이 스마트폰을 사용하고 있다. 문재인 정부의 인수위원회 역할을 하는 국정기획자문위원회는 노년층과 저소득층의 월 통신비 1만1천 원이 신규 및 추가 감면, 전국의 버스와 지하철, 초중고 학교, 공공기관에 공공 와이파이 무료 개방 등의 내용을 담은 통신비 절감대책을 이날 발표했다. 2017.6.22
 22일 서울역 대합실에서 시민들이 스마트폰을 사용하고 있다. 문재인 정부의 인수위원회 역할을 하는 국정기획자문위원회는 노년층과 저소득층의 월 통신비 1만1천 원이 신규 및 추가 감면, 전국의 버스와 지하철, 초중고 학교, 공공기관에 공공 와이파이 무료 개방 등의 내용을 담은 통신비 절감대책을 이날 발표했다. 2017.6.22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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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신문 시대는 이제 갔다고 한다. 스마트폰만 켜면 실시간 속보창으로 빠르게 소식들이 오가는데 여러 공정을 거치면서 느리게 배달되는 종이신문의 쓸모는 당최 어드메 있는 것인가. 시대에 한참 뒤떨어진 종이신문을 부여잡고 있는 이들은 현실감각이 한참 떨어지는 거 아닌가. 박물관이나 가서 있을 종이신문을 당최 누가 본다는 말인가.

옥천신문은 그래도 유가부수가 3500부에 달한다. 이는 옥천군 가구 수를 고려해볼 때 20%에 육박하는 수치다. SNS(에스엔에스, 소셜관계망서비스)가 일상이 된 시대에, 뉴스가 공짜로 널려 있는 시대에, 월 1만 원을 내고 종이신문을 구독해 보는 사람들은 도대체 어떤 사람들일까. 그리고 어찌 보면 불편한 플랫폼일 수 있는, 100% 유료구독자만 볼 수 있는 그런 플랫폼을 운영하는 신문사는 도대체 어떤 신문사일까.

사실 과정이야 지난하다. 인터넷 신문이야 홈페이지에 사진 첨부하고 기사 올리면 끝이지만, 종이신문은 프로그램으로 사진과 기사를 일일이 편집해야 하고, 인쇄소로 넘긴 후에 인쇄가 다 되면 다시 신문사로 가져오고, 그 신문을 시니어클럽 할머니 10명과 고등학생 두 명이 힘을 합쳐 3시간 이내로 다 포장을 끝내고 난 후에 다시 싣고 우체국에 가져다주는 번거로운 과정을 거친다.

인력이 상당히 많이 투여되고 비용도 그만큼 많이 든다. 또 우체국에서 분류해 배달하는 그 시간도 솔찮게 든다. 소식이 상대적으로 느릴 수밖에 없다.
 
옥천신문
 옥천신문
ⓒ 은평시민신문 정민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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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사람들은 느린 신문을 애타게 기다린다. 금요일만 되면 신문이 아직 도착하지 않았다는 전화가 쇄도한다. 그런 반응은 반반일 것이다. 인터넷을 볼 수 없는 환경에서 옥천신문만이 옥천 소식을 전달해주는 유일한 매체이기 때문에 기다리는 것이고, 또 하나는 인터넷이 되고 스마트폰으로 뉴스를 소비할 수 있는 환경에서 포털과 SNS를 눈 뒤집어 찾아봐도 제대로 된 옥천 소식을 볼 수 없기 때문에 기다리는 것이다.

느리게 배달되는 신문이지만, 한 주 동안 소비된다. 대판 24면에 타블로이드 24면의 옥천 곳곳의 소식을 쫙 끌어다 채운 콘텐츠는 일주일 내에 읽어도 다 못 읽는다. 빨간 줄을 쳐가면서 아는 사람 나오면 찍어서 알려주고, 이래저래 지역 소식을 건강하게 유통시킨다. 그러면서 광고가 자연스레 따라온다. 구독이 받쳐주니까. 여론이 형성되니까. 그리고 '옥천신문에 나온 그거 봤어' 이 한두 마디에 매체의 신뢰도는 깊어지고 영향력은 넓어진다.

디지털은 이미 옛날 말이다. 그것을 넘어서는 것들이 하루가 다르게 나오고 있다. 화질이 어떻다 저떻다. 넷플릭스, 왓챠, 디즈니 등 OTT(오티티, 온라인동영상서비스)들이 어떻다저떻다. 천지가 요동치도록 기술개발 다른 세상을 귀가 따갑도록 외치고 있지만, 그게 무슨 소용인가 싶다. 신문이 구독돼도 그런 소식조차 받지 못하는 사람들이 수두룩하다.

세상은 그렇지만 '열 사람의 한 걸음'이 아니라 '한 사람의 열 걸음'으로 뚜벅뚜벅 가고 있다. 빨리 가서 성과도 내고 싶고 새로운 세상도 보고 싶은 갈망, 내 창의성을 맘껏 뽐내고 싶고 그로 인해 바뀌는 세상을 보고 싶고 돈도 많이 벌고 싶은 게 욕망이라 그렇게 변해간다.

그런데 뒤처지는 사람들, 선 밖으로 밀려나는 사람들이 생각보다 많다. 새로운 스마트폰, 새로운 화질의 티브이에 열광할 때 글을 몰라 신문도 언감생심 볼 수 없는 사람들도 많다. 문해교육에는 상대적으로 관심이 적다. 복지의 한 귀퉁이에 자리 잡을 뿐이다.

티브이가 나오니까, 음성으로 들어도 되니까 과연 상관없을까. 읽고 쓰는 것이 여전히 중요한 세상에서 그것이 과연 아무렇지 않은 것일까. 빠르게 가다 보니 무엇이 중요한 것인지 놓치고 만다. 다 끌고 갈 수는 없고 뒤처지는 사람은 어쩔 수 없이 놓고 간다는 이야기를 아무렇지 않게 하곤 한다. 대를 위해 소를 희생해야 한다고. 무엇이 대이고 무엇이 소란 말일까. 누군가의 희생을 필요로 하는 것일까.

매체도 자본주의 체제 안에서 돈이 되는 쪽으로 진화하게 되어 있다. 돈 되는 것이 아무래도 지속가능하고 확장가능하니까. 살아남을 수 있으니까. 돈이 나오는 곳이 블랙홀로 작동한다. 구독료는 일천하고 뭉텅이로 들어오는 광고료가 크니까 광고료에 쏠리게 되어 있고, 기타 수익사업 등이 한꺼번에 돈이 들어오니까 감질나는 구독료는 성에 안 찰 것이다. 이미 여러 신문들이 구독은 하면 할수록 손해인 구조이다. 그 정도 두께의 종이신문을 내면서 구독료는 단가에도 못 미칠 것이다.

종이신문은 죽지 않아야 한다

그렇지만 왕창 종이신문을 여전히 찍어내는 이유는 광고 시장 때문이다. 광고료 비중이 80~90% 가량 되니 광고를 위해 찍어내는 것과 별반 다르지 않다.

이런 가운데 옥천신문은 광고도 잘 붙는 신문은 아니지만, 그나마 재정 비율의 50% 이상이 구독료다. 참 특이한 신문임에는 틀림없다. 사람들이 한 푼 한 푼 매달 내는 구독료로 봐주니까 신문이 버티고 있는 거다. 이런 재정구조이기 때문에 어려운 살림살이에도 광고주 등 자본가나 권력에 아쉬운 말할 것 없이 언론 본연의 역할을 수행하면 되는 것이다.

뉴미디어의 이야기는 정말 엄청 나온다. 이리 쓸리듯 저리 쓸리듯 명멸하는 매체는 정말 많을 것이다. 휩쓸리지 말고 기본을 지켰으면 좋겠다. 시대에 뒤떨어지는 것이 아니라 함께 가는 것이다. 뒤처지는 것이 아니라 모두와 같이 가려는 것이다. 저널리즘의 원칙이 어디에 있는지, 우리는 무엇을 위해 언론을 하는지 말이다.

종이신문은 죽지 않는다. 사라지지도 않을 것이다. 라면 깔개로도 쓰이고 농산물 말릴 때도 쓰이고 음식 덮을 때도, 포장하는 할머니들의 일자리로, 폐지 줍는 노인들의 일거리로 요긴하게 쓰일 것이다.

아니, 죽지 않아야 하며 사라지지 말아야 한다. 이 땅의 소외계층이 남아있고 성 밖의 사람들이 남아있는 한, 말이다.
 
한 시민이 신문지로 비를 피하고 있다.
 한 시민이 신문지로 비를 피하고 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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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글쓴이는 옥천신문 상임이사·제작실장입니다.


태그:#종이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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